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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책상 위 씨앗이 담긴 병 
 

 

어떤 겨울, 씨앗 보관을 잘한다고 마을에 소문난 농부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문난 분들은 매해 꼬박꼬박 씨앗들을 바지런하고 꼼꼼하게 갈무리해두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러 가니 농부들은 쑥스러워하면서 가을에 꽁꽁 싸매 집안 서늘한 곳 구석구석에 놓아둔 씨앗보따리를 풀어내며 씨앗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었다. 친정엄마가 매해 받아쓰던 것을 50여 년 전 시집 올 때 한 줌 가져와 오늘까지 쓰고 있다던 할머니, 20년 전 시어머니한테서 받은 호랑이강낭콩과 옥수수….

 

그 겨울은 씨앗들의 온갖 무늬들로 눈이 즐거웠더랬다.  

 

▲   사무실에 토종 씨앗이 담겨진 병들이 몇 개 생겼다.  © 박푸른들 

 

요즘 우리 사무실에도 씨앗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다국적기업(종자회사)으로부터 우리 씨앗을 지켜내야 한다며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탓이다. 여러 방면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사업을 우리는 ‘토종종자사업’이라고 부른다. 덕분인지 사무실에 씨앗이 담겨진 병들이 몇 개 생겼다.

 

예전에 마을에서 인터뷰를 할 적에는 농부들이 갖고 있던 씨앗이 그렇게 탐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 자유롭게 무언가를 심을 수 있는 작은 땅 하나 없는 요즘은, 눈앞에 씨앗이 있어도 별 감흥이 없다.

 

농업단체에 다니면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토종종자사업’을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러한 것들의 기반이 되는 ‘농사’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요상하고 헛헛하다.  ▣ 박푸른들 www.ildaro.com  

 

▲ 마을에서 인터뷰를 할 적에는 농부들이 갖고 있던 씨앗이 그렇게 탐이 날 수가 없었다.    © 박푸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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