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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거리 반짝이는 간판아래 야간노동자

[나의 알바노동기] 아침에 퇴근하는 삶


※ <일다>는 청년여성들의 가감없는 아르바이트 현장 경험을 기록합니다. “나의 알바노동기”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맥도날드 야간 알바 공고가 눈에 들어오다

 

같은 길, 같은 풍경이 지겨운 나의 출근길은 늘 늦은 밤이었다. 머리도 제대로 마르지 않은 채로 반짝거리는 네온간판들이 줄지어진 신촌 골목길을 걸었다. 맥도날드 유니폼 바지와 잠바떼기를 아무렇게 입은 채로 화장기 없는 맨얼굴인 나와는 다르게, 온갖 멋을 부린 나와 비슷한 나이또래인 사람들이 술에 취해 즐거워 보였다. 4년 전 나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야간알바 노동자였다.

 

스물일곱 살인 지금의 나는 십년 동안 수많은 알바를 해왔다. 용돈이라 불리는 돈으로 참고서도 사야했고 노래방도 가야했던 나이. 남들처럼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 동의서에 엄마 몰래 서명하며 돈을 벌어왔다. 호프집, 옷가게, 피시방, 레스토랑, 피자가게, 콜센터, 백화점 등등 안 해 본 알바가 없던 나는 선호하는 알바가 따로 있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였다. 알바비를 따박따박 제 때 넣어주고 주휴수당, 야간수당까지 제때 챙겨주는 알바는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뿐이었다. 그것도 가맹점이 아니라 직영점에서.

 

그리고 나의 보잘 것 없는 알바인생을 경력으로 쳐 주는 곳도 그런 곳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으로써 나의 이력서에는 ‘고졸’ 학력과 동시에 그간 일했던 수많은 알바 이력을 인정해줄 사무직이나 회사는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알바를 하더라도 우선 순위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직영점이었다. 작은 자영업을 하는 가게들에서 사장님의 뻔한 가계부를 알면서 수당을 제때 챙겨 받거나, 알바가 끝난 후에 얼굴을 붉히며 노동청에 신고해서 밀린 수당을 받는 것도 스트레스 받고 귀찮은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오 년 전인 스물두 살 가을, 서울 신촌에서 자취를 할 무렵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대학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도 돈을 벌어야했다. 학교를 다닌 지 1년이 되던 해 가을에서 겨울이 넘어가던 때, 다음 학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주일에 4-5일 정도의 알바를 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호프집에서 3-4타임씩, 주말에는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교환해주는 일을 했다. 주말 없는 삶이 피로로 몰려왔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된 맥도날드 알바 공고는 나에게 새로운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알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영어회화 학원비 할인, 오래 일하면 진급의 기회,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쫀쫀함, 신촌점이라는 특수한 지점 환경 등등이 기재되어 있는 이상한 구인광고에 홀리고 말았다. 그때는 그 공고가 단순한 알바가 아닌 복지와 혜택이 존재하는 알바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당시에 올라왔던 공고는 야간 파트타임이었는데 왠지 저녁에 일을 하면 손님도 별로 없을 테고, 하니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끌렸던 이유는 시급이 높아서였다. 최저임금 기준 시급의 1.5배를 받을 수 있었다. 시급이 높으니 근무하는 날을 줄여서, 기존에 했던 4-5일간의 알바를 하는 것보다 2-3일 일을 덜하면 피로감이 덜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방학이 다가오는 것이 기쁘기까지 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학교에 가는 날도 존재했지만, 방학이 되면 야간알바를 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거란 생각에 방학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 모든 예측들은 빗나가고 말았지만, 시작은 여태까지 했던 알바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는 맥도날드의 야간노동자가 되었다.

 

▶  시급이 높은 야간 파트타임으로,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22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새벽의 노동’

 

같은 야간타임에 알바를 하던 사람들은 나빼고 남성들이었다. 가끔 여성매니저가 야간에 일하는 당번일 때는 나까지 여성이 둘이었지만, 그 이상 여성노동자가 밤에 일한 것을 본 적은 없다. 주방을 거쳐 일하고 있는 크루(맥도날드 노동자를 크루라고 부른다)들에게 인사를 하고 크루룸에 들어가면, 나와 같이 일하는 ‘오빠’들이 옷을 갈아입고 휴식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나는 신촌이 집이라서 걸어서 15분이면 매장에 도착했지만, 오빠들은 먼 거리에서 알바를 다녔다. 주로 같이 일하던 친한 매니저가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데려온 크루들이었다. 이상하게 나 빼고는 맥도날드 경력이 2년 이상 되었던 오빠들이었다. 대학생이거나,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밤에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는 투잡인 오빠도 있었고, 배달하는 라이더 오빠는 일을 세 개씩 하는 ‘아저씨’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주로 야간에 남성 크루들이 많은 까닭은 매장을 청소하고 무거운 식료품을 옮겨야 다음날 장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여성 크루가 필요한 까닭은 캐셔를 보는 여성노동자가 필요해서였다.

