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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사람 시골생활 분투기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②



※ ‘문화기획달’에서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으로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를 진행 중입니다. 이 캠페인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 안에서 제기된 쟁점과 대안에 대해 예민하게 짚어보는 연재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귀농귀촌 여자들의 토크파티가 열리다

 

지난 4월 23일 토요일 저녁, 문화기획달에서 운영하는 지리산 여성전용 생활창작공간 ‘살롱드마고’(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동네 여자들 10여명이 모였다.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의 첫 번째 프로젝트, 여자들의 토크파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가 열리는 날이었다.

 

본격적으로 수다가 펼쳐지기 전, ‘살롱드마고’의 불이 꺼지고 막이 올랐다. 무대에는 두 명의 여자사람이 나타났다. 한 명은 몸빼 바지를 배 위로 추켜 입고 인자함과 완고함이 교차하는 얼굴로 서 있는 시골할머니, 다른 한 명은 부푼 기대를 안고 이제 막 시골에 내려온 도시처자다.

 

▶ 동네극단 떼아뜨르 마고의 <여자사람 시골생활 분투기> 공연 장면   ⓒ문화기획달

 

발랄한 도시처자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 양반 데리고 와.”

조건이 좋은 시골집을 어렵사리 구하게 되어 마냥 들떠있는 처자는 주인 할머니와 덕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뜸 “주인양반은 같이 안 오신 건가? 집을 계약하려면 주인양반을 데리고 와야 되는 거 아니겄어” 하신다. 혼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처자에게 할머니는 단호하게 못을 박는다. “계약서라는 것은 주인양반이 도장 들고 와서 뚫어지게 찍어줘야 성사가 되는 것인디.” 처자는 계약서에 도장 찍어 줄 주인양반이 없어서 끝내 계약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남녀마을회관 부동석.”

시골생활이 낯설기만 한 도시처자는 복달임(복날에 그해 더위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고깃국을 끓여먹음) 날 동네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는다고 하기에, 일도 거들고 인사도 드릴 겸 마을회관에 갔다. 이미 상이 차려진 곳은 남자들 자리고, 여자들은 따로 먹는 거란다. 이게 시골의 밥상머리 법도구나 하면서 아직 여자들 자리에 상이 놓여있지 않은 것을 본 처자는 “상 가져 올까요?” 물어본다. 할머니 한 분이 “상? 아, 상! 내가 가져 올게.” 하시더니 신문지를 가지고 와서 방바닥에 펼쳤다. 여자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신문지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우리의 출전 종목은?”

마을 족구대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족구대회는 남자들이 팀을 꾸려 출전하는 마을의 큰 행사다. 남자들은 족구 하니까 여자들은 발야구 하자고 얘기하는 도시처자에게, 동네 언니가 말한다. “우리가 출전할 종목은 이미 정해져 있네요.” 여자들 경기가 뭐냐고 물어보는 처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누가, 누가, 잘하나, 설거지 종목!”

 

네 번째 에피소드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야.”

마을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동네 노총각은 혼자 살고 있는 처자에게 감자, 양파, 포도 등 인심 좋게 수확 때마다 농산물을 가져다준다. 처자는 점차 부담스러워져서 마다하는데, 이를 알게 된 할머니의 일갈.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나서 지금 와서 ‘이제 우리 거리를 뒀으면 좋겠어요.’ 이게 말이나 돼!”

 

무대 위 도시처자는 마지막으로 애처롭게 울부짖는다.

“저 정말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요?”

 

성폭력, 소문나 봤자 여자만 손해

 

동네극단 ‘떼아뜨르 마고’의 <여자사람 시골생활 분투기> 공연이 끝나자마자 살롱드마고에 모인 동네 여자들은 “나도 저랬어!” “저거 내 거야!”라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사연들에 공감을 표시했다.

 

도시에서 시골로 온 여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토크파티>의 오프닝 공연이 열화와 같은 성화와 반응으로 막을 내렸다. 이어 4월 한 달간 문화기획달에서 진행한 ‘농촌여성 대상 성문화 실태조사’ 통계 결과가 공개되었다. 50명의 다양한 농촌여성들이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먼저, 농촌에 거주하는 비혼(非婚)여성이 1인가구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에 대한 이야기가 발표되었다. 비혼여성들이 제일 불편하게 여기는 점은 ‘집을 구하고 관리하는 일 등 생활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오프닝 연극에서 제시된 상황처럼, 주인양반(남성)을 대동해야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적인 정보에 대해 물어보는 것’, ‘마을의 가족중심적인 문화에서 소외되는 것’, ‘결혼이나 연애를 종용하는 것’ 등이 농촌 생활의 어려운 점으로 지목되었다.

