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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글쓴이 자야. 프리랜서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든 지 15년. 함부로 대해 온 몸, 마음, 영혼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요가와 명상을 시작한 지 10년. 명함에 글 쓰고 요가 하는 자야, 라고 써넣 은 지 6년. 도시를 떠나 시골을 떠돌기 시작한 2년 만에 맞춤한 집을 만나 발 딛고 산 지 또한 2년... 그렇게 쌓이고 다져진 오래된 삶 위로, 계속해서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는 ‘지금 여기’의 삶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신경증, 기꺼이 맞이해야 할 봄의 전조
 

개인적인 일로 20일 가량 집을 비웠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다. 짧든 길든,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대문에 들어설 때는 기분이 남다르다. 눈앞에 불쑥 다가서는 익숙한 풍경이 사랑스럽다 할까, 아니면 고맙다고 할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당을 사선으로 길게 가로지른 빨랫줄이며 부엌문 앞 건조대에 매달려 가볍게 흔들리는 행주와 금 간 담벼락 아래 드리운 그림자 등, 늘 그 모습 그대로 제 자리에 있는 것들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비어 있던 방을 덥히느라 매운 연기를 잔뜩 들이마시며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K의 마른 등짝은 말할 것도 없고.
 
안도감은 죄책감과 함께 온다
 
오래 입어 낙낙해진 옷을 입은 듯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주는 것들에 둘러싸인 나는, 그러나 단추 하나의 색깔이 바뀐 것 같은 작은 변화를 동시에 느낀다. 이는 내가 남들과 비교해 유난히 눈썰미가 좋거나 예민하기 때문은 아니다. 누구라도 찬찬히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마늘 줄기가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 정도는 더 자라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않겠는가. 뭇 생명이 차가운 흙 아래서 숨죽이고 있을 때 저 홀로 생기를 띠며 푸릇함을 더해가는 시금치 이파리를 알아보기란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고 보니 내가 집을 잠시 떠나 있는 사이, 어느새 봄이 반 발자국은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겠다. 짐을 챙겨 나설 때만 해도 날개 뼈가 후두두 떨리게 추웠었는데. 지금 저 마늘과 시금치 위에 머무는 햇살은 푸짐하기로나 따스하기로나 봄볕을 연상시킬 정도다. 4월 중순까지는 계속해서 장작을 때야 하고, 게다가 가끔은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춥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계절이 또 한 번 바뀌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봄과 같은 속도로 찾아오는 이런 변화는 분명 낙관적이다. 이제는 수도관이 얼까 보일러가 터질까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혹은 눈물 나게 맵짠 바람 속에서 땔감을 구하러 발품 파는 수고를 멈춰도 좋은 평온함. 하지만 날이 풀림과 동시에 눈에 띄게 시들어가고 급기야는 썩는 냄새와 함께 물컹해지는 배추와 무를 볼 때마다 일어나는 죄책감은, 또한 내가 봄과 함께 맞이해야 할 감정이기도 하다.
 
