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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장애 안의 장애 넘는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탄생 
 
<필자 김수미님은 질라라비장애인야간학교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닭의 퇴화과정에 대해 알고계신가요? 닭은 원래 자유롭게 산과 들을 누비던 ‘질라라비’라는 새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질라라비는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되었고 시간이 점차 지나며 날개의 기능을 잃어가고 인간에게 순응하는 새로 퇴화하였다고 하지요. 어쩌면 장애인의 삶은 앞서 말한 닭의 삶과 유사할지도 모릅니다. 

2010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에서 공연 중인 혜정씨(가운데)

대구에 하나밖에 없는 장애인 야학인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은 학교 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입니다. 교육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의 교육지원 및 사회참여활동지원을 통해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단체입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기준에 의해 장애인으로 구분되기 시작했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쟁과 효율중심의 사회에서 배제된 채, 시설과 집으로 고립된 삶을 강요받아왔지요. 때문에 장애인의 46.2%가 초등학교 졸업이하의 학력을 지닌 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장애인 안의 장애인’ 여겨졌던 발달장애인 학생회장의 탄생

장애운동이 대중운동으로서의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이 만나고 교류하고 자신의 삶을 토로할 수 있었던 장애인 야학이라는 대중적 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야학을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합니다. 지켜보는 활동가의 입장에서도 결코 편치 않은 상황들의 연속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두려움과도 싸워야 하고 가족의 반대도 무릅써야 하고 주변의 시선 또한 감내해야 합니다.
 
질라라비 야학의 학생 분들은 공간도, 공부를 가르쳐 줄 선생님도, 하교지원을 해줄 차도 없이 열악했던 물리적 환경들을 스스로 바꾸어내었습니다. 교육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교육 서비스가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애해방의 또 다른 꿈을 자유롭게 그려볼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 질라라비 장애인야학의 학생 하나하나 모두 장애인 운동의 귀한 밑거름이 되는 활동가들입니다. 그러나 장애라는 것들로 먼저 대변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야학 공동체 안에서도 미묘한 권력구조가 존재하고 있답니다. 이는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인’으로 치부되곤 했던 발달장애 영역의 학생들을 통해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를 다니고도 열악한 장애인 노동 현실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 성인 발달장애인 분들이 부쩍 야학에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 통합교육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비장애와 장애의 통합도 제대로 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 흐름을 뛰어넘어 장애 영역 간 통합에 대한 고민들을 요구받았던 질라라비야학에 최초의 지적장애 학생회장이 탄생했습니다.
 
‘발달장애인’ 출마선언에 야학에서도 당황하고 만류했지만…
 

대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최초의 발달장애인 학생회장이 된 혜정씨(오른쪽)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은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지체장애인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간혹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이 함께 공부하긴 했지만 대다수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경우가 많았지요. 지체장애 중심의 분위기에서 지적장애 학생들이 밀리는 미묘한 분위기는, 수적으로도 지적장애 학생들이 열세이기도 했지만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우리 공동체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장애운동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장애인 야학 공간에서 조차 지적장애 학생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야학에 많아지게 되면서 ‘사람’ 그 자체보다도 그 사람의 ‘장애’가 먼저 들어왔던 건 학생의 ‘자기결정’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애운동 영역 안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인권 문제가 대두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발달장애 영역에 대한 고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야학은 한동안 많이 우왕좌왕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연히 올해도 지체장애 학생 분 중에 학생회장이 나올 거라고 다들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혜정씨 출마 선언에 대한 반응들은 처음엔 ‘당황스러움’ 이었습니다. 심지어 혜정씨를 말리는 몇몇 분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혜정씨는 자신이 학생회장이 되면 한글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생들을 도와주겠다는 공약을 밝혔습니다. 만류하던 학생들까지도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혜정씨는 학생회장이 되어서 가장 먼저 야학의 시간표를 만들어 교실마다 붙였습니다. 물론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만든 혜정씨만의 시간표였죠.
 
혜정씨에게 국어는 한글공부 하는 시간, 수학은 열손가락으로 셈하는 시간, 영어는 꼬부랑말 배우는 시간, 역사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직 과학과 사회 과목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건지 긴가민가 한가봅니다. 그래도 참 열심히도 하더군요. 수학의 ‘학’자와 과학의 ‘학’자가 왜 같은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글자를 통으로 달달 외워서 만든 시간표는 한 학기 내내 교실 한편에 잘 붙어있습니다.
 
깜깜한 굴을 지나는 게 무서웠던 첫 등교
 
처음 야학에 오던 날, 혜정씨는 혼자서 지하철을 타는 걸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버스는 창문으로 바깥을 볼 수 있는데 지하철은 깜깜한 굴을 지나와야 했던 게 무서웠던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혜정씨는 집 근처에 살고 있는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아서 야학에 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통학하기를 한 달여. 함께 통학을 했던 학생이 야학을 잠시 쉬게 되면서 혜정씨의 등하교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야학이 마치고 난 시간은 저녁 9시 20분 정도. 야학이 끝난 뒤 밤늦게 귀가 하는 문제 때문에 입학을 망설였던 어머니를 겨우겨우 설득해서 야학에 나오게 됐는데 어머니의 마음이 또 다시 흔들리게 된 겁니다.
 
