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섹스는 함께, 피임은 따로?
<홍승희의 치마 속 페미니즘> 나의 피임 역사
※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 홍승희 씨의 섹슈얼리티 기록, “치마 속 페미니즘” 연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거추장스러운 피임
첫 성경험을 할 때 나는 피임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섹스만으로도 혼란스러워서 피임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섹스 후 다음 달 생리 예정일까지 나는 임신에 대한 불안과 걱정 속에 홀로 남겨졌다. 남자친구에게는 사랑의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이후에도 그는 ‘임신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면서 콘돔을 하지 않고 성기를 삽입하고, 질외사정을 했다. 그의 몸에 자궁이 달려있어도 그는 그렇게 말했을까? 처음엔 나도 걱정되었지만 ‘설마 임신이 되겠어.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갑 안에 콘돔을 가지고 다녀라.” 주변 사람들이 성인이 된 나에게 알려준 피임방법이다. 이후로 나는 지갑 안에 콘돔을 하나씩 넣어서 다녔다. 대부분의 남자친구는 섹스할 때 알아서 콘돔을 준비해놓고 피임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섹스 중간에 콘돔을 내 허락 없이 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강간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콘돔을 꺼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여자가 콘돔을 들고 다니는 게 이상해 보일까봐 두렵기도 했다. 특히 피임 이야기는 한껏 달아오른 섹스 분위기를 식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섹스에서 내 욕망은 배제되었지만, 피임에 대한 불안은 내 몫이었다. 섹스는 함께, 피임은 따로. 이상한 모순이다.
# 남성의 간편한 피임도구, 콘돔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직접 콘돔을 준비하거나, 상대에게 콘돔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피임을 했다. 그러나 콘돔의 고무냄새와 고무의 이질적인 느낌이 싫었다. 딸기향, 바나나향, 커피향이 나는 형형색색의 콘돔을 만들 때 정말 여자의 몸을 생각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뻐보이기 위해 색소를 첨가하고 인공 향을 뿌린 가공된 불량식품 같은 게 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 찝찝했다.
향이 없고, 두께가 비교적 얇고, 색깔이 없는 콘돔을 써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콘돔이 질 안으로 들어오면 금세 뻑뻑해졌고, 상대방과 나 사이에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섹스 중간에 콘돔을 빼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른 피임 방법을 생각해야했지만, 얼마간은 질외사정을 하면서 피임을 대체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질외사정은 피임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임신은 너무도 먼 이야기 같아서, 배란기를 피해서 질외사정을 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또, 정복당하는 여자와 정복하는 남자의 포르노식 섹스에 익숙했던 나는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섹스하는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실수로 질내사정을 할 때는 바로 다음날 산부인과에 가서 사후피임약을 구해야 했고, 생리예정일이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불안에 시달려야 했지만.
▶ 감각의 거리, 2013 ⓒ홍승희
# 나의 첫 피임약
질외사정을 하면서 섹스를 했을 때, 나는 운 좋게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실수로 임신을 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대와 결혼을 하거나 임신중절수술을 하고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걸 목격한 뒤로, 피임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승희, 너는 피임 정말 잘해야 해’ 라고 애절한 충고를 해주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20대 초반부터 경구피임약을 복용했다. 경구피임약 종류는 다양했는데, 호르몬 함량이 낮아 부작용이 적을 것 같은 약부터 먹었다. 생리 첫날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약 한 알씩 삼켜야 했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 7시 알람을 맞춰놓고,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먹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습관이 되니까 괜찮았다. 섹스할 때 피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고, 임신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섹스 후에도 찝찝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피임약을 먹는 걸 상대방에게 숨긴 적이 많다. 섹스할 때 상대가 ‘피임은?’이라고 물으면 ‘약 먹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게 민망했다. ‘언제든지 누구와든 섹스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자’로 볼까봐 불안했다.
피임약을 복용한 지 6개월이 지났을까, 체질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의 경우 식욕이 과도하게 늘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체형이 변했다. 호르몬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감수하고 먹은 것이었다. 임신에 대한 불안보다는 나으니까. 약을 바꿔보아도 내 몸에 경구피임약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함께한 경구피임약과 이별했다.
