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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관계의 굴레에서 드디어 독립하다
고함소리, 밖으로 나와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 성인이 된 자녀들을 이젠 힘으로 제압시킬 수 없는 아버지는 분노를 집안의 옷을 다 꺼내 칼로 찢는 행동으로 대신 풀었다. 내 신고로 온 경찰은 큰 따님이 아버님을 잘 달래서 말리라는 얘기만 남기고 가버렸다.
내가 집을 나온 날 상황이다. 그 이후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나에게 독립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매 맞던 초등학생 아이
내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결혼에 이은 출산, 양육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이 흔치 않던 그 시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부모도 결혼을 했고 자동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많은 부모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자신들이 바라는 자식의 모습이 있다면 자식도 부모에 대해 바라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자식들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한다지만, 본인들은 자식들의 기대에 미쳤는지 생각해보지 못한다.
나의 부모도 나에 대해 실망이 많았던 것 같다.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리라. 아버지가 물리적인 폭력을 주로 썼다면, 어머니는 정서적인 학대를 했던 것 같다. 간혹 잠을 설치게 하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정한 귀가시간 5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고 각목으로 때리던 아버지 얼굴이라던가, 말리기는커녕 작은방 문을 꼭 닫고 모른 척하던 어머니도 있었지.
혼나는 이유도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그날 부모의 기분에 따라 심하게 혼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떤 느낌인지보다는 부모가 화가 났는지 기분이 괜찮은지는 살피는 훈련을 했다.
그래도 매일 맞지는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집들처럼 그렇게 심한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가끔 외식을 하거나 새 옷을 사주기도 하고 같이 웃을 때도 있었으니까, 내가 불행하단 생각은 안 했다.
그렇게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박도 하고, 운동권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나름대로 반항을 했지만, 나의 어떤 면들은 매 맞던 초등학생 아이에서 그리 크지 않은 듯 했다.
몸이 분리돼야 마음도 분리된다
그러다 어머니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싸움상대가 결국 온 식구로 확장된 그날 밤, 나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옷가지조차 챙겨 나오지 못한 그 때 친척집에 잠깐, 선배 집에 잠깐, 그렇게 전전하다 지금의 집을 가지게 됐다. 아무 밑천도 없이 어떻게 집을 얻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다 살아지게 된다는 말밖에는…. 각자 경우가 다를 테니까.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드디어 그들이 나와 다른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몸이 분리되어야 가족과의 부정적인 심리적 연결도 끊어지는 것 같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일정 정도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동거생활은 안 좋은 가족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행복감보다는 나름대로 규율과 계획성을 요구한다. 세금 내는 날과 월급날 시기를 맞추고, 난방이나 전기 사용도 조절해야 한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더러움은 지속된다. 그러나 내 생활리듬과 조건에 따라 수행하는 가사노동은 내가 성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한다.
방 한 칸의 ‘연대’
전에도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잠깐 같이 사는 등 독립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번 몇 달 못 가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내가 집을 얻는 데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미안함이나 열등감 탓이다. 친구 눈치를 보게 되고, 친구 또한 내가 기분 상할까봐 과도하게 신경을 써주고 하면서 서로 피곤해졌다. 독립하겠다고 나갔으면서 같이 사는 친구와 다시 가족관계 비슷한 걸 유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 이외에 다른 관계를 가져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와 깊은 교감을 병행하는데 익숙지 않다. 그러나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나의 방 한 칸이 독립을 시작하게 해주는 큰 밑천이다. 그러니 당신이 혼자 살면서 방이 하나 남는다면, 독립하고 싶어도 당장 방법이 없는 친구에게 그 방을 세주길 제안한다. 단, 능력에 맞게 방세를 내도록 서로 계약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한다.
방을 내준 사람은 집주인이라는 유세로 보일까봐 너무 신경을 쓰거나 돈 받는 것을 미안해하지 말아야 하고, 방을 빌려 쓰는 사람은 정해진 날짜에 꼭 방세를 내야 하며, 예의는 지키되 눈치보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서로의 삶에 조언을 해주거나 힘들 때 힘이 되어주겠다는 시도도 위험하다. 도와달라고, 들어달라고 요청하면 그때 개입해야 한다. 독립한다면서 친구와 또 다른 가족관계를 맺는다면 그건 진정한 독립이 아닐 것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너무 오래 참았거나, 결혼을 통하지 않으면 가족을 떠날 수 없는 여성들의 현실을 여성들간의 연대를 통해 바꿨으면 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비워져 있는 내 옆방의 주인을 찾고 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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