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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처럼 빈손으로 오면 좋겠어요

<이 언니의 귀촌> 충남 홍성에서 소소의 이야기(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  겨울이 오는 길목, 빈 들판을 바라보면 자못 겸허해진다.  (충남 홍성)   © 소소

 

올해는 빈손이다

 

바심(타작)은 모두 다 끝났다. 배추, 무도 다 거뒀다. 여기저기 김장 소식을 묻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봄, 여름, 가을 다 바치고 다시 맨몸으로 꼿꼿한 나무며, 씨앗을 품고 바싹 마른 들풀, 빈 들판을 바라보면 자못 겸허해진다. 어쩔 수 없이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다. 올 한 해 나는 무엇을 농사지었나. 분명히 두 손 위엔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들여다본다. 나는 무엇을 농사지었나. 이게 뭘까.

 

세 번의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12월이 지나면 이곳에 내려온 지 꼭 3년이 된다. 3년이라니. 풍월이라도 읊어야 할 것 같지만, 고작 세 번의 씨앗을 심었을 뿐이다. 이맘때가 되면 그 씨앗들이 어떤 열매로 자랐는지 고스란히 받아 안고 숨 돌릴 틈 없이 바로 내년 농사를 궁리했다. 그 농사는 생명을 땅에 심어 기르는 것이기도 했고, 또 여러 사람의 시간과 마음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해마다 생각지 못한 열매가, 또 다른 동료가, 새로운 씨앗이 두 손 위에 남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빈손이다.

 

“그래서 소희씨, 내년에는 뭐 할 거예요? 다른 계획이 있어요?”

11월 초부터 내년 계획이라니 조금 이른듯하지만, 바심이 끝난 농촌에서는 자연스러운 물음이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올해랑 비슷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조금은 헛헛한 웃음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엔 살짝 조급해진다. 아직 올해 거둔 게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올해 농사를 안 지었던가.

 

▲ 집 앞 저수지. 내가 사는 집은 저수지 끄트머리에 ‘덩그러니’ 있다.     © 소소

 

아침 농장 가는 길은 늘 소란스럽고 찬란해

 

올해 나는 무척 잘 지냈다. 누가 물어보면 분명히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농장 가는 길이 참 좋다. 며칠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아침 농장 가는 길이 제일 먼저 그리워진다.

 

내가 사는 집은 저수지 끄트머리에 있다. 차가 지나다니는 큰 길에서 고작 20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사방 200m 안으로 다른 집이 없다. 논 두세 배미 건너 작은 물길 따라 저수지 앞에 그야말로 ‘덩그러니’ 있다. 엄청나게 고요하고 캄캄하다. 지나가는 이도 별로 없어 마당 풀도 마음 놓고 방치할 정도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무섭지도 않다. 전혀.

 

이른 아침, 농장 가는 길은 늘 소란스럽고 찬란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걸어서 농장에 간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간다. 두리번두리번 논둑을 살피는 농부의 걸음으로 걸으면 한 십 분 걸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면 오른쪽 저수지 둠벙으로 빠지는 게 나을까, 왼편 깊은 논둑으로 빠지는 게 나을까를 매번 고민하며 살살 자전거를 타면 한 오륙 분 걸린다.


▲   비오는 날이면 걸어서 농장에 간다.   © 소소

 

걷다 보면 용케 아직까지 피어있는 하얀 들풀이나 점점 붉어지는 갈대, 갈대숲 사이 분주한 작은 새들의 움직임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면 희미한 저수지 안개 냄새랄지, 어제 저녁 마른 풀 태운 연기 냄새랄 지가 흠뻑 한 숨 지나간다.

 

저수지 둠벙을 돌아 마을길에 접어들면 저 멀리서 복실이가 먼저 알아보고 깽깽댄다.

“아이고오, 알았어. 금방 갈게.”

 

하지만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논둑의 할아버지, 봄에 논일을 한참 하고 아직 잡히지 않은 오리들, 이장님 축사 앞마당에 마실 나온 닭들, 그리고 회관 앞에 몽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이장님, 사모님께도 천천히 다 인사하고 농장에 도착하면 그제야 효리(젖염소)도 매에, 하고 운다. 효리와 복실이 밥과 물을 챙기고 상추를 따러 하우스에 들어간다.

 

이곳에선, 미꾸라지여도 괜찮아

 

어김없이 꼴찌다. 매일 지각을 해도 사실 매일 조금 미안하고, 한편 매일 지각해도 괜찮아서 고맙기도 하다.

