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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나의 삶을 생각하다”
[4대강 르포] 낙동강 순례길을 다녀와서 (신진희)
솔직히 4대강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광우병 쇠고기’처럼 매순간 접하게 되는 먹거리 문제도 아니고, 내가 살아 가는 서울 근처의 강도 아니니,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죽어가는 생물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면,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무얼 그리 새로운 재해처럼 저럴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외가인 여주 신륵사, 남한강 얘기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를 따라 갔던 그곳. 절 안에 강이 있어 신기해했던 운치 있는 그곳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여주에 사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4대강 공사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주민들 분위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삼촌은 이렇게 답했다.
“이 시골에 자전거도로가 있으면 뭐하겠니. 애들 공부방이나 만들어주지는. 그리고 강이 호수처럼 되면 안개가 많아질 텐데, 교통사고율 높아질 걱정이 있지. 여기 주민들은 이 사업에 대해 제대로 들은 얘기도 없고,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니까 정부에서 사업한다니 그냥 좋은 거겠 거니 하지.”
그러고 보니 우불구불 시골길 안에 자리했던 외가 앞에 고가도로와 콘크리트도로가 생긴 뒤로,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몇백년 된 느티나무가 시들어갔고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시기도 했다. 언제라도 나를 반겨줄 것 같던 외가의 소박함이 시멘트 잿빛으로 변하여 내가 살고 있는 서울과 다를 바 없어지면서 느끼게 된 허전함을 떠올리니, 비로소 신륵사 앞의 남한강 대형공사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토목기사가 된 선배오빠가 최근 매우 바빠져서 중요한 모임에도 못 나온 이유가 바로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오빠는 스스로 “나 환경파괴하고 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한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비로소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다>가 제안한 낙동강 순례길에 선뜻 나서게 됐다.
과연 생명 살리기 사업입니까?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회원들이 낙동강 순례길 첫 코스로 안내한 곳은 가장 가까이에서 낙동강을 볼 수 있는 다리인 강창교였다. 강창교를 건너며 보았던 강물은 얼핏 보기에도 하얀 기포가 보이고 탁했는데, 공사 전에는 1급수에 가까웠는데 공사 후 현재 3배 이상 혼탁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았던 건 상주보 공사현장이었다. 산과 강물이 있는 풍경에 포클레인과 트럭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보니 본능적으로 거북함이 밀려왔다.
곧 모래로 뒤덮여 생태공원과 자전거도로가 될 ‘농지’ 위 플래카드에는 “낙동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조용히 소설쓰기에만 전념하던, 좋아하던 작가가 “4대강 살리기라니, 살린다는 말이 이토록 돌이킬 수 없는 죽임과 파괴의 의미로 쓰인 적은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던 게 떠올랐다.
공사현장 곳곳의 홍보문구에 등장하는 ‘행복’, ‘풍요’ 등의 단어들도 마음을 착잡하게 했는데, 지율스님은 이를 두고 “언어를 강탈당했다”고 하셨다고 한다. 나는 새삼 ‘생명’, ‘행복’에 대해 곱씹으며 생각했다. 쉽게 내뱉던 이 말들은 과연 어떤 모습에 어울리는 것일까?
도로 건너편에는 상주보 건설을 맡고 있는 ‘낙동강 살리기 33공구’ 사무실이 보였다. 한 공구에 100여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살리기 공사는 전국에 약 40개의 공구를 두고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창출된 일자리는 고작 4천개인 셈이다. 몇 십만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던 정부 아니었던가?
살아 있는 강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서울에서 보아온 한강에만 익숙해 있던 나는 강이 직선으로 흐른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낙동강 순례여행을 통해 보았던 강물은 산을 휘감아 돌거나, 작은 섬과 모래 위를 스쳐 흐르고 있었다.
4대강 공사는 대형 보를 만들어 그 안에 강물을 가두어 직선으로 만들고, 강바닥의 모래를 파서 그 모래로 제방을 만들어 수위가 높아진 강의 범람을 막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하지만 상주보 공사현장은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이라, 강물이 불어나면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당연히 보와 제방이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주변의 주민들은 높아진 강의 수위로 인해 크나큰 수해를 입지 않을 것이냐는 우려가 이어졌다.
