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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 청년들 실태…키워드는 ‘빈곤’과 ‘고립’

성남시 ‘일하는 학교’서 제기한 청년세대의 양극화



흔히들 20대 청년이 원가족으로부터 분리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대학에 가거나 직장에 다니기 위해 독립한 거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독립해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의 독립은 스스로 선택한,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그런 독립이 아니다. 불안정하고 외로운 독립이다.

 

성남에 자리한 사회적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는 작년 9월부터 3개월간 성남에 사는 250명의 ‘독립생활청년’을 만나 실태 조사하고 이 중 20명을 심층 면접했다.

 

조사팀이 정의내린 ‘독립생활청년’은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거나 자신이 선택해서 독립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아니다. 부모와 가정환경의 불안정, 빈곤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독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내야 하는 ‘생존형, 생계형 독립’ 청년들이다.

 

조사 대상자의 연령은 만19세~29세가 79.2%를 차지했으며 만19세 미만(7.7%)과 만30세 이상(13%)인 청년들도 있었다. 비교 집단으로 60명의 일반청년들도 설문조사했다.

 

▶ 성남에 사는 250명의 독립생활청년 실태조사 결과, 월평균 주거비와 소득 중 주거비 비율. ⓒ일하는 학교

 

준비되지 않은 독립, 삶의 만족도 낮다

 

조사팀의 박경란씨는 “우리가 만난 독립생활청년들은 대부분 10대부터 20대 초반, 남들보다 좀 더 빠른 시기에 ‘불안정한 독립’을 시작했으며 생계유지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버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대부분 저학력이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생활고를 겪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모의 이혼, 사망 혹은 가족 간의 갈등 때문에, 혹은 부모가 직업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 이른 나이에 스스로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독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경란씨는 “조사결과를 분석해 보니, 독립의 이유에 따라서 삶의 만족도 차이가 컸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현재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 물었을 때, 학교나 직장에 가까이 가기 위해 독립을 선택한 집단은 삶의 만족도 점수는 100점 만점에 67.5점이었다. 반면,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갈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하게 된 집단은 삶의 만족도 점수가 58.7로, 평균 9점 정도의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떡볶이, 라면의 일상화…‘밥’이 없는 삶

 

이처럼 불안정한 독립을 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먹는 문제’다. 일하는 학교 이정현 사무국장은 “조사결과, 자신이 밥을 언제 어떻게 먹는다고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한다. 술과 안주 또는 간식 정도로 허기를 때우거나, 일터에서 제공하는 식사 이외에는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는 식사의 개념이 아예 없는 청년들도 많았다는 것.

 

인스턴트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28.9%), 퇴근 후에는 거의 밥을 먹지 않는다(20.3%)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49.0%에 달했다. “(퇴근해서) 집 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랑 과자 하나 사서 먹고 들어가”거나 “쉬는 날은 밥 안 먹”거나 “주로 김밥이나 라면, 냉동식품을 먹고 돈까스랑 짜장면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는다”는 청년들이 많았다.

 

▶ 성남에 사는 250명의 독립생활청년 실태조사 결과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 학교>

 

“돈 계산하며 생활하다보니까 ‘하루 1식’할 때도 많고. (…) 어쩌다 여유 있을 때 도시락 사 먹고 거의 이런 식이었어요. 라면만 거의 먹다보니 물리는데도 억지로 라면 먹고. 그러니까 살 빠지고 힘들더라고요. 만성피로도 오고.” (23세 남성)

 

“고시원에서 밥은 주잖아요. 그런데 반찬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맨날 밥에 물 말아 먹고 그랬어요. 그러다 돈 생기면 떡볶이 1인분을 사서 세 끼 나눠 먹었어요. 먹을 때는 맛있어서 먹는데 먹고 나면 슬프더라고요.” (27세 여성)

 

“시켜먹기 전에 수십 번 고민을 했죠. 치킨 한 마리 시키려면 서너 시간 고민하고. 내 자신이 처량하기도 하고. (…) 밥 한 끼 먹는데 최소한 5천원은 드는데 그 돈으로 라면을 먹으면 5끼는 먹으니까.” (쇼핑몰에 근무하는 32세 남성)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사람’이 없는 삶

 

독립생활청년들이 처한 어려움 중 또 하나는 바로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혹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특히 학업을 중단한 청년의 경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현 사무국장은 “일찍부터 일을 하면 다양한 사회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일하며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 힘든 게 사실이다. 또 여가 없는 주 6일~7일 노동을 하게 되면 사람을 만날 에너지를 갖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 성남에 사는 250명의 독립생활청년 실태조사 결과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 학교>

 

이들에게는 연애도 “(돈이)얼마가 깨질까 계산이 앞서는 일”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일”이었다.

