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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5) 
 
나는 서울로 외출할 때마다 멋을 부리거나 평소보다 좀 더 외모에 신경을 쓴다. 그것은 몇 달 전 아이의 새엄마를 통해 아이가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뒤부터였다.
 
손녀의 대입여부가 궁금하셨던 어머니는 아이의 새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 했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그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어요” 하더란다. 이어서 어머니는 어느 대학이냐고 물으셨는데, “찾아올까봐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다”고 그녀가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더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손녀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흡족해 하셨다. 어머니는 손녀의 새엄마에게 “찾아가긴 누가 찾아가?”라고 말했다고 하셨다.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난 “엄마가 정말 안 찾아갈까?”했더니, 어머니는 “찾아가지!”라며, 귀엽게 대답하셨다.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새엄마가 생모나 외할머니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울에 어떻게 유학 보낼 결심을 했을지 의아스러웠지만, 딸의 장래를 위해 큰 결심을 했구나하면서 내심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그런 줄로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 서울 도심을 다니다가 딸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맛난 것도 사주어야겠다고 늘 마음먹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 안 되는 딸과의 중요한 만남은 상상할 수 없는 우연스러운 상황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긍정적인 기대로 나는 충만해 있었다. 이건 기대라기보다 차라리 기도에 가깝지만, 늘 그렇게 믿으며 서울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딸이 서울이 아닌 지방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 집에서도 통학 불가능한 지방 대학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딸의 새엄마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딸을 14년 만에 만났을 때도 전남편은 아이에게 ‘아빠는 대학에 입학한 다음에 생모를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빠가 허락한 일이니 마음 편하게 친엄마를 만나는 결정을 내렸더랬다. 그러나 며칠 뒤, 나를 만나기 싫다는 편지를 보내왔고 내가 자기를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 딸을 만나는 데 그녀의 새엄마가 문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바보스럽게도 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모자랐다.   © 일다

 
그녀가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꿨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어머니께서 찾아가 그녀의 새엄마를 만난 뒤에야 어쩌면 딸이 결심을 바꾸는 데 새엄마의 영향이 작용했을 것 같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새엄마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얘는 제 딸이에요! 그렇게 아이를 버리고 나가놓고, 이제 와서 왜 찾으세요?”하더란다. 그리고 내가 딸과 만났을 때, 아이를 빼앗길까봐 아주 고심을 했고, 그 후에도 내가 나타나 딸을 데려 갈까봐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딸과 약속을 했고 딸이 그 약속을 잘 지켜주고 있어,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까지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그녀가 딸과 무슨 약속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그녀의 새엄마에게 뭔가 단단히 다짐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이혼할 당시에도 긴 세월을 빠져나오면서도, 딸을 만나는 데 그녀의 새엄마가 문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바보스럽게도 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모자랐다. 난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를 항상 순진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딸과 떨어져 살아도 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을 때는 아이가 아빠와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유였다. 다행히 전남편은 딸을 너무 사랑했다. 그는 아이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아이도 아빠를 너무 좋아했다. 나는 아이와 아빠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지난 뒤의 상황은 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를 통해 들은 몇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아도, 아빠보다 새엄마와 더 친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새엄마를 통해 아빠에게 전달되고, 또 아빠의 의견도 새엄마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딸이 자기를 낳아준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도, 아이의 마음을 달래준 사람도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 바로 새엄마였다고 한다.
 
이혼할 때, 누군가 나의 이런 미래를 보여주었더라도 내가 아이를 안 키우겠다고 결정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난 절대로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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