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안해…’ 보내지 않는 편지
연탄과 함께하는 글쓰기치료(5) 글쓰기 프로그램 사례②
연탄이 진행한 글쓰기 치료 프로그램의 한 사례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는 글쓰기 치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양한 글쓰기 치료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사례는, 40대 여성으로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미소’(별칭)님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공개하는 내용은 실제 진행한 회기와는 다르며, 매회 글쓰기 과제와 미소님이 작성한 글, 연탄의 피드백 중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미소님께 감사 드립니다.
[연탄]
미소님은 현재 가장 힘든 부분이 ‘불안’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해도 남편의 부재로 인해 불안이 더 가중되었고요. 다른 사람의 위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군요.
본인의 현재 문제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님께서 이번에 글쓰기를 할 주제는, 문제와 관련된 사람에게 쓰는 ‘보내지 않는 편지’입니다. 미소님께서 느끼는 ‘불안’과 관련해서 돌아가신 남편 분에게 편지를 써보셨으면 합니다.
편지의 분량은 상관 없습니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 못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으세요. 만약 문제가 되었던 특정 상황이 있었다면, 그때 상황에 대해 써보고 당시 심정은 어땠는지 솔직하게 편지를 써보세요. 그리고 상대에게 요구 사항, 또는 사과할 일이나 용서할 일이 있다면 쓰세요. 굳이 정리해서 쓸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쓰세요.
우리는 자신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눌러야 할 때가 많죠. 그때마다 읽으면 위로가 되는 시 한 편이 있는데 소개할게요. 연탄도 가끔 읽으면서 끄덕일 때가 많답니다.
슬픔의 돌
슬픔은 주머니 속 깊이 넣어 둔 뾰족한 돌멩이와 같습니다.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당신은 이따금 그것을 꺼내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원치 않을 때라도.
때로 그것이 너무 무거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 때는
가까운 친구에게 잠시 맡기기도 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머니에서
그 돌멩이를 꺼내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전처럼 무겁지도 않을 거구요.
이제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돌멩이를 꺼내 보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말이죠.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손길과 눈물로
그 모서리가 둥글어졌을 테니까요.
-작자 미상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중에서)
[미소] 남편에게
남편, 요즘엔 내 꿈 속에 잘 오지도 않네. 이 집에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밤, 꿈 속에 당신이 건강하고 환한 모습으로 등장했지. 자주 오겠다는 말을 남겼는데….
마누라가 평소에 남편 생각도 자주 안 하고 산소에도 자주 찾아가지 않으니 화가 나서 안 오나 생각해. 아이들과 자주 찾아가려고 집과 가까운 곳에 당신을 데려다 놨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1년에 몇 번 못 가보네. 미안해. 당신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일부러 애써 생각 안 하려고 한 것 용서해. 사진도 다 치우고 이젠 거실에 있는 당신 책까지 정리하려고 하는 마누라가 원망스럽겠지.
당신 장례 치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미안해. 왜 그랬나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당신 아플 때 1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많이 힘들었나 봐. 의사가 당신 사망 선고 내리던 그 순간, 난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슬픔이 밀려온 게 아니라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났어. 나도 좀 힘들었나 봐. 힘든 간병생활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나 봐.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어. 당신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난 그때 내 생각만 했어. 당신 아플 때 한번도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거나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 그때도 나 힘든 것만 생각했어.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생활이 당신에게 맞춰지는 생활이 가끔 숨이 막혔고 답답했어. 그때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내가 좀더 당신한테 잘 해줄 텐데. 당신 정말 힘들겠다고 손도 잡아주고 안아줄 텐데. 나도 같이 아파했을 텐데….
당신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산 사람인데, 마지막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는데, 내가 등 떠밀어 보낸 것 같아 미안해. 주사바늘을 더 이상 꽂을 데가 없을 정도도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어서 더 이상 연명을 위한 주사를 금지한 게 가장 미안해. 그게 가장 미안해. 당신이 그 입장이었으면 아마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겠지.
당신 보내놓고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도 미안해. 당신 때문에 우리 식구 편안하게 살고 있어서 너무 고마워. 경제적인 부담감을 덜게 해줘서 그게 가장 고마워. 가끔 생각해. 돈 없어서 힘들었다면 아이들과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워.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해.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의 죽음이 어떤 공포와 스트레스로 다가올지 몰라서 피하려고만 한 것 같아. 마지막에 서로 뜻 깊은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해.
요즘 가끔 우리 집을 둘러볼 때마다 집 크기만큼의 부담감이 확 밀려와. 그래서 집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또 가끔 하는 생각이 이민 가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아빠의 부재를 덜 실감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싫겠지, 당신 산소에 못 갈 테니까.
우리 아이들이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살아갔으면 좋겠어. 아이들이 나처럼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세상 속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고 자꾸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상처를 드러내는 걸 꺼리지 않았음 좋겠어. 이민을 생각한 것도 어쩌면 내 안의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려는 것일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나이가 들면 좀 무뎌지려나. 사람들에게 남편 없다고, 애들 아빠 먼저 떠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때가 올까. ▣ 연탄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경험으로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박눈 투어, 겨울을 걷다 (0) | 2016.02.22 |
---|---|
“따뜻한 시도” (0) | 2016.01.29 |
고통이 가져다 준 깨달음, 자아를 찾아서 (2) | 2016.01.11 |
폐를 끼칠 수 있는 용기 (0) | 2015.12.28 |
글쓰기 치료의 시작 "내 마음은 ○○이다" (0) | 2015.12.18 |
귀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행복해지기 (3) | 201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