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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세월호의 진실 밝혀라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5) 참사 2주기를 맞아



어느 새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었습니다. 2년전 그날은 어느 누구도 이렇게 긴 시간동안 그 수많은 생명을 잃어야 했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을 줄 몰랐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척에 두고 구하지 못한 무기력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이 ‘파렴치한 세금도둑’으로 몰리게 될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홉 명이 여전히 바다에 갇혀있게 될 줄도, 실종자 가족에게는 ‘유가족이 되는 게 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상상 못했을 것입니다.


▶ 4월 22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열리는 세월호 2주기 추모전 <끝나지 않는 노래> 출품작 일부. 여러 손길이 모여 304명의 이름을 한땀 한땀 새겼다. 하지만 9명의 미수습자 이름은 새길 수도 없다.  ⓒ 화사

 

4.16의 충격…내가 거리로 나선 이유

 

그 참혹한 사건이 있고 2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거나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는 제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마련된 작은 천막에 들어앉아 노란리본을 만들곤 합니다.

 

저는 특별히 공감 능력이 뛰어나거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바빴고, 졸업하고 나서도 생계를 해결하느라 아등바등하던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14년 4월 16일.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뉴스를 따로 검색해 보지도 않던 저는 밤이 되어서야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통해 사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배에 갇혀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던 그 시간에 저는 공연을 보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는 사실이 끔찍했습니다. 미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새벽까지 뉴스를 검색하다 잠이 들었는데, 세월호 안에 갇혀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울면서 잠에서 깼습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언니들이 참석한 수련회 장소를 부모님과 함께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얕은 물에서 튜브를 끼고 놀던 저는 물살에 휘말려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순식간에 떠내려갔습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파랗게 질린 저를 아빠가 곧 발견해 건져주었습니다. 대여섯 살 때의 그 일은 아빠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어주는 추억이 되었지만, 몇 초일지 알 수 없는 짧은 순간의 공포는 온몸에 각인되어 지금도 강이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못합니다.

 

▶ 4월 4일 서울 청운동 피켓팅. 미수습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매일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피켓팅이 열리는데, 함께 할 사람들을 기다린다.  ⓒ 화사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생존자가 있기만을 기도하며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계속 세월호에 갇혀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냉담해졌고, 모든 걸 밝혀주겠다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던 유가족은 안산 팽목에서도, 서울 청운동에서도, 경찰에 가로막히곤 했습니다.

 

안산 분향소의 수많은 영정 앞에 섰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어리고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 앞에서 카메라를 의식하며 동선을 짜고, 리허설을 하고, 정치적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인지 먹먹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엇일지, 무엇일 수 있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움직였습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만큼은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막을 수 없을 만큼 큰 구멍이 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단식 중인 유민 아버지를 뵈러 갔다가도 혼자 펑펑 울며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관념 속의 ‘피해자’가 아닌 유가족들을 만나다

 

추석이 되어 우리 가족이 모였을 때,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운동 앞에서 노숙을 하고 계신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용기를 내어 청운동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는 누가 유가족이고 누가 방문자인지 알 수 없게 사람들이 뒤섞여있었습니다. 스님과 수녀님이 사이좋게 대화 나누며 노란리본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는 저에게 먹거리를 챙겨주시고,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며 리본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유가족이라는 걸 알았을 때,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은 나 자신의 감정일 뿐이지 유가족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쩌면 유가족을 대상화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상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자신이 없어서 내 관념과 상상 속의 틀에 가둔 게 아닌지, 작고 위태로운 ‘피해자’석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유가족을 꽁꽁 묶어둔 게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청운동 천막에 먼저 와 계시던 분이 가시면서, 제게 ‘감기 걸린 어머니가 약을 드시고 주무셔야 하는데 조명 때문에 못 주무신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등으로 조명을 가리고 함께 갔던 친구도 본능적으로 몸을 바짝 붙여 앉아 아픈 어머니와 체온을 나눴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아도,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될 수 있고, 사실 그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신체의 피로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 조금 참으면 감기에 걸린 어머니는 몇 시간이라도 잠을 주무실 수 있고, 감기가 나을 수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비장한 마음보다는, 시간을 내고 몸을 움직여 그냥 곁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함께 버티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 4월 13일 망원역 앞. 매주 수요일 세월호 진상 규명과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한 지 16개월이 되었다. 요즘은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함께해주어 힘이 난다.  ⓒ 화사

 

제가 만난 유가족들은, 그냥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고통을 겪어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알게 된 선배였습니다. 힘들 때 힘들어하고, 화날 때 화내고, 억울하면 따지고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피해자’라는 작은 틀에 가두려했고, 그 모습에서 벗어나면 의심하고 심지어 욕했습니다. 유가족들을 만나려하지도 않았고, 언론을 통해 쉽게 보고 듣고 판단했습니다.

 

서명운동을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플 때가 유가족을 향해 ‘자식 팔아 돈 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며 거리로 나왔지만, 자기 문제까지 끌고 와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을 인정받으려 하고,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시민봉사자들의 흠을 찾거나 심지어 유가족 흉을 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들로 인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봉사자들이 오해를 사고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가 힘을 잃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세월호를 통해 만난 건강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상처받고 지치지 않길 바랍니다.

 

총선 결과, 세월호 진상 규명에 청신호

 

지금은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이 반갑습니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져,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지요. 무엇보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해 20대 국회에 출마한 박주민 변호사가 당선된 것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협의회 법률대리인이던 박주민 후보(더불어민주당)의 선거운동에서 김관홍 민간잠수사가 운전을 맡았고, 영석 아버지가 인형탈을 쓰고 춤추며 홍보했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많은 세월호 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야권 후보들이 마음을 모아주고, 은평구 주민들이 지지해준 덕에, 암흑 속에만 있던 세월호 진상 규명에 드디어 작은 불빛 하나가 켜졌습니다.

 

▶ 4월 14일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상징으로 노란리본을 만들어 전국에 보낸다. ⓒ 화사

 

이제 참사 2주기가 지나고, 20대 국회를 시작하면서 세월호 진상 규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월호의 모든 진실이 밝혀져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왜 잃게 되었는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수많은 생명이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보아야 했던 국민들의 트라우마도 치유될 기회가 생기기를, 앞으로는 그런 참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일상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때까지 몸 여기저기가 쑤시더라도, 조명을 등지고 체온을 나눌 수 있도록 자세를 유지하고 앉아 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자세를 유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덜 힘들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교대해주면 좋겠습니다. 2주기에도, 앞으로도, 마음을 모으고 작은 몸짓이라도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화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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