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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후차라 마타> 공연을 앞두고② 인도 성소수자들의 현재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2010년부터 인도 공연팀과 공동 작업을 추진해왔고, 2012년부터 작업의 주제를 ‘이분법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성(性)’으로 정하고 이에 대해 탐구해왔다. 오랜 기간에 걸친 공동 작업은 마침내 2014년 4월, 한국에서 <바후차라 마타: Beyond Binary>라는 제목으로 관객들 앞에 선보이게 된다.

 

남/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성(性)에 관한 가능성을 처음 엿보게 된 것이 인도 여신 바후차라 마타와 이 여신을 모신(母神)으로 섬기는 히즈라 커뮤니티였으므로, 이 연재는 인도 신화에서부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히즈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도 내 성소수자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3의 성’으로 정체성을 인정받았던 히즈라

 

▲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히즈라의 역할을 연기하는 인도배우 푸자.  © 뛰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는 옛날부터 ‘제3의 성’, 혹은 ‘대안적 성’이라고도 불리는 ‘히즈라’(hijra) 커뮤니티가 존재해왔다. 이들은 서구의 이분법 성애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까닭에, 식민지 시대 이래 행정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억압에 시달려왔다.

 

작년 11월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에게 ‘제3의 성’으로서의 지위를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그간 투표권을 갖지 못하거나 인구 조사에서 제외되는 등 시민권자로서 대우받지 못해왔던 이들에게 교육, 의료, 주거 서비스를 동등하게 제공할 것임을 뜻하며, 여권과 신분증명서에도 ‘제3의 성’으로 표기할 것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집단은 비단 히즈라뿐만 아니며, 역사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 걸쳐 존재해왔다. 히즈라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그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집단은 특히 서구 제국주의 발흥과 함께 피식민국의 국민이 되면서부터, 강력한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1980년대에 인도 여러 지역에서 히즈라에 관해 연구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히즈라』(Neither Man Nor Woman)이라는 책을 낸 세레나 난다(Serena Nanda) 뉴욕시립대 인류학 교수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성정체성을 지닌 히즈라에게 남/녀 이분법을 강요하는 서구의 시선을 비판한다. 세레나 난다 교수는 서구 성소수자들에게 이들이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서구식 성별 개념에 흡수되어가는 공동체

 

지금까지도 히즈라에 관해 쓰여지는 대부분 자료들에서 이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性)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30여년 간, 인도와 아시아 대륙도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히즈라 커뮤니티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작년과 올해 이루어진 <뛰다>의 인도 현지 인터뷰에서, 히즈라와 트랜스젠더의 구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전통적으로 ‘진짜’ 히즈라는 간성 혹은 양성으로 태어나거나(출생 시 외과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간성 또는 양성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 남성의 성기를 거세하는 의식을 거친 사람들을 지칭했다. 또한 이들은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으로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인도에서 직접 만난 히즈라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 “여성”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다수였으며, 외과 수술을 통해 성전환이 가능하게 되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대신 ‘여성’이 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특히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서는 2008년 ‘성전환자를 위한 사회지원위원회’가 창설되어 외과 수술 지원 등 각종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전통적 개념 대신 새로운 현대적/서구적 성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히즈라들이 형성하고 있던 강력한 공동체는 지난 30년 사이 급속도로 와해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히즈라들은 서구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운동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인권운동을 하거나, 서구 성소수자 운동의 개념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카스트와 맞물려 빈곤, 폭력, 살해 위협까지

 

인도 전통 사회에서 히즈라 커뮤니티는 신화와 종교적 권위에 의해 그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고, 그에 따르는 의례(儀禮)를 수행함으로써 실질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신 바후차라 마타가 부여한 신성한 힘을 통해 출산이나 결혼식에서 축복을 내리고, 그에 따라 대략 정해진 대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인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권위를 인정 받으며 살아가는 히즈라 커뮤니티를 찾아보기는 거의 어렵다. 대부분은 성매매와 구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성정체성에 대한 개인적 혼란과 더불어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가난한 계층에서 태어나, 몸을 팔아서 생활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의 증언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력과 끔찍한 경험들로 가득하다. 그나마 현대 인도인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히즈라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구걸을 조금은 용이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구걸하는 히즈라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가 그들의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서 돈을 내어준다.)

 

▲  올해 2월 인도 첸나이에서 F to M (여성->남성)들과 인터뷰하는 인도 배우들.   © 뛰다 
 

현재 인도 내 히즈라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는’ 참혹한 일들을 겪고 있다. 2014년 2월에 만난 ‘F to M 남성’(여성->남성 성전환한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살해당할 위기에 놓였던 경험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인도에선 법보다는 힌두교에 기반한 계급적 차별로 인해 수많은 하층 계급들이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다. 공식적으론 계급이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지정 카스트로 불리는 최하층 계급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수위와 발생빈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층 계급에서 태어난 성소수자들의 경우 이중, 삼중의 고통이 뒤따른다.

