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관광도시를 주민의 지속가능한 삶터로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
▮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Action for the city)
2006년 12월에 창립된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는 하노이와 호이안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친환경 사업과 공동체복지 사업을 하는 베트남의 NGO다. 대표적인 사업은 도시 빈민을 위한 유기농 채소 재배와 도시공동체를 위한 놀이터, 공원 건립 프로젝트다. 또한 주민들의 환경의식을 높이기 위해 지역모임을 조직하고,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및 공동체복지 사업을 교육한다. 최근에는 ‘교실 없는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환경과 유기농, 공공시설, 공정여행 등을 주제로 토론 수업을 열고 센터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호이안의 껌탄사에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가 건립한 놀이터. © 아맙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 호이안의 옛 거리에서
‘시간이 멈춘 도시’로 불리는 호이안. 베트남 중부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이곳의 인구는 약 12만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마다 약 170만 명에 달하는 여행자들이 호이안을 찾는다. 길거리 곳곳에는 호텔, 식당, 커피숍, 박물관, 옷가게, 수공예 전문점 등이 늘어서 있다. 밤에는 형형색색의 등불이 낮보다 아름다운 호이안의 밤을 연출한다.
그런데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볼거리는 충분한 반면, 정작 호이안에는 현지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나 놀이터 등의 쉼터와 공공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1년 365일 여행자들로 북적대는 도시 호이안에서 지역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삶은 가능할까? 호이안의 고거리 한복판에 둥지를 틀고 ‘푸른 호이안’을 꿈꾸며 사업을 펼치고 있는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를 <아맙>이 만나보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호이안 고거리 한복판에 NGO 사무실이 있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이곳은 수공예 전문점이나 박물관, 식당, 커피숍으로 가득 찬 곳이라 생각했는데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가 터를 잡고 있는 걸 보니 호이안이 새롭게 보입니다.
당 투 항(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 사무국장, 이하 ‘항’): 흔히들 호이안을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하는데요, 고풍스런 옛 가옥들 속에서 이곳 주민들은 우리들처럼 급변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어요. 여행자들이 아닌 현지 주민들의 삶을 위한 단체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웃음)
하노이의 빈민운동에서 움튼 ‘푸른 도시’의 꿈
수정: 처음에는 하노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항: 2006년 12월에 하노이에서 센터가 출범했고 저는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창립자인 지앙 씨는 오랜 시간 국제NGO에서 일하며 산간벽지 농촌마을의 빈민층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했어요. 하노이 사람이었던 지앙 씨는 자신의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했고, 하노이의 도시 빈민층을 위한 새로운 방식의 지원 사업을 하고자 센터를 열었어요.
▲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Action for the city) 사무국장 당 투 항. © 아맙
우리는 도시의 소수자들과 환경 문제, 공동체 시설 문제에 눈을 돌렸죠. 일회적인 사업에서 벗어난 지속 가능한 사업,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업을 고민했어요. 첫 번째 사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마사지 교육이었죠. 나름 성공을 거두었는데, 교육을 받은 시각장애인들 마사지숍을 열어 스스로 일자리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하노이의 도심을 흐르는 작은 하천인 또릿 강에서는 환경보호 캠페인을 했어요. 또릿 강은 오염이 심각한 하천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하천 인근에 사는 지역주민은 물론 누구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약 10개월간 청년들이 또릿 강을 살리자는 취지의 사진 전시회를 열고 환경보호 캠페인 문구를 적은 리본과 갖가지 장식을 매달았죠. 또릿 강 살리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어요.
그리고 도시 외곽의 가난한 농촌 주민들을 위해 유기농 채소 재배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센터의 지원을 받은 <바이트엉 유기농 채소 생산조합>이 베트남 최초로 참여보증제도(PGS)를 통해 품질 인증을 받았죠. 지금도 이 조합은 하노이 외곽에 있는 대표적인 유기농 농장으로 손꼽히며,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요.
관광도시 호이안에 현지민들을 위한 쉼터를!
수정: 지금은 센터가 호이안에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하고 있고 지앙 씨와 항 씨도 호이안에 살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호이안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있었나요?
항: 2010년에 센터가 그동안 진행한 사업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가졌어요. 해외 원조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죠. 센터의 재정 자립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기농 채소 재배와 생태여행 등의 수익사업을 더 벌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는 정부 기관의 협조를 받는 것이 너무 어려워, 사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이때 지앙 씨가 호이안에 눈을 돌렸어요.
당시 호이안은 친환경 도시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관광도시였기 때문에 생태여행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어요. 게다가 호이안 정부는 센터의 사업에 우호적이어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했고요. 결국 고민 끝에 고향인 하노이를 떠나 호이안에 정착해 센터 사무실을 열었죠. 하노이의 센터에서는 기존 사업을 이어가고 있고 호이안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이고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어요.
수정: 센터가 호이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놀이터와 공원 건립 사업입니다.
항: 관광도시인 호이안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는 반면 정작 현지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은 턱 없이 부족해요. 주민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고자 공원과 놀이터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어요. 놀이터를 지을 때는 현지의 원자재를 최대한 활용했고 버려진 자동차 타이어나 바퀴, 전선, 폐목재 등을 재활용했어요.