버려지는 것의 무게에 비례하는 통증
 
▲ 겨우내 보관하며 먹어온 배추와 무가 썩어서 버릴 때면, 밭에서 푸릇하게 자라던 모습이 떠올라 죄책감과 통증이 더욱 심해진다.  ©자야 

 
농사를 짓는다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규모의 텃밭인데도, 나는 어찌된 일인지 수확물을 제 때 먹거나 보관하는 데 젬병이다. 이곳에 온 첫 해엔 상추와 쑥갓 같은 잎채소를 왕창 심어 그야말로 잇몸이 푸르게 물들도록 먹고도 상당량을 버려야 했다. 이 집에 잠시 세 살던 이가 대문 밖 텃밭 전체에 심어놓은 고추를 따고 고르고 말리느라 여름 내내 허리가 휜 것도 같은 해의 일인데, 고생한 것과는 별도로 많은 양의 고추가 역시 텃밭 한 귀퉁이에 묻히거나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듬해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추와 쑥갓은 덜 심은 대신 그 자리를 청경채며 치커리 같은 새로운 잎채소로 가득 채웠다고 할까. 고추라면 신물이 나서 선택한 들깨는 또 어땠나. 끼니마다 쌈으로 먹고 전으로 부쳐 먹고 심지어 일부는 장아찌를 담갔음에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새 잎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에는 뿌리째 뽑아내 들깨만 털어낸 후 말려서 태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어떤 작물도 배추와 무를 버릴 때만큼 심하게 괴롭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배추와 무는 무게로 보나 부피로 보나 다른 작물에 비해 월등히 무겁고 크다. 그래서 고랑에 슬쩍 파묻을 수도 없고, 더군다나 햇볕에 바싹 말려 태울 수도 없다. 그것들을 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썩은 내를 풍기며 물기로 축축해진 박스를 통째로 끌어내 음식물찌꺼기 버리는 곳까지 끌고 가 내동댕이치는 것인데, 그때 나는 온몸으로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을 느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는 그 통증을 경험했다. 20일 만에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게 바로 그 일이었던 것. 요리를 도맡아하는 내가 집을 비운 탓인지, 아무래도 지난해보다 버려지는 양이 많아 보여 나의 죄책감은 더욱 깊어졌다. 그날 저녁, 나는 아직 괜찮은 무를 골라 간장에 졸이고 성한 배춧잎을 긁어모아 일주일 정도는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의 국을 큰 솥 하나 가득 끓였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배추와 무를 몇 백 포기씩 버린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30여 포기 가운데 일부가 상한 것뿐이니까. 김장을 담글 요량으로 넉넉히 심었다가 귀찮다고 안 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니, 앞으로 김장을 담그면 될 일이다. 또 남들이 흔히 지적하듯, 필요한 이에게 주는 방법도 있다. 이번에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택배로 보내자니 서너 박스로는 어림없고 차로 가져가라기엔 기름 값도 안 나올 것 같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문제는 요즘 내가 무슨 일이든 꼬투리 삼아 현재의 생활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있다는 거다. 귀찮다고 김장도 담그지 않는 애가, 툭하면 야채를 썩혀 버리는 애가, 땅도 없는 애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작심도 못하는 애가, 지역에서 안정된 돈벌이 하나 구하지 못해 툭하면 바깥출입을 해야 하는 애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지? 이런 내가 과연 시골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다면 이해가 될는지.
 
시골로 내려오면서 봄이 가까워질 때마다 겪는 이런 증상을 나는 '봄 신경증' 혹은 '봄앓이'라 부르는데,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심과 불안은 종종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 덕분이라 해야 할지 탓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나는 지난 3년간 이 지역의 각종 기관에서 하는 수채화니 목공예니 사진이니 하는 강좌들을 다양하게 섭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과 조급증에서 시작하는 것치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은가. 더욱이 그런 증상은 바깥의 대상으로 채울 수 없는 근원적인 결핍감 같은 것이기에, 나는 신청한 강좌를 조금 듣다 말거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한마디로 깔끔하지 못한 행동을 반복해 왔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런저런 홈페이지들을 순회하며 옷 만들기부터 한국무용과 거문고 강좌까지 입에 올리는 나를, K가 다소 어이없어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뿐
 
▲ 이맘때 찾아오는 신경증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습관적인 반응이다. 따지고 비판하는 대신 잘 지켜보다 보내주면 내 가슴에도 봄꽃이 피지 않을까.     © 자야 

 
지인 중에 누군가는 해마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나의 신경증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너는 돈이니 성공이니 명예니 하는 것들과 무관하게 그저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길 원한다지만 사실은 일을 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름도 알리고 싶은 게 아니냐고. 현재 그게 안 되니까 스스로의 삶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게 아니냐고.
 
그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내 마음에 그런 욕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과연 돈이니 성공이니 명예니 하는 것들과 무관하게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길 원하는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온전한 삶에 대한 이끌림 하나로 시골을 선택했을 뿐, 나머지는 나조차도 아직 알 수 없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나의 신경증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내 삶을 대하는 구태의연한 습관 혹은 자동적인 반응 같다는 생각도 든다. 머리 중심의 앎과 논리와 이성 위주의 교육을 받아온 내게 가장 두렵고 불안한 것은 '모른다'는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머리 중심의 앎과 논리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음을 내가 서서히,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체험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신경증이니 뭐니 이름을 붙이면서도 사실 그런 증상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이면에 숨겨진 욕망 따위에도 관심이 없다. 다만 특정한 시기에 내 정신과 몸을 휘젓고 다니는 이 신경증이 때가 되어 흘러가기만을 기다릴 뿐.
 
때론 놀아주고 가끔은 호통치고 달래기도 하면서 그저 잘 지켜보다 보내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때맞춰 찾아오는 의심과 불안과 조급증은 내가 살아온 시골집과 그에 속한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한 풍경과도 같다. 이 편안함 속에서 나는 겨울의 마지막 꼬리와 함께 사라져가는 신경증에게 기꺼이 손을 흔들어 주리라. 그때쯤이면 봄은 이미 내 코끝에 걸린 채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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