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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대기업 배 채운 전력공급 확대정책 더 이상은 ‘안돼’ 
 
지난해 9월 15일 전국적으로 대규모 순환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난방 등 전력수요가 상승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발생한 정전사태를 두고, 한국전력은 ‘전력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제시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민들이 과도한 전력을 사용한 것이 정전사태 발생의 주 원인으로 꼽고, OECD국가 중 제일 싼 우리의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맞추기 위해 핵발전소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따라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됐고, 정부는 이곳에 원전 4기씩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 밀양 지역, 거대한 송전탑 건설에 따른 벌목을 막기 위해 나선 마을 여성들의 모습. 핵발전소 건설과 그에 따른 송전탑 건설로 인해 많은 지역공동체가 커다란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다.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송전탑 건설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며 끊임없이 전력공급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에너지정책에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산업용 전력수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 증가
 
우리나라가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8271kWh로 미국(1만2828kWh), 호주(1만1174kWh)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그러나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전력낭비와 관련해서는 마치 가정에서 과도한 전기사용이 문제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냉난방과 관련된 전기사용, 가정용 전기사용이 주 대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전력수요 확대의 주원인은 산업용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지난 5년간 30개 그룹들의 전력사용량은 50%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디지털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각 빌딩과 기업 등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10월 국내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전년 동월대비 9.1%나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업용 전력은 전체 전력 수요의 59%를 차지한다.
 
대기업에 할인해준 전기요금이 5년간 3조8천억 달해
 
산업용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저렴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2010년 OECD국가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가장 저렴했으며 OECD 평균의 약 절반 수준이다.
 
전체 전력사용량의 15%를 차지하는 주택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만 기준으로 본다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싼 편이지만, 6단계의 ‘누진제’가 운영되고 있어 평균요금으로 비교하면 싸다고 보기 어렵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1kWh당 1단계와 6단계의 차이는 11.7배에 이른다. 일본 1.4, 미국 1.1에 비하면 10배 수준의 누진율이다.
 
그에 반해 산업용 전기는 일반 주택용보다 훨씬 싼값으로, 생산 원가보다도 10%이상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전력사용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산업용 전력의 62%를 사용하는 석유화학.반도체.철강.자동차 등 4대 제조업종의 (전기요금) 할인금액만 지난 5년간 6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전기사용량이 많은 30대 대기업의 지난 5년간 전기요금 할인 금액은 3조8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이 7500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현대차가 5200억 원으로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은 LG 4500억 원, 포스코 3200억 원 순이었다.
 
송전탑 문제로 고통 받는 밀양 주민들의 호소
 
한국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싼 탓에 수요가 급증했고, 산업구조 역시 전기를 많이 쓰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수요가 증가되면서 이에 맞춰 핵발전소 건설이 계속되었고, 발전소와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과 피해가 따라오게 되었다.
 
2월 13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저지 주민 분신 사망과 핵발전소 문제”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765kv 송전탑 반대 故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의 우일식 집행위원장은 “(대기업이 취한) 3조8천억의 이익금액 중 90%이상이 집행되지 않고 대기업 명의의 통장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고 말했다.
 
우일식 집행위원장은 “발전소를 가장 많이 짓는 기업이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라며 “이들 대기업이 발전소와 송전탑을 건설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으며, 건설개수를 늘려야 이익을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전탑 문제는 각 지역의 전기 자급률을 높이면 근원적으로 생겨나지 않아도 되는 문제다. 서울 전기자급률 0.3%에 불과하다. 충남의 전기자급률 200%다. 충남 당진에는 동양최대의 화력발전소가 있는데 그곳의 자급률은 350%에 달한다. 이런 곳들에 핵발전소를 또 지어 장거리 송전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은, 국가에너지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소비 줄이는 수요관리 정책
 
학계에서도 국가에너지관리 기본정책을 “공급 확대”에서 “적극적인 수요 관리”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 핵발전소는 사고 위험과 폐기물 문제뿐 아니라, 우라늄 채굴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 등의 문제도 안고 있다. 사진은 남비아에 있는 뢰싱(Rossing) 우라늄 노천광산. 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광산 부지에서 진행되는 우라늄 채굴은 방사능과 유독물질로 인한 광범위한 오염 문제를 낳고 있다.  © 출처-WISE, SOMO 공동보고서 


지난해 7월 18일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에너지대안포럼에서 유정민 고려대 교수는 “계속적 에너지 소비의 확대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높아지는 수요를 그대로 두고 수요에 맞춰 공급하는 것은 안 된다. 1980~1990년대에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지으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늘렸던 식의 접근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외의존율이 매우 높다. 유정민 교수는 화석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고 있고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도 커지는 상황에서, 확장 일변도의 에너지공급정책은 오히려 경제적, 환경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핵발전소 확대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에너지기본정책은 폐기물 처리와 사고 위험, 우라늄 채굴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량의 온실가스 등을 고려할 때 비용이 많이 들며, 위험하고,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유정민 교수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불필요한 전력 소비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소개했다. 2000년~2001년에 발생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적극적 수요관리 정책을 펼친 캘리포니아는 그 결과 가장 전력수요가 집중될 때의 10%, 전체 소비의 7%를 줄일 수 있었고, 미국의 다른 주와 달리 전기 수요가 안정화되었다는 보고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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