# 피임을 ‘말하기’
호르몬에 영향을 주지 않는 피임방법을 찾아야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의 동성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한 친구는 팔뚝에 호르몬 칩을 넣었다. 따로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어 편안하긴 하지만 그것 역시 경구피임약처럼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산부인과에서는 루프를 추천했다. 하지만 호르몬 루프는 경구피임약과 마찬가지로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 빠지기도 쉬워 피임 실패 확률도 높다. 다른 루프, 구리로 된 루프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내장 기관(자궁)에 구리 기계를 넣는다니! 빠지기도 쉽고, 그래서 피임 실패 확률도 높고, 골반염 등 부작용 가능성도 높다. 역시 이것도 힘들 것 같았다.
나팔관을 묶거나 절개하는 수술도 있지만 수술비용이 부담되었고, 배를 절개하고 마취를 하는 방법이 싫었다. 망연자실했다. 콘돔밖에 없는 건가. 섹스를 하지 말아야 하나.
동성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피임, 연애, 섹스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생리일이 늦어지면 함께 임신을 걱정하고, 피임 정보를 나눴다. 그리고 한탄했다. “피임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우리는 왜 자궁이 있는 여자로 태어난 걸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통장 하나 만들자. 조금씩 모아 두었다가 우리 중 누가 임신되면 낙태수술 비용 이걸로 해주자.”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역시 우리밖에 없어…” 하는 뜨거운 감동을 나눴지만 찜찜한 느낌이 올라왔다.
섹스 후 임신이 될까봐 불안해하는 나에게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은 정말 힘들겠다.” 익숙한 소외감이다. 섹스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건데 왜 우리들끼리 피임방법을 토론하고 있는 거지? 여기에 우리 각자의 남자친구나 남편은 왜 없는 걸까. 나는 왜 나와 섹스하는 사람과 피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지 않았을까.
# 섹시한 섹스, 섹시하지 않은 피임
섹스에서 나의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려웠던 만큼 상대방과 피임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첫 경험에서 남자친구가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가락으로 성기를 마구 휘젓는 바람에 질염이 생기고 방광염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손가락으로 하는 거 싫어. 손톱 때문에 아파’, ‘콘돔은 있어? 없으면 섹스는 안 돼.’ 다음엔 꼭 이렇게 말해야지, 다짐했지만 번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섹스를 했다.
그렇게 불편한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왜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섹스할 때 내 고통이나 걱정, 불안, 피임, 임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라고 느꼈다. 청소년기에 나는 침대 위에서 ‘순결하면서도 섹시한, 처녀 같으면서도 요부 같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매력적인 여자라고 말하는 목소리들을 믿었다. 순결한 처녀가 콘돔을 가방에서 꺼내고, 피임약을 먹고 있다고 말하는 건 왠지 안 어울렸다. 그보다는 ‘살살’, ‘조심해야 해요. 밖에다 사정해주세요’ 라고 속삭이는 게 어울린다. 섹시한 요부 역시 피임 따위 신경 쓰는 건 어울리지 않다. 그보다 섹시한 의상과 불빛, 시선에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으니까.
나는 침대 위에서 섹시한 분위기에 바람이 빠질까봐 전전긍긍했다. 상대가 나를 더 이상 섹시하게 느끼지 않을까봐 불안했다. 피임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자친구의 무심하고 무감한 반응에 실망하고 상처받을까봐 애써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쿨하고 매끄럽게, 유연하고 능숙하게 섹스하기 위해 피임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루고, 은밀하게 혼자서 했다. 자위처럼.
‘아내가 임신을 한 후 성욕이 떨어진다’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텔레비전, ‘참해보이던 여자인데 가방에 콘돔 있으면 깬다’고 웅성거리던 뒷말, ‘여자친구가 낙태수술을 한 후 성욕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 헤어졌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남자들을 마주치면서 나는 점점 더 피임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면서 피임은 혼자서 꽁꽁 짊어졌다.
# 임신중절수술, 가장 힘들었던 피임
그러나 친구들과 피임에 대해 얘기를 나눈 이후부터, 나는 섹스를 하는 상대와 피임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임신이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그리고 작년에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모든 수술이 그렇듯 힘든 과정이었다. 게다가 이 수술은 불법이다. 수술 후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수술 후 적어도 한 달은 나를 간호해줘. 우리가 함께 사전피임에 실패했고, 그래서 내가 임신중절수술을 하게 된 것이니 최소한의 고통을 분담했으면 좋겠어.”