 

기혼여성들의 경우, 가정 내 성차별에 대해 토로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기혼여성 중에서 약 70%가 ‘가정 내 성문화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정 내 성역할의 명확한 구분’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다음으로 ‘배우자의 가부장적 태도나 발언’을 꼽았다. 기혼여성 대다수가 남편과 집안일, 돌봄노동을 균등하게 나누길 원했고, 가부장적 태도를 가진 배우자에게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이번 통계 결과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마을의 성문화가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기혼여성은 100% ‘아니오’라고 답한 반면, 비혼여성은 60%가 ‘아니오’, 40%는 ‘예’라고 답했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여성과 싱글로 사는 여성이 마을의 성문화에 대해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은, 결혼 유무에 따라 여성들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농촌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지역 사회의 불평등한 성문화는 ‘마을행사나 활동에 남녀 성역할이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또, 직간접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25%가 ‘있다’고 답했다. 그 중 70%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주변에 알렸지만, 소문나 봤자 여자만 손해고 계속 볼 사이면 사과를 받아주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구체적인 성폭력 사례에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남성이 무단 침입을 시도하거나, 무단 침입하여 성추행한 사건’이 제일 많았다. 혼자 농촌에 와서 사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에 노출된 농촌의 주거환경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비혼이었을 때 섹스 파트너 제안을 받았다’, ‘술자리에서 내 가슴에 대해 언급했다’, ‘여성의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해 지적했다’, ‘지역 유지가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제보도 있었다.

 

농촌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 바꿔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들(70%)은 많았지만, 상세히 들어가면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였다.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시대의 요구나 개인의 사정에 따라 성역할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답변자가 53%, ‘성역할 구분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하는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인간의 본성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답변이 47%였다. 가부장제와 젠더 이슈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생각의 차이와 갈등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 여자들의 토크파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홍보 포스터.   ⓒ문화기획달

 

‘어디 여자가 소리지르냐’ vs ‘남자가 그럴수도 있지’

 

‘농촌 여성 대상 성문화 실태조사’의 발표가 끝나자, <토크파티>에 모인 여성들은 특히 지역의 성폭력 사례에 대해 놀라워했다.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한 여성은 “예전에는 집 문도 안 잠그고 생활했는데, 지금은 무서울 때가 있다. 집에 남자가 없으니까 누군가 들어와서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생각이 들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신고는 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알려주어 미리 조심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듣고 2년 전에 시골에 내려와서 혼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이렇게 물었다.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을 때, 제가 피해자인 경우 제가 마을을 떠나야 하나요?”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농촌의 현실이다.

 

왜 여자들이 겁을 먹고 조심을 해야 되나? 가해자를 처벌하고 단속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농촌에서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어렵게 발붙인 마을을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가해자가 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동네 언니의 남편, 누구누구의 아빠, 지역 행사를 같이 준비하는 사람, 같은 동아리 회원 등 관계가 다면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변의 반응이다. 성희롱, 성추행 등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참아라’, ‘좋은 게 좋은 거야’ 등의 반응이 나온다. 심지어 ‘여자가 어떻게 처신했기에?’ 라며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고,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을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농촌 사회에 내재된 가부장적 성인식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좀더 들어보자.

 

“우리 동네에 있는 할아버지가 이 동네는 양반동네라잖아. OOO이 혼자 와서 살고 있는데 아무도 안 건드린다잖아. 혼자 사는 여자가 있어도 우리 마을은 아무도 집적거리지 않는다고. 이 마을은 양반이라고.”

 

양반되기 참 쉽죠? 혼자 사는 여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도 된다는 인식이 그 연령대가 갖는 보편적인 정서라는 얘기다. 동네에서 남자한테 소리 지르며 싸운 적이 있다는 한 여성은 ‘어디 여자가 소리 지르냐?’고 한소리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남자를 존중해야 된다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농촌 남자들 입에서는 ‘여자들은’ 어쩌고 하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데,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런 남성중심의 보수적인 문화에 도시 남자들도 쉽게 흡수된다. 농촌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남성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과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가부장제 문화, 농촌이라서 더 허용돼야 하는가?

 

농촌에서는 유독 가부장제의 위계가 더 세밀하게 드러난다. 그 이유는 농촌의 노동과 삶의 특성상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구분되고, 그것이 성역할 규범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실제 농촌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한 해석에 동의할 수 없게 된다.

 

“농촌여성이라서 부당한 거는, 농사일 같이 하고 들어오면 남편은 쉬거나 씻고 있는데 나는 밥을 차려야 된다는 거야. 그 와중에 애까지 챙겨야 되고. 일반 직장 다니면서 맞벌이 할 때도 똑같았어. 나도 돈을 벌고 왔는데 남편은 텔레비전 보고… 나는 싱크대에 서 있는데 갑자기 서러워지더라고. 몸도 안 좋고 한 날은 너무 서러워서 싱크대 앞에서 펑펑 운 적도 있었어.”

