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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6) 영원한 그가 남긴 독후감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 "오늘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카페 버스정류장을 찾는 이에게 띄우는 첫 인사. 
 
뒤늦게 개업 소식을 전해들은 지인들이 눈을 흘기며 나타나느라 붐비었던 며칠이 지나고 카페는 다시 한산해졌다.
 
계속된 초겨울 한파로 냉기가 벽에 딱 달라붙어있어 몹시 추웠던 12월 12일, 문을 연 지 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인도스타일의 주황색 두건으로 감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칼을 감춘 채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긴가에 깔깔대며 눈물까지 찔끔대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렸다. 카키색 바바리코트에 같은 계열의 중절모를 쓴, 뭐랄까....... 현실 속에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중년 남자가 들어섰다. 나는 웃음소리를 거두고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발을 디디었다.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하고 계단을 오르는 손님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는데 그가 돌아보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얼떨결에 고개를 까딱, 하며 인사를 했다.
 
주문을 받으러 올라갔더니 그는 장식으로 놓아둔 쌀뒤주 위에 모자를 얹어두고 난로 곁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차 드릴까요.”
“에스프레소 투 샷으로.”
 
커피를 두 숟가락, 다시 한 숟가락을 더 해서 갈고 핸드드립을 하는 동안 나는 몹시 허둥대고 있었다. 차를 준비해서 올라가니 그는 음악에 취한 듯 고갯짓을 하고 있다가 쑥스러운지 자세를 곧추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커피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저 좀 진하면 됩니다.”
“다행이네요. 그럴 것 같아서 쓰리 샷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향이 좋으네요. 음악도 좋고.”
“소리를 좀 키워드릴까요?”
“아이구, 저만 듣는 것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혼자만 들으시는 것 맞아요. 지금 손님은 단 한 분 뿐 이거든요.”
“아이구, 난방비는 나와야 할 텐데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오래오래 쉬다가 가세요.”
 
진심이었다. 사실, 손님은 적은데 세 개의 공간마다 따로 난방을 해야 하니 이런 날씨엔 문을 닫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일층은 바닥에 연탄 난방을 하고 실내공기는 석유난로로 데우고 있었는데 출입문을 열면 바람이 먼저 달려들어 온기를 앗아갔고, 이층은 빙 둘러 창문이었으니 난로에 몸을 가까이 하지 않고서는 온기를 체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난방비가 수입의 몇 배가 되더라도 한 분의 손님이 더 소중한, 초심을 지닌 카페지기였다.

나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난로의 온도를 조금 더 높이고 오디오의 볼륨을 약간 올렸다. ‘Stand by your man’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한 시간쯤 후에 뜨거운 물을 한 잔 들고 올라갔다. 그는 책꽂이에 있던 내 책을 읽고 있었다.
“주인장이 쓰셨군요.”
홍보도 할 겸, 책 표지에 ‘카페지기가 쓴 책’이라는 메모를 해 두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책을 내게 됐어요.”
“술술 잘 읽힙니다.”
“어려운 글이 아니니까요.”
“그래야 좋은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오래 앉아있네요. 한 잔 더 주문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리필 해 드릴게요.”
“아니요, 한 잔 주문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한 잔 대접하고 싶네요. 독자로서.”
“아이구, 아닙니다.”
“손에 잡은 김에 책을 다 읽고 가도 되겠지요?”
“그럼요, 영광이죠.”
 
그리하여 그는 어둡도록 난로 곁에서 내 책을 읽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정성껏 핸드드립한 진한 커피에 쿠키 한 조각을 곁들여 내놓았고 한 번 더 뜨거운 물을 배달했다.
 
누군가에게 우리 카페가 좋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손님이 왔기에 바에 서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
“잘 쉬었습니다.”
그는 만원을 내밀었다. 나는 잔 돈 칠천 원을 내밀었으나 그는 손을 내저으며 출입문 쪽으로 가버렸다.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내려선 그는 핸드폰을 꺼내 눈앞으로 가져가 사진을 한 장 찍더니 그것을 들여다보며 걸어 나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에게 ‘저 손님이 앉았던 자리가 따뜻할 거라’고 했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을 모시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난로는 얌전하게 꺼져 있고 책도 다시 본래의 자리에 꽂혀 있었으며, 찻잔 아래에 사각형으로 접힌 흰 쪽지가 어깨를 내밀고 있었다. 손님을 자리에 안내한 다음 다시 난로의 스위치를 눌렀다. 파르르 불꽃이 일며 타기 시작하는 심지를 보는 순간 가슴 속 어딘가에서 서늘한 바람이 이는 것을 느꼈다.
 
쪽지는 수첩을 찢은 것이었다. 

주인장의 글을 읽고 florida 의 gainesville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 John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west point를 졸업하고 harvard에서 정치학박사를 득한 후, nixon대통령시절에는 중국대사를 역임한 다음, 어느 대학 총장으로 있지요.
 
그가 나의 눈에 뜨인 이유는 기인에 가까울 정도의 괴팍한 생활과 이상이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종종 방문했던 그의 집에는 텔레비전이며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귀가 길에 사 온 감자 두어 개와 우유 한 팩으로 먹는 것을 해결하고, 한 여름에도 닥터지바고를 떠올리게 하는 검정 코트 차림으로 활보했습니다. 턱수염이 인도의 성자를 연상시켰던  그는, 현대문명을 거부한 전형적인 hippy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4명의 여자로부터 4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결혼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여자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여자는 은행간부였고, 세 번째 여자는 수녀였으며, 마지막인 네 번째 여자는 해군장교였습니다. 수녀를 파계시켰을 만큼 사랑에는 한 없이 자유로운 친구였지요.
 
그는 시내로 부터 한시간정도 떨어진 야산에 손수 나무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자동차였는데, 그것마저도 십 수 년이 지난 고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책이 있었는데, ‘civil disobedient by henry david thoreau’ 였습니다. walden pond 근처 숲에서 살던 19세기 학자였지요. 아마 주인장도 알겁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John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더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떠났던 멕시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입국 검문 과정에서 마리화나를 소지한 것이 적발 된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이제 교수직도 인생도 끝이구나, 하고 낙담하던 중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그 당시 그는 부모와 담쌓고 산지 오래되는 외동아들이었거든요.
 
전직대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도 남아있는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지 뒷문으로 살며시 빼내주었답니다.
대신 그는 부모의 아들로 살아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언젠가 virginia에 있는 그의 부모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간적이 있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던 고택은 돌로 지어져 마치 중세시대의 성을 보는 듯 했고, 택지는 끝이 가물거릴 만큼 컸습니다.
한 채의 허물어진 나무집이 그림처럼 어울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습니다.
저 집에서 노예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농사일을 했다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John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John과 주인장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지만 또한 같은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며칠 후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주인장과 주인장이 쓴 책과 카페,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래 지키고 계십시오

그야말로 인상적인 독후감이었다.
그가 특별한 사람임을 첫눈에 알아본 나의 통찰력을 인정해도 좋을 만큼.
 
‘오래 지키고 있으라’는 무심한 인사에 밑줄을 긋는 것으로 그는 내게 영원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바람이 난다’ 는 문장이 어떻게 발생 했는지를 한순간에 체험해 버렸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그는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이니 지금의 이미지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름이 John인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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