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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6) 낳은 엄마, 기른 엄마 ② 
 
내가 딸의 새엄마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우리 부부의 이혼 판결이 나기 무섭게 그녀는 전남편과 아이,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방을 싸가지고 왔더란 이야기를 시어머니로부터 들었을 때도 난 시큰둥해 했다. 더욱이 우리가 이혼할 거란 소문이 나자, 자기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며, 자기가 죽어야 한다고 울고불고 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을 때도 난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항상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동거를 시작한 그들은 몇 달 후 결혼식을 올렸다. 사람들은 이따금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난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쓰러진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보살폈다는 것도,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그녀가 시어머니 때문에 피아노도 못치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남편과 밤늦도록 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전해 듣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답답한 소식들뿐이다.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난 ‘그녀가 내 불행한 삶을 가져갔구나!’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더더욱 그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겪어야 했을 불행이라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이혼하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 그녀가 몇 년 전 나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옆에 있는 딸을 가리키며 “얘는 제 딸이에요! 전 이 집에 이 아이를 키우러 들어왔어요. 시어머님 때문에 몇 번이고 살기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이 아이 때문에 살았어요!”라고 말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한 번은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시어머니도 전남편도 그녀에게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그녀는 딸을 꼭 껴안고 집을 나섰단다. 그녀는 ‘애는 놓고 가라’고 막아 세우는 전남편을 뿌리치면서 면도칼로 자기 손등을 그으며 “얘는 내 딸이다!”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어머니에게, 자기가 낳은 아이들보다 딸을 얼마나 더 배려하고 위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아직 어린 딸은 새엄마의 이런 행동을 깊은 사랑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딸이 중 2때 출생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 새엄마를 친엄마로 알고 살았다니, 그녀가 딸을 얼마나 사랑으로 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새엄마와 이복형제들 속에서 자칫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딸이 사랑을 받으며 티없이 자란 건 아이의 복이자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딸에 대한 애정이 이상한 집착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딸에게 이토록 매달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아이와 떼어놓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딸이 다니는 대학을 속이면서까지 아이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니, 내가 그 감정을 알 턱이 없다. 그저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모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쩜 ‘모성’이라는 건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집착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새엄마의 입장이 어떤 건지 생각해보려 애쓰다 보니, 딸이 내게 만나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보낸 것도, 특히 아빠보다도 새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강조하면서 새엄마를 배신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결국, 그녀는 내 인생의 불행만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도 가져갔다. 그래!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불행만 가져갔다면, 얼마나 불공평한가? 불행을 가져갔다면, 행복도 가져가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딸이 나보다 그녀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딸을 키우지 않은 사람으로서 아이와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딸과 내가 만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딸 앞에서 어줍지 않은 엄마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새엄마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녀가 다 키워놓은 아이를 데려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머니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낳은 엄마도, 기른 엄마도 모두 엄마야! 넌 엄마가 둘이라고 생각해라.” 이 말처럼, 나는 다만 그녀도 나도 딸과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나누며 살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아이를 기르지도 않은 엄마의 지나친 바람일까.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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