순례여행에 참여하신 수녀님 두 분은 이런 대화를 하고 계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강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흐른단 말이야. 저 보가 강의 흐름을 막지 못하지.”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인 것처럼, 강물도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씨의 책 제목처럼 “강은 살아 있다”는 게 실감되었다.
흙길이 사라지는 잿빛 미래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건설계획 발표 이전부터 이미 전국 1,700km에 달하는 자전거투어로드를 건설해왔다고 한다. 상주보 건설현장 근처 자전거투어로드를 보면서, 서울 살며 흙길을 걷기 어려웠던 게 떠올랐다. 정부가 앞으로 전국적으로 흙길, 산길을 없애 자전거길을 낼 계획인 거라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시멘트 빛-잿빛 미래가 그려졌다.
황량해진 주변 풍경을 보며, 딱딱한 시멘트 길을 걸으며, 그동안 서울에서 접해왔던 ‘공원’의 인위적인 풍경을 씁쓸하게 곱씹었다. 구불구불 오르막 산길을 시멘트로 덮고, 산의 경사면을 깎아 나무를 고사하게 만들면서까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무얼 하겠다는 건지.
오르막길의 정점에서는 예전에 ‘오리섬’으로 불렸다는 황폐한 모래섬을 볼 수 있었다. 보를 만들어 깊어진 수심만큼의 모래를 쌓아 올리려고 오리섬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오리들이 떼를 지어 살던 곳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곳의 모습을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리섬 옆으로 여울이 보였다. 강에 자갈 등이 많아 얕고 폭이 좁아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여울’은 강물의 주요 산소 공급처로, 물고기들이 그곳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앞으로 보가 생기게 되면 물의 양은 늘어나고 유속이 느려져 오리섬처럼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강 저편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은 자전거박물관이 될 거라고 한다. 그 옆에는 생태자원박물관과 승마장이 건설될 예정이다. 오리섬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회원 한 분은 “나날이 파괴되어 사라지는 오리섬을 보면서, 이것(공사)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인간이 아닌 ‘자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힘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과 무서움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강에 대해 잊고 있던 것, 우리가 모르는 것
강이 사라지고 있는 현장을 보고난 후, 순례길은 아직 4대강 공사의 영향을 받지 않아 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고 있는 회룡포는, 강이 흐르면서 펼쳐놓은 모래밭과 태백산 능선의 산자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신발을 벗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그 풍경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상류의 낙동강 발원지인 영주에 댐이 건설되면 강의 흐름이 중단되어 내성천으로 모래유입도 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날 순례길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돌고 있는 하회마을이었다. 부용대에서 낙동강과 나루터, 산, 기와집과 초가집을 바라보니 박경리의 『토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이웃마을과 장터를 가고 일하고 사랑하며 삶을 일구어 살아가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 그런데 역사적 숨결이 살아있는 이곳도 4대강사업으로 곧 사라지고 변형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낙동강 근처 지역에 산 적이 있다. 하지만 낙동강을 접한 건, 시와 노래뿐이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저는 이제껏 낙동강이 영남지역에 고속버스 타고 가면서 보았던 물줄기 그 뿐인 줄 알았어요” 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모임의 회원 김영희씨는 우리에게 ‘살면서 이렇게 가까이서 강을 접해본 적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지난 순례길에 참여해 습지를 보고 절을 하면서까지 놀라움과 경외심을 표하던 한 일본사람에 대해 이야기해주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거죠” 했다.
