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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6년 월경사(史) 말하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④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 편에 이어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의 초경 이야기

 

열한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학원 끝나고 어둑어둑해진 때, 집 앞 놀이터에서 낯모르는 아이와 시소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 번을 신나게 방아 찧었을까. 아뿔싸, 건너편에 저 녀석이 예고도 없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버렸다. 꽝! 너무 아팠다. 거기를 부여잡고 한참을 아득히 끙끙거렸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 엄마의 비명이 들렸다. “너 벌써 생리 시작했니? 아이고, 이렇게 일러서 어쩜 좋아!”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알았다. 시소에서 바닥을 세게 부딪치고 아팠던 거기서 피까지 났구나. 음순 안쪽이 제법 크게 찢어져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연고를 던져줬다. ‘가짜 초경’ 해프닝이었다.

 

진짜 초경은 2년 뒤 어느 날 예고 없이 왔다. 올 법할 때 왔건만 엄마는 이번에도 탄식, “아휴, 이제 너도 시작이구나. 키는 다 컸다. 언니 하는 것 봐서 다 알지?” 힘차게 선홍빛 혈이 터져 나오자 통증도 따라왔다. 허리가 욱신거리고 아랫배가 밑으로 빠질 듯 쑤시고 꼬이고.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초경은 이제 여자가 되어간다는 반가운 신호라며 아빠가 케이크을 사와 온가족이 파티를 하는 장면. 아마 현실감 없는 가족드라마에서였겠지. 우리 집에선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고, 파티는커녕 약서랍에 간신히 하나 남은 타이레놀을 삼키고 전기장판에 눕는 것으로 초경을 기념했다.

 

언니는 어느 날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있던 내 앞에서 생리대를 갈며 퀴즈를 낸 적 있다. “너, 이거 한번 맞춰봐. 생리할 때 피 나오는 거 느껴지게 안 느껴지게?” 아직 한참 어렸던 나는 순진하게 고민하다 “안 느껴져. 맞지?”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웬 걸. 안 느낄 수가 없다. 이른바 ‘굴 낳는’ 느낌. 온 몸으로 통증을 전파하며 자기 존재를 마구 발산하는 것, 그게 월경이었다.

 

▶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의 초경 프로젝트 웹사이트 ⓒmylittleredbook.net

 

미국의 대학생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Rachel Kauder Nalebuff)는 2009년 100명의 초경이야기를 담은 책 <마이 리틀 레드북>(원제: my little red book, 부키, 2011)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해 계속 이야기를 수집중이다. 프로젝트의 수익금을 여성단체에 모두 기부한다고 하니, 내 이야기도 보내볼 참이다.

 

※ 사실 생리(生날 생 理다스릴 리)라는 단어는 여러 신체 작용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므로 월경(月달 월 經지날 경)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순 우리말로는 ‘달거리’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이 단어만 쓰셨다. 이 글에서는 대화체 등 특정 맥락이 있을 때만 생리라고 쓰려고 한다.

 

개인 서사들로 촘촘한 정치적 그물을 짜자

 

지난 7월 초, 언론에도 보도된 일명 ‘생리대 퍼포먼스’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댓글 행렬, 아니 댓글 전쟁을 일으켰다. 나는 사진을 통해 이를 접했을 때 그야말로 무릎을 쳤다. 통쾌했다. 끝내주는 인포그래픽(infographics;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자별로 쓰이는 생리대들을 쭉 걸어놓고, 진짜 피처럼 리얼한 붉은 물감을 칠하고, 거기다 가격 비교표와 지출액 산수까지. 어림잡은 평균치이긴 하지만 생리로 인한 출혈이란 게 얼마동안 얼마큼 일어나는지, 경제적으론 어떤 의미인지, 월경을 둘러싼 중대한 현실의 한 측면을 잘 보여줬다.

 