 

남성 크루들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모자를 쓰면 되었지만, 나는 머리망도 해야 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조금이라도 숨기기 위해 립스틱을 발랐다. 귀찮기는 했지만, 다른 서비스업 직종에 비해 그리 큰 요구는 아니었다. 오빠들은 “화장 좀 해” 라고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화장해도 일하다보면 땀과 기름에 화장이 너무 쉽게 지워졌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대략적으로 오늘 언제쯤 누가 먼저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인지 이야기하고, 매장으로 올라갔다.

 

밤 10시 퇴근을 앞둔 크루들의 퇴근시간을 빠르게 해주기 위해 나는 늘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같이 일을 마무리했다. 주로 아침부터 수업을 듣고 일을 하는 대학생이 많은 매장이어서 그들의 귀가를 빨리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 인수인계를 받을 때, 이벤트를 한다거나 새로운 메뉴가 있으면 내가 직접 설명을 듣고 포스기(계산기)를 만져야했다. 퇴근이 가까울 무렵 피곤한 모습으로 건조해질 수 있었던 표정이 나를 보고 밝게 웃어주면, 그 모습이 누구였든 좋았다. 누군가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기쁨과, 빨리 올라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내 노동의 하루를 시작했다.

 

신촌의 22시는 한창이다. 술을 먹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맥도날드에 온 사람들, 하루를 늦게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햄버거를 포장해가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지?’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손님은 많았다. 보통은 막차가 끊길 때 즈음 손님도 같이 끊기는데, 주말에는 그런 것도 없어서 23시 퇴근을 예정하던 크루가 새벽 2시까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도저히 나 혼자는 감당할 수 없었던 손님들 규모여서.)

 

▶ 밤에는 손님이 없어 한가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신촌의 밤 맥도날드 매장에는 손님이 넘쳤다.

 

아무튼 주로 내 업무는 낮처럼 햄버거 주문을 받고 “햄버거 나왔습니다~”하는 일과 별개로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주 업무였다. 주로 아침장사, 낮장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감자튀김을 튀기는 튀김기를 청소하는 일이나, 콜라를 따르는 디스펜서를 소독하거나, 커피를 뽑는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하고, 또 비어있는 소스를 채운다던가 하는 청소를 하고 물건을 채워 넣는 일을 했다.

 

무거운 것들을 옮기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기름기가 잔뜩 묻은 것들을 정리하며 아침이 어서 오길 기다렸다. 하는 일은 단순하고 순서가 있는 일이었다. 마치 공장의 라인처럼 이것이 끝나면 저것을 하고, 저것이 끝나면 다른 것을 하고. 하나하나 나의 일이 마쳐가면 퇴근이 다가오는 것 같아 기뻤다.

 

그치만 그 기쁨은 쉬이 오지 않았다. 맥도날드의 음식은 모두 기름져서 모든 물건에 기름이 껴있다. 바닥, 천장, 트레이(쟁반), 튀김기, 햄버거가 오가는 라인 등등. 이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맥도날드 전용 세제가 있을 정도였다. 세제는 냄새만 맡아도 유해했다. 기름이 잔뜩 낀 감자튀김 튀김기를 옮겨, 뜨거운 물에 세제를 풀어 최대한 손을 안 닿게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이 닿아 습진이 생기거나 알 수 없는 붉은 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처음에 일을 배울 때 나에게 인수인계 해주던 크루는 “이 세제는 너무 강하니까 손으로 만지지 말도록 해. 여기에서 쓰는 모든 세제는 맥도날드의 것인데, 우리가 쓰는 퐁퐁과는 완전히 달라” 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이름 모를 종류별 세제들로(기억 속에 약 4-5개가 있었다) 테이블도 닦고, 음료수의 디스펜서도 닦았다. 쟁반도 닦고, 바닥도 닦았다.

 

# 많은 알바노동자들의 식사, 햄버거

 

생각보다 야간알바는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사실 피곤할 새도 없었다. 무거운 것을 들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노동이었기 때문에 쉽게 지칠 만도 했지만, 졸릴 새는 없었다. 일을 빨리 마쳐야한다는 불안감과, 꼭 끝내야한다는 조급함이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야 아침 해를 마음 가볍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중에서 가장 어렵고 곤란한 것은 역시나 손님들이었다. 늘 같은 시간 인사처럼 오는 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해 있지도 않은 메뉴를 팔라고 요구하는 손님도 있었고, 인사불성으로 기어들어온 외국인 손님은 혼잣말을 두 시간이나 하고 간 적도 있다.

