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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10. 라이프아트
아맙(A-MAP)은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아맙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필자 구수정씨는 아맙 베트남 본부장입니다. www.ildaro.com
▮ 라이프아트(LifeArt)란?
베트남에서 예술을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한 최초의 기업. 2009년 설립되었으며 예술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는 새로운 개념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눈으로 바라 본 나의 삶 등의 주제를 춤과 노래, 연극, 그림,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주로 어린이, 학생, 청년,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며 기업이나 학교, 단체들에도 출강한다. 형편이 어려운 참가자들에겐 장학금을 지급한다.
“블랙박스”에서 삶과 예술이 만나다
<라이프아트>의 프로그램 “내 눈으로 바라 본 나의 삶”. 조명이 켜지고 그가 무대에 올라선다. 침묵을 깨고 시작된 그의 연기. 대본은 없다. 그의 삶이 바로 대본이기 때문이다. 서툰 몸짓, 어색한 말투에도 그의 몸과 마음이 세상을 향해 열리기 시작한다. 상처와 슬픔의 기억이 연극이 되어 사람들과 만난다. 이 시간만큼은 그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배우, 극작가, 연출가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 <라이프아트>의 블랙박스에 둘러앉은 사람들. 스무 평 남짓한 이곳에서 삶과 예술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 아맙
나를 찾는 삶, 예술과 더불어 자유로운 삶을 위해 기지개를 켜는 사람들. 하노이의 사회적 기업 <라이프아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구수정(이하 ‘수정’): <라이프아트> 사무실이 참 멋지네요. 자유롭고 발랄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져요. ‘라이프아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공간인 것 같아요. 안쪽에 있는 강당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나 보죠?
판 이 리(라이프아트 사장. 이하 ‘리’):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라이프아트>의 사업에 맞춰서 공간을 꾸며봤어요. 안쪽에 있는 강당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우리는 그곳을 ‘블랙박스’(Black Box)라고 불러요. 미국의 한 가난한 연극인이 사면이 검은색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를 마련하고 이름을 블랙박스라고 한 것에 착안한 것이죠.
수정: 지금까지 인터뷰한 베트남 사회적 기업 가운데 <라이프아트>가 가장 독특한 곳 아닌가 싶어요. 베트남에서는 굉장히 새롭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도전일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리: 저는 예전부터 예술, 철학,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16살 때 인도의 방갈로르에 있는 마운트 카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어요. 그리고 19살 되던 해부터 UN이 운영하는 NGO에서 일하며, 베트남 북부 하지앙성에서 진행된 빈민 구제 프로그램에 참여했지요. 가난과 빈곤의 현장을 경험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는데, 저는 NGO 활동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어요.
수정: 그건 어떤 의미죠? 베트남에서의 NGO 활동이 어려웠기 때문인가요?
▲ 사회적기업 <라이프아트>의 사장 판 이 리.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이자 예술가이며 한 아이의 어머니이다. © 아맙
리: 뭐랄까, NGO라는 시스템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좀더 자유롭고 싶었고, 또 돈도 벌고 싶었고, (웃음) 제가 꿈꾸던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해보고 싶었죠.
23살에 영국 외무성으로부터 쉐브닝 장학금(chevening scholarship)을 받아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공동체 발전을 위한 공연 미디어 예술”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공부한 것들이 <라이프아트>를 창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베트남에 돌아온 후, 북부 홍강 유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며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수정: 그러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 사회적 기업 <라이프아트>를 창립하게 된 거군요?
리: 처음에는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을 창업하지만 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 정도로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러다 지인을 통해 ‘베트남 사회적 기업 지원센터’(CSIP)를 소개받고 사회적 기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죠. CSIP를 통해 창업 지원금을 받고 네트워크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라이프아트>를 고민하던 때에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된 건, 제 인생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뭔가에 구속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풀어주기
수정: <라이프아트>에서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간단히 말하면 강의 프로그램을 열고 있는 거죠?
리: 굳이 정의하자면, 교육에 예술을 접목시킨 교육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라이프아트>의 강의는 참가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창의적이며 행복한 삶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 나를 지키고 사랑하기, 내 눈으로 바라본 나의 삶, 창의적인 삶 등을 주제로 강의해요. 수강생들은 6~7살의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그리고 대학생을 비롯한 20대 청년들도 참여하고 있어요.
수정: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 정말 궁금해요. 한번 참여해보고 싶을 정도로 (웃음).
리: 아까 블랙박스를 보셨다고 했죠? 그곳이 우리에겐 교실이나 다름없어요. 책상과 의자가 없고, 마음껏 뛰어 놀고 웃을 수 있는 특별한 교실이죠. <라이프아트> 강의의 핵심은 참가자들이 춤, 노래, 연극, 그림,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드러내 보는 거에요. 그 과정에서 일상을 살며 보이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던 자신을 풀어줄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하게 돼요.
<라이프아트>의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 연극이론가 아우구스또 보알의 ‘배우와 일반인을 위한 연기 훈련’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연극과 삶을 구분하지 않고, 연극을 통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저항하고자 했던 사람이죠. <라이프아트>의 강의에 예술이 동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참가자들이 시도하는 모든 춤과 노래, 연극들이 사실은 자기 삶을 억압하는 무언가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죠.
