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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꿈이 있는 인터뷰: 그림 그리는 사람 천정연
창간 이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터뷰” 코너를 <꿈이 있는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재개합니다. 전문가,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가진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한 그녀들을 소개하는 <꿈이 있는 인터뷰>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일다]
길을 멈추고, 닫혀있던 문을 열다
▲ 그림 그리는 사람 천정연(31). 4년 전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 일다
4년만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인터뷰한 지. 기획회의를 하며 <꿈이 있는 인터뷰> 첫 대상자로 “정연”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순간,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왜일까? 아마도 “꿈이 있는”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 요 근래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의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으로 단번에 찍혔다.
4년 전, 정연은 꿈을 향해 막 첫발걸음을 뗀 상황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막 학교에 들어갔다. 꿈을 꾸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뭐가 문제랴 하겠지만, 늦은 나이에 미술 전공으로 편입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고, 아마도 많이 막막했을 게다.
“(편입해서 미술 전공을 하자니) 처음에는 부딪히고, 쪽팔려가면서 알아가고, 힘들었어요.”
거기다 부모님 도움 없이 공부하려니 생활고까지. 주변 어른들 중엔 이런 말도 했을 듯하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좋은 일자리 때려치우고 저러고 있다’고. 그러나 어쩌랴.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그 회사생활이 죽도록 싫어,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게 만들었으니.
4년 전 그렇게 정연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멈췄다. 그리고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늘 닫고 지냈던 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걸어온 게 그에게 또 하나의 길이 됐다. 이제 제법 걸어왔다.
“학교에 다시 들어간 그 해 9월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일본 나고야대학으로 갔었어요. 그리고 나고야 국제디자인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많이 배웠죠.”
그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나고야 국제디자인센터에서는 매년 디자이너스 워크샵을 연다. 워크샵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은 나고야의 정체성이 뭔지에 대해 토론하고 이후 기념품 등을 만드는데, 정연은 여기서 스텝으로 일했다.
▲ 일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
“잡일이죠. 당시는 영어도, 일본어도 잘 안되고. 일이 너무 힘들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니까 제게 너무 큰 경험이었더라구요.”
일본에서의 일 년. 그는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를 익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성취욕 강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고 않고 집중한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 “빡세게” 지냈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살면서 돈 걱정 안하고 산 적이 없었는데, 그 일 년은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죠.”
장학금을 받고 간 덕이었다. 당신 엔화 환율이 올라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도 많았는데 정연은 돈 걱정 없이 맘 편히 살았다니 운이 좋긴 좋았던 모양.
돌아와서 얼마 후 졸업했다. 이제 하고 싶어한 ‘그림 그리는 일’을 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때였다.
예술방과후학교, 중고시장, 잡지 만들기...
“일러스트를 그려보니까, 사람이 뭔가 자기 작품이 나오면 희열이 있잖아요. 그걸 맛본 후,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돈을 벌면서 해야 하죠. 그러면 디자인회사에 들어가는 거? 그런데 딱히 땡기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졸업 후 2년 동안 있었는데, 컨셉은 ‘돈은 최소치만 벌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였어요.”
그래서 무용, 음악, 연극, 미술을 총망라 하는 예술 방과후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각자 무용, 음악, 연극, 미술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실험적인 교육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예술교육을 시도해보고, 꽤 재미있었다. 지금도 ‘예술통합교육공동체 뵤뵤’라는 이름을 걸고 계속 교류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 하는 중학생 3명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했던 것이다.
“중학생들이 관계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너무 어두운 거에요. 그래서 첫해에는 미술활동으로 찰흙으로 자기 손 빚어보기, 자화상과 타화상 그리기 등 자기표현 하는 수업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어요. 아마 자기들 힘든 거 털어놓고 하는 게 좋았던가 봐요. 그리고 뺏지 만들어서 같이 홍대 앞에 가서 장사도 하고, 책도 기증받아서 중고책 팔고, 수익이 꽤 됐어요.”
▲ 정연은 지난해 자원해서,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을 위한 캠프에 교사로 참여했다. © 일다
그 돈으로 정연과 학생들은 떡볶이 파티 한번 열고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이 캠프할 때 미술 활동할 수 있도록 전액을 기부”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미술 활동했던 것처럼 네팔 아이들이 똑같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랬다. 정연은 그들이 기부한 돈으로 종이, 물감 등 미술용품을 샀고, 얼마 후 그들의 바람처럼 네팔 아이들이 그것으로 미술활동을 했다.
정연은 이 세 명의 친구들과 잡지도 만들었다.
