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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의 전쟁’ 호텔 룸메이드의 하루
<기록되지 않은 노동>⑦ “호텔의 꽃이라 하지 마라”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호텔서비스 여성노동자(룸메이드)의 노동에 대해 기록한 변순희님은 르포작가이자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입니다. 이 연재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남편이 펄펄 끓는 물주전자를 집어던지던 날
김은미(가명)는 결혼과 함께 임신을 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전업주부로 10년을 지내다 첫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다시 일자리를 구해 거리로 나섰다. IMF가 끝난 지 몇 해 지났지만 실업자가 늘어나던 시절이라 일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수입이 들쑥날쑥하게 된 탓에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지 않았어도 은미는 직장을 구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아는 사람 소개로 조그마한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중국 사무소에 있는 사장가족이 일 해야 한다며 강제사직을 요구했다.
“그동안 고생했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거 미스 김이 더 잘 알잖아. 그리고 이거 받아.” 사장은 10만원짜리 수표 3장을 은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도 힘들게 마련한 거야. 3년간 쌓인 정도 있고 해서… 그래도 미스 김이니까 이렇게 위로금이라도 주는 거야.”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수표를 던져버릴 뻔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퇴직금을 못 줄 형편은 아니었다. 부당하다고 따질 겨를도 없이 그 돈을 챙겨들고 회사를 나왔다. 남편 사업은 처음부터 잘 풀리지 않았고 집에 돈 한 푼 갖다 주지 않은 날이 점점 길어졌다. 괴로워할 여유도 없이 은미는 일을 찾아 나섰다.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취업한 곳이 출판 다단계회사였다. 다단계회사에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은미는 수 백 만 원의 빚을 지고 난 뒤에야 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이루어 낸 실적은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물건을 강매한 것에 불과했고 방엔 회사에서 사들인 물건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단계 회사를 그만둘 무렵 남편도 시작한 사업을 접었다. 남편은 점점 술이 늘었고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도 질러댔다. 처음엔 남편도 괴로워서 그렇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술주정과 폭력은 은미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술만 먹으면 사업 실패를 은미의 책임으로 돌렸다. 내조가 있어야 밖에서 사업도 잘 풀리는 법인데 밖으로 싸돌아다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에 잡히는 데로 은미를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고 몽둥이로 패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성한 물건이 없자 상다리를 뜯어내 몽둥이질을 했다.
남편이 은미를 향해 펄펄 끓는 물 주전자를 집어던지던 날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돈 한 푼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세상천지에 없었다. 그 집에 계속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폭력은 견뎌낼 수 있다거나 견뎌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친정으로 들어간 다음날부터 이력서를 들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애들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월급 명세서에 적힌 건 호텔 아닌 ‘용역회사’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야했다. 큰 업체가 안정적일 것이라 여기고 일자리를 찾다보니 친정 집 근처에 있는 호텔이 은미의 눈에 들어왔다. 은미는 무작정 이력서 한 장 들고 호텔을 찾아갔다. 입구에서 은미를 제지하는 경비에게 취직을 하러왔는데 총무과가 어디냐고 물었다. 경비는 다른 건 물어보지 않고 사무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간 곳이 용역업체였다. 처음엔 용역업체란 걸 몰랐다. 그렇게 찾아간 사무실엔 남자 직원 두 명과 경리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 내일부터 가능한가?”
이력서를 보던 남자 한 명이 대뜸 반말을 하며 은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은미는 당장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바로 출근하라는 말에 은미는 호텔리어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뿌듯한 마음에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한 달 뒤 월급명세서에 찍힌 00회사라는 이름을 보고 호텔 소속이 아닌 용역회사 소속이란 것과 자기가 비정규직이라는 걸 알았다.
첫째 날 고참 언니를 따라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 하나만 청소하고 퇴근하라는 소리에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이불 개고 시트 갈아 끼우고 욕실 청소하고 비품 정리하는 일은 주부들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다. 객실 하나를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온 은미는 몸살로 끙끙 앓았다. 한 달 수습기간 내내 몸살을 달고 다녔다. 뼈 마디마디가 쑤셨다. 일을 얕보았던 탓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은미는 호텔에 입사하기 전에 투잡을 하고 있었다. 밤에는 백화점에서 대리석 닦는 일을 했고 주말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호텔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퇴근시간에 코피를 쏟았는데 코피가 멈추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이후로 투잡을 모두 접었다. 투잡을 접고도 호텔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20Kg이나 빠졌다.
