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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민사소송 패소 판결의 문제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부당해고 사건은 올해 2월 1일, 가해자 해고와 피해자의 원직복직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내 최초의 산재인정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업무에 복귀한 피해자는 또 다시 주변동료들과 회사로부터 2차가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해자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가해자 2인을 제외한 현대자동차와 해당 하청업체 대표이사의 관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보고, 직장내성희롱 문제에 있어서 사용자 책임의 문제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필자 나영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부당해고 사건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인권위, 형사재판에서도 인정된 사실도 무시한 판결
▲ 9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직장내 성희롱 사용자 책임 인정 촉구 기자회견 © NGASF
지난 8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김용두 판사는 아산 현대자동차 공장의 사내하청 기업에서 벌어진 성희롱·부당해고 사건에 대하여 성희롱 가해자인 관리자 ㅈ씨와 ㅇ씨에게는 각각 벌금 4백만 원과 7백만 원을 선고하고, 하청업체 대표이사와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에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이 사건에 대해 2011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가해자와 대표이사 모두의 성희롱, 부당해고 책임을 인정하여 피해보상을 권고한 바 있고, 같은 해 11월에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서도 ‘남녀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대표이사에 대해 벌금 3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내린 바가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민사 재판부는 이미 입증된 사실들과 책임마저도 모두 무시해버린 것이다.
애초에 이 사건이 지녔던 상징성과 무게만큼, 이 사건의 판례가 앞으로 하청 기업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현실적 노동 조건과 권리, 구체적인 삶에 미칠 영향들을 생각하면 이 판결을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화되면서 음란물 단속 같은 미봉책에서부터 성충동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 전자발찌 적용 대상 확대와 같은 인권침해 우려까지 있는 강경 처벌 일변도의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 직장내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분명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부당해고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성범죄 해결에 대한 선결과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에 무지한 재판부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서 부딪히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피해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모두 피해자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아무리 피해사실을 주장해도 구체적인 증거로써 제시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특히 시간이 지나면 입증하기가 어려운 조건들도 많이 발생한다. 또한 실질적인 증거보다는 피해자의 경험과 증언,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가해자와 가해자의 지인들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증언이나 주장을 내세울 경우 사실관계를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나 재판부에서는 법리의 적용에 있어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의 이러한 특수성이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피해사실의 입증 부담과 반복되는 사건 진술, 가해자 측의 사건 왜곡 등으로 인해 재판과정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역시 피해자는 수년 간 반복되어 온 가해자들의 언어적·신체적 성희롱 행위를 수차례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실질적인 증거로서 입증된 문자 메시지 발송 건과 통화내용만을 가해사실로 인정했다. 그 밖의 수많은 가해사실들은 ‘인정할 증거를 찾아볼 수 없고’, ‘성희롱 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 사실이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은 온전히 재판부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재판부가 기본적으로 성희롱 가해의 특수성과 가해사실들에서 드러나는 가부장적·남성 중심적 행위의 특징, 그리고 가해자들이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작업장 내 관리자라는 특수한 권력 관계의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 등을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 가해자들의 수많은 언어적·신체적 성희롱 행위들은 상식선에서 판단해 보아도 결코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해서는 안 되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업주 눈에 띄지 않은’ 성희롱은 개인 간의 문제?
이와 같은 태도는 원청업체로서의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판단하는 데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재판부는 가해자들의 가해 사실이 ‘휴일이나 한밤중에’, ‘근로 장소와는 관련 없는 곳에서’, ‘은밀하고 사적인 수단인 휴대전화를 통하여’ 이루어졌기에 사업주의 지배·관리권이 미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대차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현대차의 책임을 무마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들은 앞에서 가해자 2인의 가해사실들 중에 증거로 입증된 몇 건에만 해당되는 문제일 뿐, 재판부가 무시한 수많은 가해사실들 중에는 근무시간이나 작업장에서도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이루어진 가해사실들이 많다. 무엇보다 ‘사업주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사업주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피해입증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매일 위계 관계 속에서 마주쳐야 하는 직장 상사에 의한 성희롱을 장소와 시간을 달리했다고 해서 사업주의 책임을 떠난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것은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적용하여 피해자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부당해고’ 지시내린 대표이사 책임 없다 해버리면…
피해자가 항소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이자 이 소송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피해자를 징계·해고 한 하청업체 금양물류 대표이사와 원청업체 현대자동차의 책임 문제이다.
