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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병’ 비만, 그 얽히고설킨 이야기
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 (3) 비만과 다이어트①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은지
[편집자주]기획 연재 <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는 여성들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질병 및 증상에 대한 이해와,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체활동의 효과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체육교육과 졸업 후 퍼스널 트레이너와 운동처방사로 일을 한 후, 지금은 연세대학교 체육연구소에서 신체활동이 우리 몸에 미치는 생리학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운동과 스포츠'라는 영역은 아직까지 여성에게는 척박한 곳이라고 생각해 여성들이 편하고 올바르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개척해나가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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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또는 길을 걷다가 하루에 꼭 한 번쯤은 보게 되는 다이어트 광고들. 힘들게 운동하지 않아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이들의 말에 현혹된 사람들은 기대를 갖고 그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살빼기에 지불할까?
국내 다이어트 산업규모는 약 2조원. 한국소비자원에서는 1인당 연평균 다이어트 비용이 약 167만원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얼마 전에는 청소년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만 약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만과 관련된 질환인 당뇨, 암,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의 추정치일 뿐 정신·사회학적 측면까지 고려하게 된다면 훨씬 높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유발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흡연과 더불어 21세기에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학적 문제”라고 경고한 비만. 이제 건강과 외모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비만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
다이어트 강박이 불러오는 ‘정신적 비만’
우리나라 여성의 비만 현상의 특이한 점은 연령별로 비만율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20대 젊은 여성은 10명 중 1.5명 정도만이 비만 체중을 가지고 있고, 오히려 저체중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60대 여성의 거의 절반은 비만으로 나타난다.
이삼십 대 여성들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체중 증가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정상체중이거나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은 무리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 이로 인한 거식증, 폭식증 등의 섭식 장애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2001∼2005년 10개 비만클리닉을 찾은 1만2105명 중 여성 환자는 97.8%인 1만1833명이지만 이들 가운데 32.6%인 3862명이 정상체중이거나 저체중이었다. 이런 현상은 20대에서 더욱 두드러져 20대 여성 환자(5021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57명이 정상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정상체중이거나 오히려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계속 살을 빼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정신적 비만’이라고 한다. 정신적 비만은 심리치료를 받아야하는 질병이다.
▲ 정상체중임에도 계속 살을 빼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신적 비만'으로 고통받는 20대 여성들이 많다. ©일다
얼마 전, 늘 다니던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분이 나에게 자꾸 살이 쪄서 고민이라면서 요새 아침은 굶거나 물을 마시고, 점심에는 밥도 반만 먹고, 저녁은 거의 먹지 않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머리를 자르다 말고 그분의 키와 몸무게로 비만도를 계산해봤는데 거의 저체중에 가까운 정상체중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일하는 다른 분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에게 살 좀 빼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런 말을 계속 듣다보니 정말 자신이 비만이라고 생각해서 건강을 해칠 정도의 다이어트를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섭식장애환자 중 대부분은 여성이고,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물론 비만은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체중의 부하로 인한 요통, 관절통을 유발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비만은 불임, 월경불순, 생리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신체건강학적 측면에서 본 비만의 정의
그렇다면 어떤 상태를 신체건강학적 측면에서 비만이라 정의하는가?
비만은 신체에 과도한 지방이 축적된 상태를 의미한다. 여자는 체지방이 체중의 30%, 남자는 체중의 25% 이상일 때, 임상적으로는 체질량지수인 BMI(kg/m², 몸무게를 키로 나눈 것)가 25이상이면 비만이라고 진단한다. 30 이상이면 고도비만, 40 이상이면 초고도비만으로 판정된다. 여기서 과체중과 비만을 나누는 기준점은 건강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체지방이 얼마만큼 많으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가와 사망률에 대한 통계자료에 기초하여 산출되어 왔다. 역학 자료에 의하면 체질량지수(BMI)가 25가 넘어가면 질병 이환율과 사망률이 증가하고 30이 넘을 경우 현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체질량지수(BMI)는 신장과 체중만 알면 비교적 쉽게 비만도를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신장에 대한 영향을 적게 받으면서 체지방을 잘 반영해주는 면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체질량지수(BMI)는 전체 비만도를 잘못 나타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역도의 장미란 선수의 경우 보통 사람보다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남들보다 체지방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체질량지수(BMI)만 보면 고도비만으로 판정될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비만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체질량지수(BMI)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인바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생체전기저항 분석법, 허리둘레(복부비만) 등 다른 방법들을 통해 얻은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2008년 건강검진 자료 분석에 따르면 국내 고도비만인은 45만 명, 초고도비만인 2만 3500명이 있다고 보고됐다. 그런데 초고도비만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이 비만을 부르고, 비만이 가난을 부른다.
