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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들어줘 엄마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⑦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와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편집자 주

 

엄마, 가족, 이 해묵은 서운함

 

한 달 즈음 되었을까, 나는 자꾸만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다.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 감정을 지배하는 기억)를 찾아가는 이 심리치료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해묵은 서운함이 새삼스레 자꾸 치받아 올라와 그렇다. 엄마가 나의 슬픔, 좌절, 고통의 순간들을 외면했다는 것. 그건 날카로운 배신감과 깜깜한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감히 단언컨대, 심리적 고비마다 망설임 없이 엄마에게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 발로 심리치료를 찾을 만큼 절박한 일은 거의 없을 거다.(엄마랑 팔짱끼고 오겠지) 엄마란 그런 존재여야 하니까.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 그럴 때 엄마는 때로는 잔소리를 퍼붓고 타박하고 혼도 내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무조건 내 편, 내가 완전히 쓰러져 꺾일까 봐 곁에서 온몸으로 떠받쳐 줄 것이다. 물론 이런 엄마가 사실은 참 희소하다는 것도 안다.

 

▶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하소연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photo by Eric Froehling


우리 엄마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다. 스물여섯, 얼떨결에 시아버지와 층층이 시누이가 사는 시댁에 들어와 대여섯 해를 꼬박 시집살이하면서 애 둘을 낳아 키웠다. 이후 시아버지가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자 또 몇 년을 병수발을 들었다. 자아실현 같은 게 들어설 자리가 없는 고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시간이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남편이 비슷한 질환으로 수술을 받아 겨우 살아나는 아슬아슬한 시간이 이어졌다. 엄마도 참 힘들었지만 당장 숨넘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웬만한 건 다 투정이었다.

 

결국, 온갖 스트레스를 안으로만 켜켜이 삭히다가 엄마는 만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됐다. 지난 20년간 크고 작게 오가던 그 ‘마음의 감기’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서 제대로 치료받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갱년기 장애’라는 버젓한 이름을 얻고 나서야.

 

우울증은 대인관계와 자아존중감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치명적이다. 그만큼 심각한 질환이고 ‘완치’도 어렵다. 독일에서라면 공공보험 보장을 받으며 몇 번이고 입원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보통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못 돌보는데, 우리 엄마는 독하게 버틴 것 같다. 티 안 내려고. 엄마로서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엄마도 힘들었으니까…


ⓒ Johnathan Harris 作 <Truth in Dreams II> 우울함이 지배해온 엄마의 내면은 이런 모습일까.


겉으로 보이는 엄마는 늘 부지런하게 살림을 꾸리고 자식에게 참 헌신적이었다. 밝고 명랑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쌀쌀하거나 울퉁불퉁하지도 않았다. 자녀교육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고, 자식들 영양과 시험 기간을 꼼꼼히 챙겼으며, 세 자식에게 각기 필요한 걸 충족시켜주려고 열성인 전형적인 대한민국 엄마였다.

 

이를테면 잔병치레가 심한 언니에게는 일상적인 보살핌을 많이 주고, 터울이 큰 꼬마 동생에겐 관대한 사랑을 더 주고, 학교에서 성과가 뛰어났던 나는 무리해가며 좋은 사립학교에 보낸 게 엄마가 각기 맞춤한 관심과 지원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다만 나에게 심리적 지원까지 해줄 여력은 못 되었던 것이다. 우울했던 엄마는 아무리 자식의 것이라도 더 이상의 심리적 고통은 감당할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나의 고통을 외면해버린 것 아니었을까. 게다가 감춘다고 감췄던 엄마의 모든 불안과 불만족, 긴장과 번민은 엄마의 성격을 꼭 닮아 예민한 나에게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수능을 망쳤을 때, 나는 방문 뒤에서 혼자 울고 엄마는 그저 내게 등을 돌리고 땅이 꺼질 듯 한숨만 쉬던 일. 엄마의 따뜻한 품이 간절할 때 엄마는 그렇게 멀리 등지고만 있던 적이 많았다. 실은 나를 위로하기엔 엄마 자신의 충격과 실망, 좌절이 너무 컸던 걸까, 짐작해본다.

