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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령, 그가 만드는 ‘더 많은 민주주의’
[일다] 조이여울의 記錄 (14) 어떤 선거운동 

 
“우리는 장사를 하니까 표출을 잘 못해요. 안타깝죠. 먹고 살아야 되니까. 매스컴 타는 자체가 왜 싫겠어요? 좋기야 좋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부지게 하고. 근데 시선이 따가워요. 원래는 그런 게 없어야 하는데. 요즘은 공무원들도 다 내림이잖아. 어느 줄을 서느냐 이런 거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쩔 수 없이 내 양심 속이고 줄을 서야만 하는.” (울진의 한 시장에서 만난 여성유권자)
 
“박혜령 후보님, 저는 예전에 핵 폐기장 반대운동 했었던 OOO입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는 거 보고, 당연히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에서 일하고 있어서, 대놓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영덕의 한 식당에서 만난 남성유권자)
 
4.11 총선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 지역구에 출마한 녹색당 박혜령 후보를 지지하러 7일과 8일 양일간 선거운동을 함께했다. 기자로서 동행한 것이 아니라, 선거운동원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지역곳곳을 돌며 유권자들과 만난 1박2일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드라마틱하게도, 박혜령 후보가 가는 곳마다 간증과도 같은 주민들의 고백을 접하게 되었다.
 
영덕의 귀농여성, 정치를 다시 사유하게 하다 

▲  4.11 총선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군 지역구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여성농민 박혜령씨   ©일다  
 
작년 10월, 영덕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연대를 호소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시민들의 무관심에 눈물 흘리던 박혜령씨를 처음 본 이후 나는 줄곧 이 사람을 잊을 수 없었다.
 
몇 주 후 영덕으로 내려가 인터뷰를 청했을 때, 박혜령씨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골로 귀농해 17년간 농사 지으며 살아오던 자신이,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앞장 서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련 기사: 에너지문제 “어쩔수 없다 말하지 마세요”)
 
비단 핵발전소 문제만이 아니었다. 지역사회에서 정부와 관공서가 어떻게 토건사업들을 밀어 부치는지,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주민들의 입이 얼마나 가로막혀왔는지, 그 결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얼만큼 훼손되고 실종되었는지, 박혜령씨의 울음 섞인 말 속에 우리 지역사회의 암담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날의 만남을 인연으로 작년 12월부터 <일다>에 “박혜령의 숲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를 시작했다. 개발과 성장, 물질과 성공을 쫓아 위험한 길을 내달려가는 한국사회에, ‘보다 나은 길이 있다’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의 편지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올해 2월 박혜령씨가 지역구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전형적인 새누리당 텃밭인데다가, 전 재산 2천만 원에 불과한 사람인데다가, 지역에서 함께 뛸 운동원이라고는 남편을 포함해 10명 남짓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신호’였다. 박혜령씨는 정치에 대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성공신화, 토건의 개발논리에 밀려 포기하도록 강요되어온 가치, 강자의 논리와 이윤 앞에 더 이상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 차선도 아닌 ‘차악’을 말하는 정치판을 낯설게 보도록 만들어주었다.
 
몸살을 앓는 땅과 강과 바다의 시름을 보고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 사이 한국에도 녹색당이 창당해 박혜령씨는 무소속이 아닌 정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전 처음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다.
 
새누리당 텃밭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선거일을 4일 앞둔 지난 7일, 울진군의회 앞에서 만난 박혜령 후보는 그 사이 눈에 띄게 마른 데다가 목소리도 쉰 상태였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활기 넘쳤다. 

▲ 울진 후포항에서 유세 중인 박혜령 후보.  TV 토론회를 계기로 울진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게되었다.  © 일다  
 
“울진에서는 핵발전소 이미 있는 거 어떻게 하겠냐, 그런 체념과 패배의식이 강하게 느껴져서 처음엔 여기 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희망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생활 속 한 귀퉁이에 핵발전소를 두고 사시는 분들이 심적 부담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웠고요.”

 
그래서 ‘더 자주’ 울진에 왔다. 7일 울진시장 부근을 돌며 선거운동을 할 때, 주민들은 박 후보를 따뜻하게 반겼다.
 
울진 지역민들의 태도가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3월 28일 포항MBC 후보자 토론회에서, 박혜령 후보가 핵발전소 부근에서 살아가고 있는 울진주민들에게 배급된 방독면을 들고 나와, 사용기한 10년이 넘은 것임을 폭로하며 동시에 핵에 관한 긴장감을 일깨운 것.
 
“방송에서 울진 분들 이야기한 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는지, 다음날부터 격하게 감정 드러내시면서 반가워하셨고, 함박웃음으로 만나주시기 시작했어요. 일명 ‘방독면 아지메’ 왔다고. 저를 울진주민으로 여겨주시는 것 같고, 너무 감사했어요. 핵 문제 관심 있는 분들은 다 공감하시고, 아이 키우는 젊은 부모들도 녹색당 이야기에 관심 많이 기울이고 계세요.”
 
