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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정치!

<‘다른 정치’ 이야기>③ 다양성의 정치, 이나라에게 듣다



20대 국회를 구성하는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일다>는 녹색당과 공동 기획으로 평등의 정치, 삶의 정치, 다양성의 정치, 지속가능한 정치 등 ‘진짜 정치에 대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혐오의 정치에 저항하는 ‘평등을 위한 한 표’

 

올해 2월 29일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은 “동성애와 이슬람 관련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충격을 주었다.

 

박영선 의원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총선 국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Hate Speech)을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9일 경기도 용인시 총선 유세 과정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이 지역에는 동성애를 찬성하는 후보가 나와 있지 않나”,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우리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라며 성소수자 혐오를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혐오의 정치’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RainbowVote)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을 하고 있는 이나라 씨를 만나 혐오에 저항하는 정치, 다양성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나라 씨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로, 최근 발간된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2015, 현실문화연구)의 공동 저자이며, 영국의 사회주의자 해나 디(Hannah Dee)가 집필한 <무지개 속 적색>(2014, 책갈피)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이나라    ⓒ글 사진: 장서연

 

-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RainbowVote)가 시작된 배경을 들려주세요.

 

“이번 총선 전망이 좋지 않잖아요. 위기감이 들었어요. 성소수자 이야기가 어떻게든 나와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유권자 운동’은 사실 제가 선호하는 운동 방식은 아니에요. ‘투표할 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디에 투표하느냐’가 중요하죠. 하지만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은 ‘성소수자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잖아요. 또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 눈에 보여야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성소수자 혐오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태에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계속 이야기하기 위해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을 제안하게 된 거죠.”

 

- 레인보우보트에서 선정한 낙천, 낙선 대상자인 박영선, 김무성, 황우여 등은 이미 공천이 확정되었죠.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에서 발표한 낙선 대상자 명단엔 박영선 이름이 없던데요,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낙천 낙선 대상의 기준이 다른가 보죠?

 

“낙선 대상 선정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성소수자 혐오’가 시민사회의 낙선 대상자 선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아직까진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상황도 아니에요. 레인보우보트도 유권자 운동단체들이 모였을 때 이야기도 나누고, 총선시민네트워크와 유권자 운동단체들이 총선 관련 입장을 낼 때 연명도 했어요. 함께한 단체들도 ‘성소수자들도 유권자 운동을 하는 구나’ 알게 되고,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시민사회운동 안에서 성소수자 운동의 존재감을 높이는 것도 우리의 과제 중 하나죠. 소수자 혐오를 적극적으로 낙선 대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으려면, 성소수자 운동이 더 능동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처음 유권자 운동을 제안했을 때 기대했던 것과 비교해서, 현재 ‘레인보우보트’ 진행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을 두 가지 큰 축으로 기획했는데, 하나는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이고요, 다른 하나는 혐오 정치인들에 대한 폭로와 비판, 그리고 낙선운동이에요. 유권자 선언은 1만 명을 목표로 했는데, 5천명이 넘었어요. 성소수자 유권자 선언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3천명이 넘은 걸 보면,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이 있고 적극 참여하는 규모를 확인할 수 있죠. 아직은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을 알리기 위한 활동이 더 필요해요. 그래도 혐오 정치인 명단을 발표하고 ‘최악의 성소수자 혐오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직접 선정하는 캠페인을 하고, 그런 활동들이 언론에도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된 것 같아요.”


▶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RainbowVote) 성소수자 혐오의원 최악 중의 최악 명단.  

 

레인보우보트(RainbowVote)가 발표한 ‘성소수자 혐오 의원 최악 중의 최악’ 정치인 명단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김진표, 새누리당 김무성, 황우여, 이혜훈, 김희정, 홍문종, 손인춘, 김상민, 이노근, 김정록, 노철래, 국민의당 임내현 등이다.

 

레인보우보트는 또 지난 1일 ‘성소수자 인권 11대 요구안’에 대한 각 정당의 답변 결과를 발표했다. 레인보우보트가 제안한 요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 차원 성소수자인권기본계획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를 포괄한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 폐지 ▲동성결혼 인정 ▲다양한 동거 가구를 지원하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제정 ▲무자녀 요건과 과도한 외과수술 등을 강요하지 않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제정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존중하는 초중고 교육과정 마련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혐오폭력 방지 법제도 마련 ▲성소수자의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기관 행정 개선 ▲전환치료(탈동성애) 행사에 공공건물을 대관할 수 없게 UN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의 한국정부 권고(2015년 11월) 이행 ▲헌법에 명시된 정교 분리의 원칙에 따른 의정활동.

 

이 요구안에 대해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답변을 거부했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은 모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녹색당은 11대 요구안 외에도 ‘HIV/AIDS 감염인 고용차별 금지와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공약했다.

 

- 선거 이후에는 레인보우보트 활동을 어떻게 이어나갈 계획인가요?

