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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국가대표를 꿈꾸는 축구선수, 김혜지
▲제주도 도남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주장 김혜지
자식뻘, 조카뻘 되는 이 친구를 만나며 행복했다. 한편으로 엄마뻘일수 있는 나를 만나며 그 친구도 부디 나와 같은 기분이면 참 좋겠다는, 그냥 소박한 마음 흘린다.
먹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먹어지는 ‘나이’, 그 나이 타령하며 ‘요새 젊은것들’ 에게 가자미눈 흘기고 혀끝을 차는, 어쩔 수 없이(!) 찌질 어른이 되어버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건만 바로 지금의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그 어른’ 맞나? 새삼 스스로 묻게 될 때는 마치 몇 년 푹 삭은 묵은지를 한 입에 넣을 때와 같은 기분, 어쩔 수 없이 든다.
뜬금없이 ‘나이 먹어가는 징조’를 까발리는 글 시작이 되었지만 사실은 이 친구를 만나며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기쁨이 컸다. 그 시절의 꿈과 희망이었던,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일 수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건 '자신의 천복을 따르라'는 조지프 캠벨의 메시지를 떠올린 탓이다.
이 무더위에 냉수 한 사발 단숨에 들이키며 생각해보라. 기억나는 어린 시절에 어떤 꿈을 품었던가를! 무엇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또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냉수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 가슴께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즈음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람처럼 빠른 미드필더, 감독이 붙여준 별명은 '지단'
남자 같다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여~엉 시큰둥한, 제주도 도남초등학교 여자 축구팀 주장 김혜지(13세)를 만났다. 축구가 '내 인생의 반'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혜지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우리 편에 유리하게 선수들에게 골을 배분해주는 임무예요. 공격도 해요." 진지하다. 별명은 ‘지단’. 프랑스 출신의 전설적 축구선수 지네진 지단처럼 빠르고 중앙미드필더에서 골을 잘 배분해준다고 감독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 혜지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축구선수 '지네진 지단'처럼 빠르고 골을 잘 배분해준다고 감독님이 '지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축구를) 3학년 때는 좋아하기만 했고, 4학년 2학기부터 시작했어요. 체육시간에 여자 축구선수를 뽑는대서 볼 차는 실력을 테스트했는데 그때부터 했어요."
5학년 2학기 때 감독이 지명한 주장이 되었다. "(감독님이) 경기를 잘 할 수 있게 이끌어가니까…지도력이 있어 주장을 시킨다고…반대는 없었어요." 주장의 역할은 감독의 지시사항을 잘 전달하고, 축구단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축구단 분위기가 망가지는 게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한 선수를) 왕따 시킨다던지, 자기네끼리만 어울린다든지 하는 거죠." 혜지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 중 하나였다.
"저는 그 사이에서 이쪽저쪽 얘기 다 들어보고, 화해를 하라고 해도 (서로가) 할 맘 없다고 할 때에는 많이 속상했어요." 감독님과 부모님들의 공권력(!)이 투입되며 축구단 분위기는 수습되었지만 혜지에게는 팀 리더의 고충과 쓴맛을 세게 경험한 사건이었다.
엄마 또는 아빠에게 욕 들었을 때, 감독님에게 혼났을 때, 대회 나가서 꼭 이기고 싶을 때 공을 차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혜지는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면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공이 철썩하고 골대로 빨려 들어갈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골 세레모니는 해맑게 웃으면서 달려가면 얘들이 안아서 들어 올려줘요."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짜릿함을 맛 본 친구에게 남친은 없다. (잘난 척하거나 잘 씻지 않는 타입은 아예 접근금지!) 축구하다보면 그런 거에 관심이 안 간다고 했다. 오로지 축구뿐인 13년 인생에 남자보다 여자팬층이 더 두텁다.
"올해 전국 여왕기 축구 대회 때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8강까지 올라간 게 큰 감동이에요. 하늘 끝까지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합천에서 열린 2010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때는 3경기했는데 죽음의 조였어요. 성덕초등학교, 인천 가림초등학교 강팀들만 걸렸는데, 삼례중앙 초등학교는 좀 대적할만했어요. 적은 점수 차로 져서 기분 좋았어요." 3경기 1무2패의 성적이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이정수선수와 나이지리아전 때 멋진 프리킥을 넣은 박주영선수라고.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노라며 한국축구에 대해선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짜증안내고 서로 도와가며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좋았다는 혜지다운 관전평도 곁들였다.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
▲축구선수의 길을 택한 혜지가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는 말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다.
