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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핵발전소가 황폐화시킨 지역주민들의 삶
부산 지역 반핵운동가가 전하는 원자력의 진실(하) 
 
[필자 정수희씨는 ‘에너지정의행동’(energyjustice.kr) 부산지역 활동가입니다. 2004년부터 고리 핵발전소 문제를 제기해 온 정수희씨로부터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갈등과 피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들어봅니다.]

▲ 우리나라 각 지역별 전력소비량. 전기 사용량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자료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2009년 재구성.     

핵발전소는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큰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 들어섭니다. 우리나라 모든 핵발전소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습니다. 전체 전력사용량의 31%를 만들어내는 고리와 월성, 울진, 영광 핵발전소는 작은 어촌마을들 안에 있습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4년이 되면 우리나라 전력소비량의 48%를 이 네 곳의 마을에서 생산할 계획입니다.
 
이제야 조금씩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핵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문제는 고스란히 이 동네 주민들의 몫이었습니다.
 
발전소 건설로 인해 찢기고 사라진 어촌마을들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받는 고통은 공동체적인 면과 환경, 생활, 그리고 건강 면에 걸쳐 겹겹이 쌓여있습니다.
 
핵발전소가 건설되면 지역공동체가 굉장한 소용돌이와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우선 마을 전체가 이주를 해야 합니다. 고리의 경우, 고리마을 전체가 두 개 집단으로 나눠져 이웃 마을로 이주했습니다. 어업을 중심으로 강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어촌마을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마을의 전체 이주는 이주한 주민의 입장에서나 이주를 받아들인 마을의 입장에서나 아주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주민들 간 갈등이 생기는 일은 다반사이지요.
 
핵발전소 건설 입지를 추가로 선정하는 일이 곤란해지자, 정부는 주로 기존 핵발전소에 추가로 건설하는 방법으로 핵에너지 확대정책을 강행해왔습니다. 발전소와 이웃한 마을들은 계속해서 발전소 부지로 편입되면서, 마을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실제로 신고리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고리 주변의 마을들이 2000년 이후 다시 집단 이주를 통해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결정되면서 또 다시 집단 이주가 추진 중입니다.
 
1970년대 초에 고리마을을 떠나 신리마을로 이주를 한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로 인해 두 번째 이주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신리마을은 신고리 건설로 인해 마을의 2/3가 잘려 나갔는데, 이번에 신고리 5,6호기로 인해 남은 마을의 절반이 또다시 발전소 부지로 편입되었습니다. 여기에 고리 이주민이 또 다시 포함된 것입니다.
 
자그마한 포구를 가지고 어업과 배 농사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이 마을은 이제 바다도 빼앗기고, 과수원 땅도 빼앗겨 더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전체 집단이주를 희망하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자신들이 필요한 정도의 땅만 매입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분란으로 지역주민들 피로와 무력감 쌓여

▲ 2005년 1월 7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연대해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해상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 녹색연합
 
마을공동체가 겪는 고통은 이뿐만 아닙니다. 이미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정부와 한수원의 원자력 관련 계획이 세워질 때마다 온갖 분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1994년에는 정부가 고리핵발전소가 있는 장안읍 일대에 핵폐기장을 짓는다 하여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갈리고, 반핵운동이 격렬히 일어났습니다.
 
핵폐기장을 유치했으면 하는 주민들은, 이미 발전소 건설로 인해 지역이 너무 소외되었기 때문에 폐기장이 들어오면 혹시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한 주민들은 지역에 핵산업 시설이 집중되면 더욱 고립되고 낙후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리지역의 경우, 발전소 건설이 추진된 1970년대 초부터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지역 개발을 제한했습니다. 발전소 주변 8Km지역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고리발전소가 있는 장안읍은 전체 면적의 100%, 서생면은 96%에 해당합니다.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기장읍, 서생면 전체의 88%가 그린벨트로 설정됐습니다. 주민들은 개발 제한 문제로 오랜 싸움을 거쳤고, 1998년에 와서 이 지역의 그린벨트 해제가 추진되었습니다.
 