금양물류의 대표이사가 피해자를 부당하게 징계, 해고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검찰청에서도 명백히 인정된 사실이기도 하다.
금양물류의 대표이사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희롱 통화 내용을 녹취했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전화녹취는 불법이기 때문에 당신이 불리하다”며 위협을 가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피해자의 직장 동료들에게는 전화녹취에 대해 불법행위로 고소고발을 할 경우 증인을 서라며 진술서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포함된 인사위원회에서는 ‘회사의 규칙을 위반, 잘못된 언행을 감행하여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징계했다. 심지어 징계 이후 피해자에게 휴직을 강요하다가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자 결국 해고시켜버렸던 것이다.
금양물류는 문제가 커지자 아예 폐업신고를 해버렸다. 이는 하청 기업들의 전형적인 책임회피 전략이다. 이렇게 될 경우 책임 청구의 대상이 사라지게 되면서 노동자는 피해를 구제받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재판부는 “민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는 사용자나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 예방 의무를 지닌 사업주는 대표이사가 아닌 독립된 법인격을 갖는 회사 자체를 의미한다”며 대표이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하청업체 노사관계의 특징과 노동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매우 협소하고 무책임한 법리적 해석에 불과하다.
‘남녀고용평등법’ 상의 사용자의 책임이 이토록 협소하게 적용되고 만다면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해석대로라면, 앞으로도 하청업체의 사업주들은 피해자들을 부당하게 징계, 해고하고도 얼마든지 책임회피가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청업체의 노무관리 책임 왜 따지지 않았나
원청업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이 사건에서는 현대자동차의 관리 책임을 따지기 위해 현대자동차와 가해자들의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하는지를 검토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재판부는 현재 다른 사건에서 쟁점으로 심리되고 있다는 이유로 별론(別論)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관리자들이 직접 하청업체 관리자들에게 전반적인 노무관리를 지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으며, 심지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징계수위조차 일일이 지시한 것이 확인된 바 있다. 게다가 현대자동차는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이 다루어지게 되자,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문건을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했다.
굳이 이런 사실들을 일일이 근거로 들지 않더라도 원청업체로서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를 일일이 관리하고 노무관리를 지시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피해자 역시 같은 공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제품들을 검사하는 일을 해 왔다. 현대자동차의 노무관리 책임은 별론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도 분명히 따져 적용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피해자는 현대자동차에서 14년을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자동차와 금양물류 모두 명백하게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의무를 위반해 온 것이다. 따라서 항소심에서는 법원이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사용자 책임 인정이 중요한 이유
관리자들의 가해 사실이 알려지자 바로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금양물류의 모습은 비단 이 회사의 대표이사와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남성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결속된 직장 내 권력의 카르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사회의 좁은 관계망에 있는 중소규모 하청기업일수록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이렇게 강력한 가부장적 권력 관계들 속에서는 피해자가 더욱 쉽게 고립되고 가해자의 지인들에 의한 2차 가해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들 때문에 가해자를 명백히 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할 사업주의 책임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성희롱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투쟁에 승리해 복직을 한 후에도 피해자는 여전히 새로운 업체의 사업주와 가해자 지인들에 의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의 이러한 상황들과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1심 판결문은 성범죄에 대한 강경 처벌 방침을 수십 번 소리 높여 천명한다 하더라도 결국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준다. 남성 중심의 강력한 카르텔 속에서 피해자가 모든 입증 책임을 요구받는 현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관행들이 존재하는 이상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에서부터 끔찍한 강력범죄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가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권력, 그리고 이를 용인하거나 피해자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현실들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특정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목청 높여 강경 처벌을 요구하면서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실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똑같은 관행들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역시 우리 주변이나 자기 스스로의 가부장성, 남성 중심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외면하고,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범죄 가해자의 80% 가량이 피해자의 지인이라는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사건의 해결이 피해자의 복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향후 기업과 지역사회의 변화, 재판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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