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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털어놓는 말, 외모 콤플렉스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바람을 두려워하는 나

 

 

나는 바람을 싫어한다. 바람이 불면 머리가 날리니까. 머리가 날리면, 내 얼굴형이 적나라하게 보이니까. 미인의 조건이라는 ‘계란형’과 내 얼굴형을 비교하게 된 때부터(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내 이마는 앞머리로 단단하게 덮여있었다. 이마가 넓은 데다가 아빠를 닮아 푹 파인 M자형이고 평평하기까지 해서, 바람이 불면 넓은 M자 이마가 훤칠하게 드러난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에 ‘황비홍’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이마가 동그랗게 넓어서 매일 놀림을 받았는데,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너는 그래도 동그란 이마잖아, 나는 M자야” 라는 말로 의도치 않게 친구를 위로하기도 했다.

 

내 M자 이마를 미워하다 보니, 나에게 M자 유전자를 물려준 아빠를 아주 오랫동안 (지금도) 미워했다. 엄마를 닮은 예쁜 얼굴형을 타고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아빠를 닮았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어지는 아빠 이마의 M을 보며 내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나도 점점 커지겠지… 

▶ 비밀  ⓒ조재

 

얼굴형 때문에 제한된 나의 ‘삶’

 

나는 여권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 눈 밑에 자리한 두 개의 동그란 광대뼈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막대사탕’이라며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게다가 그 사탕이 꽤 커서, 옆으로 얼굴이 넓다. 흔히 미인의 조건이라는 좁다란 얼굴형을 가지지 못한 나는, 주로 머리카락을 내려서 얼굴형을 보완했다.

 

하지만 예전에 어느 여자아이돌이 그랬듯 옆머리를 테이프로 붙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이 역시 바람이 불면 쉽게 날아가 버리니, 나는 주로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걷고 겨울이면 후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다. 얼굴이 드러날까 봐 머리를 절대 귀 뒤로 넘기지 않는다. 두 귀를 훤히 드러내는 여권 사진은 내게 기피 대상 일수밖에 없었다. 넓은 얼굴 탓에 모자도 잘 안 어울려서 여태까지 모자를 써 본 적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덕분에 매일 머리를 감아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은 비혼주의자이지만, 학창시절 때에는 내 결혼식을 상상하면 두려움이 앞섰다. 신부는 주로 머리를 잔뜩 올려서 얼굴을 드러내던데, M자 이마와 넓은 얼굴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얼굴은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이었다.

 

진지하게 광대축소수술을 고민해봤지만, 돈도 용기도 부족했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성형수술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친구들은 주로 쌍꺼풀 수술이나 코 수술을 했는데, 그때 나는 친구들이 선택하는 수술조차 부러워했다. ‘적어도 얼굴 뼈를 깎아내는 것보다 안전한 수술이지 않을까, 나도 차라리 얼굴형이 예쁘고 눈이나 코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돌이켜보면, 얼굴형 때문에 내가 싫어하게 된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물에 젖으면 이마가 드러나니까 물놀이를 싫어하고, 앞머리가 자주 떡지는 여름이나 바람이 잔뜩 부는 날도 싫어한다. 염색할 때 머리를 바짝 위로 올리는 것이 싫어서 파마는 해도 염색은 잘 하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 브이로 얼굴을 살짝 가린다. 그 외에 모자, 머리띠, 헬멧 등등. 정확히 말하면, 싫어하게 된 게 아니라 못하게 된 것들이다.

 

어린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힌 외모평가들

 

30년 동안 내 얼굴에 적절한 커버 기술(위에 나열한 법칙들)이 생겨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내왔는데, 얼마 전 내 콤플렉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동생이 말했다. “언니도 바람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 바람이 불 때 몸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그것만큼 좋은 기분이 없거든. 언니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동생의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서러움도 부끄러움도 아닌 묘한 감정이었다. 언제나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머리가 날리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찌푸렸던 나였다. 그런 나. 나는 원래 안 그랬는데. 나,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됐을까.

 

“넌 얼굴이 크구나. 엄마 안 닮았네?” 어릴 때 엄마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텐데,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내 외모를 처음으로 부끄럽게 느낀 날이기 때문일까? 살면서 외모에 대해 칭찬을 안 들었던 건 아니지만, 꼭 안 좋은 말은 가슴에 비수로 콕콕 꽂힌다.

 

그 뒤로도 부끄러움을 안겨준 말들은 곳곳에서 이어졌다. “너 얼굴 역삼각형이야”, “얼굴이 넓다. 보름달 같아”, “어머, 부모님 중 한 분이 얼굴이 크신가 봐요?” “이마가 엄청 넓어. 놀랐어.” 택시기사, 친척, 남자친구, 여자 친구가 했던 말.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나는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아플 정도로 꾹꾹 눌렀다. 그리고 한껏 머리카락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내 콤플렉스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는 부끄러움이 배가 됐다. “자기는 왜 귀 뒤로 머리를 안 넘겨?” 기습적으로 날아온 남자친구의 질문에, 나는 차마 얼굴형 때문이라 말하지 못하고 귀가 못생겨서라고 둘러댔다. “이마 올려봐.”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말, 끝내 이마를 올리지 못하는 나. 누군가는 머리를 올리는 게 어떠냐고 당당해지라고 답답해하지만, 사실 그런 내가 가장 답답한 건 나 자신이었다. 


