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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3)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일러스트 - 정은
인터뷰 칼럼의 세 번째 손님은 동생입니다. 이로써 ‘(혈연)가족 인터뷰’의 마지막 시간이 돌아온 것이지요. 엄마, 언니 그리고 동생. 모두가 저의 인터뷰 제안에 망설임 없이 응해주었고, 덕분에 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주, 동생을 저와 파트너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첫 방문인지라 동생은 과자꾸러미를 가득 들고 왔습니다. 제 동생과 저의 관계는, 실상은 동생이 언니고 제가 동생인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생각이 깊고, 진중한 사람입니다. 동생은 언제나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찾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잘해왔습니다.
저는 동성애자인 덕으로, 언니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유학을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 덕에, 부모님 마음을 어지럽혔지요. 하지만 동생은 단한 번도 자신의 문제로 부모님의 마음을 어지럽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속은 늘 그렇지만은 않았겠지요. 동생이라고 삶에서 고된 순간,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동생은 늘 그렇게 혼자 알아서 잘해주었습니다. 기특한 동생입니다.
저, 파트너, 딸 ‘투투’와 아들 ‘비비’(이들은 강아지입니다) 그리고 동생, 이렇게 다섯이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북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한 첫 질문은 가족 인터뷰의 공식질문인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어땠니?"였답니다.
"처음 언니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어."
이런. 가수 이소라씨의 노래 <바람이 분다> 가사 중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부분이 있던데, 제 질문에 대한 동생의 대답은 그렇게 저의 기억과 달랐습니다. 동생의 반응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추억이 이리도 다르게 적히다니'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2000년 3월의 어느 날이었죠. 저는 제 방에 함께 앉아 있던 동생에게 "할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나, 동성애자야."
언니가 동생애자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동생은 벌떡 일어나며 한 마디 던지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더러워."
이 한 마디는 오랜 시간동안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지만,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동생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저는 늘 '최악의 상황'을 설정하고 준비하는 편인데, 당시에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했었습니다. 동생의 그와 같은 반응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도 저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리 되었고요.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너는 매우 놀랐었는데?"
"내가? 내가 놀랐어? 기억이 안나. 음... 놀랐을 수도 있겠다. 평소에 언니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놀랐을 수도 있었겠다."
이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혔지만, 동생의 추억 속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그 추억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동생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옛날부터 언니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했었어. '수진언니는 왜 저렇게 여자 친구들하고만 놀까.' 내가 여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과, 언니가 언니의 여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어. 언니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문을 잠그고는 했지.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언니는 비밀도 많은 편이었잖아.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그랬는지, 언니가 동성애자라고 했을 때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
아마도 동생은 저의 커밍아웃으로 충격을 받기는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언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니 역시 그렇구나' 정도로 신속하게 마음정리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 '신속한 정리'를 도운 것은 비밀스러운 저의 10대 시기에 관한 동생의 기억과, 동성애자인 언니를 둔 동생 자신의 현실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니는 '여남평등'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 말을 많이 했잖아. 하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우리 언니는 동성애자로 살 생각인가보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사람들은 다양하잖아.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다 똑같이만 살아가겠어. 그리고 이후에는 언니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런지, 조금 더 다르게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된 것 같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아무래도 언니가 내 가족이니까 그런 생각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약에 언니가 내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해서 잘 안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안 좋더라고. 홍석천씨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역시, 우리 동생 기특하지요? 동생은 진심으로 홍석천씨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홍석천씨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댓글을 보면서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 왜들 저렇게 비난을 하나?' 생각하며 많이 속상했다고 해요. 아마, 홍석천씨의 얼굴에 제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안 좋아졌겠지요. 홍석천씨 이야기를 하던 중에 동생은 이런 상황들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언니, 지금도 진정한 의미에서 '여남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의 삶이 여러모로 나아졌잖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고 말이야. 동성애자 문제도 계속 노력하면 나아지지 않겠어? 지금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나아질 거야."
동생은 평소 직장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을 볼 기회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동생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다양성'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동생 회사의 본사는 미국에 있고, 동생 회사는 한국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국 본사의 가치인 '다양성'이 한국 지사에서 그대로 중요 가치로 간주되고는 한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현실에 있어 약간의 괴리가 생긴다고도 합니다. 바로 동성애자 문제에 있어 그렇겠지요. 한국직원들은 본사에서 근무하는 커밍아웃한 게이나 레즈비언 직원을 보면 수군거린다고 합니다. "저 사람 게이래. 어쩌고, 저쩌고..."라면서 말이죠. 동성애자인 직원들을 보고 수군거리는 직장동료들 틈에서, 제 동생은 레즈비언인 언니를 둔 탓에 가끔 불편한 일을 겪기도 한다고 합니다.
"본사 가치가 그래서인지 우리 회사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회사다'라고 하는 분위기는 있어. 본사에서는 많이들 커밍아웃하는 하는 편인가보더라고. 그래도 우리 사정은 좀 다르지. 아무래도 뒷담화하는 분위기가 있지. 노골적인 비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자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아.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회사사람들의 반응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가 별 말을 하지는 않아. 그냥, 듣고 지나치고 말아. 진짜 문제는 오빠지. 오빠."