 

‘둘째는 못 하는 게 없지’ 한결같은 내 포지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에게 나는 늘 자기 관리에 열심이고 영특하며, 그만큼 성취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내게 좋은 일, 잘한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칭찬과 축하를 보낸다. 반면 내게 나쁜 일이 생기면 다들 참으로 무심하다. 우리 가족 안에서 나의 ‘포지션’은 으레 3점 슛을 성공시키는 선수 같아서, 발목을 삐끗해 코트를 나오거나 연달아 슛에 실패하면 그건 모른 척 얼른 넘어가야 하는 어색하고 당황스런 상황인 것 같다.

 

지난겨울에는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이제는 우리 셋 모두 성인이 된 걸 기념하며 막창에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자매들에게 고백했다. 실은 어릴 때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섹스에 문제가 있으며, 그게 내가 여태 페미니즘이 어쩌고… 했던 배경이라고. 그리고 독일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나는 질문 세례가 쏟아질 것을 각오하고 이제는 무엇이든 말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뜨악한 분위기로 잠시 얼어붙었던 테이블을 언니는 “그랬구나… 너무 속상하다… 그래도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라는 말로 수습했다.

 

우리는 그 날 술을 마저 마시고, 수많은 화제들로 수다를 떨고, 번화한 거리를 누비며 쇼핑도 하고는 무사히 귀가했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나의 폭탄고백은 그냥 조용히 덮여있다. 두 자매 모두, 호기심도 없는 사람들처럼 그에 대한 질문조차 안 한다. 며칠 전 가족 단톡방(모바일메신저 단체채팅방)에 뜬 엄마의 한마디 “그래, 우리 둘째 딸은 못 하는 게 없지.” 오늘도 한결같은 내 포지션이다.


▶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꼈다. ⓒphoto by Volkan Olmez


오늘은 말해볼까

 

이렇듯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해묵은 앙금들이 뜨끈하게 융해되어 다시 내 마음을 휘젓고 다닐 때, 그나마 긍정적인 건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같다는 점이다.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초반에 꼽은 ‘좋은 기억 10가지’에서 왜 가족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지 나는 의아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유대감이 좀 약한 가보다. 늘 좋은 모습, 잘하는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버거웠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대해선 잘 털어놓지 못했다. 겨우 털어놔도 내가 기대하는 공감과 지지가 매번 어긋나자,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몇 번은 진지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이 모든 서운함과 외로움, 이질감의 ‘원인 기억’들을 엄마에게 털어놓아 볼까 하고. 그러나 내가 아무리 고르고 고른 문장들을 말한다 해도, 엄마에겐 하나하나 화살처럼 아프게 꽂힐 거란 생각에 차마 입을 못 연다. 내가 많이 아팠었다는 것, 그로 인해 지금도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엄마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은 황혼녘을 살고 있는 엄마에게 회한거리만 늘려줄 것이다.

 

이제 와서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든다. 나이든 부모에게 생각과 태도의 큰 변화를 바라는 건 무리니까. 친구들과 종종 그런다. 부모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이해받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냐고. 가족에게 정 못 하는 얘기는 그냥 친구나 애인에게 풀며 살자고.

 

누구나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많다. 내가 유별난 경우도 아니다. 그래도 원망과 미움은 돌아서면 잠잠해지고, 오래 안 보면 그립고 궁금한 게 가족이다. 게다가 나는 멀리 떠나와 그네들과 함께 일상을 나눌 일도 없어져 버렸다. 이제 내가 바라는 건, 엄마가 나의 자립을 후련히 받아들이고 엄마의 상식에서 벗어나더라도 내 삶의 선택들을 존중하고 응원해줬으면 하는 것뿐이다. 이것도 너무 큰 욕심일까?

 

보이스톡(인터넷 기반의 무료 통화)의 경쾌한 수신음이 울린다. 엄마다. 어쩐지 오늘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화하면 엄마는 또 같은 걸 묻고, 같은 잔소리를 하겠지. 오늘은 말해볼까.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아니, 사실 요즘 좀 힘들어. 세상이 무너질 일은 아니니까 겁부터 내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들어줘 엄마…  하리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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