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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직장내 임신,출산,육아권의 현주소는?
고용평등상담실 10년, 여성노동의 현실과 미래(1) 작성: 황현숙 

2001년 남녀고용평등법 4차 개정으로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민간단체들의 고용평등상담실은 그동안 여성노동자들의 실질적 보호장치로 기능해왔으며,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창구역할을 해왔습니다. 일다는 여성노동자회와 함께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상담사례를 통해 IMF 경제 위기 이후 후퇴 일로를 걷고 있는 여성노동의 현실과 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필자 황현숙님은 현재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임신하면 사직·비정규직으로 전환 강요
 

‘낳아라 낳아라! 다 알아서 키워줄 터이니.’ TV에서 접하는 저출산 대책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언뜻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전국 15개 민간여성단체 고용평등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는 여성들의 호소는 이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출산휴가 90일과 육아휴직 1년이 법적으로는 버젓이 보장되어 있지만, 직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것은 법제도와는 또 다른 현실의 벽이다.
  
“임신 6개월째인데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라고 하네요. 출산휴가까지 만이라도 사용하고 그만두게 해달라고 하였더니 ‘임신했기 때문에 일을 마음대로 못시키겠다’, 외국손님 방문 때에는 술자리에 참석하게 하여 통역도 해주기도 했는데 이제 ‘손님과 술자리를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라는데…….”(2009년, 정규직, 1.5개월 근무)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임신했다는 얘기를 하니까 다른 데 갈 데 있으면 가라더라고요.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요일을 정해서 절반만 나오라기에 그것도 안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미 결정된 일이라면서 파트타임으로 하라는데…….”(2007년 상담사례, 정규직)
 
임신 중인 모성을 보호는커녕 마음대로 일을 시키기 어렵다, 손님과 술자리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평소 여성의 업무에 대한 인식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구나 임신을 이유로 그만두게 하려다 시간제라는 비정규직으로 전환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 부당하지만 쉬이 대응하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출산휴가 사용 금지 관행, 구조조정 1순위 여전

▲ 정부는 저출산대책을 내놓으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은 임신과 출산, 양육을 이유로 해고되고 있다.     © 일다- 느티
 
“수출입업무를 14년간 해왔어요. 그동안 이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사용한 여성이 한 명도 없고, 임신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관행이었어요. 이번에는 출산휴가를 주기는 하겠지만 복직은 시켜줄 수 없다고 하네요. 그러더니 신입사원을 뽑는다며 출산휴가도 쓰지 말고 1달 뒤에 그만두라고 하는데 너무 억울해서요.”(2009년 상담사례, 정규직으로 14년 근무)
 
“출산휴가 사용 후 출근한 지 일주일째인데 이번에 부득이 구조조정으로 인원감축을 해야 하는데 제가 그 대상자라는 거예요. 출산휴가 사용은 이 회사에서 내가 처음이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회사 초창기부터 야근, 휴일근로 마다하지 않고 일했는데 사전에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그만두라니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그동안 열심히 몸 바쳐 일했던 것이 허망해지고…….”(2009년 상담사례, 정규직으로 11년 근무)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상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육아휴직 상담은 최근 5년 사이에 그 비중이 3배 이상 증가하였다.
 
출산휴가는 회사의 재직기간 상관없이, 본인이 두 달만 쓰겠다고 하여도 사측에서 90일을 의무적으로 주어야 하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휴가를 안준다고 하는 것은 곧 해고인데, 이런 불법 사례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2001년에 출산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늘어나고, 2005년에는 출산휴가 전 기간의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 후,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감도 높아지면서 그 권리의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반면 사업장에서 의무사항을 이행하는데 있어 대단히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상담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육아휴직 쓰면 다른 여직원도 쓴다고 해서 줄 수 없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이 없지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신청했는데 대표가 결재를 못해준다고 하네요. 이유는 본인을 시작으로 다른 여직원들도 육아휴직을 쓸 경우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 때문이라고 하는데요.”(2009년 상담사례)
 
“출산휴가에 이어서 육아휴직도 사용하려고요. 그런데 아무도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이 없고, 퇴직금이나 다른 비용부담이 늘어나니까 쓰지 말라고 하네요. 노동부에 육아휴직 사용을 못하게 할 경우 어떤 조치사항이 취해지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2009년 상담사례, 정규직으로 2년 근무)
 
육아휴직 또한 6세(2007.12.31.이전 출생은 1년) 미만의 자녀의 양육을 위하여 여성 또는 남성노동자가 최대 1년의 범위 내에서 신청하면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제도이다.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에 사업주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 뿐이다. 더구나 고용노동부에서 잘못 안내를 하는 경우조차 있어 육아휴직의 현실적 사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아직도 잇따르고 있다.
 
비정규직 모성보호? 공공기관에서조차 재계약 거부
 
“임신 중인데 저만 재계약을 거부당했어요. 회사에서는 인사평정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는 없고 임신 때문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거든요.”
 
“7년이나 근무했고 이제는 무기계약직인데도 출산휴가 들어간 사이에 계약만료 되었다며 해고통보를 받았어요.”
 
“관공서 계약직인데, 육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데 그러면 재계약을 안하겠다는데 방법이 없는지요?”
 
이와 같이 접수된 비정규직의 상담사례는 사실상 임신이 해고의 이유이다. 그러나 인사평정 점수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거나 무기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계약만료를 내세워서 그만두라는 사례가 많다. 더구나 앞장서서 출산·육아권을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인데도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못주겠다는 사례조차 나타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2/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해고’가 아닌 ‘계약만료’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법적으로는 비정규직은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한 글자도 들어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임신, 출산, 육아권을 위협받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용평등상담실 통해 출산휴가 1호 사례 만들어 내기도
 
“회사 창립 이래 출산휴가를 아무도 쓴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상담실에서 도와주셔서 우리 회사에서 출산휴가 1호가 되었답니다!”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임신 중이라고 일시키기 어렵다며 그만두라고 하는데, 상담실에서 알려주신 대로 회사 쪽에 자료도 주고, 법도 알려 주었더니 그만두라는 말이 쏙 들어갔네요.”
 
“육아휴직 갔다 왔더니 원래하던 사무직 업무를 안주고 영업장에 나가라 했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상담실 도움으로 다시 원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모든 사례가 위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담실 문을 두드린 여성의 의지, 그리고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활동가, 자문노무사와 변호사의 지원으로 현실을 바꾸어낸 사례 또한 상당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손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기본적인 권리찾기 조차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여성들의 권리의식은 계속 높아가고 있기에 다시 변화를 꿈꾸어 보기도 한다.
 
비정규직 모성보호장치 마련 시급해
 
고용평등상담실의 지난 10년간 상담을 통하여 임신, 출산, 육아권에 있어서 법과 현실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임신, 출산, 육아권은 저출산대책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가정과 사회의 행복한 공동체를 위하여 법으로도, 현실로도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점은, 계약직이나 시간제, 파견직 같은 여성 비정규직의 모성보호 차별을 규제하고, 임신․출산, 육아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재계약거부 금지, 출산휴가시 고용기간 보장 등이 그것이다.
 
또한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예방과 대책을 위한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획기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여성이 겪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는 점, 비정규직 증가로 일자리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 크다. ‘애는 여자가 봐야지’라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장시간 노동에 의해 남성들의 육아 포기는 합리화되어 여성들이 일, 가사, 육아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근본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런 어려움을 딛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육아휴직제도에 대한 대국민 홍보, 제도 이용을 위한 실질적 지원, 육아휴직 급여의 현실화 등의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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