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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 外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도은님이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연재를 시작합니다. 도은님은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즐거워하는 일이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자의식과 반항심이 싹튼다고 하는 청소년 나이가 되어가자, 아이들은 나랑 같이 즐거워할 책을 고르기보다는 ‘지들만 좋아할 수 있는 책들’을 골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대량생산되는 싸구려 판타지 소설이나 로맨스 책들이 나로서는 도무지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는데, 아이들은 내가 구식이고 촌스런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물론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촌스런 면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기계화되고 대중화된 이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 책 문제에서는 별로 촌스럽지는 않거든. 언젠가 너희들도 현실 삶에 눈을 뜨는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되면 너희 무지하고 어린 마음을 홀리는 출판물들의 미로를 헤치고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겠지. 그러면 우리는 다시 좋은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애정 어린 비판을 주고받고 즐거워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던 차에 조지 오웰의 산문들을 읽게 되었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1984년>이나 스탈린 시절의 소비에트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동물농장>이야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옛날부터 번역이 되었지만, 그의 산문들은 최근에야 한국에 번역 소개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먼저 읽고 아이들한테 권했는데, 다른 때와 달리 시들해하지 않고 아이들도 금방 오웰의 산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분명하고 정곡을 찌르는 문장뿐만이 아니라 자기 시대의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솔직한 묘사가 왠지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는데 함께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때로는 웃음을 터트렸고, 때로는 한숨을 쉬며 슬퍼하곤 했다.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중매체의 화려한 광고나 선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체제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산문이든 오웰의 글을 읽으면 “아, 체제란 것은 그렇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햇살 환한 양지쪽 울타리 안에서 체제의 달콤함을 누리는 소수의 특권계급이 있는 반면, 시궁창 냄새나는 어두운 그늘에서 체제에 발길질 당한 채 모욕과 절망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가슴 시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는 의도적으로 가려지기 때문에 망각하기 쉽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밑바닥 인생이 단지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요즘 잘 팔린다는 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오웰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또렷하고 힘차고 방향이 분명하다. “모든 인간은 사회, 경제 체제로부터 억압당하지 않으면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가 그의 모토인 듯하다. 차별과 배제와 빈부격차로 가득한 현실과 체제의 구조 같은 것일랑 건들지 않으면서, 개인의 욕망이나 폭력적인 패거리 의식 혹은 인간들끼리의 암투 같은 심리전쟁 묘사에만 열을 올리는 작가들이 넘치기에 더욱 그의 시선이 돋보인다.
 
그는 왜 제국 경찰에서 ‘밑바닥’ 인생을 택했나 

▲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2010)는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을 몇 달간 직접 경험하며 취재해 쓴 르포르타주이다.    
 
그런데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록 전 세계의 고전이 된 <동물농장>과 <1984년>을 남겼지만, 개인적 삶은 그다지 쉽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전쟁 특파원으로 떠난 사이 의료 사고로 젊은 아내를 잃었으며, 자신도 마흔 여섯이란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졌다.
 
간단한 이력을 보면, 오웰은 영국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버마에서 5년간 제국 경찰로 일했다(<버마 시절>이란 책). 그 뒤 유럽에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헌책방 등에서 일을 하다가 영국 북부의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을 몇 달간 취재했다(<위건 부두로 가는 길>). 또한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카탈로니아 찬가>). 이렇듯 그는 자기 삶의 굵직굵직한 경험들을 가지고 각 시기마다 주목할 만한 책들을 펴냈다.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실업과 곤궁한 삶을 독창적인 르포르타주로 그려낸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2010) 2부를 보면, 오웰이 영국의 제국 경찰에서 떠돌이 밑바닥 인생으로 내려가게 된 사정들이 잘 나와 있다. 몇 군데를 인용해본다.
 
“열네댓 살 때의 나는 혐오스러운 어린 속물이었지만 같은 계급의 또래 소년들에 비하면 약과였다. 속물근성이 사라질 줄을 모르며 너무나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지다시피 하는 곳 치고 영국의 사립학교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중략) 학교에서 나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열 일고여덟 살 때의 나는 속물인 동시에 혁명주의자였던 셈이다. 나는 모든 권위에 반항적이었다. 내 자신을 막연히 사회주의자로 정의했지만 사회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했고, 노동 계급이 인간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책 같은 걸 통해서나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할 뿐이었지, 실제로 그들 가까이 갈 때는 여전히 그들을 혐오하고 경멸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악센트에 반감을 느꼈고, 그들의 몸에 밴 거친 매너 때문에 몹시 화가 나곤 했다.”
 