 

“남편이 상추 농사하자고 해서 하우스 지어놓고. 나는 상추 따러 가는데 남편은 동아리며, 모임이며 조직 활동하느라 매일 회의하러 간대. 혼자 아침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상추 따고 그랬다니까.”

 

농사일에는 여성과 남성의 노동력이 함께 투입된다. 밭에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할머니들이다. 반면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어엿한 농업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부부가 함께 농가를 운영하는 다음 여성의 사례를 들어보자.

 

“농업경영체 등록을 해도 남자가 주가 되는데, 얼마 전에 여자도 동등한 자격을 주어야 된다고 해서 공동경영주로 등록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겨서 저도 신청을 했어요. 단,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는 게 조건이더라고요.”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는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성농업인은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분류돼 왔다.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더라도 남자만이 농업경영주였던 것이다!

 

올해 3월 24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여성농업인도 배우자의 동의를 얻으면 공동경영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여성농업인의 직업적 지위를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여성농업인정책연구소에서는 이번 조치를 “사회적으로 여성농업인의 지위를 인정한 획기적 진전”으로 해석했다. 단서 조건으로 ‘남편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농촌여성들의 불평등한 지위는 제도적인 부분에서도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농사 이외의 직업을 갖는 비교적 젊은 부부들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더 많이 하고 돈을 벌어오는 데도, 남편한테 집안일을 더 많이 하라고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남편이 돈을 벌었을 때는 전적으로 내가 살림을 했는데, 지금 입장이 바뀌었지만 남편한테 요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내면에 저항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남편이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고 남편도 ‘내가 남들보다는 낫다’고 얘기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봤을 때 우리는 아직 동등하지 않아요. 근데 주변에서 ‘남편이 그만 하면 됐지’ 이런 반응도 문제구요. 결국 남편한테 집안일을 더 하라고 얘기하고 남편도 수긍했지만, 그걸 얘기하는데 내가 머뭇거렸다는 게 놀라웠어요.”

 

“맞벌이했을 때는 집안일을 비슷하게 나눠서 했어요. 근데 아이를 낳고 일을 안 하니까 집안일은 내 차지가 된 거예요. 육아랑 살림을 혼자 하고 남편은 직장 일만 하는 게 동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남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자기 영토가 넓어지는데, 여자들은 가만히 있으면 계속 자기 영토가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자들이 텔레비전 보고 있으면 ‘그거 보지 말고 이거 해.’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주변에 할 일이 있어도 자기 일이라도 생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계속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집 안에서 부부가 평등한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아이도 그걸 보고 배우니까요.”

 

“오늘 <토크파티>를 와야 돼서 남편한테 미리 얘기도 하고 애도 맡기기로 했는데, 남편이 고사리 삶는 일을 하다가 중간에 와서 내 모임 시간과 상관없이 밥상을 차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도 늦게 오고 애도 못 맡기고 데리고 왔어요. 이런 생활이 너무 힘들고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갈등이 많은데 내가 주장 안 하고 싸우지 않으면 우리 애한테까지 대물림될 거 아니에요? 나 혼자 해봤자 성깔 있는 여자밖에는 안 되고요.”

 

‘남자들이 힘든 일을 하니까’라는 변명은 그만!

 

위에서 <토크파티>에 참여하기까지의 고충을 토로한 여성의 사연을 보면, 부인 위에서 군림하려는 남편의 실체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남자들이 하는 일은 지역모임 술자리에 가든, 돈을 벌어 오는 것이든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반면 여성의 일, 약속, 살림과 육아는 남성이 하는 일에 비하면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런 맥락에서 부인의 약속 따위는 상관없이 ‘밥상을 차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밥상을 받는 일, 깨끗하게 청소된 집에 들어가는 일, 말끔하게 세탁된 옷을 입는 일, 토끼 같은 아이가 밝게 커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남자들이 바깥일을 하는 대가로 당연히 누려야 되는 일상이다. 반면 새벽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침상을 차리는 일, 농사일 중간에 참을 준비하기 위해 음식을 하는 일,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상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치우고 밀린 빨래를 해치우는 일은 여자라면,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다. 여성이 농사일을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살림과 육아의 일차적인 책임과 의무는 여성이 진다.

 

자, 이쯤 되면 농촌이라서 ‘남자들이 힘든 바깥일을 더 많이 하니까’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 당연한 거고 더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힘든 바깥일을 같이 하는데도 남자들만 집안일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내면에도 여자가 가사노동을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깨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토크파티>에 참여한 여성들은 그동안 농촌에 와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툭 터 넣고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갖는 불편함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실체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마을의 지배관계와 구조가 드러났다. 다음 편에서는 그 지점을 상세히 짚어보려 한다. 지역 내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이제 퉁 치지 말자’ 캠페인의 앞으로의 여정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 명심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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