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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건과, 구속적부심 신청에 대한 법원의 기각은 우리나라의 법치수준을 만천하에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실망시켰을 뿐 아니라, 법원 스스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의 법치수준에 실망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법률상의 아내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법 해석을 따르지 않고, 이른바 ‘부부강간’을 인정한 판결이 등장한 것이다.
 
강간죄 규정의 사각지대였던 ‘부부 사이’
 
이번 판결은 현행형법상 강간죄 규정의 사각지대라고 불리던 아내강간을 인정한 것으로, 부부 사이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는 ‘외국인 처가 생리기간 중이라는 신체적 사정을 들어 성관계를 거부하자 가스분사기와 과도로 협박하여 처의 반항을 억압한 후 강제적인 성관계를 가져’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된 피고에 대해 특수강간죄 성립을 인정했다.
 
‘아내의 정당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무시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폭력으로 강간을 자행한 것으로, 현재 피해자와 그 혼인관계의 실질이 유지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특수강간죄’가 적용된다는 것이다(부산지방법원 2009.1.16. 선고,2008고합808).
 
1970년 3월에 대법원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한 여성이 남편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후에 감금과 폭행당한 후 항거불능 상태에서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는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며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 1970.3.10. 선고,70도29 판결)
 
이후 한국에서 부부강간은 인정되지 않았다. 물론 2004년 이혼 위기에 있는 아내를 강간한 남편에게 강제추행을 인정한 판례가 있었지만, 법률상 부부 사이에 강간죄를 인정한 것은 이번 판결이 처음이다.
 
정교청구권이 강제 성관계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형법은 강간죄의 피해자를 가해자와의 관계로 구별하지 않는다. 단지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형법규정에 의하면 아내가 ‘부녀’에 해당되는 한, 남편에 의한 아내강간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의 대법원 판결은 부부 사이에는 ‘정교청구권’이 있기 때문에 부부강간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정조’라고 한다면, 남편이 아내를 강간한다는 것은 이론상 성립되지 않는다. 정조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성적 충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조는 아내가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 침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정조’가 아니고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을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찾는다면 부부 간의 강간이 성립되지 않을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의 핵심적 내용으로, 이것은 결혼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대법원 판례가 부부강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혼에 의해 부부는 서로 상대에 대해 성교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에 응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를 우리는 인격권, 인권이라고 한다. 성적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도 그 안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사람은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와도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고, 성관계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성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성에 관한 것은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성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것은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성관계를 가진다는 것의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강제와 폭행을 수반한 성관계까지를 용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관계는 두 사람의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는 수단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의 기본적 인권으로서 부부간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부부라고 하더라도 폭력적인 성관계를 유지할 의무는 어떤 경우에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성관계가 강제와 폭력에 의해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성적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강간죄로 다루어져야 한다.
 
가부장적 ‘소유’인식,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아
 
외국의 경우에는 1980년대 이후 아내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강간의 면책(marital rape exemption)’ 법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1984년에 People v. Liberta 판결로 “혼인증명서가 남편이 형사면책을 갖고서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기혼여성도 미혼여성과 똑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시함으로써 부부강간을 인정했다. 한편 부부 일방이 성관계를 거부할 때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강간이 아니라 이혼법정으로 가는 것이라는 취지를 명확하게 했다.
 
영국도 1991년에 지금까지의 면책특권을 폐기하였다. 독일 역시, 부부강간죄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었던 형법 제117조의 ‘혼인 외의 성교’부분을 삭제하여 부부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부부강간이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관념과 무관하지 않다. 영미법 체계에서 강간은 재산범(소유권을 침해하는 범죄)이었다. 강간은 남성의 소유물을 침해한 남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생긴 것이다.
 
이런 관념은 그동안 형태와 내용의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은, 권리의식이 보편화된 문명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될 수도 없고 통용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부부강간을 인정한 것을 넘어 ‘피해자가 외국인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널리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혼인 등 인적 교류가 행해지는 이 시대에 있어서 더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법 원리에 입각한 정의의 실현이 요청된다. 바로 이것이 당원이 종래의 법 해석을 따르지 아니하고 새로운 태도를 취한 하나의 이유’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 법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지는 보여준 판결로도 매우 뜻 깊다.
▣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일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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