 

나는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이하 ‘농장’, collabo-farm.com)에서 일한다. 아무런 기반과 자본이 없는 청년들도 지역에서 유기농업을 배우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50여명의 사람들이 마음을 내어 배당 없는 출자를 했다. 마을에 젊은이들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장님도 선뜻 땅을 내주셨다. 그리고 농장을 ‘농장’으로 세우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상추를 붙잡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한 선배 일꾼들이 있다.


▲   나는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에서 일한다.   © 소소

 

지역에서는 농촌과 농업을 바탕으로 청년들이 자연과 사람,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함께 고민해왔다. 현재는 7명의 조합원이 농장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고, 40여명의 조합원들은 농장과 지역 안팎에서 따로 또 같이, 각자의 농사들을 짓고 있다.

 

나는 농장에서 일하는 7명 중 가장 늦게 출근하고, 가장 일찍 퇴근하고, 가장 자주 빠진다. 농장에서 함께 일한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매번 어디로 가서 무엇부터 얼마나 수확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야 한다. 나는 미꾸라지임이 분명한데 농장의 품이 커서 물이 흐려지지 않는다.

 

아무도 ‘너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일하냐’고 나무라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물론 나만 모르는 걸 수도 있다.ㅋㅋ) 농장의 고된 농사일 대신 이것저것 재미있어 보이는 일, 그저 하면 좋은 일들을 만들어서 농장 품으로 끌고 들어와도 같이 해준다. 사실은 그런 일들을 벌일 수 있도록 뒤에서 독려하고 일의 처음과 끝을 다 연결하고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튼 그리하여 오전 내내 상추를 딴다. 한 여름에는 여섯 시간, 해가 짧은 겨울에는 고작 서너 시간이다. 그 날 그 날 지역 유기농영농조합이나 직거래하는 식당 등에서 들어온 발주량을 맞추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쌈채소 농사는 넓은 땅도, 많은 돈도, 비싼 기계도, 엄청 큰 힘도 들지 않는다. 다만 계절과 상관없이 매일매일 꾸준한 일손이 필요하다. 상추를 따면서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시시콜콜 잡다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쏟아지는 방문과 견학 일정에 대한 간단한 회의를 하기도 하고, 상추가 잘 안 크거나 병해에 걸린 이유를 찾아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  젊은협업농장의 꿍꿍이들.   © 소소

 

최근 한동안은 세간의 ‘청년 담론’에 대한 다른 생각과 ‘꼰대’의 재정의, 청년의 ‘자립’이나 ‘공적인 삶’에 대한 의구심 등을 툭툭, 거칠게 묻고 답하고, 또 물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또 어느새 상추를 따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하며 상추를 따러 농장에 나간다.

 

다달이 농장에서 나오는 약간의 돈이 내가 반나절 일하는 대가로 받는 임금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반나절 임금이라고 하기엔 금액이 너무 적은 한편,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의 노동 생산성은 너무 낮다. 다만 아직까지 내게는 매일 아침 정해져 있는 기상 시간과 사람들과의 접촉, 몸을 움직여 일하는 노동 시간 등 일상을 알뜰하게 꾸리도록 하는 어느 정도의 ‘강제’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 되는 것보단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순간순간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옆의 사람들이 절실하다.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스물, 스물하나의 청년들은 동료의 지각과 잦은 부재에도 아랑곳 않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자리를 지킨다. 그들을 향한 주변의 관심에 고마워 할 줄도 알고, 지역에서 펼쳐지는 배움의 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먼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듣는다. 사람들이 떠나간 농촌에서, 모두들 가망이 없다고 하는 소농의 길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 선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과연 잘 하고 있는 건지, 너무 배움에 수동적인 건 아닌지,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선배랄까, 어른들은 지켜보고 기다린다. 어린 청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그게 무슨 일이든 필요한 곳, 빈 구멍을 찾아 메운다. 스스로 훌륭해지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된다고 일러주고 보여준다. 큰 의미를 내세우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여기 필요한 작은 일들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준다.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의 힘과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믿어준다.

 

그리고 나는 그냥 그 사이에 있다. 어떤 때는 어린 청년들과 함께 마냥 배우는 존재로, 또 어떤 때는 짐짓 어른인 척, 이 시간이 어느 의미인지 아는 척 한다.

 

어느 책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또 어떤 때는 내가 그냥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배워야 할지, 결국 무엇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인지,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가짐’을 단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순간 정성스럽고 올곧을 수 없어 속상할 때도 많다.


