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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0.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뛰다의 배우 최재영씨가 뛰다만의 독특한 배우 훈련법에 대해 전합니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cafe.naver.com/tuida

 ‘뛰다’만의 독특한 배우훈련법 세 가지

'뛰다' 창작의 중심에는 배우가 있습니다. 시작부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하시겠네요. 하지만 배우라는 단어 자체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연극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10년이 조금 넘어 가는 뛰다의 지난날을 돌아 봤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정리하고 나누었던 것이 배우 훈련의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별로 궁금하신 분은 없겠지만 이번에는 뛰다의 배우훈련에 관한 글을 한번 써볼까 합니다.

 
훈련1: 중력에서 자유로워지는 ‘몸 다스림’
 

▲ 뛰다의 배우 훈련 중     ©뛰다 
 
초창기에는 배우 훈련이 우리가 만들어야하는 연극을 위한 특별한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공연에서 배우가 아크로바틱적인 움직임을 해내야 한다면 그걸 잘 하는 선생님을 찾아가 배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방법이 유용합니다.
 
그리고 뛰다의 연극은 대부분 강한(?)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무용수의 훈련과 비슷할 정도의 강도 높은 신체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작년 여름에는 현대무용을 하시는 안무가 선생님과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거의 매일 아침 반복적이고 단순한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합니다. 이런 근력 운동들은 보기 좋은 몸의 선을 만들어 주는 부수 효과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좀 더 자유로운 몸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뛰다에서는 자유로운 몸을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 니진스키를 떠올리면 아주 쉽겠네요. 더 높이 떠오르고 더 가벼운 몸. 그런 몸이 표현해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환상적입니다. 사실 뛰다의 모든 배우들이 발레리노 같은 훌륭한 몸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훈련의 지향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배우뿐 아니라 무용수 혹은 운동선수들이 하는 것 같은 훈련의 이름을 뛰다에서는 ‘몸 다스림’이라고 부릅니다.
 
훈련2: 더디고 힘들게 ‘소리 다스림’
 
그리고 매일 지겹도록 반복적인 발성훈련을 합니다. 정말로 지겹습니다. 훈련 중에 자꾸 다른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몸의 훈련은 진도가 아주 잘 나갑니다. 팔굽혀펴기는 한 달만 꾸준히 해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두 배는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소리 훈련은 미묘합니다. 어떤 날은 평소에 내지도 못했던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대부분 언제나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겹도록 반복하고 관찰해야 했습니다. 더디고 힘들지만 분명히 좋아지기는 합니다.
 
언젠가 가면을 쓰고 할아버지 역할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매일 저녁 평소의 내 목소리가 아닌 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특히 공연이 중반에 다다르면 객석 끝에서는 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연출가에게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당장에 좋아지지도 않았습니다. 매일 지겹게 반복했던 훈련의 결과는 10년쯤 후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도 목이 잘 쉬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때보다 10년 늙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지겹도록 반복하면서도 지겹도록 느린 효과를 보여주는 훈련을 ‘소리 다스림’이라고 부릅니다.
 
훈련3: 마음과 몸을 관찰하는 ‘움직임 명상’
 
뛰다의 모든 배우들은 거의 매일 몸 다스림과 소리 다스림을 합니다. 이런 반복적인 훈련을 마치고 나면 좀 더 고상한 훈련을 시작하는데 훈련의 제목도 고상합니다. 바로 '움직임 명상'입니다. 이 고상한 훈련을 조금 거창하게 요약해보자면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매일 똑같은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어쩌다가 이런 훈련을 하게 되었는지 잠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한번 막이 올라간 연극 공연은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본전을 뽑을 때까지 몇 차례고 똑같은 공연을 하게 됩니다. 많은 연출가들은 매일 똑 같은 질의 연극 공연을 올리고 싶어 하지만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똑 같은 것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매일 똑 같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고민을 우리가 처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론가와 연출가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아이디어와 훈련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훈련법들을 책으로 읽고 무식하게 따라 해 봤습니다. 때로는 다른 극단에 가서 그 극단의 훈련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음악은 악보가 있고 문학은 글자로 기록 되고 심지어 무용도 '총보'라고 불리는 기록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런데 연극은 기록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희곡이라는 것이 없진 않지요. 그러나 희곡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복수에 혈안이 되어 커튼 뒤의 폴로니어스를 잠시 후에 찔러 죽여야 되는 상황을 연기해야 하는 순간. 햄릿의 오른손 제스처는 희곡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수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얼굴은 잔뜩 찌푸렸지만 오른 손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배우는 허둥대고, 연출은 ‘얼굴만 찌푸리지만 말고 뭔가 감정과 연결된 멋진 제스처를 하라’고 주문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쩔쩔맵니다. 그러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릅니다. 주먹을 쥐고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갔더니 무언가 그럴싸했습니다. 어떤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며 멋진 분위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배우는 '오른손을 가슴에 가지고 간다'라고 기억해둡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같은 시도를 했지만 어제 만큼의 효과가 없습니다. 다음날은 그 효과가 더 없어지고 그 다음 날은 아예 오른손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 됩니다. 분명 같은 제스처를 했는데 왜 다를까? 그 제스처에 '심리상태'가 담겨 있지 않아서입니다.
 