그렇게 한 달의 수습기간이 끝난 후, 하루에 객실 12개를 청소했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잔업을 해야 하고 잔업수당은 별도로 없었다. 첫 날 일을 배우면서 은미는 생각했다. ‘한 달의 수습기간 안에 내가 이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첫날은 객실 한 개를 청소했다. 둘 째 날은 두 개, 셋째 날은 네 개를 청소하는 식으로 객실 개수를 늘려나갔다. 객실 청소 수에 따라 용역회사에 돌아가는 돈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은 인원으로 많은 객실을 청소하는 게 회사에 이득이다. 출퇴근이나 잔업, 물품관리 등에 대한 모든 작업지시는 호텔에서 근무하는 정직원에게 받았다. 나중에 보니 용역회사는 ‘객실 한 개당 얼마’라는 돈 계산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잔업을 하지 않으면 백만 원을 넘지 못하는 임금
▲ 호텔 룸메이드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노동 강도는 더욱 세졌다. © 일다
룸메이드 한 명당 하루에 객실 12개를 청소하는 게 기본이었다. 은미가 일할 당시엔 사람이 부족해서 늘 잔업을 했었고 그렇게 받은 월급이 백만 원이 조금 넘었다. 당연히 잔업을 하지 않으면 백만 원을 넘지 못한다. 잔업은 호텔 투숙객 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양을 체크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월급이 적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하는 편이다.
6시 퇴근시간까지 동료들은 비품까지 모두 정리하고 다음날 할 일까지 준비 해놓고 칼 같이 퇴근했다. 그러나 은미는 일이 조금 느린 편이어서 보통 6시30분, 7시나 되어야 퇴근을 했다. 6시가 넘도록 일하는 은미에게 동료언니 두 명이 찾아왔다.
"여기 오면 니가 또 일하고 있을 것 같아 왔다. 얼마나 남았어?"
"어, 언니… 2개 남았어. 나는 왜 이렇게 느린 거야. 살도 20키로나 빠졌는데 몸이 굼뜬 것도 유전인가?"
고마운 마음에 은미는 언니들에게 살짝 농담을 건넸다.
시간이 지나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고참 언니들이 은미를 많이 도와주었다. 언니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씻고 뒷정리하다보면 7시 8시 사이에 퇴근을 하기 일쑤였다. 객실 하나 청소하는데 4~5천원이라고 한다면, 동료들이 와서 방 1~2개를 더 해주면 돈 만원을 벌어주는 셈이다. 동료들이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으면 못 견뎌냈을 일이다. 다음날 일할 비품을 챙겨주는 것만 도와줘도 시간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객실 청소하는데 사용되는 비품은 100개가 넘는다. 그 제품 이름은 모두 달달 외우고 정해진 곳에 정확히 채워둬야 한다. 예를 들어 방에 들어가서 TV 리모컨을 작동시켜보고 작동되지 않으면 배터리를 교환하고 책상에 볼펜, 메모지가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없으면 채워 넣는다. 욕실에 들어가면 휴지, 면봉, 종류별 수건,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바디로션 등을 확인하고 가지런히 채워 넣는다. 이 모든 것을 눈에 익혀야지 그 많은 비품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넣을 수는 없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수습기간이 필요했다. 룸메이드가 호텔 정직원이었을 때 수습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러나 룸메이드가 용역회사 소속으로 바뀌면서 3개월에서 1개월로 수습기간이 바뀌었다. 더 많은 객실을 청소해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용역회사는 수습기간을 터무니없이 줄여버렸다.
호텔 객실은 크기에 따라 사용 요금이 달라진다. 은미가 일한 호텔의 객실 종류는 일반객실, 비즈니스룸, 스위트룸으로 나뉘어있다. 제일 싼 방이 20만 원대, 그 다음은 30~40만 원대, 그리고 스위트룸의 경우 하룻밤 이용료가 100만원이 넘었다. 보통 한 층에 24개의 객실이 있고 룸메이드 2명이 반으로 나누어 12개의 객실을 청소하는 식이다.
그러나 스위트룸은 한 층에 5개 혹은 6개의 객실로 나눠져 있어 하나의 객실이 일반 객실 4~5개의 규모인 셈이다. 스위트룸은 내부에 작은 객실들이 1~2개 더 있고, 침대가 5대 정도 구비되어있다. 침대도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커서 침대 시트를 벗기고 씌우는 일은 '죽어나는 거'였다. 은미는 호텔룸메이드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스위트룸 하나를 청소하면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객실 4개 혹은 5개 청소한 것으로 인정해주었다. 6개로 인정해주는 스위트룸도 몇 개 있다. 숙달 안 된 룸메이드에게 스위트룸을 맡긴다면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없어서 하루 종일 청소해도 다 못한다. 경력자와 비경력자의 차이가 크다.
