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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를 아십니까?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포토 어시스턴트가 하는 일

 

※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취직? 안돼. 내가 볼 때 넌 이 일이 딱이야.”

이 한마디에 내 인생의 행보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숨에 넘어갔다. 아니, 저쪽에서 이쪽으로 훅 넘어왔다고 해야 하나. 풀어 쓰자면 그 한마디의 발화자는 내 둘도 없는 쌍둥이의 회사선배였고, 내게 딱이라는 그 일은 포토그래퍼의 어시스턴트라는 일이었다.
 

▲ 고양이는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룸메이트. 개는 스튜디오에서 키우는 영업부장.  © 지은 
 

당시 나의 둥이는 졸업 후 매년 연봉이 깎이는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한 잡지사의 인턴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와 죽이 맞아 잦은 술자리를 함께하던 그 선배는 15년차 에디터로, 곧 결혼할 상대방이 포토그래퍼라고 했다. 요즘 젊은 포토그래퍼 중에 잘나가는 편이라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당시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친구가 그만두게 되어서 일할 친구를 구하는 중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바로 그 잘나가는 젊은 포토그래퍼가 지금 나의 사장님이자 일종의 스승이다.

 

취직을 준비하다가 사진을 찍는 일로 무작정 점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꽤 오랜 시간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지냈다. 대학교 4학년 때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급격하게 진로를 바꿨다. 제 딴에 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마음을 다지기 위해 한달 여간 스페인 여행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 중 사진기자 출신의 사진작가가 한 명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 인연이 이어져 사진을 배우게 되었던 것.

 

하지만 그 연이 인연이었는지 악연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사진작가라는 분이 나를 어여삐(?) 여기어 사진 수업도 듣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지만, 그 시간은 불확실한 미래와 나 자신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 다닌 방황의 시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질질한 끌려다님을 끊어내고 결심한 것이 취직이었다. 내 자존심, 가치관, 꿈 다 버리고 그래 취직 하자, 했지만 이 시대에 죽기보다 힘든 것이 취직이라지 않던가. 아직도 그 시기 그 새벽의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뛰어 잠 못 이루던 밤, 엄마에게 전화해 아무 말도 않다가 끊고서야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던 밤.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선, 밝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 애쓰던 날들.

 

위태위태한 멘탈을 마비시킨 채 뿌려놓은 원서 중 마지막 1차 합격의 통보를 기다리던 날, 그 선배를 만나 술을 마신 것이었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일들

 

간단한 면접을 보고 이삼 일 뒤 바로 출근을 했다. 굳이 정의하자면 상업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개 잡지 화보 촬영과 광고 촬영이었다. 소위 영화나 드라마, TV 프로그램에서 그려지는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화려한 모델들과 분주한 스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비트감 있는 음악이 울려 퍼지며 플래시 라이트가 정신 없이 터지는 곳. 내가 상상했던 장면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  스튜디오 촬영 세트.    © 지은  

 

하지만 꼭 그런 장면만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취직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많은 대기업에서는 면접 시험을 치르기 전에 직무적성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고통스러운 관문이지만, 사람을 뽑고자 하는 입장에선 이 사람이 어떤 업무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관문일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에도 직무적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성격에 따라 크게 사람을 위주로 찍을 것인지, 사람 외의 다른 피사체를 주로 다룰 것인지 나뉘는 경향이 있다.

 

대개 패션 사진(주로 잡지 화보나 패션 광고)을 찍는 포토그래퍼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다. 사람을 찍는 잡지 화보의 경우에는 촬영 전체를 통솔하는 에디터가 있고, 광고 촬영의 경우에도 진행을 담당하는 사람(대개 에디터 출신들이 많다)과 광고주, 광고대행사의 직원까지 합세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한 촬영에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30명이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데, 그 정신 사나운 환경을 즐기거나 그 안에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성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인물 사진을 찍는 일이 버거울 수 있다.

 

반면에 제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말수가 적거나 행동 자체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움직임이 없는 피사체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포토그래퍼의 역량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1미리의 움직임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어떤 포토그래퍼와 일을 하든지 간에, 어시스턴트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해 포토그래퍼의 촬영을 돕는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 세트를 준비하고, 조명을 설치하고,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포토의 지시에 따라 세트와 조명을 움직이는 것이 어시스턴트의 일이다. 외부에서 촬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찍는 대부분의 경우 컴퓨터와 바로 연결해서 촬영을 하고 바로 모니터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연결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촬영이 끝난 뒤 흔히 “뽀샵”이라고 하는 후보정 작업도 업무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후보정 작업은 촬영만큼이나 포토그래퍼의 성향에 따라 매우 다르다. 오로지 촬영만이 포토그래퍼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촬영이 끝나면 후보정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리터쳐에게 데이터(사진)를 일임하기도 한다. 촬영할 때부터 후보정을 염두에 두고 찍는 포토그래퍼의 경우는 사진을 현상하고(원본 파일을 현상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포토샵을 이용해 기본 작업부터 사진의 톤을 잡는 작업까지 자기 손으로 마무리한다.