남자친구는 내게 그러겠노라 약속했지만, 몇 주 후 잠수를 탔다. 이유는 ‘부모님이 동거하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내가 고통스러운걸 보는 게 고통스러워서’, ‘사랑이 뭔지 삶이 뭔지 모르겠어서’ 라고, 이후에 편지가 왔다. 사랑이 뭔지, 삶이 뭔지 고민할 수 있는 그의 여유가 부러웠다. 임신과 피임의 고통에서 쉽게 도망칠 수 있는 남자의 몸이 부러웠다.
임신중절수술을 하기 전, 피임 방법을 진지하게 이야기했었지만 남자친구는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피임에 대해 별 생각도 실천할 의지도 없었던 그에게 뒤늦게 분노가 일었다. 임신은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지만, 마땅히 그도 함께 책임지고 철저히 피임을 고민했어야 했다. 그리고 피임에 실패했으면 그 후의 고통 또한 분담되어야 한다. 하지만 임신은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는 피임 걱정 없이 자신의 사정과 오르가즘만 즐긴 후 떠났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99.9% 피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다시는 중절수술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임은 실패 확률이 어느 정도 있었고, 호르몬 부작용도 감수해야 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는데. 자궁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자궁을 들어내는 방법은 없을까도 고민했다.
# 함께하는 피임, 깊고 끈질긴 대화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거인은 몇 개월 전 정관수술을 했다. 우리는 동거를 시작하면서 피임에 대해 깊고 끈질기게 대화를 나눴다. 나는 콘돔의 불편함과 경구피임약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경험, 임신중절수술 후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말했다. 동거인도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피임에 실패했던 경험과, 피임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말했다.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피임방법을 알아봤다.
나는 산부인과에 전화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 있는지 상담했다. 한 달에 한번 피곤한 생리를 안 해도 되고 피임도 확실하고,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알아본 결과 자궁 복강경 수술은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고 부작용도 심할 수 있다고 했다.
동거인은 남성이 하는 피임방법을 알아봤다. 많은 정보를 찾아본 결과, 가장 안정하고 신속하고 경제적인 피임은 남성의 정관수술이었다. 정관수술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여러 의견이 나와 있었다. ‘정관수술 절대 하지 마세요. 여자에게 루프를 착용하게 하면 됩니다.’ 이유는 ‘남자의 기운은 정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적혀있다.
정관수술은 5년 내에 재수술을 하면 다시 정자 배출이 가능하다. 물론, 정관수술 후 불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임 가능성은 여성이 피임약을 먹거나 피임기구를 자궁에 설치할 때도 있다. 불임 가능성이 있다 해도, 내 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여자인 나는 피임을 했던 거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자기 몸으로 임신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하는 피임을 ‘무서워’할까. 여자의 기운은 자궁에, 남자의 기운은 정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소중한 정자와 자궁인데, 왜 피임약은 자궁에 투여하는 것 밖에 없는 거지?
여성의 피임방법은 종류가 많다. 그러나 남자의 피임방법은 정관수술이나 콘돔 정도다. 남성용 경구피임약은 개발이 더디다. 정말 이 세계에서 남자는 1등 시민, 여자는 2등 시민(아기주머니)인 걸까. 세상 전체가 여성의 몸에만 온갖 피임약을 쥐어주고 있다. 호르몬 부작용과 비용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마저도 실패하면 임신중절수술도 불법. 여자의 몸에다 대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다. ‘피임 싫으면 임신을 하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어머니가 될 몸을 아껴야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당신 같은 여자의 몸은 소중하지만, 정 그렇게 임신 목적의 섹스 말고 쾌락을 위한 섹스를 하고 싶으면 알아서 부작용 감수하고 피임을 하든가 말든가.’
# 남자들의 확실하고 안전한 피임, 정관수술
동거인과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또, 정관수술은 5년 내에 복원수술을 하면 다시 정자가 생길 수 있다. 동거인은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우리 둘 중 부작용이 더 적고,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정관수술이니까 내가 할게.” 동거인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마워. 내가 남자였다면 내가 정관수술을 했을 텐데.”