수정: 강의를 진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중 한 가지만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리: 하노이에 있는 장애인보호센터를 초청해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각자 무대에 올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죠. 불편한 몸이지만 그들은 온몸을 다해 삶을 표현했어요.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하반신이 없어진 나를 발견한 순간, 자살을 기도했던 순간, 애인에게 버림받았던 순간…. 평소 말하기 어려웠던 상처와 슬픔을 연극으로 보여줬죠. 그것은 또한 고통의 순간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했어요.
모두 숨을 죽이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연기를 지켜봤어요. 연기를 마친 사람들도 꽤 만족스러워 보였죠. 연극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소통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지요.
여섯 살의 세계, 슬픔과 상처를 표현하다
▲ 자화상을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인다. 사람들에게 나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시간. © 아맙
수정: 6~7살 유치원 아이들이 참여하는 강의도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리: 어린 아이에게 무슨 상처나 슬픔이 있겠냐 싶지만 그건 어른들의 편견일 뿐이죠. 자신의 소망을 포스터로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잡지에 있는 베개와 이불 사진을 오려서 도화지에 붙이는 거예요. 나중에 작품을 전시할 때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자는 게 소원이라고 하더군요. 동생이 생긴 후부터 엄마와 함께 잘 수 없어서 굉장히 슬펐다는 거예요. 아이가 집으로 그림을 가져가 엄마에게 보여줬는데도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선생님이 매일매일 소원을 생각하고 이 그림을 바라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대’ 라며, 아이는 작품을 벽에 걸어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어요. 그제서야 엄마는 ‘네 소원이 도대체 뭔데 그러니?’ 하고 물었고, 이 작품의 의미를 알게 되었죠. 둘째를 낳은 후부터 첫째 아이에게 소홀했던 것을 깨달은 엄마는 아이를 껴안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해요. 여섯 살 아이에겐 여섯 살이 감당해야 할 삶이 있는 거고, 엄마도 마찬가지겠죠. 그 작품을 통해 둘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아이를 둔 엄마로서 가슴이 짠했답니다.
수정: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할 때 인형극을 한다고 들었어요.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네요.
리: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모두들 입을 닫아요. 그래서 인형을 통해 이야기하도록 하죠. 아이들 세계에 존재하는 갖가지 스트레스, 우울,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그 중에서도 체벌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베트남 교육법상 체벌이 금지되어 있지만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거든요. 사회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체벌로 인한 상처나 공포에 대해 아이들은 아무 저항도, 표현도 못하고 그냥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지요.
아이들에게 인형을 쥐어주고 이야기를 시키면, 자신의 내부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요.
예술과 함께하는 삶,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
수정: 블랙박스에서 열리는 강의 프로그램 외에 다른 활동도 있나요?
리: 외부 단체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해요. 기업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학교 선생님의 초청을 받아 출강하기도 하죠. 기업의 경우엔 회사의 스타일이나 시스템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프로그램을 준비해요.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 직원들 간 의사소통의 실태, 상사와 직원들의 관계 등을 참고해서 워크숍과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죠.
기업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 소통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둬요.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도 좋고 만족도도 아주 높아요. 다만, 지금까지는 주로 외국계 기업들과 만나고 있어요. 학교 선생님들의 경우엔 교육 방법을 개선하고자 하는 분들이 저희를 많이 찾아요. 교육이란 무엇이고, 예술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학생과의 소통 속에 교육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최근 들어 하노이에 있는 여러 교육기관들과 교류가 늘고 있는데, <라이프아트>가 베트남 교육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요.
▲ <라이프아트>의 프로그램은 늘 몸과 함께한다. 놀고 춤추고 노래하며 일상 속에 갇혀 있던 마음과 창조력을 깨운다. © 아맙
수정: 수강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수강생은 얼마나 되죠?
리: 평균 4~5과목이 운영되고 있어요. 과목 당 1주에 1회 총 8회. 2~3개월 간 수강생은 50여 명 정도이고 수강료는 과목 당 85달러 정도에요. 주위에선 수강료가 더 비싸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요. 경영 상 수강료 인상이 필요한데, 일반인들에겐 지금의 수강료도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 최대한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 하죠. 경제 형편이 어려운 참가자에게는 장학금을 주거나, 자원봉사자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수정: 창업한지 2년 정도 되었는데 최근 경영 상태는 어떤가요? 강의만으론 수익을 내기 어려울 듯싶은데요.
리: 실은 창업 1년 만에 외부 지원금을 포함해 창업 자금이 동이 났어요. (웃음) 새로운 형식의 강의를 만들고 <라이프아트>를 알리고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는 나름 성공했는데, 수익 사업에 대한 마인드는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라이프아트>에서 직접 아이디어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어린이들과의 프로그램 진행에 활용되는 인형이나 친환경 시장바구니, 메모지, 수첩 등이 있죠.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사회 환원까지 함께 고민하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수정: 저도 요즘 사회적 기업의 어려움을 몸소 체감하고 있지요. (웃음) 그래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라이프아트>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게 된 것 같아요. 리 씨가 생각하는 <라이프아트>의 미래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리: <라이프아트>는 베트남에서 예술을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한 최초의 기업이에요. 새로울 뿐만 아니라 경쟁력도 있고, 발전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지금은 사업 초창기에 있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계속해서 저희를 찾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거라 자신해요.
<라이프아트>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삶, 나를 찾는 삶, 예술과 더불어 즐기는 삶이 앞으로 베트남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즐기고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마케팅 팀장) 쯔엉 콩 안 부우 (아맙 마케팅 팀원)
*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 후원 계좌: 신한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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