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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를 품은 캘리포니아 풍경속으로
<일다>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6 만남- 레드우드와 연어 1.
필자 소개- 여라. 마흔이 되면서 '즐거운 백수건달'을 장래 희망으로 삼았다. 그 길로 가기 위해 지금은 와인 교육, 한옥 홈스테이 운영,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산과 들로 놀러다니다 와이너리(winery: 와인 양조장) 방문이 이어졌고, 이내 와인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 와인교육가협회 공인 와인전문가이며, 현재 영국 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의 디플로마 과정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와인산지 ‘나파’와 ‘소노마’
▲ 소노마벨리에 있는 올드 힐 랜치. 여러가지 포도품종이 섞여 있지만 주로 진판델이며, 와이너리 측 설명에 의하면 1885년에 심은 포도나무들이다 ©여라
지난 번 글에서 영화 속 와인 이야기와 함께 엘에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길에서의 추억을 그렸다. 계속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오리건 주 경계선에 이르는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풍경과 함께 음식과 와인 짝짓기를 좀 들여다보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와인지역을 방문하려면 대개의 경우 나파(Napa) 혹은 소노마(Sonoma) 지역으로 간다. 이 두 지역에는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나파는 가는 길도 잘 뚫려있고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아서인지 와인 투어가 먼저 개발되었다. (어쩌면 거꾸로 그 명성 때문에 길이 잘 뚫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소노마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길도 좁고 구불구불한 데다 와이너리 규모도 작은 편이다. 한마디로 커다란 관광버스가 쉽게 다닐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도 많지만, 나파는 상업적인 냄새가 진하고, 소노마는 수수하다. 테이스팅 비용도 나파는 훨씬 비싸다. 소노마는 잘 찾아보면 아직도 공짜 시음이 가능한 곳이 더러 있다.
따지고 보면 나 자신도 나파에 더 많이 간 것 같다. 외지에서 온 지인들의 제한된 휴가기간을 맞추려면 주로 나파로 데려가게 된다.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붐비고 시끄러운 곳 보다 조용하고 한가한 소노마에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건너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남짓 가면 소노마 미션이 있는 다운타운에 이르고, 거기서 더 북쪽으로 들어가면 포도밭과 와이너리, 그리고 숲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
▲ 앤더슨벨리에 있는 뢰데러 와이너리(Roederer Estate. 프랑스 샴페인 루이 뢰데러의 자회사)의 포도밭. 백악관 만찬주로 쓰이는 고급 캘리포니아 ©여라
앞서 한번 언급했듯 캘리포니아 와인역사는 18세기 말 스페인의 가톨릭 포교와 함께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1861년, 본격적인 와인제조를 위해 소노마 지역에 유럽 포도품종을 대대적으로 들여왔다.
캘리포니아에는 진판델 품종 수목 절반 정도의 수령이 50년 이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진판델은 캘리포니아 고유의 재래품종이라 여겨졌다. 그렇지만 연구결과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와 같은 종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저 시기에 들여왔는데 유독 캘리포니아 토양과 기후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소노마에서 차로 한 시간쯤 북쪽으로 달리면 101번 고속도로를 만난다. 거기서 128번 도로로 빠져 북서방향으로 비스듬히 산을 넘으면 멘도시노(Mendocino)로 가는 길이 있다. 멘도시노라는 이름 자체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저 옛날 ‘제시카의 추리극장’ 시작화면에 나오던 멋진 태평양 해안도시가 바로 여기다. 드라마에서는 미국 동북부 메인 (Maine)주가 배경인데 실제로는 캘리포니아에서 찍었다.
어쨌거나. 산을 넘어가는 길이니 거리에 비해 시간은 오래 걸린다. 하지만 숲속을 꼬불꼬불 지나가는 경치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엔 훌륭한 와이너리들이 모여있다. 이 곳 앤더슨벨리(Anderson Valley) 지역은 날이 차고 안개가 낀 날이 많아 와인스타일이 섬세하다. 피노누아, 샤르도네 등 스파클링와인을 만드는 품종과 게부르츠트라미너, 리슬링 등이 유명하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에서 만난 대자연의 감동
캘리포니아에는 국립공원이 25개 있다. 이들 국립공원 중에서 교통이 불편해서 그다지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숨은 보석이 몇 있는데, 그 중 쌍수 들고 강력추천하고 싶은 곳이 레드우드 국립공원이다. 엄밀하게는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가에 있는 국립공원 하나와 주립공원 세 곳을 합친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키 큰 나무인 레드우드(세콰이어)가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한 삼림 중 하나다. (레드우드는 키가 커서 큰 종류와 둘레가 커서 큰 종류가 있는데, 이곳은 키가 큰 레드우드가 주종이다.)