자연 그대로 그냥 놔두어요, 우리
어느덧 낙동강 순례길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나는 다시 도시생활로 돌아왔다. 시멘트도로와 버스중앙차선에서 맡는 매연, 서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낙동강에서 본 것들은 내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결국 내 삶의 패러다임과 잇닿아 있었다. 비가 오면 질퍽거린다고 싫어했던 흙길이 시멘트도로엔 없는 푹신함을 준다는 것을, 직선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둔 하회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과, 강가의 나루터 사진을 보면서 하루의 피곤함을 위로받는다. 그리고 무리하게 무언가를 계획하기보다 쉼과 자연그대로를 즐기려고 한다. 억지로 강의 흐름을 막고 변형시키는 것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그치지 않던 순례길에서, 지율스님 강연을 듣고서 낙동강 순례길에 참여했다는 한 목사님과의 대화는 중요한 실마리를 주었다. 나는 목사님께 기술문명의 발달을 부정할 순 없지 않으냐고, 그로 인한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지 않으냐고 질문을 던졌었다.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래요. 우리는 지금 딜레마에 놓인 거지요. 그리고 4대강 사업을 두고는 어려운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놔두자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요.”
4대강사업 ‘허구’밝히는 낙동강순례| 4대강사업 막을 수 있습니다 |4대강 정비, 수중생태계 파괴
[4대강 르포] 낙동강 순례길을 다녀와서 (신진희)
낙동강 순례길을 다녀오다 ©신진희
그런데 나의 외가인 여주 신륵사, 남한강 얘기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를 따라 갔던 그곳. 절 안에 강이 있어 신기해했던 운치 있는 그곳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여주에 사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4대강 공사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주민들 분위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삼촌은 이렇게 답했다.
“이 시골에 자전거도로가 있으면 뭐하겠니. 애들 공부방이나 만들어주지는. 그리고 강이 호수처럼 되면 안개가 많아질 텐데, 교통사고율 높아질 걱정이 있지. 여기 주민들은 이 사업에 대해 제대로 들은 얘기도 없고,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니까 정부에서 사업한다니 그냥 좋은 거겠 거니 하지.”
그러고 보니 우불구불 시골길 안에 자리했던 외가 앞에 고가도로와 콘크리트도로가 생긴 뒤로,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몇백년 된 느티나무가 시들어갔고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시기도 했다. 언제라도 나를 반겨줄 것 같던 외가의 소박함이 시멘트 잿빛으로 변하여 내가 살고 있는 서울과 다를 바 없어지면서 느끼게 된 허전함을 떠올리니, 비로소 신륵사 앞의 남한강 대형공사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토목기사가 된 선배오빠가 최근 매우 바빠져서 중요한 모임에도 못 나온 이유가 바로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오빠는 스스로 “나 환경파괴하고 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한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비로소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다>가 제안한 낙동강 순례길에 선뜻 나서게 됐다.
과연 생명 살리기 사업입니까?
상주보 공사 현장
곧 모래로 뒤덮여 생태공원과 자전거도로가 될 ‘농지’ 위 플래카드에는 “낙동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조용히 소설쓰기에만 전념하던, 좋아하던 작가가 “4대강 살리기라니, 살린다는 말이 이토록 돌이킬 수 없는 죽임과 파괴의 의미로 쓰인 적은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던 게 떠올랐다.
공사현장 곳곳의 홍보문구에 등장하는 ‘행복’, ‘풍요’ 등의 단어들도 마음을 착잡하게 했는데, 지율스님은 이를 두고 “언어를 강탈당했다”고 하셨다고 한다. 나는 새삼 ‘생명’, ‘행복’에 대해 곱씹으며 생각했다. 쉽게 내뱉던 이 말들은 과연 어떤 모습에 어울리는 것일까?
도로 건너편에는 상주보 건설을 맡고 있는 ‘낙동강 살리기 33공구’ 사무실이 보였다. 한 공구에 100여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살리기 공사는 전국에 약 40개의 공구를 두고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창출된 일자리는 고작 4천개인 셈이다. 몇 십만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던 정부 아니었던가?
살아 있는 강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리섬의 여울
4대강 공사는 대형 보를 만들어 그 안에 강물을 가두어 직선으로 만들고, 강바닥의 모래를 파서 그 모래로 제방을 만들어 수위가 높아진 강의 범람을 막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하지만 상주보 공사현장은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이라, 강물이 불어나면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당연히 보와 제방이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주변의 주민들은 높아진 강의 수위로 인해 크나큰 수해를 입지 않을 것이냐는 우려가 이어졌다.