 

재밌는 것은 익숙한 단골손님들이 주로 나처럼 야간알바를 하는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얼굴이 익숙하니 한두 마디 더하고, 그러다보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내가 자주 가던 치킨집 사장님도 계셨다. 처음에는 나를 보고 어디서 많이 봤다 하시길래, “저 그 치킨집 자주 가요. OO사장님 맞으시죠?”했더니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몰라봤네요”라며 인사를 했다. 그 뒤로 그 치킨집 사장님과, 맥도날드 뒤편에 있는 설렁탕집 알바노동자, 그 설렁탕집 옆에 있는 닭발집까지 온갖 야간노동자들이 햄버거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싸고 빠른 음식들은 알바노동자들의 요깃거리이자 식사였던 것이다.

 

▶  패스트푸드. 이 싸고 빠른 음식은 나를 비롯한 많은 알바노동자들의 식사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크루밀이라고, 쉬는 시간에 밥 대신에 햄버거를 제공하는 맥도날드였다. 정확하게 보장되지 않은 ‘쉬는 시간’은 매장이 한가해지고 아침장사를 하기 전에 가질 수 있었다. (맥도날드의 아침장사는 새벽 네 시부터 맥모닝이라는 햄버거가 아닌 맥머핀을 팔았다.) 대부분의 일을 끝내고(또는 끝내지 못한 채로)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수를 챙겨 크루룸에 들어가, 나에게는 점심과도 같은 아침식사를 했다.

 

매일 다른 종류의 햄버거를 먹었지만 그래봤자 똑같았다. 그 햄버거는 맛있기도 했고 맛없기도 했다. 30분 동안 크루룸 컴퓨터에 다운받아져 있는 재미없는 예능을 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떤 햄버거가 어떤 맛이고 얼마나 맛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소비자가 되어버렸다. 맥도날드 알바를 그만둔 후에도 나는 그전에는 입에 잘 대지도 않던 햄버거를 주기적으로 찾았다. 특히나 술에 취해 햄버거를 먹으러 온 손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던 나는, 술에 취하면 습관적으로 맥도날드를 찾아 헤매었다.

 

# 야간알바의 패턴과 시급을 버릴 수 없었다

 

맥도날드 야간 알바를 그만 두게 된 이유는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야간알바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야간파트의 크루들이랑 잘 어울려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아침 퇴근마다 술을 마셔야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밥을 먹자는 제안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늘 술이 있었다. 알바 구인광고에서 봤던 ‘쫀쫀한 인간관계’는 아침 해가 뜨고 일이 마친 후에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피곤했고 집에 가서 빨리 쉬거나 바로 학교를 가야하는 일정이었지만, 오히려 이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게 좋았다기보다 너무나 고된 하루에 대한 보상을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에 술을 먹는 것으로 다 같이 서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엉망진창으로 이루어진 나의 하루는 6개월도 가지 못한 채 맥도날드 노동자 생활을 마무리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참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알바는 늘 하지만 잔고는 늘 없었고, 그 때문에 친구들을 만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으려고 할 때는 보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보다 먼저 통장잔고가 떠올랐고,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젊음의 거리라는 신촌에 살면서 정작 신촌에서 제대로 놀아 보지 못했다. 밝고 따뜻했던 신촌의 거리보다 쾌쾌하고 술로 얼룩졌던 신촌의 밤을 더 많이 기억한다. 그마저도 부러워했던 나의 모습이 초라해서 아침부터 술을 마셔 (내게는 부재한) 낮의 존재를 잊으려고 했다.

 

알바를 그만두고 한동안 밤낮이 바뀌어 힘들었다. 일찍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해가 뜰 때쯤 눈을 감기도 했고, 꿈속에서 햄버거를 먹으러 온 손님과 싸우기도 했다. 핸드폰에 매니저가 연락이 올까봐 조마조마한 날들을 지나왔다. 그 뒤로 결국 야간알바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리아 야간알바나 호프집을 전전긍긍하는 밤이 익숙한 알바들. 나는 결국 낮보다 밤을 선택했고,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학교도 그만두게 되었다. 생계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아주 잠시뿐이라고 생각했던 야간알바의 패턴과 시급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아침을 온전한 아침으로 맞이하기 위한 나의 발버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누가 신촌의 거리를 청춘의 거리라고 했을까? 나의 기억에 남은 신촌은 청춘은 없고, 어둡고 우울한 밤만 가득했던 날들로 기억한다. 지금도 신촌에 가면 그날의 기억이 촘촘하게 솟아오른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신촌의 밤거리는 반짝이는 간판들과 간판아래 일을 하는 알바노동자들, 그 가게들 사이에 속을 게워내는 청년들, 그리고 그 비워낸 속을 채워주는 값싸고 빠른 햄버거가 있다. 그리고 그 햄버거를 만드는 맥도날드의 노동자들은 나를 대신해 서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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