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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Bra No Problem” 브라를 벗다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②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 편에 이어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일상에서 이어가는 가슴해방 전략, 노브라


지난 기사에서는 개인적, 사회적 의미의 몸 해방을 위한 “Free the Nipple”(젖꼭지에 자유를) 캠페인에 직접 참여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물론 모든 사회운동에서 꼭 해야 할 고민이 남아있다. 집회와 행진, 발칙한 축제, 기자회견과 탄원서 등등 말고도 이러한 캠페인의 정신과 메시지를 ‘일상에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다.


▶ 브라를 안 한 내 가슴. 오늘날 세계 어딜 가더라도 산업화, 도시화된 곳이라면 여성의 가슴이 브라에 반듯하고 봉긋하게 잘 싸여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왜? 라고 묻기 시작하면… ⓒ하리타

 

작고 사소하게, 그러나 의연하고 끈질기게 지속하여 견고한 사회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내는 일. 가랑비 내리는 날 호수물 표면에 수많은 파문이 끊임없이 일듯 그렇게 계속되는 어떤 것. 젖꼭지 캠페인이 그리는 미래,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웃통을 벗어제낄 날이 하루아침에 올 수는 없다.

 

노브라(No-bra)가 그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푹푹 찌는 더운 날에도 코끝 시린 겨울에도. 추리닝 입고 집 앞 슈퍼에 나갈 때에도, 모처럼 차려입고 나들이 갈 때도. 급기야 학교와 직장에서도 브라 없이 다니는 거다. 이것은 주변 세계와 사람들에게 몸-둥근 가슴윤곽과 두 개 젖꼭지-으로 말을 거는 일이다. 매일 매일 끈질기게, 단, 별 일 아닌 듯.

 

오늘도 내 가슴이 버스 옆자리 앉은 사내에게 말한다. 뭐라고 말할까? ‘봐, 난 브라 안했어. 가만 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지? 당신 가슴이나 내 가슴이나 다 가슴이잖아’, ‘브라가 얼마나 불편한지, 때마다 신경 써서 사 입고 골라 입기 얼마나 귀찮은지, 당신도 들어봤지? 그래서 안 해.’

 

노브라(No-bra)는 이미 액티비즘

 

사실 이미 노브라, ‘브래지어 안 입기’는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로 북미와 유럽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의 한 고등학생은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자기검열과 시선 폭력에 신물이 났는지, 자기 동네에서 직접 ‘노브라 데이’(No-bra Day) 캠페인을 열었다. 프랑스 웹사이트 “Boobstagram”은 인스타그램의 가슴 검열 정책을 풍자하며 역시 ‘노브라 데이’(10월 13일)를 조직한다. 이 사이트는 유방암 환자를 위한 캠페인도 연다. ‘브라를 그만 입으면 생기는 일곱 가지 일들’ 같은 기사가 요리, 건강, 연예 섹션에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페이스북 페이지 “No Bra No Problem”에는 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 ‘노브라 데이’를 조직하는 프랑스 웹사이트 Boobstagrm  ⓒboobstagrm.fr

 

2014년 여름, 한국에선 “이것도시위”라는 이름을 걸고 예닐곱 명의 여성들이 홍대에서 브라를 모아 자르고 가두행진을 했다. 미국 본사로부터 페미니즘 관련 소재나 논조를 상당수 빌려오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서도 이슈화한 적 있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우후죽순 열리는 이러한 게릴라 캠페인들에 참여한 여성들은 건강과 편의를 이유로 들거나, 패션업계의 지나친 상술과 가슴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에 맞서는데 동기가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브라를 하자 말자, 혹은 해선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옷 쇼핑이 몇 안 되는 취미이고, 브라-팬티 세트를 곱게 입은 자신이 너무나 섹시하다고 느끼는 사람, 가슴이 커서 스포츠브라 없인 뜀박질이 고통스러운 사람은 브라와의 인연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브라가 아프고 답답한데 지나친 시선이나 뒷담화, 사회적 불이익이 두려워 못 벗는 경우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

 

내가 처음 노브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건 언제였을까? 잘 모르겠다. 좀 티가 나더라도 브라 따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의 씨앗은, 언젠가 슬며시 내 안에 들어왔다가 별 계기도 없이 어느 날 밖으로 싹을 확 틔웠다. 몇 년 전, 겨울 날 출근 준비를 서두르다가 깜빡 잊고 나갔는데 별 일이 없었다. 이 경험이 긍정적으로 강화가 되었던지 이후에도 몇 번을 더 ‘실수로’ 안하다가 브라와 영영 작별했다. 참고로 내 브라 사이즈는 B컵. 안 하면 티가 난다. 특히 얇은 옷 한 장만 걸치는 여름에는 누가 봐도 이건….

