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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시킬 시기? 바로 지금이야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6. 초딩은 건너뛰는 거야?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언제가 성교육 하기 좋은 ‘때’일까?

 

때가 되면….

초딩 아들을 둔 엄마들에게 한번씩 “아들 성교육 해?” 하고 물어본다. 흔한 대답은 “때 되면 해야겠지? 아직은 어리니까.” 그나마 아들이 고학년일 경우 “할 때가 올 텐데. 어떻게 해야 돼? 뭐 아는 거 있어?” 이런 반문을 받기는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대체 언제가 좋은 ‘때’인 걸까? 대부분은 아이의 2차 성징이 시작될 때라고 말했고, 어떤 엄마들은 교육 과정에 맞춰(?) 중고등학교 때 하면 된다고 했고, 누군가는 성교육은 무조건 일찍 하면 좋다고 말은 하지만 아이가 워낙 관심이 없어 ‘때’를 기다리는 중이라고도 했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현재 아들이 초등학생이라면 아직 그 때는 아니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이 믿음을 합리화하는 말과 태도가 지천에 널렸다. 애가 관심이 없다는 말도 대표적인 합리화 발언이다. 진짜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또 있다 한들 부모에게 내색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 대게는 아이가 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믿고 싶어 한다.

 

2차 성징은 객관적 지표라기보다는 2차 성징이 오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만 활용된다. “우리 애는 아직도 2차 성징이 안 왔어. 아직 애지!” 그러나 그 집 아들 덩치 워낙 크고, 성장이 빨라 2차 성징이 왔을 법도 해서 재차 물어보면 “덩치만 크지 쟤가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달려와 품으로 기어들며 몸을 부대끼자 “아이구, 너 이제 남자냄새 나, 징그러워” 하며 손사레를 치다 나와 눈이 마주쳐서 같이 멋쩍게 웃어버린 적도 있다.

 

또 다른 남자아이는 성적인 농담으로 여자아이를 놀렸다. 그 아이엄마는 혼잣말로 “이렇게 쪼그만한 애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는데…”라고 항변 하듯 말을 줄이며, 아들에게는 “뜻도 모르고 그런 말 하면 안 돼” 라고 마무리 지었다. 뜻도 모르고 할 수 있는 행동도 아니었거니와, 덩치가 작으면 성적인 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무슨 논리였을까.

 

‘우리 애는 하나도 모른다니까…’

 

© 그림: 천정연 作 <비 와라>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초딩아들은 성적인 부분에 있어 ‘느리다’고 말한다. 물리적 성장이 느리건, 관심이 느리건, 그 부분에 대한 이해력이 느리건, 여하간 성적인 것은 죄다 느린 게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때’는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은 일종의 회피이고, 그 정점은 “요새는 학교에서 다 배우잖아”가 아닐까 싶다. 의외로 엄마들은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는 부모 세대가 어설프게 가르치느니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고 오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하나, 한국 공교육에 대한 이토록 높은 신뢰를 경험해 본적 없는 나로서는 그저 신기한 현상일 따름이다.

 

국영수사과, 예체능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인 시대에, 전적으로 학교 교육에 이토록 의지하고 기대하며 게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하는지조차 자세히 알려 하는 사람이 없는, 그런 분야가 있다니.

 

반대로 “애들 영어 뭐 시켜?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 라고 물어보자.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교육가치관이 정반대에 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서는 무궁무진하고 다채로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영어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그 이유가 같건 다르건 대다수 부모들은 이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고, 해야 할 말도 많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도 많고, 찾아본 정보도 넘쳐난다.

 

적극적으로 시키든, 더 적극적으로 안 시키든 학업에 대한 일들은 부모의 ‘능동적’인 고민에서 나온 결론이며, 이에 따른 실천이다. 설사 똑같이 “때 되면 해야지”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성교육 문제와 일반 학업 문제에서 쓰는 이 말의 뉘앙스는 완전히 다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성적 사안에 있어서 부모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물며 자랑처럼 말한다. “도통 관심이 없어”, “우리 애는 정말 하나도 모른다니까”, “이 부분은 애가 정말 느려.” 이 말을 ‘영어’ 혹은 ‘수학’에 대해 사용한다고 상상해보자.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고 있을 경우뿐이다. 주변에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이라도 취할 수 있는 몇몇 조치들을 조언해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어떤 부분의 발달이 느리다고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현상이다. 뭐든 빨리 알고, 빨리 겪고, 먼저 치르기를 원하는 분위기이지 않나? 남보다 빨라야지, 먼저 배워서, 더 잘해야지. 그러나 유독 성과 연관된 것은 가장 늦게, 최대한 나중에 오기를, 남들보다 못 하기를, 모르기를 바라는 마음, 재밌다.