 

“우선,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레인보우보트 활동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거예요.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많이 받고 있어요. 선거에 개입하고 유권자로서 성소수자 존재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의정활동이나 입법 과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성소수자들의 요구를 알리고 혐오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4월 1일 오전 구로역에서, 레인보우보트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공동으로 <20대 총선, 성소수자 인권 11대 요구안 및 각 정당 답변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글 사진: 장서연

 

- 한국 사회에 ‘혐오’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잖아요. 2014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는 집단적인 위력에 몇 시간씩 막히기도 했고,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장이나 성북구 주민인권선언식에 혐오단체들이 몰려와 집단난동을 부려 행사를 무산시켰죠.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그들 주장을 수용했고요.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선거 국면에서, 조직화된 혐오집단들의 힘이 더 가시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가 듭니다. 이러한 국면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현재의 국면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성소수자들이 가시화되고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하고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그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오기도 했겠죠. 그런데 저는 ‘혐오세력들이 지금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싶어하는가’라는 더 큰 배경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성소수자라는 존재와 의제가 이용 대상으로 잡힌 거라고 봐요.

 

‘소수자 희생양 삼기’ 정치는 단순히 ‘동성애 반대’로 치환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기독자유당도 ‘동성애와 이슬람 반대’를 같이 걸고 있잖아요. ‘동성애 반대’는 또한 ‘여성억압’과도 관련이 있죠. 여성들에게 특정한 역할, 즉 결혼과 출산을 강조하니까요. 그러니까 이것은 성소수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그들(혐오세력)의 방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보수 기독교라는 종교 문제로 접근할 수도 없어요. 물론 종교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지만, 교리 문제는 아니란 거죠. 같은 종교를 가져도 정치적으로 상반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치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사람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보수우익들은 ‘공포’를 사용해왔어요. 대표적인 게 ‘종북’, ‘빨갱이’, 북한에 대한 공포죠. 거기에 성소수자 의제가 새롭게 진입한 거라고 봐요. 이제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할 수 없게 된 한국 사회의 위기 속에서 희생양과 속죄양이 필요한데, 선택된 집단 중 하나가 성소수자인 거죠.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더 민주적인 삶, 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낙관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진보라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진보는 내 것을 빼앗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 혐오의 핵심이 정치에 있다는 얘기인 것 같네요, 그렇다면 오늘날의 혐오에 맞서는 운동은 어떻게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우익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소수자 혐오’를 문제삼고 싶어요. 결국 세계관의 충돌이죠.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필요도 있는데요, 우익운동과 우익정치의 문제를 비판하는 정치적 대응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익정치가 다수의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우익정치를 반박하며 다른 세계관과 다른 가능성, 다른 전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전선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는 성소수자 혐오에 대응하고, 이주민은 이주민 혐오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치적 대응, 즉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주장이 노동자의 권리를 반대하는 주장,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과 한 몸처럼 섞여 있거든요. 우리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성적으로 보수적이고, 차별 구조를 유지하면서, 경쟁과 위계질서를 수용하게 만드는 절망적인 정치’에 맞서 싸워야 하죠. 저는 한국사회에도 ‘반우익운동’이 생겨야한다고 봐요.”

 

▶ 해나 디 <무지개 속 적색>(옮긴이 이나라) 원서(The Red in the Rainbow: Sexuality, Socialism and Lgbt Liberation) 표지


- 최근에 원내정당 중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과 대표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 선거공보물을 보고 놀랐는데요. 태극기와 군복,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며 ‘반우익’이 아니라 우익에 포섭된 느낌을 받았어요. 이것이 ‘현실정치’인 건가 싶었죠.

 

“정의당의 그런 모습이 현실정치를 오른쪽으로 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익들이 기대고 있는 정서나 국가주의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의 기준을 더 오른쪽으로 당기고 있는 거죠. 물론 정의당 당원들도 단일한 입장은 아닐 거라고 봐요. 태생이나 기반이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국민의당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의당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죠. 당 안에서 토론이 잘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수권정당’하면서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자며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양상이잖아요.

 

“지배질서, 지배자들에게 도전하지 않고 수권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나 봐요. 혹은 도전하지 않아야지만 수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지배질서를 뒤흔들어 판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그 세력 균형 그대로 유지해서 ‘내가 수권해도 너희들은 안전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수권을 해도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은 한국정치의 지형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이동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애국주의, 군사주의를 반대하거나 문제 제기하면 ‘컷오프’ 되는, ‘너는 비현실적 이상주의자야’ 비웃음 당하는 수준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꼴’이 나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정치권에서 누가 ‘국가보안법 철폐’를 이야기해요?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질적인 변화가 있으려면 그 부분을 깨야 한다고 보거든요. 내가 원하는 세상은 태극기에 경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아니에요.”