 

유방암, 쳐진 가슴, 지겨운 잔소리…

 

▶ 10대부터 10년 넘게 입은 ‘부인용’ 브라의 전형. 와이어나 쿠션이 없고 안쪽에 부드러운 면이 덧대있다. 소재는 인견과 자갸드 면 혼성. 보정력? 제로. 유두를 가려주고 보온효과가 좀 있다고 보면 된다. 나의 노브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나? ⓒegoodpeople.co.kr


브라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은 사실 우리 엄마 때문에 일찌감치 갖고 있었다. 엄마는 딸 셋을 다 모유 수유로 키우면서 탱탱한 가슴에 대한 애착은 접었고, 정장을 입을 때도 편할 걸 제일로 치는 실용파라 일찌감치 와이어 브라를 다 치웠다. 요즘 개발된 무슨무슨 신소재 말고 예전부터 흔히 ‘부인용’이라 부르는 와이어 없는 면 브라가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그것만 입었다.

 

십대인 우리에게도 사이즈가 작은 부인용 브라를 사다주셨다. 와이어나 ‘뽕’, 나일론 장식으로 모양 낸 브라는 통풍이 안 되고 가슴을 내리눌러 유방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얘기를 듣고서 그러신 거였다. 다만, 가슴이 쳐지니까 브라를 아주 안하는 건 안 된댔다.(엄마가 권한 브라는 어차피 가슴을 전혀 못 받쳐 주는데…) 나는 ‘예쁜 브라’가 지극히 불편하다는 걸 몇 번 체험해보곤 군말 없이 엄마 뜻에 따랐지만(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언니는 작은 가슴이 콤플렉스라며 한사코 ‘엄마가 위험하다’고 말리는 종류의 브라를 고집해서 잔소리를 내리 들었다.

 

브라를 하면 정말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아질까? 사실 의학계에선 여전히 논쟁중이다. 유선의 흐름을 압박해서 어쩌고… 하면서 꽉 죄는 와이어 브라를 한 여성이 안한 사람보다 몇 십 배나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논조의 연구 결과도 많다. 반면 유방암 발병 원인은 압도적으로 에스트로겐 호르몬과 관련이 높고, 따라서 브라와는 별 관련 없으며 출산과 모유 수유를 하는 것이 이롭다는 얘기도 널렸다. 유제품 소비가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도 한때 인기(?)를 끈 적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활습관이나 처지에 따라 특히 솔깃해지는 가설이 있게 마련이지만, 사실 그 어떤 것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과학, 기술, 의학은 절대로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연구가 어디에서 비용을 지원받는지에 따라, 그 연구를 하는 연구소와 연구자들이 어떤 국가나 정당 혹은 어떤 이데올로기 집단과 가까운지에 따라, 그리고 특정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을 둘러싼 로비에 연루되어 있는지에 따라, 연구의 목적과 과정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유방암 연구의 경우,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거나 속옷회사의 로비를 받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구윤리? 그 경계는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그어져 있다. 그러니 차라리 자기 몸의 감각과 신호를 믿자. 가슴을 떠받쳐주고 보호해준다고 해서 브래지어를 했는데, 막상 하고 있으니 소화가 잘 안되고 쿡쿡 쑤시고 나중에 몸에 자국을 남긴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여기서 주목! 브라를 안 하면 가슴이 쳐진다는 통념도 뚜렷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브라를 안 해도 가슴 탄력과는 무관하다거나, 안하면 가슴이 덜 쳐진다는 얘기도 요즘엔 심심치 않게 들린다. 유선과 지방, 근육 등 다양한 조직으로 구성된 가슴은 애초에 스스로 모양을 유지하게 되어있어서, 외부에서 받쳐준다고 압박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고 한다. 모유 수유로 가슴이 크게 불었다가 줄어든 경우나,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가슴이 탄력을 잃는 건 당연지사다. 꾸준한 운동으로 피부 탄력과 근육을 유지시킨다면 몰라도, 가슴 쳐질까봐 브라를 입을 필요는 없다. 물론 이 얘기들도 반(反)브라(anti-bra) 세력의 거짓 공작(!)일 수 있으니 다 믿지 말자. 하지만 좀 쳐진다 한들 어때, 내 몸은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 여성의 가슴을 묘사한 해부학 교재. 이렇게 복잡한 구조와 원리로 알아서 잘 돌아가는데 인위적으로 무엇을 해줄 필요가 있을까? ⓒ출처: nursingcrib.com

 

금기와 고정관념, 그리고 시선폭력에 도발하기

 

젖꼭지를 빤히 비치게 옷을 입고 일터에 다니는 날이 점점 많이 쌓여간다. 원래도 ‘가리개’만 하고 다녔던 터라 감각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끼진 않지만, 역시 편하다. 홀가분하다. 그 느낌은 자신감+자부심+자존감 3종 세트에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기보다 무엇이 아름다운 모습인지 스스로 택해서 몸에 대한 결정권을 누리는 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엔 매일 거울 앞에 서면서 나도 내 모습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노브라는 액티비즘’이라며 뻔뻔한 구호를 외쳐도, 가슴에 뾰족한 원 두 개가 나라고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특히 언제 어디서건 사람들이 정.말. 많이 쳐다본다. ‘어떤 사람이 3초 이상 쳐다보면 당신한테 반했거나 변태이거나 둘 중 하나’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브라를 안 하니 3초 이상의 시선을 자주 받는다. 시선 폭력과 성적 대상화 측면에서 본다면, 노브라 행위는 오히려 스스로를 이 두 가지에 더 많이 노출시키는 일이다. 뻔뻔함이 많이 필요한 만큼 스스로를 격려해줘야 하는 것 같다. 괜찮아. 네 자유야.