 

초딩아들에게 성교육을 안 하는 진짜 이유

 

그러므로 그런 말들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뉴스에서 초등 저학년만 되어도 이미 포르노를 접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2차 성징의 나이가 빨라지고, 성조숙증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런 소식들은 ‘다른 이의 자녀들’ 이야기일 뿐 ‘내 아들’은 여전히 모르고, 느리다고 믿고 싶은 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이라는 말은 초딩아들에게 성교육을 안 하고 있다는, 더 나아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몰랐던 내 맘 속의 강한 의지, 아들의 사춘기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2차 성징은 왔어도 온 게 아니야. 우리 애의 성적 관심은 적어도 나는 모르는 걸로!

 

하물며 이런 태도가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된 이상 ‘미리’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적인 것을 ‘일찍’ 알아 봤자 성적 충동을 자극할 뿐이라는 주장.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데요. 게다가 아이는 그토록 성에 대해 관심도 없고, 모른다면서요! 자극 준다고 바로 성충동이 격해질 정도로 ‘빠른’ 아이가 아니라면서요!

 

그러니 진실은 엄마들 스스로가 ‘성’이라는 주제 앞에서 겁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피하고 싶어, 그 얘기 할 줄 몰라, 뭘 가르쳐야 해. 나도 배운 적 없는데. 그게 가르친다고 돼? 혹은 그걸 어떻게 애랑 말해, 이제 갓 초등학생인데 등등.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차라리 애 아빠한테 시킬까? 그런데 아빠라고 뭐 아나! 나쁜 것만 알지. 아, 계속 모르고 싶다. 초등생이니까 아직은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돼.

엄마들의 속내이지 않을까.

 

결국, 초등학생은 건너뛰는 거야?

 

남아들은 초등학생일 때보다 유아기에 상대적으로 성교육을 더 받는다. 물론 유아 시기 교육이란 성폭력 예방교육을 말하는데, 그 내용이 워낙 ‘피해자 되지 않기’ 버전이다 보니 취약함이 두드러지는 유아 시기에 집중될 뿐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잠재적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상상되는 시점부터 아들들에게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성폭력 예방교육보다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반전은 성교육을 할 만큼 ‘다’ 크지는 않았다고 여기며, 이를 자꾸만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초딩 남아들은 이 시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성폭력 예방교육이건 성교육이건. 절대적 유약함은 없지만 아직 성적인 존재로 인지되지는 않는 아이들. 혹은 아이가 아직은 성적 존재이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 우린 날 때부터 성적 존재이건만.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분을 만나면 전혀 다른 장면들을 보게 된다.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요새는 아주 교실에서부터 난리도 아니래.’ 생각보다 성적 표현에 자유로워진 아이들의 사례를 혀를 내두르며 열심히 이야기한다. 아이가 중학생만 되어도 엄마들은 내심 맘이 급하다. 성교육에 대해 뭔가는 이야기해야 할 텐데 어째야 하나. 딸엄마나 아들엄마나 급격히 관심이 는다. 아이들을 둘러싼 모든 이슈들은 성적인 이슈 같고, 걱정과 불안으로 연결된다.

 

초등학생 아이와 중학생 아이는 그토록 다른 걸까? 다르기야 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고작 중학교 3년인데 그 시기가 그토록 혼돈이라면 왜 초등 시절부터 대비하지 않는 걸까? 국영수사과, 예체능까지 다 조기 교육시키는 데 성교육은 ‘조기’라는 개념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의 이런 공백기, 아이에 대한 다소 의도된 무관심이 청소년기 아이들의 사건 사고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초등학교 6년 동안이야말로 아들의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에 공을 들여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는 말은 하나의 빌미이다. 지금은 아들과의 성적 대화를 회피하겠다는. 사실 잠재적 피해자로 지목된 여아들에게는 특별한 때를 논하지 않는다. 성폭력은 따로 때가 없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으니 ‘항시’, ‘언제나’, ‘어려서부터 습관처럼’ 조심하라고 말한다.

 

아들이 어려서 누굴 때릴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약하니 친구 때리지 말라는 말은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려야지. 중고등학생 돼서 덩치 커지면 그때나 슬슬 폭력이 뭔지 알려줘도 되지 않겠어. 지금 아이가 하는 욕은 뜻도 모르고 하는 말이야. 그 뜻을 제대로 알고 할 때를 기다렸다 가르쳐야지. 자꾸 미리 가르치면 애가 더 하기 마련이니 괜히 혼내서 자극하지 말자.

 

이렇게 애를 키운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 아이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김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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