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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을 부정/긍정하는 것 모두 가부장적 시선이었다

[페미니스트의 책장]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월경은 오랜 시간 ‘더러운 피’, ‘수치’로 여겨져 왔고 그렇기에 월경은 그야말로 ‘금기’가 되었다. 월경혈이 새서 부끄러웠던 경험, 혹은 월경용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어머니에게 혼났던 경험, 월경통으로 불편을 겪었던 경험 등 ‘월경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경험들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겪게 된 것이다.


월경에 관한 범시대적, 범세계적 탐구 다큐멘터리.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For Vagina's Sake, 2017) 예고편 중.


월경에 대해 질문하지도, 발화하지도 못했던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월경 터부에 맞서는 시도들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월경 담론은 월경 터부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이상의 진전된 담론을 새롭게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 ‘여성의 일’로 한정된 월경 담론 아래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월경 터부의 맥락에 있어 여성 집단을 호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집단이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니듯, 월경의 경험 또한 단일하게 나타날 수는 없다. ‘월경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경험 외에 장애인의 월경/퀴어의 월경/노숙인의 월경 등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놓쳤거나, 외면해왔던 ‘다른’ 경험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이야기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단일한 ‘여성’의 이야기로만 상상되어왔던 월경에서 더 나아가 이 사회의 다양한 몸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발견해보고자 한다면, <월경의 정치학>(아주 평범한 몸의 일을 금기로 만든 인류의 역사)은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월경의 정치학: 아주 평범한 몸의 일을 금기로 만든 인류의 역사> 박이은실 저, 동녘, 2015


<월경의 정치학>(박이은실 저, 동녘)은 월경을 둘러싼 사회·문화 전반의 인식을 문화인류학, 비교종교학, 지식사회학, 생리대 산업 시장, 일상 경험이라는 크게 다섯 가지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월경을 경험하는 이들과의 면담을 통한 질적 연구와 월경에 관한 문헌 연구를 교차하며, 사회·문화적으로 월경에 대한 인식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또 그러한 인식들이 다시 월경을 경험하는 이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월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모두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선에서 기인하며, 남성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왔음을 고발한다.


통제받는 몸들의 이야기, 월경


월경은 인류의 절반 정도가 겪는 보편적 신체 현상으로 읽히기보다, 늘 젠더화되고 이/성애화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되어왔다.


여성 섹슈얼리티를 ‘성애화’하고 ‘통제’하는 이중적인 억압 아래, 월경은 이러한 억압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기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생식’을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 혹은 기능으로 상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는 ‘자연’(이성이 아닌)과 더 가까운 존재이자, 그 자체로 성애적이고, 그렇기에 남성의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월경이 ‘생식’과 직결된 현상으로 간주되면서 월경이라는 신체 현상 자체가 ‘열등한 신체’임을 드러내는 근거이자 표상이 된 것이다. 또한 월경을 한다는 것은 임신이라는 여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에, 월경은 수치가 되었다. 월경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은 정작 월경을 하는 이들의 경험과 감정은 완전히 배제한 채, 여성들에게 월경을 ‘더럽고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월경을 감추고 숨기도록 강요해왔다.


미셸 푸코(1926~1984. 권력과 담론에 대해 탐구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며, “모든 지식은 권력과의 관계 아래 구성된다”(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1975)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의료 지식조차도 가부장적인 질서 아래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왔다. 월경 그 자체와 월경 중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병리화하면서 월경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근대 사회 이후 ‘의료화’는 질병/장애 혐오와 맞물리며 월경에 대해서도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해냈다. 의료화는 증상·질병·장애 등 ‘건강하지 못함’에 대해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치료를 권고하며, 이들을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상태’ 즉 ‘비정상’의 상태로 간주한다. 월경을 의료화하는 이러한 시각은 질병·장애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의식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과거로부터 이어진 월경에 대한 터부를 강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명분하에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 이면의 ‘남성 권력 중심적 지식 구성’이라는 맥락은 삭제된 채 말이다.


이는 동시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정상’ 신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왔는지 질문케 한다. 남성-비장애-건강 중심으로 설정된 ‘정상성’은 월경하는 몸, 질병을 앓고 있는 몸, 장애를 가진 몸, 정상성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들 몸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의 구성은 ‘나중’으로 밀려나고, 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되면서 궁극적으로 몸들은 통제된다. 이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제약은 실제론 ‘몸의 비정상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몸 통제’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권력은 모든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며 ‘정상성’ 규범을 재/생산하기에 이른다.


여성들은 월경을 감추고 숨기도록 요구받았다. 미국 대학생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Rachel Kauder Nalebuff)는 2009년 100명의 초경 이야기를 담은 책 <마이 리틀 레드북>(my little red book, 부키, 2011)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mylittleredbook.net


페미니즘의 언어로 월경 말하기


그렇다면 월경을 긍정하는 시선은 어떨까. 기존의 월경에 대한 ‘터부’를 사유하고 혹은 전복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여성 혐오를 내포하고 있는 월경을 둘러싼 혐오의 정서를 극복하는 새로운 담론으로 제시되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생식 능력과 젠더 이분법에 국한하여 월경의 의의를 상정해왔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의무’를 강요해왔다. 월경은 이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음을 보장하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 아래 월경은 편협한 방식으로 긍정된다.


일부는 월경은 ‘여성’만의 경험이기에 ‘여성성’과 ‘여성됨’을 안정적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이유로 월경을 긍정하기도 한다. 모든 여성이 월경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월경을 경험하는 모든 이들이 여성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불어 ‘여성됨’의 감각을 생식기와 생식 능력을 통해 보장받는 것은 결국 가부장적 질서와 논리를 답습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월경이 직면한 문제는 비단 월경 혹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받는 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관에 불과할 ‘몸’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이는 소수자들에게 있어서는 사회적인 억압이 머무는 하나의 ‘장소’이다. 그리고 이 장소를 둘러싼 규범들-정상 가족, 젠더 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비장애/건강 담론 등-에 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자의 실제도, 감각도, 경험도, 그 어떠한 것도 이 규범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날 때 사회는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경계 밖으로 밀어내거나 완전히 묵살하는 방식으로 억압과 통제를 공고히 해왔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소수자 억압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였으며 ‘정상’ 규범이라는 허상 아래, 정상-비정상 이분법이라는 갑갑한 울타리 아래, 균열을 발견하고 이를 계속해서 고발하는 언어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월경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가부장적 질서 위에 서서 월경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즉 여성‘만’의 경험으로서 월경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의 몸들을 통제하는 구조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지를 고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구성되어온 월경을 둘러싼 인식, 담론, 지식을 해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차별적인 담론들이 구성되어온 토대 위에서 길을 찾기보다, 기존의 젠더 역학을 비롯하여 지배 권력들이 구성해온 지식에 격렬한 변화를 지향하며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그 길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그려왔던 페미니즘의 모습일 것이다.


“권력의 목소리에 귀를 막자. 그들의 메시지에 눈을 감자. 그리고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 자신의 옆 사람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피곤하다고 하는가? 쉬게 하자. 화가 난다고 하는가? 이야기를 듣자. 충만하다고 하는가? 춤을 추게 하자. 각자의 상황대로, 각자의 존재대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직접 듣자. 그리고 그대로 존재하게 하자. Let it be!” <월경의 정치학> 中


※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회원들의 글로 채워집니다. 이 기사의 필자 승연 님은 “유니브페미 활동가로, 사회 탓하기를 좋아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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