오웰은 명문이라는 이튼 사립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이 안 되어 버마에 가서 제국 경찰의 일원으로 5년을 근무했다. (중략) 그만둘 무렵에는 내가 섬기던 제국주의에 딱히 뭐라 설명하기 힘든 염증을 느꼈다. (중략) 근대인 중에서 마음 속 깊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그곳 사람들을 힘으로 억누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느낀 죄책감이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노동 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늘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생토록 꾸준히 일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으로 내쫒기는 착실한 노동자의 끔찍한 운명, 이해할 수 없는 경제 법칙 때문에 그가 겪는 모진 고통, 가족의 해체, 그의 마음을 갉아먹는 수치심... 이런 것은 내 경험 범위 밖에 있는 일이었다.”
 
오웰이 산업화 자본주의 체제의 그림자인 밑바닥 인생들을 중산층의 감상주의 없이 이토록 가차 없이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작가 근성으로 꾸며서 쓴 게 아니라 자신이 한동안 직접 살아보고 경험한 체험들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아주 진솔하지만 읽다보면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유머가 느껴져서 슬며시 웃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또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비판에는 가슴이 숙연해지곤 했다.
 
산업 사회의 부품으로 일하며 오웰을 읽다 

▲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문학동네, 2010) 표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오웰이 제국 경찰을 그만둔 후 접시닦이와 노숙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가로서의 첫 작품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문학동네, 2010)은 나한테는 퍽 와 닿는 글이었다. 그때 나는 사정이 생겨서 갑자기 돈을 벌어야 했기에 농한기인 겨울 동안에 대도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도시에서 내가 하고 있던 일이 바로 오웰이 책에서 묘사하던 호텔 주방일과 식당 종업원 일이었다. 나는 필요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꽤 오래 시골에서 별 가진 것 없이 어찌어찌 살아온 이력이 붙어서일 것이다.
 
이 책은 거의 80여 년 전 대공황기의 여파로 실업이 한창이던 영국과 프랑스의 비정규직 접시닦이들이나 식당 종업원들 그리고 떠돌이 부랑자들의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궁상맞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웰의 글 솜씨가 뛰어나서인지 읽는 재미가 쏠쏠할뿐더러 우리 시대에도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사치나 허영심 만족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버느라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모습은 똑같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일한 호텔에는 식기 세척기나 거창한 전기 오븐 같은 현대식 기계설비가 들어서 있고, 온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서 일하는 모습이 빈틈없이 감시당한다는 것! 어쩌면 오웰이 우려했던 사회, 빅브라더가 무기력한 대중을 철두철미 지배하는 암울한 전체주의 사회에 훨씬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빈틈없이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음식 준비, 조리, 설거지, 홀 청소, 주방 청소 등 서비스란 이름으로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늘 산더미였다. 아무 것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짜인 것만 같은 그 시스템에 내 몸을 맞추느라 급급했는데,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선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에 몸은 어떻게든 적응하겠는데, 내 마음은 그 시스템을 좀체 인정할 수가 없었다.
 
사계절의 흐름에 맞추고 내 몸과 마음의 리듬을 어느 정도는 조절해가면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농사일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농사일도 돈 벌기 위한 농사라면 새벽부터 밤늦도록 꽤나 빡세게 일해야 하는 때가 많겠지만, 소규모 자급 농사(돈은 못 번다!)는 자기 실력에 따라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다. 하여간 뭔가를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노동자를 인간이 아니라 기계부품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닌가. 오웰이 썼듯이 “대중이란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위험해진다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바빠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인가.
 