이 과정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해, 그들이 직접 고향주민들을 위한 놀이터와 공원의 설계에서 공사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했죠. 봉사활동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재능 기부를 통해 놀이터 건립에 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고요. 놀이터와 공원 건립 사업은 현지 주민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사업이기도 해요. 그만큼 주민들의 삶에 쉼터가 부족했다는 것의 반증이겠죠.
▲ 청년들과 함께하기 위해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실 없는 대학> ©아맙
“북부 사람인 저는 농민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웠죠”
수정: 언젠가 신문에서 자전거를 타고 호이안을 행진하는 청년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에서 주도한 행사던데요.
항: 여러 가지 캠페인과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는데요, 2012년부터 “호이안, 매연 없는 날” 행사를 열어 청년들이 자전거를 타고 호이안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벌여요. 환경 이슈를 주제로 한 글짓기, 그림 전시회, 게임, 레크리에이션 등도 열고 있죠. 또 “유기농의 날” 축제를 개최해서 주민과 학생들에게 유기농과 식품안전, 환경 문제를 알리고 있고요.
2014년부터는 <교실 없는 대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중부 지방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공공시설, 환경, 유기농, 공정여행 등을 주제로 강좌를 열고 토론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센터의 사업과 연계하여 학생들이 실질적인 사업에 직접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거나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호이안 중심가에 있는 판쭈찐 대학에서 축제를 열어 도시공동체를 위한 학생들의 참신하고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모집, 발표하고요, 연극이나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도 만들고 있죠.
수정: 낯선 타향인 호이안에서 유기농 채소 재배를 지원하는 사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항: 네, 제가 북부 사람이잖아요. 처음에는 낯선 북부 말씨를 쓰는 저를 호이안의 농부들이 경계하기도 했어요. 북부 말과 중부 말이 달라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죠. (웃음) 2~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는 농민들과 신뢰가 쌓여 사업을 원활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이안에서도 참여보증제도(PGS)로 품질 인증을 받은 농가들이 하나 둘 늘고 있고요, 호이안이 관광도시인 이점을 살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유기농 농장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죠. 농민들이 여행자들을 위해 농장을 소개해주고 유기농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죠.
또 형편이 어려운 농촌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청년과 함께하는 유기농’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유기농 농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청년들이 직접 유기농 채소를 홍보하고, 마케팅, 배달, 뉴스레터 작성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죠. 또 청년들이 유기농 농장의 탐방 안내자로 활약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
▲ 호이안의 껌탄 초등학교에 설치된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의 폐수처리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호이안시 인민위원회 간부들. ©아맙
수정: 눈에 띄는 사업들 외에도 주민들과 학생,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사업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항: 센터는 <푸른 삶>이란 이름의 크고 작은 클럽을 각 마을과 학교에 만들어 운영해왔어요. 마을 여성회와 연대하여 <푸른 삶> 모임을 꾸리기도 했고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환경, 식품안전, 에너지, 기후변동 문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죠. 특히 주부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전기 절약, 물 절약 아이디어를 내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에요. (웃음) 학생들을 위한 활동으로, 센터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푸른 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푸른 삶>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도록 지원합니다.
정부의 관료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공동체복지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해요. 그 성과로 최근에 호이안 시가 ‘유기농 농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또 센터가 소개한 폐수처리시설 모델이 좋은 반응을 보여서, 앞으로 호이안에서 신규 건립되는 호텔이나 식당은 센터가 제안한 폐수처리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제정되었어요. 호이안 교육청은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유기농 농장을 탐방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죠.
수정: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 센터>가 호이안에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항: 유기농 재배를 지원하는 사업이 가장 힘들었어요. 우선 농민들을 조직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모임을 열거나 약속한 일을 추진하는 데에 난항을 겪었죠. 농민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득실을 따질 때가 많아, 애를 먹기도 했고요.
유기농 농장 탐방객을 누구의 농장으로 선정할 것인지, 10톤의 유기농 채소 주문을 농가마다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두고 다툴 때가 많았어요. 농민들이 조금의 양보도 없이 단 몇 푼이라도 더 이득을 챙기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거예요. 그때마다 마을로 직접 달려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농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힘겨웠어요.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어쩌면 농민들의 이런 태도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채소 가격과, 신뢰할 수 없는 중간상인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지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농민들과 센터 간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서 농민들도 초창기보다는 센터의 사업에 더 협조적이고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환경, 유기농, 공공시설 모두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국경을 넘는 사람들 >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하산 버스도, 터미널 줄서기도 없는 나라를 꿈꾸며 (0) | 2016.02.10 |
---|---|
“성한 잎이 찢어진 잎을 감싼다” (0) | 2016.01.12 |
공정무역과 베트남의 전통종이 ‘저이조’의 만남 (0) | 2015.12.10 |
커피농민들이 공정무역을 선택한 이유 (0) | 2015.09.13 |
기후 변화의 위기, 생태여행으로 맞선다 (0) | 2015.08.14 |
하노이의 교통체증, ‘카풀’로 뚫는다 (1) | 2015.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