한편으로 이 퍼포먼스는 소통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협상해야 하나? 어떠한 방식으로 말을 걸 것인가? 페미니스트들은 늘 막막하다. 이번 생리대 건의 경우도 그렇다. 생필품인 일회용 생리대 가격이 너무 비싸 여성들에게 불평등한 경제 부담을 지운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다. 충분한 여론 형성과 정책적 결과물이 안 따라왔을 뿐. 올해는 사정이 달라 페미니즘 이슈들이 화제성으로 단연 대세인 데다가, 이번 캠페인은 직설화법으로 문구를 쓰고 이미지를 만들어 그 누구도 안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많은 댓글들은 생리대 퍼포먼스의 방법을 비난했다. 취지에는 공감하겠는데 왜 꼭 저렇게 자극적인 방법을 써야 되냐, 스스로 보기에도 더러운 생리혈을 왜 전시까지 하냐, 오히려 반감을 일으킨다 등등. 그러나 지지하는 댓글들이 더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겨우 관심 갖는다, 불결하는 아니든 이것이 현실이다, 보편적인 생리 현상인데 더럽다고 비난하는 태도가 몰지각하다 등. 지금의 온라인 댓글 상의 ‘페미 대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 진 미지수이나, 말하는 편에서도 듣는 편에서도 소통의 방식은 계속 왈가왈부될 것이다.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어떤 이슈를 다루든 여성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특정 사회, 문화권,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여성들이 실제 살아낸 삶을 그려낸 구체적이고 생생하고 개인적 서사들이 전면에 등장해야 된다. 이를 통해 공유 기반을 찾아 현실을 분석하고, 정치적 행동을 디자인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이해와 협조를 요청하는 대상으로서의 남성들, 수많은 차이와 차별로 인해 철저한 타자인 남성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우리의 촘촘한 이야기의 그물을 내려서, 듣지 않고 읽지 않고 말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써본다. 나의 16년 유혈사(史), 아니 월경사를.

 

월경사 1기: “야, 너 생리 샜어”(13~19세)

 

▶ 지난 3월, 독일의 진보적 주간지 <디 자이트>에 월경에 대한 금기를 깨는 발명과 혁신을 이룬 여성사업가들의 활약상이 실렸다. 학창시절 옷에 월경혈이 묻어 수치를 겪은 여성의 일화로 기사가 시작된다. (사진: Arvida Bystroem)


줄곧 교복 입는 남녀공학에 다녔다. 한창 풋풋한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매달 꼬박꼬박 대용량 월경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한(?) 일이다. 교복치마 밑에 나일론 스타킹, 쫀쫀한 속바지까지 입어 늘 통풍이 잘 안되었고, 운동부족에 만성피로, 심지어 월경 때에도 진통제 삼키고 하루 열 두 시간 책상에 앉아있기를 계속했으니까.

 

하지만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신호는 있었다. 첫째 날 생리대엔 검은색에 가깝게 말라붙은 피딱지가 붙어 있곤 했다. 월경 기간도 5일을 꼬박, 특히 2-4일째엔 양이 아주 많아서 생리대 중형 사이즈를 두 세 시간 만에 갈아도 흠뻑 젖어있고 새기도 잘 샜다. 여름철엔 습도와 통풍 관리가 안 되고 또 일회용 생리대 재질 때문에 월경이 끝날 무렵엔 늘 회음부에 벌겋게 발진이 돋고 따갑고 쓰렸다. 그런데도 ‘더 건강한 월경’에 대한 문제 의식은 별로 없었다. 몸과 마음이 각종 고사와 입시준비에 노예가 되어있었으니까.

 

생리대와 진통제는 엄마가 구비해놓으셨다. 우리 집은 딸 셋, 한 때는 가족 다섯 중 네 명이 매달 피를 쏟았기에 엄마는 생리대 사 나르기 바빴다. 마트 갈 때마다 세일중인 신제품이든, 베스트셀러 감사세일이든, 특별기획 세트든 제일 싼 걸로 왕창 사다가 화장실 벽장을 채워놔야 했다. 그러니 브랜드 충성도는 제로, 오버나이트와 중형, 이 두 가지 사이즈이기만 하면 됐다. 그 때문에 나는 시중에 나온 생리대란 생리대는 거의 다 써본 것 같다.

 

여러모로 월경은 그저 고역이었다. “야, 너 생리 샜어!” 옆 친구의 경악하는 속삭임. 학창시절 여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공포스러운 말 중 하나 아닐까.

 

월경사 2기: 진통제 쇼핑과 무수카페인(20~26세)

 

대학에 가고 나름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참 바빠졌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던 때. 학교공부 말고도 동아리 활동에, 알바에, 세미나와 집회에도 다녀야 하는데 월경이 오면 짜증이 났다. 하지만 까짓 거 인심 쓰는 셈 치고, 반나절은 내리 쉬어줬다. 진통제 먹고 전기장판에 누워 한 숨 자곤 생리대를 넉넉히 챙겨 또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이 무렵 ‘진통제 쇼핑’을 했다. 이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 진경제 등 다양한 성분의 약들을 먹어보고, 효과가 빠르면서도 속 쓰림이나 소화불량이 없는 걸 찾으려 했다. 여성전용 진통제라며 새로운 브랜드가 광고되면 솔깃해서 사 먹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성전용 약들에 무수 카페인(물 분자가 빠진 인공 카페인)이란 게 공통적으로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진통 작용을 촉진시키고 지끈거리는 두통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지만 카페인은 카페인이다. 먹으면 통증과 피곤을 덜 느끼는 건 물론, 기분도 좀 올라갔다. 그래서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할 정도였다.


