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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난 속 경제주체가 된 북한여성의 삶
 배급체제 무너진 북한, 여성에게 과도한 짐

[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북한사회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식량난으로 인해 국경을 넘는 북한여성들의 모습은 국제사회에서 낯선 주제가 아니다. 또, 북한여성들이 중국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중국남성들에게 사고 팔리는 형태로 결혼을 하거나,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량난 속에서 뚜렷하게 포착되는 탈북여성들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까지 북한여성들의 삶의 모습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최근,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북한여성들의 삶을 집중 조명해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북한의 성매매, 성 상납 실태 매우 심각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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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벗들 <2007년 북한인권 보고서> 중에서
10일, ‘식량 위기와 북한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화여성학포럼은 여성들의 인권을 중심에 놓고 북한 사회와 북한여성들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는 그 동안 ‘좋은벗들’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해왔던 노옥재(현 평화재단 연구실장)씨가 맡았다.

 
노옥재 실장은 1997년 북한 식량난이 알려진 후부터 줄곧 대북지원사업을 진행해온 ‘좋은벗들’의 활동과 조사작업을 통해 얻은 자료들, 주간으로 발행되는 <오늘의 북한소식>에서 보도한 뉴스들에 근거하여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분석했다.

 
노옥재씨는 북한의 식량난이 계속되는 상황으로 인해 북한여성들의 인권실태가 “임신과 출산 등 모성보호와 성 상납, 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성적 거래에 관련해서는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과거에 “생존을 위해 개인적으로 성매매하는 형태”에서 현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포주가 생기고, 대규모 전문 성매매 유흥업소가 생기는 등 점차 일상화, 조직화, 대형화” 되었다고 한다.

 
특히 노옥재 실장은 “북한의 성 상납 실태가 매우 심각하다”면서 2007년 죄를 지어 구속된 남편을 꺼내기 위해 뇌물을 줄 돈이 없는 여성이 보위부원들에게 성 상납을 하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꽃제비 여자어린이들까지 성 접대에 일부 동원하는 경우가 있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어린 여성과 관계를 맺어야 재운이나 관운이 붙는다는 속설에, 어린아이를 찾는 간부들이 있기 때문이다. 꽃제비 구제소에서 얼굴 고운 여자어린이들을 골라 목욕시키고 단장시켜 하루 수발을 들게 한다.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먹을 것이나 돈을 좀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나선다. 나이는 15세, 16세이다.” <오늘의 북한 소식> 67호. 2007년 4월 11일자

 
노옥재씨는 실제로 “북한에서 여성의 ‘성’은 돈 외에 가장 큰 뇌물의 형태”로 자리잡았고, 북한 사회에서 성 상납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과거에 개인적인 차원의 뇌물 형태가 현재는 기업인과 공무원이 결탁해 새로운 성매매 서비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사례들도 보고했다.

 
식량난의 만성화는 여성의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지만, 한편으론 북한여성들의 경제참여를 이끌어낸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배급이 끊기자 가족들을 부양하기 여성들이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해 “북한사회에서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 나가기”도 하고, 몸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벌기 때문에 “집에서도 큰소리 칠 수 있다는 여성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가사노동, 생계책임, 국가동원…오롯이 여성들이 떠맡아
 

노옥재 실장은 이러한 변화는 엿보이지만 여전히 “북한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며, 여성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가사노동이나 양육과 돌봄 노동은 여성들이 오롯이 담당하고 있다. 식량난으로 국가의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기업 및 공장들이 문을 닫아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진 가운데,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기 위해 장마당에 가서 장사하는 일도 전적으로 여성들의 몫이다. 거기에다 국가는 청소, 건설현장, 농촌동원 등 ‘가두 인민’ 일로 여성들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일이 많아, 북한여성들은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한다.

 
“총동원 기간, 농촌 지원 나가는 가두 인민반 아주머니들과 학생들은 마소 같이 부린다. 아침 5시부터 농촌에 나가 과제를 못하면 돌아가지 못한다. 동원에 빠지면 방송에 통보하고 회의에서 추궁하여 정 못 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에게서 500원~5만원까지 돈을 받아낸다. 여인들은 국가에서 개인들에게 주는 것 없이 공짜 일만 시켜먹으면서도 권세로 누르고 억압하면서 정작 배급 줄 때는 26호 대상으로 치고 비싸게 팔아준다고 욕한다.” (2006년 6월)

 
이 사례에서 나오는 ‘가두 인민반’으로 동원되는 인원의 99%가 주부들과 여성이라고 한다. 노옥재씨는 현재 북한사회에서 실질적인 가족 생계부양은 여성들이 하고 있지만,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해있고, 여성의 노동력은 저평가되어 있다고 말했다.

 
북한사회에선 이런 상황에 빗대어 “달리는 여맹, 앉아있는 당, 서 있는 사로청”이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식량난 이후 경제력을 상실한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지만, 여성들에 대한 대우는 나아지지 않은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당은 가만히 앉아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호통치면서 시키기만 한다고 ‘앉아있는 당’이라고 하고, 여맹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길 닦기, 마을 청소, 수해 복구 등에까지 동원되며, 낮에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등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는 여맹’이고, 반면 사로청으로 대표되는 남성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 ‘서 있는 사로청’이라고 한다.”

 
북한여성들이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빗대어 만든 이 말의 뜻은, 현재 북한여성들이 처한 삶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2008/10/15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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