겨울이었지만 나는 늘 땀에 젖은 채 일을 마쳐야 했고, 호텔과 레스토랑을 드나드는 멋진 옷차림의 손님들을 그저 두둑한 돈지갑을 가진 자들로 치부하는 태도에도 익숙해졌다. 열기 가득한 주방이나 우아한 분위기의 홀 안에 있다가 찬바람 부는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역에서 때가 잔뜩 낀 부수수한 머리칼의 노숙자들을 보면 오웰이 묘사한 ‘따라지 인생’들이 생각났다. 내가 지금 이 산업 체제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데 쓰이는 보잘 것 없는 한 개의 부품이라는 사실을 괴롭지만 인정해야 했다. 다시 오웰의 글을 인용해보자.
 
“큰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의 진정한 필요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들은 사치를 제공해주기로 되어 있다. 사치라고 여겨지는 허위이다. 고급스럽다는 것은 종업원들이 더 많이 일을 하고 손님들이 더 많은 돈을 낸다는 뜻이다. 경영주 외에 이득을 보는 자는 하나도 없다.”
 
“엄청난 일이 몰려올 때마다 호텔에서 일하는 모두가 이를 해내기 위해 장대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노력으로 임했다. 각기 다른 분야 간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싸움도 능률을 위해서였다. 호텔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가 부족한 인원으로도 잘 돌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잘 짜인 각자의 일을 맡아 주도면밀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청결을 예로 들어보자. 종업원 구역도 그렇지만 주방의 불결함은 더 심했다. 요리사는 예술가이지만 그의 예술은 청결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더럽게 다룰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먹음직한 음식은 시간 엄수라든가 그럴 듯해 보이는 외양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은 그것을 먹기 위해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내가 일한 곳들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손님이 들어갈 수 없는 주방 깊숙한 곳에서는 얼마간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질척이는 바닥, 대량으로 배달되는 싼 식재료들, 함부로 버려지는 산더미 같은 음식물 찌꺼기, 밀려드는 주문에 맞추느라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종업원들의 곤두선 신경. 속사정이야 어떻든 모든 것이 겉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여야만 했다. 모든 것이 경영주의 이윤을 위해서 움직였다.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화학 산업의 발전으로 변화한 것이 있다면, 거품이 부글거리는 온갖 세제들과 락스 같은 살균제들이 거대한 수채 구멍 속으로 엄청나게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갖가지 주방세제와 온갖 이름의 독한 살균제들이 식당 주방에서 이토록 많이 쓰인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고 불쾌했다. 그릇이나 행주에 거의 들이붓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을 깨끗이 헹궈낼 시간조차 없었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먹을 음식을 담는 거잖아’ 하면서 세제 거품이나 살균제들을 씻어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노라면, 느리게 일한다고 눈총 받고, 그럴 필요 없다고 고참 종업원으로부터 타박을 받았다.
 
호텔 주방에 설치된 거대한 식기 세척기 역시 겉보기만 그럴 듯 했지 내가 보기엔 별다르지 않았다. 무슨 합성물인지 알 수 없는 야릇한 색깔의 세제들과 접시에 윤을 낸다는 린스들이 무지막지하게 쓰였다. 그곳에서 오래 일한 종업원은 자기가 음식을 담아 먹을 때는 식기세척기에 들어갔다 나온 그릇은 쓰지 않았다. 사실 이런 뒷이야기들은 아주 많지만 이쯤해서 그만하기로 하자.
 
이제 우리나라도 실업률이 20%를 웃돌고, 비정규직이 6백만 명이라던가 하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실업자, 비정규직, 시급이라는 저임금 알바, 떠돌이 부랑자 같은 밑바닥 인생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그러므로 오웰의 시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2000년대 한국사회에도 의미 있는 울림을 던져준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 없는 노동’이란 내가 경험했던 컨베이어 벨트 위의 노동이 아닌가싶다. 나는 인간의 노동이 그처럼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쓰인다는 것이 화가 난다. 아무런 도전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노동, 발전가능성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생산적이지도 않는 노동. 인간을 부품으로 여기는 노동은 산업사회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나는 겨울 한 계절을 도시에서 산업 사회의 부품으로 일하면서 오웰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농사일로 돌아왔다. 내가 먹을 것을 길러내는 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쁘다. 돈은 못 벌지만 적어도 불우하지는 않은 이 마음은 내 깊은 속에서 훼손당하길 거부하는 어떤 자유 때문인 듯하다. (도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블로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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