 

첸나이에 살고 있는 한 성소수자는 <뛰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성 정체성이 심각한 삶의 문제가 되는 것은 나와 같은 중산층뿐이다. 상층 계급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원하는 삶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하층 계급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기에는 매일매일의 삶이 너무나 벅차기 때문에, 성 정체성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성애 금지 논란, 인도 형법 16장 377조

 

히즈라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전통적인 보호망에서 벗어나 사회적/제도적 차별 속에 놓이게 된 것은 영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871년 제정된 ‘범죄 부족 법’(Criminal Tribes Act)에 따라, 절도와 같은 “보석이 불가능한 범법 행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는데 중독된” 종족이나 사회 집단들은 정부에 등록을 해야 했다. 이들은 ‘습관적 범죄자’로 묘사되었으며, 이동에 제한을 받았고, 여기 속한 성인남성은 매주 지역 경찰관에 보고해야 했다. 히즈라는 범죄자들로 분류된 이들 160여개 유형들 중 하나에 속했다. 독립 이후 1952년에, 더 이상 등록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이 법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이 영국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유지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파키스탄에는 377A조, 일명 소도미(Sodomy)법이라 불리는 ‘동성애 금지법’이 아직 존재한다. 1861년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인도 형법 16장 377조는 동성애 행위를 포함한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성행위들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  인도 대법원이 동성애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후, 이에 대한 반응을 담은 신문 기사들. 대부분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 뛰다 
 

2009년, 보수적인 델리 고등법원에서 성인들이 동의 하에 행하는 성행위를 금지하는 이 법은 ‘위헌’이라고 선언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11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진보적 성향의 대법원이 이 판결을 뒤엎고 동성애 금지 조항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인도 내 성소수자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는 인도 내 보수적 성향을 지닌 단체들, 특히 종교단체들의 로비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히즈라에 관해 차츰 관용적인 사법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파키스탄에서는 2009년 6월 히즈라를 공식 인정하고, 시민으로도 등록시켜야 한다는 획기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3년 11월 방글라데시는 히즈라를 ‘제 3의 성’으로 인정하고 시민권을 인정했다.)

 

"나는 신의 컴퓨터에 생긴 에러가 아니다"

 

히즈라 커뮤니티의 역사적 존재, 그리고 이들과 바후차라 마타라는 신화적 존재와의 관계는 남/녀 이분법을 뛰어넘는 성의 존재와 신화의 사회적 기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배우들과의 공동 작업 과정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동안 식민지 시기를 거쳤음에도 과거의 정신적 유산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유산들 속에 끔찍한 폭력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화란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기호로써의 말들이다. 인류의 문명이 대단한 진보를 이루어내고 그 물질적 환경이 전례없이 풍요롭다 해도, 죽음이 우리를 한계짓는 이상 인간을 넘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질문, 혹은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은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적, 물질적 환경들과 만나 여전히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인도의 독특한 신화적, 종교적 유산이 어떤 식으로 포용의 기호를 되살려 낼 수 있을 것인가, 이 공연을 통해 그렇게 신화가 가진 힘을 되살려 내고 싶었다.

 

▲  트랜스젠더 인도 배우 글래디.  2013년 인도 배우 오디션에 참여해 작품을 함께하게 되었다.  트랜스젠더인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다른 작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뛰다 
 

말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구분짓고 차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연극 <바후차라 마타: Beyond Binary>에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다양한 말들, 그리고 그 말을 넘어서는 세계를 가리키기 위한 몸들이 등장한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도와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인도와 한국의 배우들의 몸을 빌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인도의 배우 V. Balakrishnan이 인도의 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독백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황혜란 (뛰다 배우)

 

“내 심장이 옳다고 말하기 위해 칙령이나 법률이 필요하지는 않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우리가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이제 너희들도 사랑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자연이 내게 명한 대로 사랑하고 살아간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일탈자도 아니다

 나는 신의 컴퓨터에 생긴 에러가 아니다.

 이중성과 숫자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위에서의 삶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흑과 백으로.

 음과 양은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의 안에서 흐른다.

 나는 흐름이고, 나는 기운이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나는 꽃도, 시의 소재도 아니다.

 나는 하리(Hari), 평범한 남자다.

 전화번호부 당신의 이름 바로 아래,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그런 이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하리(Hari)다.”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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