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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을 개선하기 위한 21세기의 발명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⑦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Feminist Journal ILDA
월경 주기 관리 앱 The Flow
월경컵 뿐만 아니라 탐폰과 패드를 응용해 여성들의 월경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가 직접 사용하고 있거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빛나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월경관리용 스마트폰 앱 “The Flow”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먼저 월경 주기를 관리하는 스마트폰 앱 The Flow다. 다른 앱과 좀 다르다. 월경 관리 앱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달력 형태로 화면이 구성되어 있고, 월경전 증후군(PMS)에서 규정하는 신체 증상과 기분 상태를 기준으로 선택지가 정리되어 있다. 반면, 더 플로우는 달모양 아이콘과 좌우 다이얼 형태로 날짜가 배치되어 있어서 달 구분 없이 계속 시간이 흐른다는 인상을 준다.
거의 매일 바뀌는 “TIPS” 메뉴에 월경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기에 따른 심적 변화를 영성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그 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최적인지, 어떤 요가 자세나 조깅, 식단, 명상법이 이로운지, 연애 관계와 섹스, 스킨십을 할 땐 어떤 점을 고려하면 좋을지가 나온다. 엄마나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을 위한 팁도 따로 있고, “super skill”이라는 카테고리도 있다.
월경을 문제적인 ‘증상’으로 보지 않고 중립적인 ‘상태’로 보면서 일상 생활을 이에 맞추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발자 루시아 루카노바(Lucia Lukanova)의 포부는 남다르다. ‘여성리더가 아직도 20%가 안 되고, 우울증을 진단받는 여성이 남성의 두 배’라는 말로 앱 소개를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를 바로 세우고 여성의 힘을 키워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단다.
월경혈이 흡수되는 특수 팬티 ThinX
신소재를 사용해서, 하고 있으면 패드 없이도 월경혈이 쭉 흡수되고 촉감도 뽀송뽀송하게 유지된다는 특수 팬티 ThinX도 새롭고 재미있다. 뉴욕에 사는 아시아계 미국여성 미키 아그라왈(Miki Agrawal)이 벌이는 사업인데, 2015년 타임지에서 ‘최고의 혁신 25’에 선정되고 올해의 사회적 기업가 상을 받기도 했다.
▶ 신소재를 사용한 ‘ThinX’의 제품 광고 컷.
그녀는 여동생들이나 여자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협업하는 한편, 월경에 대해 쉬쉬하기만 했던 보수적인 부모님을 공개 인터뷰로 심문(?)하는가 하면, 아프리카에 직접 날아가 현지 면생리대 사업가와 후원 계약을 맺는 씩씩한 여성사업가다. 나는 입어보고는 싶지만 가격도 비싸고(개당 3-4만원) 굳이 필요가 없어서 팬티는 사지 않았고, 수시로 날아오는 재치만점 뉴스레터를 챙겨보고 있다.
팬티 파는 회사 ThinX의 오지랖은 대단히 넓다. 엔터테인먼트 시상식에서 수상한 소수인종 셀러브리티들을 소개하는 한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E. L. 제임스의 로맨스 소설과 이를 토대로 한 영화 제목)를 패러디한 ‘Fifty Shade of Red’라는 제목으로 월경혈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라고 권한다.
‘중도 좌파’라 하기엔 민망한 힐러리 클린턴에게 여성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좌파 지지자인 내게 실망감을 안기더니,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미국 정부와 언론이 무참히 은폐하고 있는 노스다코다(North Dakoda)주 인디언 보호구역의 대형송유관 건설 반대시위 현장의 여성운동가들을 버젓이 소개했다.
스마트 월경컵은 그다지…
영미권 유명 매체에서 여성을 위한 혁신 제품으로 ‘ThinX’와 나란히 보도한 것 중에는 ‘Looncup’도 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개발했다고 해서 호감을 갖고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남자 세 명이 뭉쳐 만든 룬컵은 ‘세계 최초의 스마트 월경컵’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다. 월경컵 바닥에 작은 칩과 수신기가 들어있어, 컵에 들어차는 월경혈의 양과 색깔을 블루투스 신호로 스마트폰 앱에 보낸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제품을 선보여 선주문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 화려하게 데뷔했고 현재 한국에서 제작중이라고 한다.
‘스마트’가 각광받는 시대니 월경컵도 그리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몸-마음 본연의 연결을 긴밀히 유지하고 싶어서 피임약도 안 먹기로 한 나로서는 몸에 대한 기술의 개입과 통제가 그리 달갑지 않다. 더구나 이 스마트컵의 기능이 그다지 실용적인 것 같지도 않다. 월경컵을 한두 번만 써 봐도 얼마 만에 갈아줘야하는지 금세 감을 잡을 수 있고, 색깔은 꺼내서 눈으로 보면 된다. 그걸 굳이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되는데, 스마트폰 앱을 켜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는 현대인들의 기행과 비슷하달까.
또, 내장된 장치 때문에 끓는 물에 삶지 못하고 배터리 교체가 안 되어 6개월마다 컵을 새로 사야한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상당한 감점 요인이다. 회사 측은 앞으로 혈액분석 기능이 추가되면 당뇨 등 질병 관리에 유용할 것이라고 장담하는데, 나는 그걸로 여성 개개인이 보게 될 혜택보다는 그렇게 수집된 빅데이터가 어디로 유출되어 누구의 주머니를 배불리게 되지 않을지가 더 신경 쓰인다.
광고도 마음에 안 든다. 월경의 불편과 고통은 말하지 않은 채, 활달하게 수영과 피트니스, 조깅을 즐기는 아름다운 백인여성이 등장한다. 주류 생리대 광고의 전형적인 공식과 닮아있다. 월경 중에 운동을 할 만큼 컨디션이 좋은 여성은 드물고, 월경컵을 쓰면 넣고 뺄 때 손에 피를 묻히는 게 진짜 현실이다. ‘피할 수 없다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으세요’, ‘전세계 여성들이 더 행복하고 편리하고 즐길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저희와 함께 세상을 바꿔요’와 같은 광고 카피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남성들이 주도한다고 해서 색안경 쓰고 보지 않고 꼼꼼히 살폈건만, 실망스럽다.
월경통을 줄여주는 탐폰?
나는 오히려 농담 같은 이 제품에 호감이 간다. 미국 피오라(Fiora)사에서 출시한 마리화나 추출물이 들어있는 탐폰(cannabis vaginal suppositories). 마리화나에 들어있는 성분들이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통증을 줄여주며, 근육과 신경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에 착안해, 탐폰 삽입 시 질 내부에 직접 작용해 월경통을 줄여주는 제품이다.
가격이 비싸서(개당 만원 가량) 사치품에 가깝지만, 효과가 정말 좋다는 후기가 쏟아져 나왔다. 와우. 우리나라에선 이런 제품이 언제쯤 유통될 지 요원하지만….
여성에 대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월경 관련 발명품들을 맞이하는 내 월경사 제 4기, 출발이 유쾌하다. 월경과 손잡고 가기 위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 설렌다. (하리타)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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