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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더 재미있는 삶을 발견하다

<페미니즘과 논다>①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 



시작은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

 

“내가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하나? 그 길은 너무나 재미없고, 고된 가시밭길입니다. 가기 싫어.” 올해 초 어느 웹툰 작가가 당신은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던 그 즈음, 나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누군가에게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기 시작한 후 처음 맞이하는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 생일 파티임을 알리는 풍선을 벽에 붙였다 ⓒsyholic(인스타그램)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 나는 페미니즘의 ‘페’도 모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심지어 대학생 시절 한번쯤은 들어본다는 여성학 강의를 듣지도 않았고 관련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행이었을까? 나는 ‘여초’라 일컫는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회사를 옮겨도 그런 양상은 비슷하게 이어졌다.

 

눈에 띄는 성차별을 겪거나 직장 내 성희롱을 겪지 않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조금 더 큰 회사로 갈수록 성차별을 감지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어느 정도는 그런 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사소한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매일 친구와 카톡으로 오늘은 정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각성의 시간이 찾아온 건, 메갈리아 관련 논쟁이 일어나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이다. 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린 건 내 고민이 나 때문에,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가 나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고 불평등한 구조가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후 나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세미나와 강의도 다니기 시작했다.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는 ‘페미존’에 참여해서 집회도 열심히 나갔다.

 

신기하게도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알면 알수록 절망스러운 현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페미니즘은 나에게 절망을 발견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절망과 싸우는 방법을 알려줬다. 내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어떤 걸 해야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지금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알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피냐타에는 우리가 타파하고 싶은 걸 각자 써서 붙였다. ⓒsyholic(인스타그램)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

 

생일 파티라는 걸 준비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기 때문에 생일 파티 준비는 일단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설레기도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게임이나 퀴즈를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고 조금씩 형태를 잡아갔다.

 

생일 파티 당일, 풍선도 붙이고 피냐타(Pinata, 사탕 초콜릿 등으로 채워진 종이박스 형태의 인형으로 생일 파티 등 축제에서 사용되며 약간 높이가 있는 곳에 매달아 놓고 막대기로 두드려 부수는 놀이를 한다)도 만들어서 매달고 타코도 만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생일 파티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 대신 음료는 사서 마시게 했다. (음료 판매 비용은 어떤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나의 지인들이었지만 서로 간에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에 어색함을 덜기 위해 가벼운 빙고 게임을 먼저 진행했다. 그리고 팀을 나눠 페미니즘, 여성과 관련된 주제로 ‘그림으로 말해요’ 게임을 했는데 생리컵, 가부장, 유리천장 등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고, 한 단어를 두고도 다른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우린 정해둔 게임이 끝나고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면서 서로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비혼 여성으로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경험 등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놀랐던 점이, 몇 년이나 알고 지냈던 사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서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내가 무심히 그냥 흘려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생활,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삶과 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 게임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syholic(인스타그램)

 

생일 파티, 그 이후

 

파티 이후 단톡방이 생겼다. 단톡방에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다양한 수다를 떤다. 그리고 우리는 그 뒤로도 만나 몇 번의 재미난 파티를 하기도 했고, 누군가 여행을 가면 그 집 고양이를 돌봐주기도 하는 작은 연대체가 되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걸 목표하고 누군가를 모으려고 했으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페미니즘을 통해서 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더 많은 친구들을 얻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쉽지 않을 수는 있다. 피곤하다고 하면 피곤할 수도 있다. 생각하고 고려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삶이 재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 더 행복해졌고 내가 원하는 더 즐거운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전보다 그런 삶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나의 고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에서 ‘어떻게 하면 될까’로 바뀌었다. 또 그 ‘어떻게’를 더 재미있게 더 신나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걸로 변했다.

 

그래서 세간에서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하는 페미니즘을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페미니즘을 더 깊게 파고들면서 또 가까워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두드리자. 뻔하지 않고 Fun한 페미니즘의 세계가 열리도록.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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