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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윤창중 사건’ 재발방지 대책 내놔야
대가 치르지 않는 공직사회 성추행, 언제까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이 뜨겁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에 대사관 인턴 직원을 성추행하고, 미국 경찰에 신고가 되자 급하게 혼자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도피해버린 사건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충격적이고 황당한 일이다.
권위주의에 찌든 방미 수행단의 ‘추태’ 지적돼
몇몇 언론은 윤창중씨의 과거 행적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윤씨 개인의 결함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5월 12일자 <노컷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 당시 행사 관계자였던 A씨(미국 거주)의 입을 빌려 청와대 관계자들의 추태를 고발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뿐만 아니라 다른 청와대 인사도 특정 여성 인턴을 지목해 술자리에 나오라고 요구했다는 것. A씨는 또 청와대 관계자들이 인턴 여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 진상을 부렸다고 증언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만 ‘유별나게’ 나쁜 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어떤 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그 문화란 다름 아닌, 여성에 대한 무시와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권위주의이다.
최연희, 윤창중 같은 인물을 요직에 앉힌 이유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폭력 사건은 2006년에 발생한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의 기자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최씨는 여기자를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명하여 충격을 더했으며, 2013년 윤씨의 경우에는 대사관 인턴 직원을 애써 “가이드”라고 불러 공분을 더하고 있다. 특정 직업의 여성들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책임 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유사하다. 최연희 전 의원은 사건 발생 3일 뒤 한나라당 사무총장직을 사퇴하고 탈당한 후 잠적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미국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될 상황이 되자 한국으로 도주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관련되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연희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 윤창중 인턴 성추행 사건.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박근혜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조직에서 요직을 차지한 인사들이 벌인 성폭력 사건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어서, 여당이냐 야당이냐를 따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인사에 있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었다는 점은 무심히 넘길 수 없다. 특히 윤창중 씨의 경우, 문제적 언행으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인물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인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히고,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인턴 성추행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이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하고 자동적으로 묻게 된다. 피해여성은 과연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경찰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사건을 정상 처리할 수 있었을까.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도, 그나마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문제가 된 일이 아니라면 문제로 삼을 엄두도 못 내는 한국의 현실이 겹쳐 보여 더 안타깝다.
미국이나 호주, 프랑스 등 국가에서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하면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이 ‘상식’이다. 성폭력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정치인과 같은 공인(公人)은 더 큰 윤리 의식과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최연희 전 의원은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선에도 성공했다. 여성단체 당직자를 성추행하고도 도지사 재선에 성공한 우근민 제주지사도 마찬가지다. 제수 성폭행 미수 사건이 드러나고도 의원직을 내놓지 않고 있는 김형태 국회의원은 또 어떤가.
이제라도 청와대가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미국의 반응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방미 기간 중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진상 조사와 실태 파악에 나서 국민들에게 밝혀야 할 것이다.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성희롱과 같은 성적 폭력을 행사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인식이 상식이 되도록, 한국 사회에 보여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또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인권교육과 성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침해하는 언론 보도태도
윤창중 사건을 마치 섹스 스캔들인양 다루는 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우려가 된다.
현지 경찰에 전해진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성추행이 있고 난 다음날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신의 위계를 이용해 인턴을 호텔방으로 불렀으며 알몸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일진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행동에 집중하면서 윤씨가 말한 ‘허리를 그냥 툭 쳤을 뿐’ 간의 진실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성추행 사건의 본질을 왜곡할 뿐 아니라 피로감을 주는 일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보호해야 할 피해자의 신상에 오히려 관심을 집중시키는 보도 행위도 문제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성추행’ 인턴 B씨는 누구?…또 ‘신상털기’ 논란”이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피해자의 나이와 거주 지역까지 상세히 밝혀 스스로 ‘신상털기’에 가담하고 있으며, 일부가 모자이크 처리되었지만 뒷모습이 찍힌 사진까지 게재했다.
세계일보도 “윤창중 성추행 피해녀는 누구?…도 넘은 신상털기”라며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비슷한 방식으로 보도했다. ‘신상털기’를 문제 삼는 척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찾아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부추기는 꼴이다. (박희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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