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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령의 숲에서 보낸 편지”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북 영덕 한 산골마을로 귀농하여 농사짓고 살아가는 박혜령씨가 ‘대자연 속 일부분의 눈’으로 세상을 향해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개발과 성장, 물질과 성공을 쫓아 내달려가는 한국사회에 ‘보다 나은 길이 있다’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편지”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일다] www.ildaro.com

*필자 소개: 박혜령(43). 산골서 살고자 9년 전 남편과 창수령 독경산 아래에 둥지를 튼 농부로, 규리(딸)와 솜솜이(고양이)라는 두 딸을 두었습니다. 농업이 아닌 농사를 통해 삶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며, 힘겨워하면서도 만족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수리부엉이, 너구리, 수달, 민물가재, 노루, 매, 오소리, 토끼… 수많은 야생동물과 삶터를 공유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취미 삼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혜령의 숲에서 보낸 편지> 4. 생태적 농업을 향한 길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7년째 접어들었다. 땅의 생명력을 보전하고 농업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생태적 농업을 실천한다는 큰 가치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땅의 기운과 냄새가 좋았고, 온 몸이 땀에 젖고 노동에 피곤한 몸이어도 농사에는 그 모든 고단함을 이기는 자연속의 행복이 있다.
 
이제 2월, 농촌은 설이 지나면 그 해 농사준비를 해야 한다. 고추농사는 모종을 준비해야 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정리가 덜 된 밭 정리도 해야 한다. 과수원은 이미 추운 겨울동안 전정 작업을 마쳐가고, 이미 퇴비 살포도 마쳤다. 농사는 그렇게 1년 농사의 시작부터가 한 해를 판가름 지을 만큼 과정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지나간 고단함은 어느새 잊히고 새해 농사에 대한 계획과 기대로 설렌다.
 
평생을 농민으로 사셨던 시아버님을 통해 농사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남편은 농사에 대한 섣부른 희망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농사를 마냥 힘들게만 여기고 배운 것 없어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 ‘천한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자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하는, 즐기는 농부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꿈이 있을 뿐이다.
 
‘농약 없이 농사짓기 참 어려운 일’
 
▲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관행농법은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한다. 우리가 지었던 고추의 농사만 해도 관행농과 유기농은 같은 면적 당 수확량이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우리는 1000평 남짓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 때 경제작물로 버섯농사도 해보았다.
 
먼저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짓기로 했다. 각종 유기농법이나 친환경농법과 관련된 교육도 받았다.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각종 액비와 천연 방제법도 공부했다. 농사는 작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고 실천하여 온전하게 삶과 가치가 하나로 만나는 과정이었고, 크고 작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 속에 있는 자신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일들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농약을 배제한 농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 과정은 일단 자신의 욕심과 싸우는 일이고, 자신도 모르게 몸속 곳곳에 배어있는 세상의 잣대와 가치들을 하나하나 바꾸는 고통의 과정이며, 자연속의 일부분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생태적 농업은 기존의 농업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혁명의 과정인 것이다.
 
한 해 농사를 계획하면서부터 파종을 거쳐 수확할 시기까지 발생될 모든 변수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지나가면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온갖 병균이 내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질병이 창궐하고 농민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서부터 이 곳 저 곳에서 작물에 병의 징후가 드러난다.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면 작물의 뿌리가 흔들려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 장기간 흐리거나 방제시기에 비가와 방제적기를 놓치면 병 발생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과수원은 생각보다 많은 농약과 거름이 필요하고 오랜 농사기술도 필요하다. 이미 대구 근교에서는 사과과수원을 보기 힘들고 많은 과수원이 폐원되었다. 10여 년 전 사과 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수원 지원 사업으로 전국에 보조금과 융자금이 지원되면서 우후죽순으로 과수원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거기다 능금으로 유명하던 군위 등지에는 평균기온상승으로 재배조건이 변화하면서 생육기간중의 병발생률이 늘어나 많은 농가들이 폐작을 하거나 권장량의 몇 배의 농약을 사용했다.
 