직장동료들이 동성애자 직원들을 비하하는 소리를 하더라도 동생은 그냥 모른 체하며 지나친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그런 반응들에 일일이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동생에 따르면 '진짜 문제'는 '그녀의 오빠'라고 하네요. 그 '오빠'는 저의 '제부'입니다. 동생의 남편이지요. 직장동료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데, 남편의 반응에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가족 문제이기 때문이겠지요.
"오빠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홍석천씨가 나온다거나 하면 그렇게 비하하는 소리를 하더라고. 그러면 내가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하는 문제를 가지고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오빠가 그렇게까지 저 사람들을 혐오하고 그래? 오빠한테 피해주는 것 있어?'라고 따져 묻기도 해. 방송에서 동성애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오빠한테 '그렇게 혐오할 필요 없다. 그럴 문제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하는 편이야. 진심은 어떤지는 몰라도 내 생각에 오빠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동생은 아직 남편에게 언니가 동성애자라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조금 더 남편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알리고 싶다고 합니다.
"오빠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 아직은 좋은 반응보다 안 좋은 반응이 먼저 나올 것 같아. 내가 지속적으로 주지시키고 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되면 충격이 덜하겠지. 시기를 잘 보면서 말할 계획이야."
동생에게 고마웠습니다. 동생이 '언니가 동성애자인 것을 괜히 왜 말해야 해?'라고 하지 않고, '기회를 봐서 언젠가는 말을 해야지'라고 말해주어 기뻤습니다. 제부가 제게 '왜 결혼하지 않으세요?' 혹은 '사귀는 남자 분은 안 계십니까?'라고 물을 때,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일에 동생이 앞장 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없이 기뻤습니다.
우리 동생은 참 똘똘합니다. 제가 엄마, 언니, 동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동생도 남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동생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시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인터뷰 내용에 우리 커플을 동생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포함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결혼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었잖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니?" 동생의 반응에 저는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앗, 정말이야? 축하해."
가족모임 할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했던 말인데, 그새 동생은 또 잊었나 봅니다. 갑자기 축하라니요. 동생에게 다시 물었어요. "나는 이미 이 얘기를 몇 번이나 했는데. 기억 안 나?"
"모르겠어. 내가 또 기억을 못 하나봐. 이제라도 언니가 결혼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있을게. 실감은 잘 안 나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할게."
추억은 여기에서도 다르게 적히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은 아닙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지인과 가족들에게 알렸어도, 지인과 가족들은 금세 잊어버리고는 합니다. 이를테면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미영아, 너도 이제 남자 만나야지?"라고 말하거나, 엄마가 "쯧쯧, 우리 순영이도 좋은 신랑 만나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는 제가 동생에게 커밍아웃했던 최초의 상황을 동생이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은 문제와도 연결 될 겁니다. 동생 뿐 아니라 엄마도, 언니도 '결혼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제 의중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가족모임을 할 때 이런 말을 듣고는 하죠. "수진이 너는 결혼생활이 뭔지 몰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별 수 없습니다. 끝없는 반복을 통해 제가 그런 마음으로 제 스스로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게 만드는 수밖에요. 인간의 형상이 아니어서 그렇지, 우리 강아지들도 분명한 우리의 자식들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수밖에요. 그리하여 저는 다시 동생에게 천천히 설명을 했습니다.
"나는 결혼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 결혼제도가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결혼한 마음으로 살고, 강아지들도 우리 자식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 그래서 나도 우리 가족들한테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우리 둘이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주변사람들, 가족들의 지지가 있으면 더 좋으니까. 그래서 물어 본거야. 우리 커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너희 커플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관계로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꼭 기억해주렴."
인터뷰를 마치면서 지난 번 언니와의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꺼내보았습니다. "지난 번 언니 인터뷰하고 쫓겨났어." 동생은 이미 알고 있더군요. 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왜 가족들이 나의 삶에 더 깊이 관심을 갖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지 동생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가족들이 내 삶에 관심이 적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동생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어요.
"언니가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겪어 온 혹은 겪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 알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 왜냐하면, 언니가 사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니잖아."
이 짧은 대답을 하면서도 동생은 지난 번 언니와의 인터뷰 도중에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눈에 눈물을 달고 있었습니다. 울리고 싶지 않아서 저도 더 캐묻지 않고 인터뷰를 서둘러 정리했어요.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레즈비언인 언니에게 당부의 말 한 마디를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나는 그냥 언니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말이야."
엄마도, 언니도 그리고 동생도 제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딸, 동생, 언니인 제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녀들에게 저는 그저 '레즈비언'인 한 사람이 아니라, 딸이고 동생이고 언니인 것입니다. 뜬금없이 레즈비언에 관한 소식을 전해왔던 제게 이상한 눈빛 한 번 보내지 않고 귀 기울여주었던 우리 가족들, 무엇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한 번도 묻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레즈비언인 딸을, 동생을, 언니를 걱정해주는 우리 가족들,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될 <일다>에 오를 글을 위해 제안한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해준 우리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추억이 좀 다르게 적히면 어떻습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저는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렇게 든든한 엄마, 언니, 동생이 늘 곁에 있으니 말입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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