울진 북면에 있는 핵발전소 지역을 다녀온 것은 더욱 자극이 되었다.
 
“핵발전소 안에서 일하시는 현장 노동자들을 만났어요. 너무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역주민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본인들만 떨어져 딴 세상에서 살고 있고, 함부로 말을 섞지도 않고 얼굴이 굉장히 경직되어 있어서 가슴 아팠어요 우리가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풀어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 박혜령 후보는 유권자와 눈빛을 마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이라고 말한다.  
 
박혜령 후보는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와) 눈빛을 마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뜻과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주위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일”이었던 지역 사회에, 선거운동을 통해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만 되면 다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주민들이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불안해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주위 살피시고.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는 게 엄청난 성과예요. (선거) 결과로 얼마나 드러날 지 알 수 없지만, (핵발전소 반대운동) 대책위 때와는 다른, 큰 성과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울진, 영덕서 박혜령 후보와 함께한 축제
 
울진과 영덕 곳곳에서 진행된 선거운동은 서울, 대구, 인천 등 각지에서 온 녹색당원들이 함께했다. 다른 정당과는 달리 맞춤형 선거운동복도 없고, 차량과 음향과 각종 준비물을 손수 제작하는 등 ‘가난한’ 녹색당의 선거운동은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운동원들은 녹색 바람개비를 가슴에 달아 휘날리면서, ‘기호 7번 박혜령, 정당투표는 11번 녹색당’을 알리는 각양각색 피켓을 들고 유권자에게 한 표를 부탁했다.
 
어떤 이는 박혜령 후보의 상징이 된 “방독면”을 설치미술로 제작했고, 직접 방독복을 만들어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거리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멸종 위기종 ‘저어새’로 분장한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길 위의 대안학교’라 불리는 보따리학교 아이들도 바람개비를 날리며 “우리는 맑은 햇빛이 좋아요~”를 외쳤다. 

▲ 박혜령 후보 선거운동을 도우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녹색당 당원들은 방독면 퍼포먼스, 저어새 분장,  가면극 연출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쳐 상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부네굿’의 장소익 연극인과, 유인촌 전 문광부 장관으로부터 해임을 당해 대법원에서 승소한 바 있는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등 예술인들도 박혜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울진시장은 작은 축제의 공간이 되었고, 상인들은 “재미있다”, “건전하다”, “기발하다”, “현대적이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제는 무조건 하고 찍지 말고, 좀 바뀌어야 않겠나” 라며, 박혜령 후보 지지의사를 밝힌 상인 김정숙(47)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래낀가 농협 앞에서 (선거운동) 하시길래 좀 보고, 어떤 당인데 저렇게 하느냐, 처음엔 비례대표인 줄 알았거든요. 보니까 7번이시데요? 요즘은 인터넷 들어가면 다 알아볼 수 있으니까. 핵 반대운동, 농어촌 주민들 문제, 교육문제 이런 게 신뢰가 갔죠. 내만 생각하지 말고 후대를 위해서 투표해야 하잖아요. 여자로서 더 믿음이 가고, 진실도 있어 보이고.
 
이제는 어떤 걸 갖다 대도 ‘저 사람 말은 아니다’ 라는 걸 우리가 판단해야지, 이끌려 가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 마음이에요. 후보자들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정확하게 찍자는 거죠. 겉만 보지 말고 깊숙이 속을 보면서. 이것 저것 견줘 보고. 저는 표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갈랑갈랑하게 나는 그런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선거
 
민주주의는 엄청난 세금을 들여 선거를 치른다. 시민들은 투표에 참여하여 대표자를 뽑는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선거는 대표자들의 머리 수로 평가되곤 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민주주의일까.
 
대표자가 바뀌어도 또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또 바뀌어도,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멀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스템의 한계에 자포자기하는 대신 ‘더 많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 울진군 버스정류장에서 유세하는 박혜령 후보.  한 여성유권자가 다가와 농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꽤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거의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의석 하나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정치적 성과를 얻은 것이리라.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를 통해서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정책과 제도는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지요. 녹색당과 함께 만들어갈 겁니다. 저희는 이미 선거 이후를 준비하고 있고요. 어떻게 지역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지,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박혜령 후보는 이미 선거 이후를 전망하고 있다. 열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했던 반핵 운동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전국에서 힘을 모아주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슬프지만은 않다”고 한다.
 
“농사 짓는 분들과 앞으로 지역에 협동조합이나 여러 가지 자치활동 구상하고 있고요. 문화행사들,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다양한 기획이 나오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선거 사무실을 좀더 폭 넓은 주민들의 공간으로, 몇 평 되지 않지만 수만 명 주민들의 참여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만들어야겠다 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많아요.”
 
예전에 만났을 때 박혜령씨는 영덕이 주민들 사이에 ‘영 덕이 없는 도시’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척박한 곳이라고 했다. 이틀 전 만났을 때는 공약을 하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영원히 덕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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