“얘네들이 전부 인터뷰하고, 기사 쓰고, 삽화 들어가는 거 다 그렸죠. 재활용 잡지였어요. 이면지를 기증 받아서 뒷면에 인쇄했는데, 첫날 인쇄 작업하는데 8시간이 걸린 거에요. 레이아웃이랑 쪽수 잘못해서 고치고. 8시간 동안 하느라 밥도 안 먹고 하는데, 스스로들이 놀란 거에요. 그렇게 해서 3호까지 만들었어요.”
1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2호는 홍대 앞, 3호는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3호 ‘학교란 무엇인가’에서는 세 명이 친구들이랑 부모님의 인맥을 다 동원해서 나름 재미있게 구성했다.
“인도, 미국, 한국 학교에 대해 기사를 실었구요. 특히 한국에서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는 친구 얘기도 싣고, 힘들게 다니는 얘기도 하고. 또 이중 한 친구는 선생님에 대한 성적표를 매겼어요.”
이 잡지는 지인들에게 배포되었고, 가격은 700원. 이 때 번 돈도 네팔에 전액 기부했다.
"나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
▲ 정연씨가 함께 참여한 예술통합교육(미술+음악+연극)을 통해,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헌양말인형극'<벌레이야기> 의 한 장면.
최소치의 돈은 벌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보낸 2년. 첫 걸음에 비해서 많이 걸어왔지만, 지금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원하는 일이 아니면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데, 이것이 어린 마음의 치기인지, 정말 마음의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고. 지금도 그걸 구별하는 게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그러나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 그런 걸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했고, 또 하면서 보람도 있었구요.”
여전히 “정말 하고 싶은 건 그림책 만드는 거”다. 그런데 최근 그는 취업을 했다.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교사로. 지난해 이 학교에서 ‘재활용디자인 프로젝트’로 한 학기 강사로 일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교사 채용까지 연결됐다.
“어떤 책에서 ‘소명은 자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글귀를 봤어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한 집착을 좀 내려놓고, 주변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했더니, 저에게 가르치는 일이라는 걸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연은 교사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주변에서는 그에게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던 터이다. “작가의 길이란 워낙 고생스럽잖아요. 고생스러워서 안 가기보다는 어쨌든 꼭 지금이라는 거 고집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바삐 작업실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학교에 출근인데, 작업실에 가서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을 위한 미술교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연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는 그 옛날처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으리라. 이제 그는 ‘자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을 찾고자 또 한 걸음을 떼고 있다. (윤정은)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창간 이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터뷰” 코너를 <꿈이 있는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재개합니다. 전문가,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가진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한 그녀들을 소개하는 <꿈이 있는 인터뷰>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일다]
길을 멈추고, 닫혀있던 문을 열다
▲ 그림 그리는 사람 천정연(31). 4년 전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 일다
4년만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인터뷰한 지. 기획회의를 하며 <꿈이 있는 인터뷰> 첫 대상자로 “정연”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순간,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왜일까? 아마도 “꿈이 있는”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 요 근래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의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으로 단번에 찍혔다.
4년 전, 정연은 꿈을 향해 막 첫발걸음을 뗀 상황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막 학교에 들어갔다. 꿈을 꾸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뭐가 문제랴 하겠지만, 늦은 나이에 미술 전공으로 편입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고, 아마도 많이 막막했을 게다.
“(편입해서 미술 전공을 하자니) 처음에는 부딪히고, 쪽팔려가면서 알아가고, 힘들었어요.”
거기다 부모님 도움 없이 공부하려니 생활고까지. 주변 어른들 중엔 이런 말도 했을 듯하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좋은 일자리 때려치우고 저러고 있다’고. 그러나 어쩌랴.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그 회사생활이 죽도록 싫어,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게 만들었으니.
4년 전 그렇게 정연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멈췄다. 그리고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늘 닫고 지냈던 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걸어온 게 그에게 또 하나의 길이 됐다. 이제 제법 걸어왔다.
“학교에 다시 들어간 그 해 9월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일본 나고야대학으로 갔었어요. 그리고 나고야 국제디자인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많이 배웠죠.”
그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나고야 국제디자인센터에서는 매년 디자이너스 워크샵을 연다. 워크샵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은 나고야의 정체성이 뭔지에 대해 토론하고 이후 기념품 등을 만드는데, 정연은 여기서 스텝으로 일했다.
▲ 일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
“잡일이죠. 당시는 영어도, 일본어도 잘 안되고. 일이 너무 힘들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니까 제게 너무 큰 경험이었더라구요.”
일본에서의 일 년. 그는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를 익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성취욕 강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고 않고 집중한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 “빡세게” 지냈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살면서 돈 걱정 안하고 산 적이 없었는데, 그 일 년은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죠.”