축구를 계속할지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주도에는 중학교 여자축구부가 없기 때문에 육지의 여자축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아빠랑 떨어져 지내는 것과 집 떠나면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래는 중학교까지 (축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도 늘고, 주장도 되니까 내가 축구를 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6월 즈음에 단단한 결정을 내렸다. 엄마는 잘 적응할 수 있다면 가라고 했고 아빠는 거기에 가서도 힘든 거 잘 이겨내라고 했다.
알 껍질을 채 벗지 못한 채 세상으로 발을 내딛은 햇병아리가 떠오른다. 아장아장 걷고 포르륵 포르륵 공중부양하며 생의 탐험을 막 시작하는 병아리. 그 작은 몸뚱이가 축구공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 덩치 큰 갈매기를 만나고, 집채만 한 고래를 만나고, 검은 하늘의 별들과 속삭이는 밤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 눈시울 뜨거워지는 시절과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쓰나미처럼 일어날지도 모른다. 두 주먹 불끈 쥐는 응전과 도전의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단련되리라.
그 모든 경험들 속에서 다듬어지며 머지않은 날에 당당하게 자기만의 신화를 만들어 갈 것이니 그것은 온전히 혜지의 몫이다. 그저 손바닥이 부르트게 박수쳐주고 싶은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독립한다는 사실이다.
우연하게도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는 동안 2010 FIFA U-20월드컵에서 태극 여전사들이 사상처음 4강까지 올랐다는 쾌거를 접했다. 그리고 FIFA랭킹 2위인 독일과의 결전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한 안타까움도 같이. 국내 여자축구 환경의 열악함이 조명되고, 중학교 여자축구선수의 비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자축구선수 발굴 및 조기교육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투자 요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혜지가 '지메시'로 통하는 지소연 선수, 문소리 골키퍼의 뒤를 잇는 후배로, 별명처럼 '김지단'으로 통하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지길 기대해본다. 요즘 혜지는 방학도 반납하고, 8월에 대전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을 준비하며 여전히 맹훈련중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혜지가 언제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박진창아/ 일다)
[인터뷰] 제주도에 커피나무 심는 여자 | 제주 낙천에서 물드리네 | 그녀가 꿈꾸는 ‘요가적인 삶’
▲제주도 도남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주장 김혜지
자식뻘, 조카뻘 되는 이 친구를 만나며 행복했다. 한편으로 엄마뻘일수 있는 나를 만나며 그 친구도 부디 나와 같은 기분이면 참 좋겠다는, 그냥 소박한 마음 흘린다.
먹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먹어지는 ‘나이’, 그 나이 타령하며 ‘요새 젊은것들’ 에게 가자미눈 흘기고 혀끝을 차는, 어쩔 수 없이(!) 찌질 어른이 되어버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건만 바로 지금의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그 어른’ 맞나? 새삼 스스로 묻게 될 때는 마치 몇 년 푹 삭은 묵은지를 한 입에 넣을 때와 같은 기분, 어쩔 수 없이 든다.
뜬금없이 ‘나이 먹어가는 징조’를 까발리는 글 시작이 되었지만 사실은 이 친구를 만나며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기쁨이 컸다. 그 시절의 꿈과 희망이었던,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일 수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건 '자신의 천복을 따르라'는 조지프 캠벨의 메시지를 떠올린 탓이다.
이 무더위에 냉수 한 사발 단숨에 들이키며 생각해보라. 기억나는 어린 시절에 어떤 꿈을 품었던가를! 무엇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또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냉수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 가슴께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즈음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람처럼 빠른 미드필더, 감독이 붙여준 별명은 '지단'
남자 같다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여~엉 시큰둥한, 제주도 도남초등학교 여자 축구팀 주장 김혜지(13세)를 만났다. 축구가 '내 인생의 반'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혜지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우리 편에 유리하게 선수들에게 골을 배분해주는 임무예요. 공격도 해요." 진지하다. 별명은 ‘지단’. 프랑스 출신의 전설적 축구선수 지네진 지단처럼 빠르고 중앙미드필더에서 골을 잘 배분해준다고 감독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 혜지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축구선수 '지네진 지단'처럼 빠르고 골을 잘 배분해준다고 감독님이 '지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축구를) 3학년 때는 좋아하기만 했고, 4학년 2학기부터 시작했어요. 체육시간에 여자 축구선수를 뽑는대서 볼 차는 실력을 테스트했는데 그때부터 했어요."