 

지금까지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집요한 시선을 받는 것 외에는 낯선 이의 악의적인 공격을 받은 적은 없다. 물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나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개인의 선택에도 사회적 규범이니 도덕 따위를 앞세워 꼰대질 하는 무리들(주로 남자어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늘 조금씩은 따라다니는 불안이나 위험 때문에 노브라를 그만둘 마음은 전혀 없다. 지속적인 몸의 말 걸기로 일상의 질서를 흐뜨리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나의 말 걸기는 늘 온화하기만은 하진 않다. 때로는 무언의 날선 외침이기도 하다. “내가 브라를 하든 말든 내 마음이니, 너도 날 어떻게 인식하든 마음대로 해라. 단, 네가 성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나를 희롱하거나, 공중도덕을 들이대며 고발하거나, 헤픈 년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독일 사회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암묵적인 합의는 있다는 믿음도 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의 행위에 불편을 느껴도, 그것이 명백하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를 제지할 권한이 없다는 합의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바탕으로 남녀노소를 도발한다. 그것도 ‘유색인종 외국인 주제에.’


▶ 2년 전 한국, ‘이것도시위’ 노브라 캠페인에 대한 온라인 댓글들. 여자는 브라를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원인을 여성들 탓으로 돌리는, 여혐 사회의 전형적인 책임회피/전가 태도가 거슬린다.

 

지속가능한 액티비즘의 필요 조건인 ‘토대’ 

 

유럽과 독일 사회가 한국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젠더 평등’ 실현에 있어 앞서가고 있고, 그만큼 여성들이 더 나은 자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순조로운 나의 노브라 행보에 이롭다. 그러나 막연히 ‘독일이니까’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어디에서나 소수자다. 다만 우리 자신이 속한 분야, 직종, 지역, 세대 등의 소집단(서로 겹쳐지는 벤다이어그램과도 같은)의 분위기에 따라 활동의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도시, 연구 분야, 대학 학과의 분위기와 구성원들은 어떤가? 노브라에 더 개방적, 관용적인가 묻는다면 실제로 그렇다. 여성학과도 아니고, 모두가 페미니스트인 것도 아니지만 환경-생태주의라는 큰 우산 아래 비주류 가치들이 비교적 다양하게 공존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다리든 겨드랑이든 도통 제모를 안 하는 여자들, 맨발로 다니며 대중교통조차 멀리하고 자전거만 고집하는 사람들, 일주일째 같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채식 메뉴만 찾는 선생들 속에서 젖꼭지 한 쌍을 삐죽 내민 여자도 흔쾌히 수용된다.

 

내가 노브라에 담긴 개똥철학을 밝힐 때면 남자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아, 그래서 안하는구나. 너 멋있다. 나름 응원까지 해준다. 브라가 건강에 안 좋아? 토끼눈이 된 한 녀석은 자기 엄마랑 여친에게 얘기해주겠단다. 얘, 그들은 진작부터 다 아는 얘기야. 어떤 여자 친구들은 자기는 차마 못하겠는데 내가 노브라를 하는 건 지지한다며 ‘안 쓰는 브라는 달라’고 위트를 날렸다. 누가 봐도 네 가슴이 훨씬 크거든~. 이런 분위기와 이 사람들이 나의 소소한 액티비즘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비빌 언덕’이다.

 

한국에서, 노브라는 안전한가

 

한국에선 어떨까. 한국에도 노브라 페미니스트가 비빌 언덕은 많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굵직한 여성주의 단체들은 물론, 참신한 기획과 전략을 뽐내는 수많은 온/오프라인 캠페인과 연대행동들이 있다. LGBT 공동체들도 쿨하게 엄지 척 치켜세울 것이다. 문제는 이 씩씩한 언니집단 ‘바깥’이다. 지하철 몰카범과 성추행남들, 여성혐오 키보드 워리어들, 짧은 치마 입은 날 유독 전화를 해대는 남친, 통금은 밤 11시 결혼은 30살이 마지노선인 부모님, 발톱의 매니큐어 색깔로도 사람 무안 주는 직장을 경계해야한다. 그리고 기타등등.

 

한국에서 가서 노브라를 한다면 우선 맘 맞는 언니 동생들을 찾아 같이 다녀야겠다. 아주 보수적인 직장은 다닐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보다는 나들이 때부터 브라를 벗어야겠다. 마음의 준비도 곱절로 필요하겠지.

 

현대적 의미의 브라는 이제 100살 정도 됐지만, 코르셋을 비롯한 가슴압박의 여성인류 역사는 까마득히 길다. 해방의 역사도 조금은 넉넉하게 잡고 써 가야될 듯하다. *하리타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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