▶ 가장 털어놓기 어려웠던 얘기 ⓒ새벽


친구, 애인, 미디어, 노랫말까지 ‘예쁜 여자’ 타령


물론,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를 실천했던 적도 있다. 이십 대 초반, 큰마음 먹고 앞머리를 넘기고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머리 내린 게 더 예쁘다”라고 애정 어리게 말했다. 그 뒤로 몇 번 타인에게 비슷한 소리를 듣고, 앞머리를 넘기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한 번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친구와 친구의 애인을 만났는데, 나를 처음 보는 친구의 애인이 “얼굴이 동그라시네요”라며 웃었다. 그 사람을 무척 싫어하게 됐지만, 결국 나는 무례한 그놈의 말에 꽈당 넘어져 버렸다. 이어서 비슷한 도전과 좌절을 거듭하다가 끝내 다시 바람을 싫어하게 됐다.

 

미디어도 한몫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성 얼굴은 대다수 작고 계란형의 얼굴이고, 달콤한 노래에는 ‘네 작은 얼굴에 입을 맞추고’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큰 얼굴은 주로 개그맨이고,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쿨하게 받아들이며 웃음 소재로 삼는다.

 

광고의 한 장면. 노란 우비를 쓴 ‘얼굴 작고 예쁜 그녀’가 우비를 벗자 우비에 숨겨놨던 넓은 얼굴이 드러난다. 그녀에게 관심 있던 남자는 숨겨진 그녀의 큰 얼굴을 보고 “헉”하고 놀란다. 큰 얼굴에 대한 실소를 자아낸 광고는 이제 당당해지라며 얼굴 축소수술을 권장한다. 미의 기준이 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니 한몫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겠다.

 

사방이 하나의 기준을 잣대로 외모를 가르고 평가하는 사회에서, 단순히 개인에게 “당당해져”라고 말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러고 싶다는 지향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수차례 좌절을 겪으며 적당하게 타협하며 나름대로 커버기술을 개발해 살아가고 있다. 다만, 제발 외모 지적이 권리인 줄 아는 무례한 사람을 안 만나기를 바라면서.

 

‘못생긴 페미니스트’ 떨쳐내지 못한 낙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를 기억하며, 여태까지 글을 썼다. 가장 내밀한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부터 성폭력, 낙태, 동거 경험까지… 망설이는 순간에도 당당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어떤 이는 내가 급진적이고 용기 있는 글을 쓴다고 지지했지만, 사실 나는 딱 말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얘기해왔다. 이제 나에게 가장 두려웠던 글쓰기가 남아있다. 그것은 내 외모 콤플렉스를 말하는 일이다.


▲  제시카 발렌티의 책 <성적 대상>(Sex Object)  원서표지


내가 처음 여성 문제를 꺼냈을 때 온라인 조리돌림을 당하며 주로 들었던 말은, “못 생기고 인기 없는 여자가 질투한다”, “열등감이 있나 보다”라는 말이었다. <성적대상>의 저자 제시카 발렌티는 자신이 성적대상이 된 경험을 밝힐 때, 자기가 성적대상이 될 만큼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지점에서 망설인다. 메갈리아를 메퇘지라고 부르고, 못생기고 사회에 피해의식 있고 인기 없는 여자들이 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끝없이 메아리친다. 이 말은 어이없어서 간단하게 웃고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쉽사리 마음에 걸려 떨어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외모지상주의. 아름다움, 여자. 어떤 기준에 맞춰서 나를 재단하는 시선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나. 있는 그대로 당당하고 싶은 나. 이 끝없는 모순 속에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글을 쓰는 내내 ‘아, 얘가 얼굴형이 이래서 페미니스트가 됐구나’, ‘이래서 남자를 혐오하는 구나’라며 합리화할 누군가를 떠올리면 글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솟아오른다. 이제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앞머리 속에 감춘 이마를 상상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도 든다.

 

얼굴형, 피부색, 모공, 여드름, 주름, 눈, 눈동자, 코 높이, 콧구멍 모양, 입술, 이빨, 얼굴 조화, 눈썹, 털, 주름, 머릿결, 머리숱, 가르마, 무릎주름… 지금도 나를 감싸는 끝없는 외모 기준을 떠올린다. 학창시절 나는 쌍꺼풀과 코 수술을 한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했지만, 정작 친구들이 왜 성형수술을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나와 다르지 않았을 텐데.

 

외모에 대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하나의 뿌리에서 흘러 같은 빛을 띤다.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받고, 좌절하고, 맞추려고 노력하고, 다시 상처 받았던 많은 순간이 있다. 그 긴 시간을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끝없는 모순의 반복 속에, 바람을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바람을 두려워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 각자의 빛  ⓒ새벽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문을 닫으며]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동시에 2013년 문을 열었던 인문학카페36.5º를 2017년 가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고, 애도하고, 연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공간 정리와 건강관리, 휴식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다음에 글을 쓸 때에는 제가 미처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외모 콤플렉스를 포함하여)들을 풀어갈 계획입니다.

 

첫 연재 때, 무례하고 불평등한 질문에 대해 거꾸로 질문하는 ‘작은 혁명’을 하겠다고 다짐했듯, 인문학카페가 사라지더라도 질문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꼭 목소리 낼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흔들려요. 사소한 혁명을 일으켜 봐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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