지적장애여성이기에 잠재적인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혜정씨의 곁에서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의 피로감은 이미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사회성이 좋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혜정씨는 더더욱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야학 학생들끼리 당번이 정해졌습니다. 혜정씨가 지하철을 혼자 무사히 탈 때 까지 당번을 정해 데려다주는 거죠. 지금은 어떠냐고요? 정말 놀랍게도 혜정씨 혼자서도 씩씩하게 지하철타고 야학을 잘 다닌답니다. 학생회장이 되고나서는 차량봉사자들이 다른 학생들을 하교시키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집에 갈 정도입니다. 처음 야학에 올 때 혼자서는 무서워 지하철도 못 탔던 학생회장님. 한 번씩 길을 잃고 울고 있는 걸 찾으러 뛰쳐나가야 했던 학생회장님. 아직도 지하철 환승은 어려워하지만 이것만 배우면 대구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을 거예요.
 
신명과 웃음으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사람

신명 많고 웃음 많은 혜정씨는 작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농성장에서도 스타였습니다. 전경들과 대치하던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발랄하게 트로트 곡을 멋지게 한 곡 뽑아주신 혜정씨. 마침 장애인 주거권에 관련된 요구안을 가지고 농성을 하던 차에 혜정씨의 선곡은 다름 아닌 ‘아파트’였습니다. 팽팽했던 긴장감들이 한순간에 모두 무장해제 되어버린 순간! 다들 빵 터져버렸죠. 급박했던 상황을 한 순간에 시트콤으로 바꿔버리는 무서운 힘. 우리 혜정씨 최고입니다.
 
특이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는 학생회장님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웃음소리는 들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한 번 귀에 꽂히면 쉽사리 잊혀 지지 않는 웃음소리거든요. 멀리 전방 몇 십 미터 밖에서도 들리는 회장님 웃음소리. 이런 회장님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 함께 갈 땐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꼭 있습니다. 우리 회장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순간에도 당당합니다. 하지만 주변을 밝게 만드는 묘한 힘 때문에 회장님 웃음소리가 야학이 울려 퍼지면 웃음 바이러스가 어느새 전파돼 버린답니다.
 
혜정씨의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이러한 경험들만으로도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같은 것들이 솟구칠 때가 있답니다. 웃을 일이라곤 없는 일상 속에서 일부러 웃기 위해선 개그 프로그램이라도 찾아야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이렇게 무장해제 된 채 맘껏 웃어 본 경험이 손에 꼽을 만큼이신 분들, 그런 분들을 야학에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 학생회장님은 잘생긴 연하남을 특히 좋아합니다. 자신의 실제 나이는 32살 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23살로 바꿔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열 손가락을 넘어가는 수 개념에는 아직 약한 회장님이시지만 이럴 때는 좀 헷갈립니다. 정말 몰라서 23살이라고 하는 건지 아주 계획적으로 의도된 것인지, 저도 가끔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왜 000선생님은 ‘선생님’인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요. 회장님이 좋아하는 000선생님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심기일전해서 다시 열심히 작업을 하더군요. 하지만 그 방법은 가히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늘지 않았던 한글실력이 000선생님께 문자를 쓰기 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는 잘 보여주지 않았던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더군요.
 
저는 회장님의 나날이 느는 한글실력에 뿌듯해졌지만, 문자 폭탄을 맞으셨던 000선생님은 결국 답장 보내는 것을 포기했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들조차도 서로 재고 계산하고 의도된 연애 각본에 맞춰 연출해야 하는 요즘, 회장님의 방법은 때론 저돌적일지 몰라도 너무 솔직해 한 번씩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랑을 몸소 받으셨던 당사자이신 000선생님은 조금 견해가 다른 것 같긴 하지만요.
 
“우리는 함께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애정표현은 꼭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때 그 때 다르거든요. 성공률을 높이기까지의 디테일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단계이긴 한 것 같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분들을 야학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또 다른 고민들을 학생회장님께서 요즘 막 물어다 주십니다. 000선생님이 학생회장님의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마다 혜정씨는 제게 꼭 전화를 겁니다. 왜 000선생님이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거냐고요. 상대의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는 야학의 활동가는 학생회장님의 전화번호를 스팸으로 돌릴 수가 없어서 하루하루 늙어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성장해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야학의 학생들은 이런 시행착오조차도 겪을 기회를 주지 않았던 보호와 시혜 속에서 오랜 시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장통이 조금 늦게 찾아옵니다. 통과의례라고는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겁니다. 그 아픔들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자양분이라는 걸 학생회장님도 언젠가는 깨달을 날이 오겠죠.
 
세상 모든 차별철폐를 지향하는 질라라비 장애인야학은 이 공간에서부터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이 살아가는 대안적 사회를 꿈꿉니다. 모든 이들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대안적 공간을 꿈꿉니다. 하나의 다양성이 용납받기까지 우리 안에 존재했던 편견들을 깨트려 나가는 작업들이 때론 아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한계를 인정해버리고 나니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네요. 야학에 혜정씩 같은 학생회장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공동체의 건강함과 자기정화 능력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 뿌듯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혜정씨가 진정으로 야학의 학생회장으로서의 역할들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받쳐주는 주변의 도움입니다. 혜정씨를 학생회장으로 세우는 과정들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이제 임기의 절반 정도를 지나왔을 뿐이거든요. 그리고 내년에 연임도 가능하구요. 조금씩 자리를 잡기까지의 시행착오들을 함께 감당해 줄 질라라비야학의 학생들이 있기에 지금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질라라비야학 학생회장님의 활약을 여러 분들도 함께 기대해 주실 거죠?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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