은미가 일한 곳은 장기투숙객이나 비즈니스로 투숙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패키지로 이용하거나 하룻밤만 투숙하는 손님이 많은 호텔은 일이 두 세배 더 힘들다. 장기투숙객들은 그나마 객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편이이서 단기투숙객들의 방을 청소하는 것보다 덜 힘들다. 그에 반해 단기투숙객들은 굉장히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가끔 한 두 시간 투숙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주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다.
‘호텔의 꽃’을 향한 정직원, 투숙객의 성희롱
은미는 일이 힘든 것도 문제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호텔에서 룸메이드를 ‘호텔의 꽃’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여성비하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같은 동료로 봐주지도 않던 하우스키핑(객실부-호텔 소속으로 객실 및 룸메이드 관리)에서 꼭 자기들 회식할 때 룸메이드를 불러냈다.
“00씨, 여기 와서 내 무릎에 앉아!”
첫 회식 자리에 참석한 은미는 부장이 동료 룸메이드에게 자기 무릎에 앉으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귀를 의심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하우스키핑 직원들과 룸메이드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기지 않은 사실에 말문이 막혔다.
“룸메이드는 호텔의 꽃이잖아. 자, 직장 생활이 별거 있나. 열심히 일하고 회식하면서 스트레스 풀고…자 건배합시다.”
부장은 옆에 앉은 룸메이드에게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했다. 룸메이드들에게 남자 직원 옆에 앉아라, 술을 따라라, 노래를 불러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은미는 스스로 당차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부장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언니. 여기 원래 이래? 호텔 직원들이 우리를 접대부 대하듯 하잖아. 화 안나? 어휴, 난 기분 나빠 죽겠어. 이럴 거면 회식엔 왜 불러. 난 앞으로 안 갈 거야!”
“더러워도 먹고 살라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처음엔 화도 나고 좀 비참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무뎌져서 그런지 견딜만해.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동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상사의 요구에 응한다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엘리베이터에서 정규직 남자직원들을 만나면 남자들은 뒤에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거나 여성의 신체 일부를 빗대어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룸메이드를 ‘호텔의 꽃’ 으로 만든 그들은 그 속에서 즐기는 성희롱을 합법화시켰다. 그게 정서였다. 용역회사 직원들도 룸메이드를 우습게 아는 건 마찬가지였다.
간혹 투숙객들에 의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누가 또 그랬다더라’ 하는 정도의 얘기만 들었던 은미는 그날 손님의 호출을 받고 청소를 하러 객실로 향했다. 손님이 객실에 있으니 욕실부터 청소를 한 후 침대청소를 했다. 침대청소 후 테이블 정리를 끝낸 후 고개를 돌린 은미는 손님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외국인 손님이었는데 은미가 들어갈 때 입었던 가운을 열어 제치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다리를 쩍 벌린 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당혹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손님은 너무나 태연하게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망갈 수도 없고 뭐라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어 대충 마무리하고 나가려고 하자 손님은 은미의 손에 팁을 건네주었다.
방을 나오자마자 은미는 소리를 죽인 채 울었다. 너무 비참한 생각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먹을 너무 불끈 쥐어서인지 팁으로 받은 달러가 심하게 구겨졌다.
손님불만에 대한 책임도 룸메이드의 몫
호텔은 컴플레인이 자주 들어온다. 룸메이드들이 청소한 후 제대로 됐는지 점검하는 일은 정규직 직원들이 한다. 그들을 인스펙이라 부른다. 정확하게는 인스펙션인데 그냥 인스펙이라 부른다.
룸메이드가 비품을 빼 먹는 경우 인스펙이 점검해서 비품을 채워 넣으라고 지시한다. 가끔은 인스펙도 빠진 비품을 못 볼 경우가 있다. 혹은 비품을 다 구비해놓기 전에 손님이 객실에 먼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데 이 정도는 애교수준이다. 간혹 쓰다버린 성인용품이 나오거나 사용한 수건을 교체하지 않았을 경우, 또는 컵에 루즈가 묻어있는 경우는 심각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이 경우 호텔에서 직접 징계를 하거나 해고를 시키면 불법 도급이 되기 때문에 호텔은 용역회사에 연락을 해서 징계나 해고를 요구한다. 용역회사는 룸메이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거나 심할 경우 해고시킨다.
간혹 컴플레인을 이유로 객실비를 내지 않는 손님들도 있다. 자의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런 손님들은 호텔 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예를 들어 컵에 루즈를 묻히는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손님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내도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한다. 그 모든 책임은 룸메이드에게 돌아온다.