▶ 여성전용 진통제의 성분. 무수카페인이 주 성분인 이부프로펜의 절반 가량 된다. ⓒ출처: blog.naver.com/drugstory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마침내 긴장이 풀리고 녹초가 된 몸으로 이불에 누워 가만 생각해보니, 좀 화가 났다. 왜 굳이 진통제에 카페인을 넣어 팔까. 월경 중엔 힘든 게 당연한데, 그래서 좀 쉬엄쉬엄 지내야 하는데, 대신 이걸 먹고 각성과 흥분이 되어 평소와 똑같이 ‘기능’하라는 강요 같았다. 이를테면 ‘생리중이라 과민하고 축 쳐진 여직원’을 방지하자는, 그게 좋은 거라는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산물로 느껴진 것이다. 게다가 무수카페인은 천연카페인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장기 복용하면 부작용으로 만성두통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도 접했다. 젠장할. 나는 결국 다른 첨가성분 없는 400mg 이부프로펜 한 알에 물 한 컵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학생 때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월경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보려 애쓰기도 했다. 월경을 마냥 부정하고 혐오하는 게 싫어서 ‘붉은 마차를 탄 생명의 여신’이라는 나만의 존칭(?)을 정해 부르기도 했다. 배란통, 월경통 때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운동도 신경 써서 했다. 월경으로 인한 불편과 고통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공강 중에 남친의 자취방을 빌려 휴식을 취한다거나, 날 위해 지압과 요리를 하게 하는 등. 한편 면생리대의 장점을 익히 알았지만, 멀리 통학하던 내겐 세탁이 번거로워 엄두를 못 냈다. 집에 구비되어 있는 생리대에 의존하고 이 귀찮은 ‘한 달에 5일’이 더 빨리 지나가도록 바쁘게 돌아다녔다. 여전히 월경이 삶의 우선 이슈는 아니었다.

 

직장 생활과 진로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많던 졸업 이후, 월경 주기에 이상이 오기도 했다. 곧 터질 것 같은 증상은 계속 있는데도 주기가 35-40일까지 차일피일 늘어져 언제 할지 모르니 늘 아슬아슬. 출근하기 전 이른 아침에 피가 나오거나, 주말 끼고 시작하면 고마울 지경이었다.

 

산부인과에선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는 낯선 진단을 내렸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가슴이 철렁했는데, 의사는 대뜸 비만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병이니 살을 빼란다.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인 나에게 참으로 무성의한 처방이었다. 그 (여)의사는 다른 발병 원인에 대한 검토도 하지 않고, 결혼이나 임신 계획이 없다고 했음에도 내게 ‘난임이 될 수 있다’는 경고만 늘어놓았다. 월경 문제로 인한 싱글 직장인 여성으로서의 내 불편과 고민에 대한 공감이나 조언은 전혀 없었다. 출산에만 의미와 목적을 둔 진정한 ‘산부인과’ 의사였달까.

 

▶ 내가 진단받았던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 Polycystic Ovary Syndrome)에 대한 도표 중에서.  초음파 검사에서 난소가 2-3배 커 보이고 작은 낭종이 여러 개 보이는 게 특징이며, 대사질환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때는 불규칙한 월경 전후로 질염이 오기도 해서 생리대, 진통제, 진균제, 좌약, 연고를 오가는 수난시대이기도 했다. 잦은 야근, 장시간 에어컨 노출, 만성피로 같은 게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몸을 차게 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월경이나 여성질환을 이유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도, 보건휴가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무급 생리휴가를 마음 놓고 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청결’을 위해 탐폰을 쓰고 ‘성실’을 위해 진통제 꿀꺽한 채 묵묵히 일한다. 나도 그랬다. 한 3일 연속 5-6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두 알씩 삼키는 릴레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몸은 무감각하고 정신은 막 갈아 끼운 형광등처럼 쨍해지곤 했다. ‘내가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도 여덟 시간을 서서 강의했는데 아직도 안 쓰러졌다니.’ 하며 감탄하기도 했을 지경. 배란기나 월경 전후의 여러 증상들이 심해지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바쁜 생활 속에 무심히 지나갔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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