이제 대본이라고 불리 우는 글자들 사이에 빼곡하게 '심리상태'와 '제스처'를 같이 기록합니다. 한결 수월하고 반복이 어렵지 않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는 왜 그런 심리상태를 갖게 되었나도 기록하고 그런 심리상태에 다다를 수 있는 독창적인 방법도 기록합니다. 대본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기록하고 수정하고 매일 같은 연기를 반복해도 스스로 지겹지 않게 느껴지도록 연습합니다.
 
▲ 뛰다의 배우 훈련 시간 중     © 뛰다

‘매일 생생한’ 연극의 의미를 깨닫다

 
그 이후 매일 똑같이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본이 있는 연극일 경우에는 아주 효과적이고 재미있지만 대본이 없이 즉흥으로 해야 하는 공연에서는 이 방법을 쓸 수 없었습니다. 또 매일 똑 같이 하는 것을 연습하기 보다는 매일 더 '생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똑같이'라는 말 속에는 '매일 생생하게' 라는 말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연기란 이런 거다. 라고 한마디로 말하기에는 공부가 많이 짧아 부끄럽지만 상식적인 생각으로 생생하게 혹은 생동감 있게 라는 단어가 붙은 연기는 분명 좋은 연기 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정성, 매력, 섹시함 같은 말들이 멋진 연기를 수식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생생하게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그 단어를 연기에 적용하면 아마도 ‘무대 위에서 진짜처럼 보이게 살고 있다’라는 의미로 들리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진정 좋은 연기 훈련방법은 늘 진짜처럼 보이게 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고 있다’를 연습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살고 있는데 살고 있는 표현을 만드는 방법을 찾으라고? 써 놓고 보니 말장난 같네요.)
 
‘현재’를 들여다보게 된 명상훈련
 
그런 고민들이 이어지던 중. 명상이라는 단어에 가 닿게 되었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매일 아침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방귀를 뽀옹하고 뀌어 웃음바다로 변하기도 했지만 진지한 자세로 명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명상을 왜 할까? 부처님은 왜 이런 짓거리를 해서 내 다리를 이토록 저리게 만드는 것일까?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기려 하면 별에 별 생각이 다 들고 그 생각들이 나를 더 번잡하게 만드는데 왜 이런 짓을 할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현재에 있었던 적이 있나? 짧게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 생각. 길게는 10년 전의 창피했던 기억. 혹은 내일 먹고 싶은 술 생각 등을 하고 있는 나는 있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훈련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도 닦는 이야기처럼 들리시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마저 해보겠습니다.
 
명상이란 현재에 있기 위한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요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현재에 머물기 위해 두 다리 꼬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들이 가만히 기다렸다가는 내가 앉기만 하면 들러붙는다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상태인데 그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명상을 앉아서 하지 말고 움직이면서 해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니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내 몸과 내 생각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같이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움직임 명상이라는 고상한 단어가 탄생되었습니다. 물론 뛰다의 일개 배우인 제가 이렇게 단정 지으면 이 단어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했던 다른 동료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각자 마다 과정이 달랐을 테고 또 가벼운 저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산사에 들어가 도를 닦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변주를 통해 터득한 앙상블의 미학
 

▲ 뛰다의 배우 훈련 중   ©뛰다  

 
‘현재에 머문다’라는 개념적인 이 말이 굉장히 유혹적이었습니다. 무언가 구체적으로 연결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관객들이 쳐다보는 공포의 무대 위에서도 현재를 살고 있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훈련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나를 들여다보려고 시도해보니 참 재밌었습니다. 늘 바라봤던 오른손이 어느 날 툭 하고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라는 놈도 좀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나란 놈 참 별거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선물처럼 따라 왔습니다.
 
내가 별게 아니게 되면 내가 연기해야 하는 놈들은 대단한 놈이 됩니다. 이 대단한 놈들을 별거 아닌 놈이 연기하니 영광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난 별거 아니니까 막 해버립니다. 그러다가 대단한 놈의 대단한 습관하나가 툭 하고 걸려들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수월합니다.
 
이런 옆길로 샜네요. 이 훈련은 그 말이 갖고 있는 모호함 때문에 참으로 다양한 방법의 훈련으로 변주 되었습니다. 혼자서도 하고 여럿이 서도 하고 여럿이서 하더라도 혼자 인척 하고 나만 관찰하다가 남도 관찰하고 우리를 같이 관찰하기도 합니다. 이런 훈련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서로의 몸에 대하여 서로의 움직임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우 개개인의 몸과 몸에서부터 울림이 시작되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앙상블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참 쉽네요. 이런 쉬운 일이 막상 하면 왜 이렇게 귀찮고 어려울 때가 많을까요? 특히 앙상블이라는 단어는 참 버거운 말이기도 합니다. 조금 급하지만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대표님이 어딘가의 글에 이런 말을 썼더라구요. 우리는 길 위에 있다. 제가 조금 변주해서 써먹어 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현재를 꿈꾸며 궁극적인 앙상블이 널뛰는 연극을 하기 위한 길 위에 있다.      (최재영 / 연극배우)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신문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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