우리는 바로 동네 비뇨기과에 전화해 상담을 받으러 갔다. 동거인도 흔쾌히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술하기 전날 밤, 그는 자면서 ‘아이가 죽었어!’라는 환청을 듣기도 했다. 수술을 하러 비뇨기과에 가기 한 시간 전까지 우리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그도 30년 넘게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을 닮은 핏줄을 낳고 싶다는 환상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핏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비우지 못한 걸까, 나의 불안은 생각하지 않는 걸까, 답답했다. 섹스 후 임신을 불안해하는 내 앞에서 ‘우리 그냥 애기 가질까?’ ‘나랑 너 닮은 애기 낳고 싶어’ 라고 천하태평하게 말하던 남자친구들이 떠올랐다. 내 몸에서 생겨난 세포를 내가 9개월 고생하면서 품고 낳는 내 몸의 일인데.
동거인이 수술 날짜를 예약하러 비뇨기과에 갔을 때, 의사는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아시나요?”,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나요?”, “자녀는 아직 없나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등등. 담담하게 수술을 받으러 간 동거인도 자신이 이상한건가 생각될 정도로, 의사는 걱정하듯 물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피임이든 불임이든, 다 큰 성인에게 부모님이 아는지, 종교가 있는지 왜 묻는 걸까.
내가 사후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산부인과에서 피임기구와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상담하거나 약국에 경구피임약을 사러 갔을 때는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남성의 적극적인 피임은 대단히 특별한 행동이 된다. 스님이거나 신부님이거나 자녀가 있는 기혼남성이 아니면 정관수술 같은 불임가능성이 있는 피임은 남성이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걸까. 여성의 피임처럼 하루 종일 매스꺼움에 시달려야 하거나, 구토를 하거나, 장기 내벽을 긁어내거나, 구리를 넣거나, 배를 째는 것도 아닌데. 단지 불임 가능성이 있을 뿐인데.
그런 동거인의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피임을 하는 건 내 몸을 위해서이기 전에 당연히 함께 책임져야 하는 건데, 왜 내가 미안해하는 거지? 피임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든 그 방법을 하면 되는 건데. 만약 호르몬 부작용이 없었다면 내가 경구피임약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다른 피임방법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할 수 있는 안전한 피임을 선택한 거다. 동거인 역시 콘돔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피임을 고민하고 실천한 적이 없었으니, 불안하고 걱정될 만하다. 그래도 그가 느끼는 불안과 걱정에 나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늘 혼자서 걱정하고 고민해왔던 피임이었으니까.
정관수술을 하러 수술실에 들어간 동거인은 15분 후에 나왔다. 걸음걸이가 느릿해보였지만 괜찮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양파, 감자, 당근, 애호박을 넣고 카레를 만들었다. 카레를 먹으면서, 고마워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내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 피임은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거고, 부작용도 적고 안전한 게 정관수술이니까 그냥 한 것일뿐인 걸.” 그에게 고마운 게 이상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가 고마웠다.
앞으로도 나는 만나는 상대와 함께 피임을 고민한 후 섹스할 것이다. ‘내 몸이 자기 아이를 낳아줄 주머니가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지, 임신 계획 없는 나에게 협조하는 걸 넘어 자신의 피임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섹스도 함께하니까 피임도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내 신변의 안전과 즐거운 섹스를 위한 조건이다.
몇 주 간 회복기간이 지난 후, 우리는 편안하게 섹스를 즐겼다. 함께 피임을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서로에게 더 투명하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나도 더 이상 나의 자궁을 미워하지 않고 몸을 활짝 열 수 있다. 많은 길을 지나, 넘어지고 까지고 나서야 당도한 평온함이다. 피임 시술이 건강보험으로 적용되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좀 덜 넘어졌을까. 다양한 피임 방식을 처음부터 교육받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을 일찍이 접했다면, 나는 좀 덜 아팠을까.