▲    농장의 청년들은 사람들이 떠난 농촌에서, 소농의 길을 배우고 만들어간다.   ©소소

 

별다른 오후엔 늘 별다른 일이 생긴다

 

점심 이후엔 먼저 농장을 빠져나온다. 다른 청년들도 농장일이 밀릴 때는 오후 늦게까지 일하지만 올봄부터는 되도록 오전 중에 농장 일을 마치려고 노력했다. 오후는 지역 활동이나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복실이와 저수지변 산책을 한다. 복실이와 산책할 때면 가장 일상을 충만하다고 누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매일같이 별다른 일이 있다. 복실이에겐 미안한 일이다.

 

주로 회의를 하거나, 회의 준비를 하거나, 회의를 하러 어디에 간다. 작은 시골동네에서 무슨 회의가 이리 많은지. 어떤 단체, 어떤 직책의 누구여서 참석하는 회의가 아니라 역시나 경계를 알 수 없는 회의들이다. 그냥 가까이 있으니, 혹은 관심이 있으니 사람들과 만난다.

 

그래서 지역에 새로 지어지는 도서관엔 어떤 책장이 들어갔으면 좋겠는지, 내년에 일본 여행을 함께 갈 동네사람을 어떻게 모을지, 다음 달 팟캐스트에선 무슨 주제로 얘기 나눌지, 지역 원예 단체들에선 요즈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공부모임의 자원을 어디서 끌어올지, 지역 방문단체의 워크숍이나 견학 일정을 어떻게 꾸릴지, 다음 자전거 동아리 라이딩은 어디로 가면 좋을지 등등.

 

그 논의 과정들이 굉장히 더디고 귀찮을 때도 많다. 회의에 쏟는 에너지가 8할 정도 되어서야 그게 대체 어떤 일인지 조금 실마리가 보인 달까. 일이 중간에 엎어지기도 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결국 회의가 아무 의미 없이 멋대로 일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 꿍꿍이들이 사실은 즐겁다.

 

저녁 무렵엔 공부를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표가 빡빡하다. 기타, 식물생리학, 철학, 문학, 일본어, 마을 기록 등등. 다른 친구들은 마을합창단, 일본성서잡지 읽기, 사진 수업, 생화학 수업, 책읽기 모임까지 참여한다. 삼삼오오 모여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부터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역 학습기반을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배치한 수업도 있다. 선생님도 학생도 모두 지역 사람들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에는 공부가 사치스러운 취미 같았는데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   이곳에선 공부가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소소

 

페달을 굴리는 모두의 수고와 고민

 

이렇게 하루를 거칠게 늘어놓고 보니 염려하던 바다. 나의 일상이 ‘반농農반X’, 적절한 노동과 한가한 독서,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 등 무언가 이상적이고도 ‘조화로운’, 그저 ‘좋은 삶’으로 보여 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는 귀촌의 로망으로 비춰지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다. 오늘 나의 일상은 발견한, 혹은 발명한 완성된 삶의 형태가 아닐뿐더러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전거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끊임없이 방향을 가늠하며 힘차게 페달을 돌리는 모두의 수고와 각자의 고민을 전할 재주가 없다. 분명한 건 이러한 협업의 형태와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자리들이 어느 누가 특별해서라거나 완성되고 안정된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가파른 언덕을 만날지, 바퀴가 터질지, 길을 잃을지, 그래서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둘레의 사람들이 함께 가고 있다는 것. 원래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인지, 어디까지 가야할지, 이 방향과 속도가 과연 나에게 맞는지, 나의 발굴림은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지레 짐작하지 않고, 한정짓지 않고 그냥 맡겨보는 거다. 바람을 타고, 옆의 사람 힘을 빌려서.

 

올해 유난히 그러했나보다. 그래서 올해 내가 한 일이 없다. 하지만 특별한 재주나 이름 붙여진 내 자리, 확고한 내 생각이 없어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매번 빠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다거나,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영수증을 챙긴다거나, 말없이 뒷정리를 한다거나, 그 때 그 때 각자가 할 수 있는 몫으로. 날이 갈수록 나는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    농장 가는 길, 들풀 .   © 소소

 

빈손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제 드디어 빈손이 생겼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함께 짓는 농사에 몸과 마음을 기대어 홀로 거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먼저 손 내밀어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얼마 전 서울에서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도시의 청년들에게 시골살이를 전하는 대화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나의 생계와 자리를 만들어 줄 ‘핵심 아이템’이 있어야 농촌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누구에게는 집이나 농지를 구할 돈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연결해 줄 기술이거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특별한 관계일 수 있겠다. 나도 3년 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때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이 말이 가장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당신도 나처럼 빈손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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