 

“저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외로움이 없었어요. 평일에도, 주말에도 일을 해요. 멀리 나가보고 싶고 놀러가고 싶은데 제가 너무 여유가 없다보니까…. 어디 놀러가는 것도 부담이 되니까.” (택배물류창고에서 일하는 23세 남성)

 

“(연애할 때) 한 달에 한 번 만났어요. 그것도 연차를 써 가지고. 이렇게 만나기 힘든데 이렇게까지 해서 만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좋게 얘기해서 헤어졌거든요. (…) 만나도 평일에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러지, 술 마시고 그런 기회는 없는 것 같아요.” (영업사원 26세 남성)

 

또래 친구들과의 커뮤니티가 없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또래 청년들과의 ‘정보의 격차’ 또한 느끼고 있었다.

 

“청년 임대 아파트… 정작 필요한 사람은 정보가 없어요. 대학생들은 정보 찾아볼 시간이 있고 정보 찾는 것도 빠르지만 우리는 일(해야 해요). 그거 찾을 시간에 쉬고 싶은 거예요. 정부가 나서서 이런 걸 확대시켜 주든가. 고졸자 우선, 이런 거 하면 좋죠.” (건설 일용직 28세 남성)

 

“게으르게 살아오지 않았다” 빈곤은 구조적 문제

 

이외에도 독립생활청년들은 “혼자 힘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몸이 힘들어도 일을 쉴 수 없다”, “사업실패나 사기, 병원비 등으로 부모가 큰 빚을 지게 되면서 그 빚을 갚아야 했다”, “모텔, 고시원, 하숙집이나 목욕탕, 찜질방에서도 살아봤다” 등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채무, 돈과 바꾼 여가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정현 사무국장은 “이들의 빈곤은 그들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부모와 부모의 부모로부터 이어진 구조적 빈곤이자 대물림된 빈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게으르게 살아오지 않았어요. 충분히 노력하고도 어려움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은 오히려 ‘빈곤의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화재나 폭풍우처럼 피할 수 없는 재난을 입으면 국가나 사회가 지원을 해주듯이, 이들이 겪고 있는 빈곤 또한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일하는 학교>가 주최한 ‘독립생활청년 실태조사 발표회’ (올해 1월 13일 성남시 스마일카페)  ⓒ일다

 

빈곤 독립생활청년들에게 사회적 관심 필요해

 

이번에 <독립생활청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낸 일하는 학교는 그동안 청년세대 내부의 양극화 문제에 주목해왔다. 한국 사회에서 ‘소득분배의 양극화’,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는 지적돼왔고 청년세대는 그 양극화의 피해 세대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청년 내부의 양극화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다.

 

“청년세대의 양극화는 단지 경제적 측면의 양극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빈곤 청년들은 문화적인 자원에서도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정치사회운동 안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요. 대부분의 청년운동 집단은 대학재학-대졸 청년 중심이잖아요?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빈곤한 독립청년들은 그 운동에서 존재하지 않거나 주변부에 있어요.

 

빈곤 독립청년들에게는 오히려 당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밥과 집의 문제, 짧은 기간이라도 일을 쉬고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지속적으로 신뢰를 형성해 갈 수 있는 인간관계나 만남의 기회가 절실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중심의 청년 이슈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특수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기 십상이죠.”

 

이정현 사무국장은 “그동안 빈곤 독립청년들을 찾아가 만나려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비판하며 “만남과 대화 자체가 그들의 삶에 힘을 불어넣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인 또한 독립생활청년으로 살아온 조사팀의 박경란씨는 “‘대학등록금 걱정’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독립생활청년들은 N포 세대 중에서도 유독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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