“욕조와 타일이 그냥 마르는 줄 아세요? 그거 세제로 다 청소하고 마른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내야 돼요. 객실 유리창은 사람들이 눈으로만 밖을 보는 게 아니라 손을 짚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손 자욱이 남게 되잖아요. 그것도 다 닦아야 해요. 메모지 놔두고 꼭 벽에 낙서를 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것도 원상태로 보수작업 하느라 애를 먹어요. 하다하다 안 되면 관리과에 빨리 연락을 해서 보수하라고 하기도 해요.”
일이 너무 많다보니 컴플레인은 생길 수밖에 없다.
“컵 닦는 장갑, 화장실 청소하는 장갑 따로 있거든요. 근데 너무 바쁘니까 화장실 변기 청소하던 장갑으로 그냥 컵 닦아요. 일이 산더미 같은데 장갑 바꿔 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래요.”
“좀 깔끔한 손님의 경우 자기가 사용한 수건을 곱게 접어서 있던 자리에 넣어두는 경우가 있어요. 룸메이드들은 새 수건인줄 알고 교체를 안 해요. 그것도 나중엔 컴플레인이 들어와요. 그래서 비품은 썼던 안 썼던 일일이 점검을 해야 돼요.”
룸메이드에게 과다한 양의 객실 청소를 요구할수록 그만큼 호텔의 질은 떨어진다. 반대로 적정한 업무는 그만큼 호텔의 질을 높이게 된다. 손님들이야 그걸 모르겠지만 은미는 주변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호텔가면 컵 사용하지 마! 사용할 거면 한 번은 꼭 씻어서 사용해!”라고.
“노조 만들고 가장 뿌듯한 건 기본급 만든 일”
어느 날 은미의 월급이 차압을 당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면서 납부하지 않은 세금은 부부라는 이유로 은미의 몫이 되었다. 한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차압당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돈은 차압당한 상태로 묶여있다. 3,000만원의 부가세를 낼 때까지 차압당한 월급은 돌려받지 못한다.
은미가 갚지 못하면 그 돈은 자녀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자녀들이 은미의 재산상속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근로 장려금을 신청해서 받은 돈도 고스란히 국세청으로 귀속되었다. 애들 장학금도 마찬가지였다. 개인회생 제도도 알아봤지만 그것도 은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이혼을 거부하던 남편은 은미의 이혼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이혼에 동의해줬다. 그러나 양육비는커녕 국세청에 내야 할 세금도 은미에게 떠 넘겨버렸다.
은미는 호텔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파업을 하다 해고되었다.
“일이 적으면 월급도 적게 받는데 그래도 노조 만들고 기본급하고 상여금을 만들었어요. 기본급 최하가 백만 원 정도였고, 오래된 사람은 호봉이 있으니까 백 삼십만 원 정도 되더라구요. 많지는 않아도 상여금도 별도로 생겼고… 노조 만들고 가장 뿌듯한 일은 기본급 만든 일이죠.”
노동조합을 만들고 생긴 작은 변화다. 일이 없어도 정해진 기본급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이 만들어 진 것이다.
호텔을 그만둔 뒤 친정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했다. 보증금 2천만 원에 월 40만원에 방을 얻어 살다 얼마 전 임대아파트에 들어갔다. 여전히 월세를 내고 있지만 반지하 월세에 비하면 은미 가족은 ‘궁전’에서 살고 있다.
요즘 은미는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영상동아리 모임 강사로 일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프로젝트 사업으로 성인 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모임으로 자원봉사수준이다.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했는데 올해는 국가 지원금이 줄어들어 2주에 한 번씩 강의를 나간다.
모임에 참석하는 아이들은 성인 장애인들이다. 고등학교까지 국가가 지원해주는 교육을 받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지원도 끊긴다. 그래도 은미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나마 자기 스스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뭐라도 자기가 다니면서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더욱더 사회와 접촉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는 수준은 안 된다. 어떤 조건이 주어졌을 때만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 매일 집에만 있다가 사진 동아리, 영상동아리가 만들어지면서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사회를 경험하는 것을 그들은 즐거워한다.
프로젝트 사업이 끝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할 때까지 틈이 있어서 강의가 일시 중단되는데 아이들은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에도 자체 예산을 만들어서라도 강의를 하자는 기획을 고민 중에 있다. 영상 결과물도 즐겁지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만나자는 건데, 그 이유는 교사들이 뭔가에 기여한다는 것과 보탬이 된다는 것이 스스로 즐겁고 좋아서다.
은미가 영상동아리 강사를 할 만큼의 실력을 갖춘 것은 주위 사람들 덕분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은미는 이웃들과 나누면서 살고 있다. 자기의 재능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것에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은미의 얼굴이 햇살을 닮아 있었다. (변순희 /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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