5학년 2학기 때 감독이 지명한 주장이 되었다. "(감독님이) 경기를 잘 할 수 있게 이끌어가니까…지도력이 있어 주장을 시킨다고…반대는 없었어요." 주장의 역할은 감독의 지시사항을 잘 전달하고, 축구단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축구단 분위기가 망가지는 게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한 선수를) 왕따 시킨다던지, 자기네끼리만 어울린다든지 하는 거죠." 혜지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 중 하나였다.
"저는 그 사이에서 이쪽저쪽 얘기 다 들어보고, 화해를 하라고 해도 (서로가) 할 맘 없다고 할 때에는 많이 속상했어요." 감독님과 부모님들의 공권력(!)이 투입되며 축구단 분위기는 수습되었지만 혜지에게는 팀 리더의 고충과 쓴맛을 세게 경험한 사건이었다.
엄마 또는 아빠에게 욕 들었을 때, 감독님에게 혼났을 때, 대회 나가서 꼭 이기고 싶을 때 공을 차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혜지는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면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공이 철썩하고 골대로 빨려 들어갈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골 세레모니는 해맑게 웃으면서 달려가면 얘들이 안아서 들어 올려줘요."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짜릿함을 맛 본 친구에게 남친은 없다. (잘난 척하거나 잘 씻지 않는 타입은 아예 접근금지!) 축구하다보면 그런 거에 관심이 안 간다고 했다. 오로지 축구뿐인 13년 인생에 남자보다 여자팬층이 더 두텁다.
"올해 전국 여왕기 축구 대회 때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8강까지 올라간 게 큰 감동이에요. 하늘 끝까지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합천에서 열린 2010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때는 3경기했는데 죽음의 조였어요. 성덕초등학교, 인천 가림초등학교 강팀들만 걸렸는데, 삼례중앙 초등학교는 좀 대적할만했어요. 적은 점수 차로 져서 기분 좋았어요." 3경기 1무2패의 성적이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이정수선수와 나이지리아전 때 멋진 프리킥을 넣은 박주영선수라고.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노라며 한국축구에 대해선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짜증안내고 서로 도와가며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좋았다는 혜지다운 관전평도 곁들였다.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
▲축구선수의 길을 택한 혜지가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는 말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다.
축구를 계속할지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주도에는 중학교 여자축구부가 없기 때문에 육지의 여자축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아빠랑 떨어져 지내는 것과 집 떠나면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래는 중학교까지 (축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도 늘고, 주장도 되니까 내가 축구를 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6월 즈음에 단단한 결정을 내렸다. 엄마는 잘 적응할 수 있다면 가라고 했고 아빠는 거기에 가서도 힘든 거 잘 이겨내라고 했다.
알 껍질을 채 벗지 못한 채 세상으로 발을 내딛은 햇병아리가 떠오른다. 아장아장 걷고 포르륵 포르륵 공중부양하며 생의 탐험을 막 시작하는 병아리. 그 작은 몸뚱이가 축구공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 덩치 큰 갈매기를 만나고, 집채만 한 고래를 만나고, 검은 하늘의 별들과 속삭이는 밤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 눈시울 뜨거워지는 시절과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쓰나미처럼 일어날지도 모른다. 두 주먹 불끈 쥐는 응전과 도전의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단련되리라.
그 모든 경험들 속에서 다듬어지며 머지않은 날에 당당하게 자기만의 신화를 만들어 갈 것이니 그것은 온전히 혜지의 몫이다. 그저 손바닥이 부르트게 박수쳐주고 싶은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독립한다는 사실이다.
우연하게도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는 동안 2010 FIFA U-20월드컵에서 태극 여전사들이 사상처음 4강까지 올랐다는 쾌거를 접했다. 그리고 FIFA랭킹 2위인 독일과의 결전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한 안타까움도 같이. 국내 여자축구 환경의 열악함이 조명되고, 중학교 여자축구선수의 비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자축구선수 발굴 및 조기교육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투자 요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혜지가 '지메시'로 통하는 지소연 선수, 문소리 골키퍼의 뒤를 잇는 후배로, 별명처럼 '김지단'으로 통하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지길 기대해본다. 요즘 혜지는 방학도 반납하고, 8월에 대전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을 준비하며 여전히 맹훈련중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혜지가 언제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박진창아/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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