비만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관점은 건강 불평등(Health inequality) 이론이다. 이것은 사회계층이 개인의 체중과 관련이 있다는 관점이다. 즉, 비만은 개인의 특성보다는 지역 상황이나 결혼, 소득수준 등 사회 인구학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위 계층의 사람보다 체중조절에 실패하는 사례가 더 높다. 삶이 무거우면 몸도 무거워지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통계자료는 소득수준과 비만율이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계층(minority)일수록 비만율이 높아짐을 보여준다. 백인보다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만율이 훨씬 높은 것이 그 증거이다.
저소득층은 경제적인 면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체중관리에 실패하면서 계속 살이 찌기 시작하는 상태가 되면 그 상태를 탈출하기 위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만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또 비만한 사람은 정상체중인 사람에 비해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한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BMI)가 높은 사람의 의료비 지출이 체질량지수가 낮은 사람에 비하여 52%가 높다고 한다.
즉 저소득층일수록 비만에 걸리기 쉽고, 또 그로인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서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편 현재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비만한 사람은 앞으로 가난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경우 비만한 여성의 평균 임금은 정상체중인 여성의 임금보다 2.3~6.2%가 낮다고 조사됐다. 게다가 체질량지수(BMI)가 35 이상인 고도비만인 사람의 40%가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이 있으며 60%는 취업과 승진 때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한다. 고도비만인 여성은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면서 비만을 치료할 가능성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저소득층 여성 4명 중 1명은 비만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차별의 결과로 나타난 ‘비만’ 치료에 사회적 개입 필요해
이렇듯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나태함이나 식습관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계급과 성, 외모, 나이 등 다양한 차별에 대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비만 치료는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맡겨둘 수만은 없다. 실질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차원의 적극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한 문제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과 유럽지역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비만유병률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는 이미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에서는 유럽연합(EU)와 더불어 일련의 비만 정책을 마련하고 회원국의 실행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성인은 물론 노인과 어린이 비만 예방과 관련하여 많은 주에서 건강한 식사와 신체활동을 장려하는 각종 입법 활동을 추진, 제정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에서도 국가차원의 비만정책을 수립하고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비만관련 정책의 공통점은 세금 면제, 보조금 지원, 가격 정책 등 사회경제적 정책과 학교 급식 변화, 건강한 요리기술 훈련, 신체활동 장려, 아동 기호식품 광고규제, 근로자 건강 증진 프로그램, 운동시설 확충 및 여가활동 증진 등의 환경적, 교육적 정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비만관련 업무는 여러 부처와 산하기관 및 지자체 여러 부서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으며 이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와 협력관계는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부처가 일관성 있는 정책과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고, 각 부처 간 역할 분담이 명확히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잇살은 어쩔 수 없다?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우리나라 여성의 비만 현상은 젊은 층과 노년층, 각각에 맞는 비만 관리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젊은 층 여성에게는 저체중과 섭식 장애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면서 적정 체중을 유지하도록 하고, 노년층에게는 나이가 듦에 따라 체중이 증가하고 비만이 된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노년의 삶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는 “나잇살이니 어쩔 수 없다”거나 “다 늙어서 무슨…….”이라는 식의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의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오래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보행의 자유를 누리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노년기에 활동적인 생활습관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저소득층에 속한 사람들이 건강한 식재료를 선택하고,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영양상태가 취약한 저소득층이 현재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운동시설 확충은 기본이고, 식품과 영양에 관한 교육 및 홍보, 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영양검증도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근로자들의 고용환경도 근로자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사업자는 근로자들의 비만을 예방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몇몇 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아침·점심 체조도 좋은 예이다. 정기적으로 신체활동과 영양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건강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체중을 가진 근로자가 건강 체중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운동 시간과 비용을 기업에서 할애해주는 예도 있다.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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