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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녀’는 없다 [국제화되는 성산업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 
 
한국에서 성매매가 ‘인권’의 문제로 공론화되는 시발점이 된 것은,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5명의 여성이 감금된 채 숨진 사건이다. 현장에서는 한 희생자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업주와의 채무구조에서 하루하루 착취당하며 빚을 갚기 전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성매매 현장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록이 적혀있었다.
 
이전까지 우리사회에서는 성매매 문제를 음지에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쯤으로 치부했지만, 일명 ‘아가씨 장사’라는 성산업의 구조가 드러나게 되면서 사고 팔리는 여성의 몸과 권리에 대한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윤락행위등방지법이 폐지되고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성매매 문제는 더 이상 성을 팔고자 하는 개인과 그 성을 사고자 하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는 성을 매개로 한 산업화된 구조가 있으며, 그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사기와 인신매매, 성폭력과 폭행, 선불금을 이용한 신체의 구속, 협박, 금품갈취, 성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산 화재참사로부터 12년이 지난 아직도 ‘성매매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언론의 보도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원정녀’ ‘해외파’ 등의 용어에 섞인 낙인과 왜곡
 
최근 보도된 <'오피' 성매매女 행동강령 "못생긴 손님일땐…”> 제하의 2012년 10월 5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자. 성매매를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았을 때 이런 보도는 나올 수가 없다. 이 기사에는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어온 가부장적 사고방식, 즉 성매매는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들이 몸 파는 행위’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지금도 성매매를 다루는 많은 기사들은 인권 사안을 다룬다기보다는 가십성이거나, 여성의 신체를 탐닉하는 듯한 선정적 남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성매매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이나 대책이 모색될 리 없다.

▲ 박희정 만평 [위태로운 언론의 펜]  
 
축소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성산업에 대해 언론은 그저 성매매특별법이 효력이 없다고 진단할 뿐, 당면한 문제로서 해결하기 위해 깊이 다가가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취한다. ‘변종 성매매’, ‘해외 성매매’ 등에 대해서도 성매매 단속으로 인한 ‘풍선효과’라고 규정하면서, 단속을 제대로 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대책 없는 보도를 쏟아냈다.
 
최근에는 세계화된 시장의 흐름을 타고 국제화된 성매매에 대해서 많은 언론들이 ‘문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는 언론들의 경우엔 그저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치거나, 그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세히 알려주며 선정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거나, 심지어 영토 밖으로 나가 외국남성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여성들을 향해 국제적 망신이라며 탓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해외 성매매 ‘원정녀’ 적발하고 보니… 동아일보 2011-10-10
[성매매 수출 세계적 망신] "호주에 몸파는 한국여성 1만명… 이젠 두바이 가려 줄서" 조선일보 2012-06-16
'해외파' 여성 日 5만.美 3만명 추산 주간한국 2012-05-25
일본 원정 성매매 (기사 이미지: 여성의 다리 사이) 주간한국 2011-10-18
낮에는 유학생 밤에는 성매매…'부끄러운 한국' 조선일보 2012-06-29
 
위와 같은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들이 해외 성매매를 바라보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고 단죄하고 있다는 점이고, 해외 성매매를 ‘문제시’하는 이유가 국가 망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보도의 문제는 ‘원정녀’ ‘해외파’ ‘몸파는’ 등의 표현에 담긴 시각, 즉 성매매 문제를 표피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알선업자들이 여성들의 몸과 성을 구매자와 거래하는 구조’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매매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성차별과 인신매매, 성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말이다.
 
최근 호주 성산업에 유입된 한인여성들의 실태를 조사한 부산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변정희 활동가에 따르면, 한인여성들의 성매매는 브로커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호주로 송출되기 전 이미 국내에서 사채와 같은 구조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적 규정에 비추어볼 때 인신매매에 해당한다.
 
국제화되는 성매매,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들이 성매매 관련 사안을 보도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체적으로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왜 문제라고 보는지 혹은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지 자가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한국의 주류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스포츠신문사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버젓이 성매매 알선 광고를 게재하여 수익을 올려오다가 2008년 다시함께센터 등으로부터 공동고발을 당한 바 있다. 언론사들이 성매매특별법에 저촉되는 성매매 알선 광고를 개제해온 업자에 해당하는 셈이니, 회사의 운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다 할 수 없는 언론인들이 성매매 문제와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물론 해외 성매매 문제를 다루며 알선책과 성구매 남성이 적발된 사례들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이 국제적인 인신매매와 성산업의 고리 속에 삶이 연루되어 위험에 처해있다는 인식은 현저히 저조하다. 오히려 브로커와 성구매 남성, 그리고 성판매 여성을 일직선 상에 놓고 도덕적으로 문제를 삼는 시각이 두드러져 보인다.
 
자본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 남태평양의 섬 키리바시에서 한국선원들로 인해 나이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구조’가 만들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5년에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키리바시는 2003년에 한국인 선원의 성매수 문제로 한국어선을 정박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을 만큼 이미 그 역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한국선원들의 키리바시 여성에 대한 성매수 행위는 국제적 문제가 되어 한국 정부가 개입했으나, 2007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다는 보고가 제출되었다.
 
사실 키리바시뿐 아니라 러시아, 몽골 등 한국남성들이 경제적으로 진출한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산업’이 생겨나고, 이들 사회에 성매매 문화가 침투하여 한국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사회적 현상이 생겨나고 자본의 개입을 통해 성매매 구조가 일단 정착을 하게 되면, 여기에 유입되어 생계를 의존하게 된 여성들을 그 구조에서 벗어나게 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게다가 대부분 성구매 남성들은 돈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으며, 사회적 여론은 쉽게 ‘파는 사람이 있으니까 사는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 성매매를 구매자와 판매자 양방 간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다.
 
키리바시 섬에서 한국선원들이 십대여성들의 성을 매수하기 시작하여 성매매 여성들이 대거 생겨난 것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한국선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키리바시 여성들을 보며, 그녀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화살을 성매매 여성들 쪽으로 돌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비단 그녀들 중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만 피해자라고 인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내외 성매매의 문제를 바라볼 때, 언론인들은 성산업이 어떻게 구축이 되며 그 구조 안에 유입되는 여성들의 상황이 어떠하고 미래의 삶은 어떠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야 성매매가 왜 문제이며, 성별 권력과 인신매매와 이주와 인종의 문제까지 겹쳐지고 있는 성매매의 현황에 대해 무엇이 원인이고 대책이 될 것인지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이여울)
 
※ 이 기사는 지난 11일 부산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과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해외 성매매, 어떻게 접근할까” –성매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체계 및 인프라 구축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 사업보고회-에서 토론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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