가까이에 큰 도시나 넓은 고속도로가 없는 깊은 숲이라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찾아가는 맛이 나고 숨겨진 이 보물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나도 한 번 가야지 하고 몇 년을 별러 캘리포니아에 사는 그 긴 세월 동안 겨우 두 번 가봤을 뿐이다. 그래서 그곳의 기억이 더 깊숙이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크거나 놀라운 자연을 만나면 사람은 새삼 스스로 왜소함과 함께 경외감을 느낀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이나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가 그럴 테고,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넌이 그럴 것이다. 이곳 레드우드 국립공원지역 사람들의 표현으로 ‘난쟁이 현상’이란 말이 있다. 수령이 보통 6-700년 되는 나무들의 키가 100미터를 훌쩍 넘기도 한다. 그 숲에 들어간 사람의 모습은 순식간에 영락없는 거인나라 난장이다.
▲ 크고 놀라운 자연을 만났을 때 쉽게 하지 못하는 일 하나가 레드우드 숲에선 가능하다. 그 놀라움의 실체에 뺨과 손을 대어볼 수 있다. © 여라
시간으로는 내가 백 번 죽었다 깨도 절대로 거슬러 갈 수 없는 태고의 느낌 그대로, 나무라고 하기에는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와의 만남이다. 내 말도 알아들을 것 같고, 수백 가지 다른 언어를 모두 알아들을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영화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 난 벽에 자신의 비밀을 한참 속삭이고 -아마도 흙으로 구멍을 막아- 그 뒤에 그 흙에서 풀이 자란 모습을 보여준 장면이 기억 속 가장 선명한 고백이었다. 이 숲을 거닐고 그저 크다고만 말하기엔 부족할 만큼 큰 이 나무들 사이에 있자니, 고해성사는 이런 곳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뭐, 개인의 취향이다.
그런데, 거대한 레드우드만큼이나 감동스러웠던 것은 연어였다. 겨울(우기)은 연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절이다. 연어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여행 안내소에서 지도에 짚어준 곳을 몇 군데 찾아다녔다. 어느 샛강 상류 다리 위에서 드디어 연어들을 만났다. 그 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강물이 콸콸 흘러넘치고, 연어가 펄떡펄떡 뛰어오르는데 곰이 연어를 낚아채서 잡아먹는 모습 말이다.
내가 본 모습은 처절한 현실이었다. 그 해에 다소 가물었던 이유로 깊지 않은 강물을 힘겹게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은 지느러미와 겉껍질이 이미 벗겨져서 허옇고 너덜너덜한 누더기 모습이었다. 산란기에 바다에서 민물로 돌아오면 붉고 화려하게 변한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걸레 같은 모습으로 얕은 강을 거슬러가고 있었다.
새대가리(새, 미안!)보다도 지능이 낮다는 물고기에게 모성애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오버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이든, 본능이든, 모성애든 그걸 뭐라 이름붙이든, 죽을힘을 다해 애쓰는 모습이 가슴 뭉클했다. 다리 위에서 그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나, 급반성.
바다낚시를 나가서 내 팔 길이 되는 제법 큰 연어를 낚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한동안 생선가게에 들를 때 마다 연어의 가격을 보면서 터무니없어 했다. 모야, 저 돈을 주고 연어를 사먹는단 말이야? 하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 처절한 연어를 본 뒤에는 생선가게 연어에 그 모습이 자꾸 겹쳐졌다. 빨리 잊으려고 했다.
겨울잠 들어가기 전에 곰은 산란하러 상류로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 그 알만 훑어먹는다. 으아, 얄미운 놈! 그래, 그건 자연의 섭리다. 인간이 욕심내어 남획하지 않는 한, 연어는 음식이다, 자꾸 되뇌었다.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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