장학금을 받고 간 덕이었다. 당신 엔화 환율이 올라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도 많았는데 정연은 돈 걱정 없이 맘 편히 살았다니 운이 좋긴 좋았던 모양.
돌아와서 얼마 후 졸업했다. 이제 하고 싶어한 ‘그림 그리는 일’을 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때였다.
예술방과후학교, 중고시장, 잡지 만들기...
“일러스트를 그려보니까, 사람이 뭔가 자기 작품이 나오면 희열이 있잖아요. 그걸 맛본 후,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돈을 벌면서 해야 하죠. 그러면 디자인회사에 들어가는 거? 그런데 딱히 땡기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졸업 후 2년 동안 있었는데, 컨셉은 ‘돈은 최소치만 벌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였어요.”
그래서 무용, 음악, 연극, 미술을 총망라 하는 예술 방과후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각자 무용, 음악, 연극, 미술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실험적인 교육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예술교육을 시도해보고, 꽤 재미있었다. 지금도 ‘예술통합교육공동체 뵤뵤’라는 이름을 걸고 계속 교류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 하는 중학생 3명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했던 것이다.
“중학생들이 관계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너무 어두운 거에요. 그래서 첫해에는 미술활동으로 찰흙으로 자기 손 빚어보기, 자화상과 타화상 그리기 등 자기표현 하는 수업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어요. 아마 자기들 힘든 거 털어놓고 하는 게 좋았던가 봐요. 그리고 뺏지 만들어서 같이 홍대 앞에 가서 장사도 하고, 책도 기증받아서 중고책 팔고, 수익이 꽤 됐어요.”
▲ 정연은 지난해 자원해서,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을 위한 캠프에 교사로 참여했다. © 일다
그 돈으로 정연과 학생들은 떡볶이 파티 한번 열고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이 캠프할 때 미술 활동할 수 있도록 전액을 기부”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미술 활동했던 것처럼 네팔 아이들이 똑같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랬다. 정연은 그들이 기부한 돈으로 종이, 물감 등 미술용품을 샀고, 얼마 후 그들의 바람처럼 네팔 아이들이 그것으로 미술활동을 했다.
정연은 이 세 명의 친구들과 잡지도 만들었다.
“얘네들이 전부 인터뷰하고, 기사 쓰고, 삽화 들어가는 거 다 그렸죠. 재활용 잡지였어요. 이면지를 기증 받아서 뒷면에 인쇄했는데, 첫날 인쇄 작업하는데 8시간이 걸린 거에요. 레이아웃이랑 쪽수 잘못해서 고치고. 8시간 동안 하느라 밥도 안 먹고 하는데, 스스로들이 놀란 거에요. 그렇게 해서 3호까지 만들었어요.”
1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2호는 홍대 앞, 3호는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3호 ‘학교란 무엇인가’에서는 세 명이 친구들이랑 부모님의 인맥을 다 동원해서 나름 재미있게 구성했다.
“인도, 미국, 한국 학교에 대해 기사를 실었구요. 특히 한국에서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는 친구 얘기도 싣고, 힘들게 다니는 얘기도 하고. 또 이중 한 친구는 선생님에 대한 성적표를 매겼어요.”
이 잡지는 지인들에게 배포되었고, 가격은 700원. 이 때 번 돈도 네팔에 전액 기부했다.
"나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
▲ 정연씨가 함께 참여한 예술통합교육(미술+음악+연극)을 통해,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헌양말인형극'<벌레이야기> 의 한 장면.
최소치의 돈은 벌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보낸 2년. 첫 걸음에 비해서 많이 걸어왔지만, 지금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원하는 일이 아니면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데, 이것이 어린 마음의 치기인지, 정말 마음의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고. 지금도 그걸 구별하는 게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그러나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 그런 걸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했고, 또 하면서 보람도 있었구요.”
여전히 “정말 하고 싶은 건 그림책 만드는 거”다. 그런데 최근 그는 취업을 했다.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교사로. 지난해 이 학교에서 ‘재활용디자인 프로젝트’로 한 학기 강사로 일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교사 채용까지 연결됐다.
“어떤 책에서 ‘소명은 자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글귀를 봤어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한 집착을 좀 내려놓고, 주변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했더니, 저에게 가르치는 일이라는 걸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연은 교사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주변에서는 그에게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던 터이다. “작가의 길이란 워낙 고생스럽잖아요. 고생스러워서 안 가기보다는 어쨌든 꼭 지금이라는 거 고집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바삐 작업실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학교에 출근인데, 작업실에 가서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을 위한 미술교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연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는 그 옛날처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으리라. 이제 그는 ‘자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을 찾고자 또 한 걸음을 떼고 있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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