군위에서 과수원을 하던 우리는 좀 더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를 지을 곳으로 옮길 것을 결심했다. 그렇게 1년여를 찾아 헤맨 끝에 정착한 곳이 지금 이 곳 창수령 독경산 밑이다.
 
이곳은 내륙이면서도 해양성기후의 영향권으로, 특히 내가 사는 이곳은 해발 300m정도의 준 고랭지여서 여름에 내륙보다 덜 덥고 겨울엔 덜 추운 곳이다. 대도시에서 먼 지역이라 특수작물 등의 대규모 공업적 농가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초기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과수나 특수작물보다 일반 밭작물을 주로 하는 곳이어서 이전의 농촌의 모습과 관습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어서 좋았다.
 
그러나 2003년 봄부터 시작한 이곳에서의 농사도 생각만큼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자립경제를 만들 수 있는 생활을 원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농가 경쟁력 강화? 자립기반만 약화시킨 농업정책
 
지난 10여 년간 이곳 영덕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급격한 노령화현상과 함께 교육 등의 이유로 젊은 층은 지속적으로 도시로 이탈했다. 기후변화와 농산물가격 급락(수입농산물로 인한 주기적 폐해)으로 자립농의 생활기반이 붕괴되면서, 이들은 정부지원금에 의존하는 상업농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에 경기가 악화되면 농가의 줄도산이 이어지거나 매출과 상관없이 가계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나마 젊은 층에 속하는 극히 일부인 40대들은 최근 4~5년 사이 특수작물재배를 위해 대규모 하우스단지를 만들었고, 그 외 대부분도 과수로 작목을 전환한 상태다. 급격한 공업적 농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농촌공동체는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가고 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정성껏 지은 농산물에 대한 보람이나 농사짓는 과정에서 누렸던 공동작업의 기쁨도 사라졌다.
 
농촌의 공동화현상은 농촌경제와 구조의 변화와 함께 농민들을 무한경쟁 속에 내던지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농약과 더 많은 비료를 사용한 끝없는 자연의 수탈에도 이들의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오늘날 농촌의 현실이다. 지난 가을 사과는 10여 년 전과 같은 폭락이 예견되었지만, 다행히 일본 등지로의 수출로 호황을 누렸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일본 사과에 대한 방사능 오염우려로 수출물량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농산물가격 폭락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다.
 
수출물량이 줄거나 풍작이 되어 수요공급의 균형이 조금만 깨져도 바로 가격폭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눈에 보이는 사이클은 농산물시장개방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정부의 대농가 양산과 지원금정책의 무분별한 시행이 그 이유로 지목된다. 이전의 소규모 자립농은 거의 사라지고 대규모의 공업형 농업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농업정책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농가의 경쟁력강화라는 이유로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정책이지만 오히려 농가의 자립기반을 약화시키고 지원금에 대한 의존과 예속을 강화해 결국 농민과 소비자가 모두 정책의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농약·비료 사용 규제와 관리 없는 관행농 실태는?
 

이런 농업전반의 위기 속에서도 적지 않은 농가들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꿈꾸고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도 가능하면 한국의 기후에 적합하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작목을 재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유기농을 고집하고 유기농가로 인증 받으려 하지 않는다. 유기농이 가지는 본래의 가치인 공업화된 약탈식 농업을 지양한다는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상업적 이용행태가 싫었기 때문이다. 유기농은 농업의 지향이고 방향이어야 하며 그것이 절대로 또 다른 이윤 창출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편 유기농의 발전과 정착 못지않게 관행농에 대한 관리와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작물별로 한국의 현실과 기후에 맞는 유기적 농업의 목표와 지향점이 연구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현 실태에 대한 정확한 검토와 관리가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7년 기준으로 월드워치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유기농지는 전 세계 농지의 1%미만이라고 한다. 실제 농약과 화학비료를 이용한 관행농지의 비율이 99%이상이란 말이다. 1%미만의 유기농지 밖에서 관리와 규제를 벗어난 농산물들도 모두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이고 지구상 어딘가에서 경작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관행농에 대한 농약사용에 있어서 안전기준과 비료사용의 규제가 실질적으로 거의 전무한 현실이다.
  
