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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비에 대한 고민
 
낡은 옷가지와 가방 등 그동안 모아둔 물건이 세 상자로 늘었다. 이제 ‘아름다운 가게’(beautifulstore.org)에 연락할 때다 싶다.
 
벌써 그곳과의 인연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한동안 잦은 이사 때문에 물건을 정리할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 없애고 싶지만 쓸만한 물건이라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해서 가까이서 잘 써줄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그렇게 고민하던 참에 ‘아름다운 가게’를 알게 된 것이다. 그때 이후, 낡은 물건도 쓰레기로 처분하지 않고 한 켠에 잘 모아두었다 기증하는 습관이 생겼다.
 
값싼 물건이 소비를 부추긴다
 

올 여름, 낡은 진치마로 만든 가방

거의 매 년 이사를 다닐 때만 해도, 될수록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사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곳에 정착해 살게 되니, 해마다 물건이 늘어나 지금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물건과 가구 사이를 이리저리 비껴 다녀야 하는 우리 집을 놓고, 누군가는 ‘개미굴’이라 표현했을 정도니 말이다.

 
유학생활을 접고 이 땅에 다시 정착하게 되었을 때만해도 필요한 것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쓸만한 값싼 물건들이 넘쳐나서 나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소비의 지혜가 ‘될수록 물건을 싼 값에 사들여라’인데, 흥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싼 물건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길가 리어커부터 지하철 안 깜짝판매, 아울렛 매장, 인터넷 가게까지. 게다가 공짜로 끼워준다는 상품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게는 물질적 풍요의 놀라운 경험이었다.
 
쇼핑에도 큰 관심이 없고 구매욕구도 그다지 크지 않은 나조차도 값싼 물건의 소비유혹은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던 것 같다. 많은 돈이 없더라도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값이 싸다는 이유로 물건을 사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울렛 매장에서 5천 원짜리 티셔츠 앞에서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내게 “얼마 하지도 않는데 뭘 고민해! 조금 입다 버리면 되지” 라고 충고(?)해주던 연세든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그 옷은, 그야말로 조금 입다 버리라고 만드는 ‘패스트 패션’은 아니었지만,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패스트 패션’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큰 돈 들여 사지 않았으니, 버리기도 쉽다.
 
확실히 싼 물건이 많아졌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헐값에 산 물건은 금방 망가져 쓸만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적어도 그 값만큼은 한다는 생각은 든다. 아니, 개중에는 그 값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도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싸게 구입하는 것이 분명 알뜰한 구매, 개인적 차원에서의 충분히 경제적인 소비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싸게 사들이는 그 상품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주고, 자국 또는 타국의 노동자를 착취하고 어린이를 노예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면, 당장 내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해서 좋은 소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면서 ‘잘’ 소비한다는 것이 복잡한 생산, 유통을 알지 못하고는 잘 해내기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잘’ 소비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적게’ 소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될수록 재사용하자
 

▲ 오늘의 추천서- 심스 태백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베틀북, 2000) 삽화

우선 값싼 상품에 대한 유혹을 끊어내는 것, 다시 말해서 ‘싸니까 우선 사고 본다’는 생각부터 버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이 좋은 소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지금의 나라면, 온 집안에 가득 찬 물건만으로도 더이상 필요한 물건은 거의 없다. 그래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미 구입한 물건을 좀더 오래 사용하고, 될수록 쓰레기를 적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진바지와 같은 것은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낡게 된다. 아니, 낡지 않아도 싫증이 나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때, 변형해서 더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창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재활용 쓰레기로 바로 분리 배출할 수도 있지만,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계속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낡은 면양말과 속옷은 감물염색을 해 더 오래 입거나, 진바지나 치마는 모자나 가방으로 만들거나 오래된 잡지와 종이박스를 이용해서 정리함을 만들거나….
 
그런데 이처럼 물건을 변형하려면 어느 정도는 기술이 필요하다. 해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은 것도 있긴 했지만, 주변사람이나 전문가에게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작년에는 낡은 가죽제품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가죽소품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폐가구나 버려진 목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목공도 배워보고 싶다.
 
하지만, 가진 물건을 모두 변형해 사용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관심이나 기술이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 오래 사용하기 힘들 때는, 그 물건을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도록 해서 오래 사용할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돌려가며 사용하거나 물물교환할 수도 있고, ‘벼룩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옷, 책, 소가전 등을 기증받아 판매해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곳에 기증하는 방법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꼭 새 물건만 고집하지 않고 중고물품을 구입하는 것도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인터넷을 통한 중고물품시장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기왕이면 동네의 중고시장을 이용해 차량이용을 줄인 만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동네의 경우 토요일에는 공원의 벼룩시장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평소라면 평일에도 항상 열려 있는 ‘아름다운 가게’ 매장을 찾아갈 수도 있다. 매장까지 가는 길이 하천가 산책로와 연결되어, 알뜰구매와 더불어 산책과 운동도 겸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지난번 약속한 대로 모아둔 ‘종이가방’을 들고 아름다운 가게 매장을 찾아볼 생각이다. 낡은 물건들 속을 천천히 걸으며 두리번거리는 일도 무척 재미나다. 어린 시절 보물찾기하던 기대감과 흥분이 되살아나는 즐거운 시간이다.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일다 www.ildaro.com관련 글보기- 벼룩시장 통해 ‘좋은 소비’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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