순례여행에 참여하신 수녀님 두 분은 이런 대화를 하고 계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강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흐른단 말이야. 저 보가 강의 흐름을 막지 못하지.”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인 것처럼, 강물도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씨의 책 제목처럼 “강은 살아 있다”는 게 실감되었다.
흙길이 사라지는 잿빛 미래
강바닥의 모래를 파서 제방을 만들고 있는 상주보 공사 현장
황량해진 주변 풍경을 보며, 딱딱한 시멘트 길을 걸으며, 그동안 서울에서 접해왔던 ‘공원’의 인위적인 풍경을 씁쓸하게 곱씹었다. 구불구불 오르막 산길을 시멘트로 덮고, 산의 경사면을 깎아 나무를 고사하게 만들면서까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무얼 하겠다는 건지.
오르막길의 정점에서는 예전에 ‘오리섬’으로 불렸다는 황폐한 모래섬을 볼 수 있었다. 보를 만들어 깊어진 수심만큼의 모래를 쌓아 올리려고 오리섬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오리들이 떼를 지어 살던 곳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곳의 모습을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리섬 옆으로 여울이 보였다. 강에 자갈 등이 많아 얕고 폭이 좁아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여울’은 강물의 주요 산소 공급처로, 물고기들이 그곳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앞으로 보가 생기게 되면 물의 양은 늘어나고 유속이 느려져 오리섬처럼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강 저편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은 자전거박물관이 될 거라고 한다. 그 옆에는 생태자원박물관과 승마장이 건설될 예정이다. 오리섬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회원 한 분은 “나날이 파괴되어 사라지는 오리섬을 보면서, 이것(공사)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인간이 아닌 ‘자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힘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과 무서움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강에 대해 잊고 있던 것, 우리가 모르는 것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내성천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신발을 벗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그 풍경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상류의 낙동강 발원지인 영주에 댐이 건설되면 강의 흐름이 중단되어 내성천으로 모래유입도 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날 순례길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돌고 있는 하회마을이었다. 부용대에서 낙동강과 나루터, 산, 기와집과 초가집을 바라보니 박경리의 『토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이웃마을과 장터를 가고 일하고 사랑하며 삶을 일구어 살아가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 그런데 역사적 숨결이 살아있는 이곳도 4대강사업으로 곧 사라지고 변형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낙동강 근처 지역에 산 적이 있다. 하지만 낙동강을 접한 건, 시와 노래뿐이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저는 이제껏 낙동강이 영남지역에 고속버스 타고 가면서 보았던 물줄기 그 뿐인 줄 알았어요” 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모임의 회원 김영희씨는 우리에게 ‘살면서 이렇게 가까이서 강을 접해본 적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지난 순례길에 참여해 습지를 보고 절을 하면서까지 놀라움과 경외심을 표하던 한 일본사람에 대해 이야기해주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거죠” 했다.
자연 그대로 그냥 놔두어요, 우리
강의 원형이 간직된 회룡포. 물이 구비구비 돌아흐른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결국 내 삶의 패러다임과 잇닿아 있었다. 비가 오면 질퍽거린다고 싫어했던 흙길이 시멘트도로엔 없는 푹신함을 준다는 것을, 직선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둔 하회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과, 강가의 나루터 사진을 보면서 하루의 피곤함을 위로받는다. 그리고 무리하게 무언가를 계획하기보다 쉼과 자연그대로를 즐기려고 한다. 억지로 강의 흐름을 막고 변형시키는 것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그치지 않던 순례길에서, 지율스님 강연을 듣고서 낙동강 순례길에 참여했다는 한 목사님과의 대화는 중요한 실마리를 주었다. 나는 목사님께 기술문명의 발달을 부정할 순 없지 않으냐고, 그로 인한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지 않으냐고 질문을 던졌었다.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래요. 우리는 지금 딜레마에 놓인 거지요. 그리고 4대강 사업을 두고는 어려운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놔두자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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