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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과정서 성폭력 피해자 인권침해 금해야
[이 주의 일다 논평] 성폭행 피해 증언 후 자살한 조선족 여성 外 
 
성폭행 피해자로 인정 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한가?
 
지난 10일, 성폭행 피해자로 법원에 출석했던 한 조선족 여성(29세)이 판사의 심문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껴 자살했다. 유서에는, 판사가 자신이 중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 것을 폄하하며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그녀는 자기가 죽어야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 같다며, 유족에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대응을 부탁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우리 법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권과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재판과정에서 보통 범죄사건은 ‘가해자’의 행위와 동기에 주로 초점을 두는 반면,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정황에 초점을 맞춘다. 왜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는지, 먼저 유혹한 것이 아닌지 등을 물으며 이른바 ‘피해자유발론’에 근거한 심문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성폭력 사건과는 관련도 없는 피해자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심지어 성관계 여부와 과거의 행실까지 거론된다. 때문에 많은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재판과정에서 과연 누가 범죄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까지 몰리곤 한다. 성폭행 피해자로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그녀는 어느새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가? “노래방을 다니는 사람이면 강간을 당했어도 유혹한 게 되는가” 묻는 피해자의 유서에 대해, 우리 법원은 책임 있는 자세로 답해야 할 것이다.
 
“묻지마 살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지난 6월 2일 주택가에서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 이 사건에 붙인 수식어는 “묻지마 살인”이다. 이와 비슷한 살인사건에 대해 마치 고유명사라도 되듯 ‘묻지마’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가해자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대부분 “화가 나서” 라고 보도된다.
 
과연 “묻지마 살인”이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 이러한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일 뿐이지, 그 행위의 동기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불특정인에게 가하는 범죄의 배경에는 특정 대상 혹은 집단에 대한 ‘증오’가 깔려있다.
 
사실상 “묻지마 살인”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건들이 ‘증오범죄’에 해당한다. 여성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여성을 살해하거나, 특정 학교의 학생을 증오하여 그 학교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등의 범죄행위 말이다. 특히 ‘증오범죄’는 여성과 아이, 노인, 외국인, 노숙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행 범죄의 가해자를 “발바리”라고 칭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본질마저 왜곡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묻지마 쇼핑’, ‘묻지마 관광’ 등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증오범죄’에 붙여 넣는 것은, 살인을 가볍게 취급하는 일임과 동시에 범행의 타깃이 되는 피해집단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묵과해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 [일다 논평]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 박희정(편집장) 조이여울(기자) 정안나(편집위원) 서영미(독자위원) 박김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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