▲ 수확을 쉽게 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 후 수확하는 감자 농가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농가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내년에 감자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감자 농가의 경우 감자를 수확하기 전에 줄기부분을 없애고 수확을 쉽게 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 후 수확한다고 한다. 실제 농민들은 자기 밭에서 난 감자만 먹으며 파는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도시보다 훨씬 낮다. 주위에서 보고 듣는 얘기가 많아서일 것이다. 농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규제나 관리대책이 없으므로 실제로 이런 방식의 농사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농가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작년의 경우 나는 고추 800여 평을 농사지었다. 일반적인 관행농법으로는 1500근 이상을 수확하는 면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년 이 면적에서 700근 정도의 수확을 겨우 해왔다. 작년에는 태풍으로 인한 비가 많아 수확을 거의 기대하기 어려웠다. 50근 정도를 겨우 수확했다. 한두 달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고추를 무농약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년 3~4번의 농약살포를 하고 퇴비를 주로 사용하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늘 동네주민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올해는 농사를 그렇게 지으면 망한다는 잔소리를 대놓고 들어야 했다.
 
실제로 관행농가의 경우 최근 몇 년간에 병이 창궐하면서 농약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횟수가 증가한 것은 물론이며 한 번에 사용하는 약의 종류도 많아지고 농도도 높다. 실제  권장량의 3배정도를 넣고 수확기에는 어제 농약을 치고 오늘 수확하는 일도 흔하다. 적은 땅에서 최대의 수확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고 작년같이 고추 값이 비싼 해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하다.
 
배 과수원을 하는 이웃은 추석 전에 판매하는 배를 절대 사먹지 말라고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먹이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배가 거의 100%이기 때문이란다. 추석 즈음에 배를 수확해 출하하기란 자연 상태에선 좀처럼 힘든 일이라 수확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이다. 출하시기가 일주일 정도 차이에 가격이 5배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포도농원을 하는 사람들은 포도를 가려 사먹으라고 권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봉의 경우 거의 지베렐린(성장호르몬)처리가 된 것이니 가능하면 거봉을 사먹지 말고 포도 알이 작은 것을 사먹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최근에 안 것이지만 대부분의 작물에 대부분의 농가가 성장호르몬을 사용한다고 한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같이 농사짓는 농가들의 이야기이니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농약 사용실태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규제와 교육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 농업의 혜택을 모두가 공유하려면

농민들은 농약의 성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농약 판매처의 권고에 따라 사용하고 있고, 작물에 따라 금지된 농약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농산물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실제 잘 모르고 그저 옆집에서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현재 농업정책은 정부지원금을 누가 얼마나 나누어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이외에는 관심이 없고 정책도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있는 정책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책상머리에서 나온 정책들로 전시행정을 위한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늘 그렇지만 우리는 남들이 만든 허상과 환상에 눈이 멀어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 정부에서 수치화한 친환경 유기농 식품의 시장은 2009년 기준으로 12.2%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 50%정도는 수입 유기농산물이라고 하니 실제 국내의 유기농산물시장의 규모는 5%내외라고 판단되며 이것도 매출금액으로 본 것이므로 전체 생산량과 거래량으로 보면 5%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95%이상의 농산물은 농약사용의 규제도 화학비료의 사용권장과 제한에서도 그 어떤 관리에서도 벗어나 있다. 대부분의 관행농에 의한 농산물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모두 알게 모르게 우리의 밥상에 오를 농산물들이다. 관행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대부분 소비하고 있는 층은 소위 서민들이다.
 
농업의 자본화, 농업의 공업적 대량생산화의 폐해는 고스란히 농산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 문제인 ‘먹거리’의 불평등이다. 대량생산과 공업화된 생산방식의 농업을 지향하고 이로 이한 문제를 방치하는 농업정책 속에서는 모두가 자연을 수탈하는 직간접적인 당사자로 전락하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생기는 보이지 않는 피해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보고 있다.
 
따라서 유기농산물의 관리와 장려 못지않게 관행농을 유기농으로 유도할 실천적 방침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의 실태파악과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내 입에 들어가는 농산물로 문제를 축소해서 보지 않고 농업 전반의 문제 안에서 자신의 문제와 삶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농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무엇보다 그 혜택을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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