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생존자들의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하여①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의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가해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 정민이
정민(가명)이는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살다가 작년 초 퇴소하였다. 쉼터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 2년을 꽉 채운 정민이는 퇴소 후 고시원에서 1년을 살았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못 버는 PC방 아르바이트만으로 40만원이 넘는 고시원 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오빠는 계속 집으로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정민이는 망설여졌다.
가해자는 아빠였다. 정민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추행을 시작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4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해 온 정민이는, 아빠가 자신을 추행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빠마저 대학을 다니러 지방에 가자, 아빠는 강간을 하려고 했다. 정민은 그 날 집에서 나와 학교 상담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쉼터에 들어온 후, 고민 끝에 아빠를 고소했다. 아빠는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한 후 출소해서 오빠와 같이 살고 있다.
쉼터 활동가들은 정민이에게 다른 쉼터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정민이는 올해 초, 결국 집에 돌아가기로 선택했다. 다른 쉼터나 그룹 홈에 들어가 또 규칙을 지키며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아빠도 옛날만큼 힘을 쓸 수 없을 것이고, 또다시 피해를 입더라도 쉼터 활동가들이 있으니 예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만난 정민이는 아빠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며 살고 있지만, 아빠가 자신을 쳐다볼 때 성적인 존재로 보는 것 같아 그 눈빛이 너무 싫다고 했다. 아빠는 가끔 술을 마시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나 무시하지 마라” 하며 주정을 부린다고 한다. 정민이는 보증금이 모일 때까지는 아빠와 불편한 동거를 계속할 생각이다.
아빠를 고소하지 말라는 영주의 엄마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퇴소한 영주(가명)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가해자는 아빠이며, 영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강간을 당해왔다. 아빠가 몸이 아픈 후 돈을 벌기 시작한 엄마는, 영주가 중학생일 때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히려 그 날 이후 엄마는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하면 영주를 때리기도 했다.
영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청소년 상담기관에 전화했고 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입소 후에도 엄마는 수시로 영주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있는 동생들을 봐주러 오라고 했다. 고소를 고민하자, 엄마는 “아빠 고소하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아빠가 불쌍하지도 않니? 감옥 갔다 오면 노숙자로 살 게 뻔한데 넌 인정머리도 없냐?”면서 오히려 영주를 나무랐다.
가해자를 고소한 후에도, 엄마는 이혼하고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자꾸 흔들리며 영주에게 고소를 취하하라고 권유했다. 영주는 아빠에 대한 분노보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다. 영주는 쉼터에 사는 동안에는 엄마랑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 영주 엄마는 가해자가 출소한 후에도 이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이혼하고 영주와 함께 살고 있다.
영주는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 자신의 피해 사실이나 부모의 이혼에 대해 털어놓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성에 대해 보수적이라서 이해를 못해줄 것 같아서이다. 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지만 자신의 집안 배경을 알면 남자친구 집에서 반대하지 않을까 애가 탄다.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을 할 때만이라도 아빠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가해자인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 정민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의 남편이 딸을 강간했는데, 딸을 데리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오히려 고소를 취하하라고 권하는 영주의 엄마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 결혼식장에 굳이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주를 보면서 드는 답답한 심정은 나만의 것일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
최근 친족성폭력 생존자가 직접 쓴 수기집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와 <꽃을 던지고 싶다>가 발간되고, 친족성폭력 생존자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이 상영되면서 친족성폭력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친족성폭력은 꺼내기 쉬운 주제가 아니다. 친족성폭력에 대해 얘기하면 사람들은 “의부지? 설마 친아빠는 아니지?”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엄마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한다.
또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성폭력 피해를 반복해서 입을 수 있는지, 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집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묻기도 한다. 딸을 키우는 엄마들은 친족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 자신의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남편도 믿을 수 없는 거냐며, 그렇다고 남편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생각하는 것은 힘들다고 답답해한다.
▲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
사람들은 가족 안에 ‘성’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힘들어한다. 가족 내에서의 성은 부부 사이에만 존재하며, 자식이나 친동생, 손녀, 조카 등 어린아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행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족의 이미지에 어긋난다. 1980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이라는 책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읽히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이 부활할 때까지는 성적 관행에 대해 가장 대담하게 탐구한 연구자들조차,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남성들이 단순히 자신의 성적 쾌락을 위해 아동을 이용할 권한이 있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다루기를 거부했다.” (p.51)
“사실상 아버지는 딸에게 아무 대가 없이 주어야 할 애정과 보호를 빌미로 그녀의 몸을 바치도록 강요한다.” (p.27)
조건 없는 돌봄, 내리사랑의 관계여야 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 관계가 파괴되고 성적인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설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족을 책임지는 부성 이미지, 가부장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폭로이기 때문일까? 성폭력 중에서도 친족성폭력, 그 중에서도 친부에 의한 성폭력은 가족의 이미지에 어긋난 일, 사람들에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세상에 꺼내어 놓았을 때 누구 하나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를 가로막는다.