발전소 건설로 인한 생활의 고통은 핵시설 유치가 추진될 때마다 주민들 간 커다란 내분과 갈등을 유발했고, 이는 신고리 발전소가 계획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0년 이후부터 핵산업계와 발전소는 지역지원금 형식으로 그간의 지역낙후와 고통을 보상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역 군수가 이 지역지원금을 근거로 발전소 유치를 희망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핵발전소를 반대하며 운동을 벌였고, 이 싸움은 정부와 한수원, 군수를 대상으로 6년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이처럼 발전소로 인한 지역공동체의 분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 어촌마을 주민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입니다. 주민들 간의 갈등은 서로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아무리 저항해도 꿈쩍 않는 정부를 대상으로 한 싸움은 지역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핵발전소 반대를 위한 싸움을 하자는 말을 다시 꺼내기 힘들 정도로, 신뢰도 많이 무너지고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한번 싸움을 준비할 때마다 여간 신중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반드시 싸워야 할 때는 기필코 싸운다’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의 모델이었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 사상 초유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의 모델이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고리1호기에 이은 4호기의 사고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일어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후쿠시마 1호기가 고리1호기 수명연장의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한수원이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을 추진하면서, 선진국 선례를 보여준다며 지역주민들을 데리고 일본을 방문한 곳이 바로 후쿠시마였습니다.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소장은 고리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 역시 이 발전소에서 일한다며 자기소개를 하였답니다. 그의 말에 고리 주민들은 상당한 신뢰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발전소 안전은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발전소가 노후하지 않았다면, 그 지역에 그렇게 많은 발전소가 밀집해있지 않았다면, 지진에 의한 피해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이곳 주민들은 고리1호기 폐쇄와 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철회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마을 이장님들이 발전소 문제로 주민들을 만나고 있던 차에, 고리1호기와 4호기의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주민들에게는 실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고리1호기의 경우는 수명연장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사고였고, 그 원인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인근 지역주민들이 이제 들고 일어나겠구나!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역 분위기는 얼음같이 차갑게 굳어버렸습니다. 어떤 신문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고리1호기 수명연장 합의를 대가로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는 추측을 했습니다. 또 다른 언론에서는 지역지원금을 다른 지역과 나눠가져야 할까 봐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주민들의 동정을 궁금해했습니다. 특히 언론이!
 
발전소 지역의 경제난과 ‘지역지원금’의 실체
 
지역주민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언론의 호기심과 대중의 반응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때는 굉장히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존재지만, 어떤 때는 매우 폭력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핵발전소 지역은 발전소 문제가 이슈가 될 때마다 지역경제가 한 번씩 휘청거립니다. 특히 발전소 건설로 인해 어부와 농부였던 사람들이 발전소 직원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자영업자로 변신(?)하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길 때마다 발전소 직원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 부정적 영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발전소 직원들은 갈등이 빚어진 상황에서 마을주민들과 마주치기는 것이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발길을 끊습니다. 관광객들은 이 지역이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에 발길을 끊습니다.
 
실제로 올 3월과 4월에 고리를 방문했을 때, 낚시하는 사람이나 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방파제 근처에는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근처 횟집에도 손님들을 항상 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마을 전체가 유령마을이라도 된 듯 썰렁하게 바람만 불고 있었습니다.
 
발전소 주변지역이 지역지원금을 받아서 살기가 괜찮지 않느냐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이 지원금을 받아 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한 달에 만원 약간 넘는 정도에서 전기요금을 감면 받고, 아이들이 있는 집은 아이들 대상으로 장학금이 지급되기는 하지만 주민들에게 직접 생활비가 지원되는 건 아닙니다.
 
사회간접시설이나 복지시설 등에 지원금이 주로 쓰이는데, 방파제와 도로, 마을회관과 복지회관 등이 그 예입니다. 발전소 지역들이 다른 농촌이나 어촌마을과는 달리 10대에서부터 70대까지 인구 비율이 거의 1:1:1:1의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는 발전소 노동자들의 가족이 인근에 함께 사는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들 직원들을 제외하면 장년층의 인구 비율이 높다고 볼 수 있는데, 고리에서 가장 크고 훌륭하게 지어진 시설은 수영장과 축구장이 딸린 고리스포츠센터입니다. 고리에 오면 쓰러져 가는 작은 집들과 좁은 2차선 도로 바깥에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스포츠센터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광경에 매우 당혹스러워합니다. 마을주민들이 사는 풍경과 너무 비교되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불평등하게 부담된다 
 
어쨌든 후쿠시마에 이어 고리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주민들은 많은 언론에 시달렸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압력에도 시달렸습니다. 지역주민들은 좀더 신중해지길 원했습니다. 발전소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로 달해있고, 언론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지역의 문제와 발전소 문제를 신중히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행동을 미루기로 했습니다.
 
고리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를 준비할 때, 주민들의 입장은 매운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불안을 매우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집회를 고리에서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날 집회는 마을의 큰 공터에서 하기로 되어있었고,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발전소 앞까지 걷는 행사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하기는커녕 주민들과 싸움이 날 수도 있는 형국이어서 우리는 매우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말해주는 것은 ‘핵발전소의 위험은 불평등하게 부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저렴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 발전소 주변 지역주민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위협과 고통을 경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환경정의’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핵발전소 가동을 통해 얻는 편익은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향유하지만, 피해의 부담은 발전소 지역주민들이 부당하게 부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핵발전소 문제에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 있지만, 공평하게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역주민들이 경험하는 위험과 위협에 대해 우리 모두가 실질적으로 공유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핵에 관한 당사자주의는 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발전소 주변 지역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핵발전소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핵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정수희)

*일다 녹색연합 동일본지진피해여성지원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잘 가라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만들자 자연에너지재단”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청정에너지’, ‘필요악’이라는 거짓된 원자력신화에서 벗어나, 재생가능한 자연에너지로 시스템을 전환하도록 촉구해갈 것입니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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