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능한 미래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written by 싱어송라이터 이내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www.ildaro.com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글을 쓰고 나서도 제목이 잘 생각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한 미래”라는 말이 최근 마음에 계속 맴돌아 거기에서 출발해본다.
몇 달 전 일본의 한 시골빵집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구조의 유기농 빵집, 일주일에 사흘을 쉬고 모든 직원이 일 년에 한 달의 휴가를 가질 수 있는 가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대박! 그게 가능해?!’ 그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가능한 미래”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관련 기사- 오마이뉴스, 이윤기, 일주일에 사흘 문 닫는 '대박' 빵집의 비밀)
그리고 최근 <일다>에서 프랑스의 ‘렌’이라는 도시의 쓰레기 줄이기 정책에 대한 기사를 공유하면서 한 번 더 그 단어를 썼다. 시 차원에서 환경을 우선으로 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실제 상황’은 놀랍고, 부럽고, 어리둥절하면서도 희망적이었다. (관련 기사- 일다, 정인진,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더’ 줄일 수 있을까)
‘보기 드문 좋은 젊은이들’과 노부부
▲ 2014년 8월 23일 창원 가로수길에서 열린 <늦여름 저녁 가로수길 어쿠스틱> 공연 포스터
창원의 가로수길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우연히 들러 노래를 불렀던 꽃집에서 작은 공연을 기획했다면서 연락이 온 것이다. 새로운 곳에 찾아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 그들이 나를 다시 초대해 주는 형식의 공연이 (신비롭게도) 계속되고 있다. 당장 ‘공연’을 많이 다닐 수는 없는, 어찌 보면 까다롭고 느린 방식이지만, 나는 지금 노래여행 중이고 여행이란 자고로 우연에 기대는 것이 제 맛이다.
꽃집. 그래,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어떤 꽃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매몰차게 꽃을 싫어한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싫어할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그 이유를 무의식에 물어 찾아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꽃은 거추장스럽고 지나치게 화려하고 귀찮다고 느껴진다. 그런 나에게, 처음 창원에 갔던 날, 이 꽃집에서 누군가 머리에 꽃을 달아주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생각은 어떤 작은 경험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공연 당일, 리허설을 하는데 누군가가 걸어와 커다란 유리병에 물을 가득 채워 옆에 두었다. 잠시 후 커다란 꽃더미를 가져와 거기에 넣었다. 갑자기 무대가 달라 보였다. 정말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사람들이 꽃을 이래서 좋아하는 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 스스로 요청하여 머리에 꽂을 꽂아달라고 했다. 하얀 꽃 한 송이를 한참을 걸려 핀에 달아서 건네주었다.
두 번째로 머리에 꽃을 달고 꽃더미에 둘러싸여 노래를 불렀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야간버스에서도 그들이 선물로 준비해 둔 작은 꽃다발을 (여전히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창원의 가로수길에서 작은 공연이 있던 그 날, 나는 마음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공연자를 위해 준비해 둔 정성스러운 음식과 선물, 예쁜 봉투에 미리 넣어 둔 공연비, 그러면서도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이 오가고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노부부는 공연장을 마련해 준 건물의 주인이라고 했다. 축하와 기쁨의 건배를 마치고 아내는 남편을 끌어당긴다. 젊은이들 노는 데 방해된다고 하며 남편을 타일러 밖으로 나간다. 초대된 사람들도, 초대한 사람들도 서로에게 덕과 공을 돌리고 있었다.
친구를 배웅하러 갔다 오는 길에, 마당에 손녀와 함께 앉아있는 노부부를 다시 보았다. 인사를 하러 갔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오늘 공연을 보고 스스로 자신의 은퇴 기념공연이라고 여기며 행복해했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문화센터에서 배우기 시작한 기타로 내년에는 자신도 무대에 꼭 서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꽃집 친구들에 대한 칭찬이 시작되었다. “보기 드문 좋은 젊은이들일세.”
내려가서 ‘보기 드문 좋은 젊은이들’과도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공연한 음악가들도 입을 모아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는 공연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건물에 있는 가게들의 도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물주인 노부부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놀라웠다. 건물주와 임대인의 수많은 몹쓸 이야기들에 익숙한 나로서는 믿기가 힘들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이지?’
▲ 창원 가로수길에서 <늦여름 저녁 가로수길 어쿠스틱> 공연.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한 지붕 세 가게
창원 가로수길 입구, 한 건물에 세 가게가 함께 있다. 3층은 주인집인 듯 보이고, 2층엔 ‘팬아시아’ 라는 아시아 요리 음식점이, 1층에는 ‘마마스핸즈’라는 도자기 핸드페인팅 공방과 ‘래예플라워’라는 꽃집이 나란히 있다.
원래 꽃집은 근처 주택가의 작은 공간에 있었는데 건물주인 노부부의 아내가 1층에 공방을 만들면서 옆에 꽃집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이들에게 이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공방 공사를 하면서 꽃집에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번처럼 공연을 준비한다고 말했을 때 흔쾌히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오래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창원에서 제법 유명한 맛집인 ‘팬아시아’에서는 꽃집 덕분에 손님이 더 많이 온다고 하고, ‘레예플라워’ 또한 유명한 맛집 아래에 있어서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꽃집 방문 때, 식당 매니저가 휴식 시간에 내려와 차를 한잔 마시고 갔던 게 떠올랐다. 이번에 공연자들에게 이국적인 요리들을 푸짐하게 차려주기도 했는데, 리허설을 마친 공연자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공연의 기획부터 뒤풀이를 마치고 모두가 돌아갈 때까지 한 지붕 세 가게의 세심한 준비와 배려, 그 마음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가능한 미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비록 임대한 가게가 잘 되면 주인으로부터 쫓겨나고, 임대료와 땅값이 오르고, 거기에 대기업의 가게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현실이지만, 가끔 이렇게 다른 현실이 있기도 한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조금 다른 선택이 꽤 많은 것을 변할 수 있게도 하니까, 오늘은 희망을 잠시 생각한다. 아, 최근에 진주에서 공연을 했는데, 일부러 꽃집을 찾아가 꽃을 조금 사서 무대 옆에 두고는 꽤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어떤 경험은 생각을 바꾸게도 한다. ▣ 이내 bombbaram.blog.me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경험으로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로(寒露)가 다가오는 들 (0) | 2014.10.05 |
---|---|
첫 휴가를 받은 엄마와 3일간의 기차여행 (7) | 2014.10.04 |
둘째 동생 (0) | 2014.09.16 |
“혼자 살기 무섭지 않아요?” (0) | 2014.09.05 |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티셔츠 배송을 기다리며… (0) | 2014.08.25 |
바느질로 배를 짓다 (0) | 2014.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