 

‘모시고 있는’ 사수가 시키는 건 무엇이든…

 

사실 포토그래퍼와 어시스턴트의 관계는 사제 관계에 가깝다. 창의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기술직이기도 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배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소위 말해 “짬이 차면” 개인 능력에 따라 독립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런 만큼 촬영뿐 아니라 ‘모시고 있는’ 사수의 삶 전반적인 부분은 돕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놓고 직원에게 사적인 업무를 시키는 일은 드물긴 하지만, 많은 부분 통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 하루 24시간 중 잡지 마감으로 바쁠 때는 4-5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는데, 업무 시간 중에 사수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촬영장은 무겁거나 조심해서 다뤄야 할 고가의 장비들이 많아, 긴장이 풀리면 위험한 사고들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남자를 선호하고 군기 문화가 횡행하는 곳이라는 뜻도 된다. 실제로 패션 사진을 위주로 하는 포토그래퍼 팀의 경우, 세트와 장비의 무게나 크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여성들에게 버거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또한 때때로 험한 말들이 오고 가는 경우도 많아, 어떤 의미에서는 “맘 편하게 막 대하기 위해” 남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을 of the 을’ 직업군에 속한 일인으로서

 

어림잡아 하루 평균 12시간. 잡지사의 마감 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매월 10일경부터 20일경까지 자정을 넘기는 야근은 기본이요, 막바지에는 밤을 꼴딱 새는 일도 빈번하고, 한달 중 2주-3주간 주말은 없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직업이다. 기본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지만, 아무도 무슨 일이 터질 줄 모르기 때문에 약속을 잡는 일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일찍 끝날 것 같은 날은 늦게 끝나고, 또 늦게 끝나겠거니 하고 있으면 빨리 끝난다.

 

이렇게 계산이 불가능한 노동 시간에 대한 급여는 적게는 30만원부터 시작해서 많아 봐야 100만원을 웃도는 수준. 연차(?)가 쌓여 직원 포토그래퍼로서 카메라를 잡고 사진을 찍게 되면 개인적인 일을 받아 돈을 벌기도 하지만, 어시스턴트로 2-3년을 지내는 것이 정석 같은 관례로 여겨지고 있다. 그만큼 어시로 일하는 동안은 경제난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  최근에 개척한 취미 생활이자 출퇴근을 위한 자전거.    © 지은  

 

그렇다고 열악한 근로 환경 경연대회에 나가 ‘내 일이 더 힘듭네’ 하며 위세를 떨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쪽 동네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어린 친구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어딘가에서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열정노동론’을 내세워 착취에 가까운 노동 환경이 즐비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어떤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 환경인지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본인은 스스로가 여자라는 것과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자랑스럽지만, 마초적이고 꼰대스러운 문화 또한 즐기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의 내용은 진보적이지만, 생각의 방식은 보수적일 때가 많다. 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뒤섞인 ‘나만 무사평안주의론’자로서,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두거나 활동에 참여하는 일도 없다.

 

어찌됐든 본인은 이런 노예제 근로 환경(어시스턴트들끼리 이렇게 표현한다)에서 일하는 데 큰 불만도 없고, 때때로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개선의 움직임에 앞장설 용기도 없으며, 사실은 이런 환경에서 상당한 안락함을 느끼고 있다. 몰아붙이듯 일하고 생기는 짧은 여유도 짜릿하고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닥(?)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고민 또한 외면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힘겨운 어시스턴트 생활을 거쳐 포토그래퍼가 되고, 또 돈을 열심히 모아 독립을 하고 ‘실장님’이 되었을 때, 과연 내가 나와 함께 일할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지금 내 시대의 실장님들은 과연 악덕고용주라서 아이들에게 이런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화려해 보이지만 ‘을 of the 을’ 직업군에 속하는 이 직업을 가진 이들이 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구조들에 변화가 있어야 할는지.

 

이 조악한 글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생각의 깊이가 얕고 솜씨가 부족해 생각의 조각들만 덕지덕지 붙여놓은 듯하여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런 직업도 있다는 것을, 이런 일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기록으로나마 남기를 바라며. ▣ 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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