달라지는 판례들, 피해자의 복잡한 감정 고려해
우리 사회에서 친족성폭력이 가시화된 것은 1991년, 13년 간 자신을 강간한 검찰 고위직 공무원인 의붓아버지를 딸이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사건이었다. 60대 남자 어르신이 다급하게 당신의 아들(피해자의 남자친구)을 도와달라며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청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공동대책위를 꾸리고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반(反)성폭력 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행법상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에 의한 성폭력을 친족성폭력이라고 한다. 흔히 ‘근친상간’이라고 표현해왔지만, 근친상간은 혼인이 금지된 성인들 간에 일어나는 성관계를 뜻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폭력인 ‘성폭력’을 왜곡하는 용어이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친족성폭력이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의 법원 판례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친족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더디지만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술이 조금이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피해자를 의심했던 과거와는 달리, 앞뒤가 맞지 않거나 피해자가 특정 정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면 신빙성을 인정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적인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피해자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갖는 ‘양가 감정’을 이전처럼 무죄의 증거로 삼지 않고,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감정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가해자들은 생존자가 어버이날에 준 “아빠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담긴 카드, 옷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학원에 보내달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증거로 제출하며 가해 사실을 부인한다. 성폭력 가해-피해의 관계에서 어떻게 저런 대화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판례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아빠이기도 한 존재에게 생존자들이 생계를 의지하고 보호받기 위하여 한 행동을 두고, 성폭력 피해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성폭력만 빼고는 좋은 아빠였다”, “아빠가 성폭력 할 때는 싫었지만 또 나는 따뜻함, 친밀함을 원하기도 했다”는 생존자들의 솔직한 증언을 재판부가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판결은 생존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집을 나온 것, 가해자를 고소한 것이 정당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성폭력이 자기 잘못이 아니며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고 가해자가 감옥에 갇혀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생존자가 평생 오롯이 떠안아야 할 과제들이 있다.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생존자
우리가 만난 생존자들 중에는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을 때 가족들이 생존자의 편에 서기 보다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머니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든 없든 혈연 중심의 가족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매여 있었으며, 딸이 남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라도 가족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상황이니, 법원에서 생존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생존자가 가족 안에서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가해자를 제외한 가족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생존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족을 해체시킨 장본인이 되어 가족들로부터 장기간 배척당하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는 복역을 하고 나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존자들은 출소 후 가해자가 자신을 쫓아와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가해자가 반성하길 기대했던 생존자는, 판결 후 전개되는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또한 가해자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원가족’이라는 자원을 잃어버린 생존자가 이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원가족, 혹은 유사 가족이 부재하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끊임없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성폭력피해자 쉼터에 사는 동안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활동가들과 생활인들이 지지집단이 되어 주지만, 쉼터에서 퇴소한 후에는 그야말로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가 한 사람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으며, 그의 일부만을 훼손시킨다는 것을 전제 하더라도,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은 반복되는 관계의 패턴이나 감정적인 문제를 오랜 시간 끌어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보호받았어야 할 어린 시절, 가장 믿었던 사람과 주변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만큼 깊고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부설기관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자 쉼터이다. 1994년 문을 연 후로 19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3백명 넘는 성폭력 생존자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중 대부분은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다.
▲ 자료 이미지: 친족성폭력을 다룬 아오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 (2013) 한 장면
이 연재는 2014년 열림터 20주년을 앞두고 친족성폭력 연구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족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깊이 있게 고민을 나누고자 기획된 것이다. 우리는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어떻게 피해 경험과 더불어 살아가는지, 그녀들은 가해자들 혹은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어떻게 쉼터에 들어오며,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친족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기사에서 제시되는 사례들은 열림터를 통해 만난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다. 쉼터에 왔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되거나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인적 자원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쉼터로 연계되지 않은 친족성폭력의 사례까지 포괄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연재의 목적은 친족성폭력의 다양한 사례를 분류하거나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난 수많은 생존자들은 저마다 자기 삶의 맥락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성폭력을 수용하거나 용서한 것은 아니다.
또, 가해자와 동거를 하거나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은 엄마와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생존자가 이전과 같은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성폭력을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사건으로 인식하여, 자기 방어의 각본을 미리 짠다든지, 가해자를 교정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만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이 연재를 통해 독자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는 이러저러하다고 규정하기보다는, 그녀들의 삶의 맥락을 폭넓게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랑)
[※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모두 재구성된 것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저널리즘 새지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격증 시대에요, 20년 일했지만 이력서에 쓸 게 없어요" (0) | 2013.08.20 |
---|---|
친족성폭력 가해자는 싸이코패스도, 짐승도 아니다 (19) | 2013.08.16 |
40대중반 여성,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서 (0) | 2013.08.12 |
“‘날개 없는 천사’라 부르지 마세요,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0) | 2013.08.01 |
‘신의 직장’을 나와 사회복지사가 된 S를 만나다 (0) | 2013.07.30 |
미혼모의 ‘사생활 정보 보호’, 최선의 대안은? (0) | 2013.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