▶ 자궁. 이제 나는 나의 자궁을 미워하지 않는다, 2016 ⓒ홍승희
[정관수술을 한 동거인 인터뷰]
Q. 정관수술을 하기 전에 피임은 어떻게 해왔나요?
A. 여성이 경구피임약을 먹거나, 내가 콘돔을 했어요. 그런데 경구피임약은 부작용 때문에 상대방이 힘들어했어요. 그리고 콘돔은 성감이 별로 없어서 상대방과 합의해서 빼는 경우가 많았어요. 결국 질외사정을 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서로 불안해졌어요.
Q. 많은 사람들이 질외사정으로 피임을 대체한다고 해요. 질외사정이 피임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왜 다른 피임을 시도하지 않는 걸까요?
A. 그냥 회피하는 것 같아요. 피임은 어렵고, 섹스는 즐거우니까요. 피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해요. 남성의 경우 자기 몸이 임신하는 게 아니니까 더 회피하게 되기 쉬운 것 같아요.
Q. 적극적으로 피임을 고민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몇 가지가 있는데요. 제가 피임을 제대로 안 해서 임신중절수술을 했던 여자친구가 있어요. 그 사람은 수술 후 몸과 마음이 너무 상처받았어요.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저의 확실한 입장이 있어요. 지금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낳으면 키울 수 있는지, 키우면 건강히 자라긴 하는지, 지금 세상에서는 대답은 다 ‘NO’예요. 또, 섹스할 때 콘돔 없이 온전히 성감을 나눌 수 있고 섹스 후에 불안하지 않은 피임을 하고 싶었어요.
Q. 몇 개월 전 정관수술을 했는데, 정관수술을 할 때 고민되는 것은 없었나요?
A. 내 핏줄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있었어요. 불임 가능성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내 핏줄을 꼭 낳는 것이 중요한가, 그리고 지금 파트너와 임신을 합의한 게 아니라면 누구든 당연히 피임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가격도 다른 장기적인 피임 방식에 비해 경제적이고, 호르몬 부작용도 없어요. 임신을 원하면 5년 이전에 재수술을 하면 되고요.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아요. 불임 가능성은 여성이 피임하나 남성이 피임하나 다 있잖아요. 그런데 정관수술을 하는 저를 걱정하듯 쳐다보는 의사선생님의 시선이 불편했어요. 아이를 못 가질 수 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더라구요. 무슨 아이 안 낳는 게 죄도 아니고, 아이 낳는 게 자랑도 아닌데, 그러면서 임신해서 중절수술하는 것은 죄라고 하고… 거참.(한숨)
Q. 정관수술 후 몇 개월이 지났는데, 부작용 등 몸의 변화가 있나요?
A. 좀 더 건강해진 것 같네요.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정관수술을 하면 정자가 사정을 하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단백질 보충 에너지로 환원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근육도 더 생기는 것 같고, 물론 운동도 하고 있지만요.(웃음) 몸과 마음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 있어요. 왜냐하면 99.9999%의 확률로 피임이 보장돼요. 성관계도 훨씬 편안하고요. 성욕이나 발기, 사정 등은 수술 전과 비교해서 변화는 없어요. 그건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Q.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다양한 피임방법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남성들이요. 남성도 콘돔 말고 피임방법이 있다는 걸, 전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피임에 대해 여성과 이야기할 때도 콘돔을 제외하고는 여성이 하는 피임방법만 이야기했어요. 지금 임신중절수술은 불법이고, 정관수술은 합법이잖아요. 정관수술은 중절수술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고, 고통도 없어요, 아주조금밖에. 제 경험을 듣고 많은 남성들이 피임을 자기 문제로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남자 친구들과 피임 얘기를 나눈 적은 없거든요. 섹스 얘기는 많이 했는데…
(※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동거인에게 감사를 전하며) (홍승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경험으로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건 비혼 페미니스트 하우스가 필요해 (0) | 2017.06.29 |
---|---|
낙태, 말할 수 없었던 고통 (0) | 2017.06.13 |
‘갠지스의 시바신의 힘이 늘 함께하기를…’ (1) | 2017.06.10 |
“우리 함께, 사소한 혁명을 일으켜 봐요.” (0) | 2017.05.22 |
배타적 연애에 대한 고민 (0) | 2017.05.15 |
“인생은 보트야” (0) | 2017.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