 

- 예전에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셨지요? 그 시기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민주노동당은 수년간의 노동조합운동과 민중운동의 토대로 만들어진 정당이잖아요. 기성정치의 한계에 대해 공감했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대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도 다양한 정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토론하고, 논쟁하고, 문제도 있고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저는 2001년 무렵부터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했고, 그 후엔 서대문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했는데요. 당시 당의 기본 단위로 ‘분회’가 있었어요. 대중적인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었던 거죠. 분회모임을 하면 10명, 20명씩 모였어요. 서대문 지역만 해도 북아현분회, 홍제분회, 홍은분회 몇 개 있었고, 한 지역위원회에서 모이면 40명, 50명 넘었으니까 활력이 있었죠. 당원 수도 많았고, 한창 성장하던 시기라 새롭게 오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당원모임에 가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캠페인도 하고, 동네 돌아다니며 유인물을 돌리고, 1인 시위를 하거나 서명운동을 하고… 정당의 일상적인 활동이었죠.

 

그런데 제가 당 활동을 재밌게 했었던 시기엔 민주노동당에 국회의원이 없었어요. 민주노동당은 사회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사회운동을 끌어나가는 정당이었거든요. 민주노총이나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이나 다른 대중운동 단체도 있었지만, 정당이 그런 단체들을 연결하는 고리였어요. 그래서 법제화라든지 기성 정치의 법칙들에 얽매이지 않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 운동을 나누고 공유하고 키우는 일을 정당을 통해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 민주노동당은 2004년에 국회에 진출했잖아요.

 

“2004년에 당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선거운동을 했는데, 그 규모나 활력에 있어서 기성정당에 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정치적 상황이 있었죠. 직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이 있으면서 전반적으로 정치가 왼쪽으로 이동했던 시점이죠. 수십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운동이 벌어졌던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만 참여한 운동이 아니었죠. 탄핵 국면은 사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이 크던 상황에서 벌어졌죠. 하지만 그만ㅋ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광범위했던 거예요. 그러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270만 표를 넘게 득표한 거죠.

 

저는 ‘내가 대신해주겠다’는 정치가 아니라. ‘당신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정치를 원해요. 그런데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하고 나서, 당의 무게중심이 확실히 원으로 갔어요. 의원들이 활약하고 좋은 법안을 발의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당원들 역할 비중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거죠. 사실 10인의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보면 소수잖아요.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 사람과 진보정당 국회의원 한 사람의 역할은 질적으로 다르다고들 하는데, 국회의원이 생긴 진보정당이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이나라  ⓒ사진: 장서연


- 진보정당과 성소수자 운동과의 연결 고리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많이 갖고 있을 텐데요. 그 전망에 대해 얘기 듣고 싶네요.

 

“성소수자들의 정당 활동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은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 공유하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총체적인 정치 활동을 하는 곳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구요. 성소수자 인권이 환경, 노동, 복지, 교육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이해하고 또 실천하기 위해서 정치 활동만큼 좋은 게 없다고 보거든요.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 등에서 성소수자들이 활동하고, 이런 진보정당들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인권이 보편적인 정의와 평등, 생태 가치의 실현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사회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당원들이 사회운동을 일구는 사람들로서 당의 전망과 전략에 대한 설득을 하고, 당 안팎으로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요즘 녹색당을 보면 당원들 활력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주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성소수자들도 많고요. 녹색당이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더 주도적인 활동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녹색당이 국가주의나 보수 의제들로부터 자유롭지만, 녹색당도 성장하면 그 문제에 대한 입증을 정면으로 요구받을 거거든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성소수자 활동가인 해나 디가 쓴 <무지개 속 적색>을 번역했잖아요. 저는 공익변호사로서 제도적 차원에서 성소수자의 권리와 차별금지, 이런 관점에서 운동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사실 좀 충격에 빠졌어요. 성소수자에게도 같은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을 넘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묻고 있잖아요. 성소수자 운동에 바라는 점을 얘기해주세요.

 

“저는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했으면 좋겠는데, 규모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되면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전망과 정치적 고민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치적 고민의 목소리가 풍부하지 않은 운동, 변화의 가능성에 제한을 두는 운동은 어떤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적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무지개 속 적색> 맨 마지막에 나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에요. ‘이상향이 없는 세계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풍부하게 열어놓고 운동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세계에서 뻔히 보이는 목표만 가지고는 희망이 없어요. 오늘날 결혼 평등(동성결혼)이 이루어진 곳이 많지만, 그곳에도 여전히 폭력과 차별, 혐오가 만연해요. 세계의적으로 우익정치가 성장하고 있는 맥락 속에 한국도 놓여 있죠. 형식적인 평등도 중요하지만, 이를 테면 흑인 대통령이 있는 미국에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을 해야 하는 현실을 보세요. 이런 세계가 우리의 꿈은 아닐 겁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불가능할 거라고 결론짓고 활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지금 문제에 대항했으면 합니다.

 

혐오 발언에 화가 나는 건 ‘내가 인간답게 살고 싶고 존엄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존엄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것들이 무엇인가, 단지 인권헌장에 한 줄 들어가는 문제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억압이나 차별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바라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면서 사람들의 관계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 장서연 기록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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